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1
330화. 종료 (4)
활짝 열린 문.
“들어가라.”
안경남이 문 안을 향해 턱짓했다.
이에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걸음을 옮기던 유리.
“아, 맞다.”
그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잠시 멈춰 서서 안경남에게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디 멀리 가지 말고 그냥 근처에 있어요.”
“……?”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살짝 의아한 눈빛이 된 안경남을 향해 유리는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 안 걸립니다. 금방 끝내고 나올 거거든.”
그 말을 남긴 유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안경남.
드륵-.
그가 말없이 다시 손잡이를 잡아당기니 흑룡고의 문이 닫히고 시간을 알리는 모래시계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
흑룡고로 들어선 유리.
그러자 익숙한 원통형 구조의 내부가 그를 반겨 주었다.
고요한 적막 속.
발소리만이 흑룡고 내부에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단 한 번도 멈추거나 끊기지 않은 발소리.
이는 유리가 걸음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흑룡고에 들어선 유리는 계속해서 걷는 중이었다.
마치 흑룡고에 들어오기 전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었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걸이.
‘저쪽이었던 거 같은데.’
유리는 자신이 가지고 나갈 것을 명확히 정하고 흑룡고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가지고 나가기 위해 보상으로 흑룡고의 개방을 요구한 것이었다.
터벅터벅-.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지던 발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그와 함께 유리는 한 진열장 앞에 멈춰 서 있었으니.
“또 보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잘린 왼팔’.
이번 흑룡고에서 유리가 가지고 나갈 물건의 정체였다.
“넌 왼쪽이라고 부르면 되는 거냐?”
과거 흑룡고에 들어왔을 때.
그때 이 왼팔이 자신에게 월루의 한 조각을 넘겨주었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사라지지 않았지.’
몽파르체 호수의 지하.
그곳에서 오른이는 자신에게 월루를 넘겨준 뒤,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월루의 조각을 넘겨준 이 왼팔은 아직까지 형태가 남아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
‘그때 이 녀석이 나에게 넘겨준 게 전부가 아니란 거지.’
애초에 왼팔이 넘겨준 월루의 조각도 오른이의 것보다 작지 않던가.
이를 생각하면 아직 이 왼팔에는 무언가가 더 남아 있을 거란 의심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유리가 왼팔이 들어 있는 수정체를 톡톡 두드렸다.
“야, 나와 봐. 너, 나한테 줄 거 있잖아? 안 그래?”
똑똑-.
딱딱한 수정체가 두드려지는 소리가 울리고.
“…….”
유리가 팔짱을 낀 채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그가 턱을 쓸었다.
“…죽었나?”
잘린 시체에게 죽었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현 상황을 표현할 말은 그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왼팔을 내려다보던 유리는 결단을 내렸다.
“뭐, 데리고 나가서 확인해 보자고.”
만약 이 왼팔이 오른이와 비슷한 존재라면 분명 무언가가 더 남아 있으리라.
설사 그게 월루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유리는 그런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바로 안경남을 부르러 가려던 유리.
끼익-.
갑자기 그가 멈추어 섰다.
‘생각해 보니… 이대로 나가는 건 좀 아깝기는 하네.’
언제 또 들어올지 모르는 흑룡고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무슨 물건이 있는지 머릿속에 새겨 넣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터.
‘몇 년 사이에 신품이 들어왔을 수도 있고.’
안경남에게 금방 나온다고 통보하긴 했지만, 마음이 바뀐 유리는 밖으로 향하려던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곧장 3층으로 올라간 뒤 진열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5분, 10분, 15분.
빠르고 정확하게 흑룡고의 물품들을 머릿속에 새기며, 유리는 3층을 거쳐 2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유리가 1층을 돌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응?”
3층에서부터 시작된 걸음이 처음으로 멎었다.
유리는 한 곳에 멈춰 서서 진열대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진열대.
‘…아무것도 없어?’
그곳에는 그 어떤 물건도 들어 있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신품은 없고 나간 것만 있는 건가?’
3층에서부터 쭉 살펴본바, 그가 처음 보는 물품은 없었다.
아무래도 기대했던 신품은 없는 모양.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나 말고 흑룡고에 또 들어온 사람이 있었나.’
지난 3년 동안 흑룡고가 개방되었지 말란 법은 없었다.
자신에게 그러했듯 보상으로 흑룡고가 개방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검주가 물건을 꺼내 갔을 수도 있겠지.’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유리는 별다른 감흥 없이 마저 1층을 돌아볼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휙- 몸을 돌린 유리.
‘가만… 저 위치는?!’
비어 있는 진열대를 커진 눈으로 바라보던 그는 곧장 움직여 빠르게 1층을 돌기 시작했다.
‘없어!’
서서히 유리의 걸음 속도가 빨라지고 결국에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도 없어!’
그렇게 순식간에 1층의 모든 진열대를 확인한 유리는 다시 텅 빈 진열대로 돌아왔다.
비어 있는 진열대를 보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없다고?”
처음에는 그저 별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러다 뒤늦게 깨닫고 이후 설마 하는 심정으로 1층을 전부 돌아보고 나서야 확실해졌다.
“영감탱이 다리가… 없어?”
흑룡고에 보관되어 있던 요한의 다리가 사라졌다.
* * *
흑룡고에서 본인의 숙소로 돌아온 유리.
습관처럼 영약과 비약을 섭취하는 일을 끝낸 그는 무릎 앞에 놓인 길쭉한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흑룡고에서 가지고 나온 왼팔이 담겨 있었으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흑룡고에 다녀온 이후 그에게 두 가지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흑룡고에서 가지고 나온 왼팔.
흑룡고에서부터 그랬지만, 왼팔은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
아직 형체가 사라지지 않은 왼팔이라면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 확신했던 유리.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 확신이 조금씩 흔들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팔짱을 풀었다.
“혹시…….”
혹시 모르지 않나.
신화 속 선택받은 자의 손에 닿아야지 깨어나는 전설의 검처럼 어쩌면 이 왼팔도 자신과 접촉을 해야지만 반응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직접 만져 보는 건 처음인가?’
오른이에게 무언가를 건네받거나.
혹은 대련 과정에서 이리저리 얻어터지거나.
그런 경우는 많았어도 자기 손으로 직접 이 녀석들을 만져 본 적은 없었다.
하여 유리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왼팔이 담긴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유리의 손끝이 잘린 왼팔에 닿은 순간.
“전설은 개뿔.”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것도 아닌 모양.
기왕 이렇게 된 거 유리는 제대로 왼팔을 조사해 보고자 했다.
왼팔을 들어 올리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차갑네.”
다만 그것만 빼면 일반적인 인간의 팔과 똑같았다.
마치 시체를 만지는 듯한 느낌.
이에 유리의 눈매가 살짝 굳었다.
‘도대체 니들 정체가 뭐냐?’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이렇게 만져지기도 하니 분명 실체가 있었다.
그런데 저 혼자서 스스로 움직이거나, 어느 정도 대화도 통하는 걸 보면 그냥 일반적인 시체는 아닐 터.
그게 신기했기에 유리는 계속해서 왼팔을 주물럭거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왼팔은 끝까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리는 조사를 포기하고 왼팔을 내려놓았다.
“헛짓거리 한 셈인가?”
무언가가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흑룡고에서 왼팔을 들고 나왔지만, 아무래도 헛수고였던 모양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걸 들고 나오는 건데!’
하지만 후회해 봤자 어쩌겠는가.
이미 쓸모없는 한 짝을 들고 나온 것을.
살짝 짜증이 올라온 유리.
왼팔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점차 음흉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오른이 그 새끼를 한 번도 못 때렸었지?’
얻어터지기는 지겹게 얻어터졌건만, 결국 마지막까지 오른이를 한 번도 때려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든 생각.
‘왼팔이든 오른팔이든, 결국 어차피 그 새끼가 그 새끼인 거잖아?’
한 몸에서 떨어져 나왔을 테니 한 새끼라 치면 되는 거네?
그 생각이 들기 무섭게 유리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우드득-.
가볍게 손가락을 꺾은 그가 손을 번쩍 들고.
“흐흐흐!”
잔뜩 신난 웃음을 흘리며 오른이에게 당한 울분과 짜증을 담아 왼팔을 내려치려는 순간.
슥-.
유리가 손등을 내려치기 직전, 왼팔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는 이미 왼팔이 유리의 뒤를 선점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빠악-.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거침없이 후려갈겨 버리는 게 아닌가.
“칵!”
엄청난 고통과 충격에 앞으로 고꾸라진 유리.
그가 뒤통수를 문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 새끼……!”
오른이 새끼가 즐겨 때리는 곳을 똑같이 때리다니!
역시 이 새끼나, 그 새끼나, 똑같은 새끼였어!
그런 울분 섞인 외침을 하려던 유리는 이후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얼어붙고 말았다.
“…어?”
놀라 당황으로 치뜬 눈.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낯선 광경이었다.
‘이게… 뭐야?’
유리는 조금 전까지 분명 숙소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안개가 낀 듯 희뿌연 광경이었다.
이에 놀란 유리가 손을 휘저어 보았다.
슥-.
“응?”
한참을 손을 움직이던 유리는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표정을 굳혔다.
‘…이건 안개가 아냐.’
눈앞의 광경이 희뿌옇게 보이는 건 안개가 껴서가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세상이 뿌연 거다.’
마치 두 눈에 새하얗고 불투명한 막이 씌워진 느낌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느 정도 주변 사물의 형체가 분간될 정도는 된다는 거였다.
이에 유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인가?’
위로 쭉쭉 뻗은 초록색 형상들이 자신이 숲 한복판에 서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갑자기 숲이라니…….’
이거 꿈인가?
고작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기절한 거야?
그런 생각에 유리는 볼도 꼬집어 보고 뺨도 찰싹찰싹 두들겨 봤으나.
‘아픈데?’
은은하게 올라오는 고통이 눈앞의 광경이 현실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리는 볼을 긁적였다.
‘일단… 돌아다녀 볼까?’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 움직일 필요성이 있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슈스스-.
‘이건 또 뭐야?’
주변 풍경이 변하고 있었다.
빠르게 뭉개지는 시야.
그리고 묘하게 귀에 익은 바람 소리.
이를 통해 유리가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달리고 있는 건가?’
변화하는 주변 풍경은 자신이 달려 나갈 때 빠르게 뒤로 스쳐 가는 모습과 같았고.
귀에 익은 강한 바람 소리가 그런 가정을 뒷받침해 줬다.
또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으니.
유리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이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야다.’
혹은 그 다른 누군가가 보았던 것의 기억이거나.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녀석일 가능성이 컸다.
‘왼팔이.’
바로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던 왼팔.
어쩌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건 바로 그 녀석의 기억이지 않을까?
이를 깨달은 유리는 주변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무섭게 달리며 뭉개진 풍경이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전히 숲속을 벗어나지 못한 듯 녹음으로 가득한 주변.
하지만 그 속에 새롭게 이질적인 것이 등장했다.
그건 바로 ‘거대한 무언가’였다.
‘저게… 뭐지?’
세상이 온통 희뿌예서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대략적인 형체는 흡사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리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안 되지. 저 높이면 족히 30m는 된다는 건데… 사람이 저렇게 클 리가?’
그렇다면 저 거대한 형상은 사람의 모습을 한 동상 내지는 석상이리라.
유리는 그리 단정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오는군.]갑자기 들려온 음성.
유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이 보고 있는 기억의 주인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벌어진 놀라운 일.
[크라타아아아안!]쿵- 쿵- 쿵-!
유리가 동상이나 석상이라 단정 지었던 거대한 인간의 형상이 갑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를 터뜨렸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언어.
그러나 묘하게 섬찟하게 만드는 포효에 깜짝 놀란 유리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그러나 그를 더욱 놀랍게 하는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으니.
[——-안!]쩌렁쩌렁 메아리치는 포효와 함께 기억의 주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친?!’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거대한 형상이 시야에 잡혀 들었으니.
언뜻 보아도 거인의 형상에 절대 밀리지 않는 거대함.
길쭉한 목과 두툼한 몸통.
그리고 길쭉한 꼬리와 강한 돌풍을 일으키는 한 쌍의 날개까지.
비록 온 세상이 희뿌옇기에 그 형상만 볼 수 있었지만.
‘마, 말도 안 돼!’
유리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어찌 모르겠는가.
싸구려 동화책에서조차 툭 하면 등장하는 게 바로 저것인데.
유리가 넋 나간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정체를 홀린 듯 입에 담았다.
“…드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