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종료 (5)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 검붉은빛의 거대한 그림자.
그건 분명 전설 속에 등장하는 드래곤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크라타아아아아아아안!] [흡!]기억의 주인과 거인의 형상이 드래곤의 형상을 향해 적의를 보인다는 거였다.
‘싸우려는 건가?’
유리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 거대한 형상은 누가 봐도 거인과 드래곤이었다.
아득히 오래전, 거인족과 드래곤이 자웅을 겨뤘다는 이야기는 세 살 꼬맹이조차 알고 있을 것이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야기.
어쩌면 유리는 자신이 그 신화의 한 자락에 도달한 게 아닐까 싶었다.
‘시야가 선명하지 않은 게 아쉽네.’
희뿌연 기운이 걷히고 조금 더 선명하게 보았으면 좋으련만.
유리가 그리 아쉬워할 때, 기억이 보여 주는 광경이 갑자기 달라졌다.
높디높은 곳에 올라간 듯한 시야.
그건 단순히 유리의 착각이 아니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거구나!’
대체 어느새 이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의 주인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유리는 마치 자신이 기억 속 주인이 되기라도 한 듯 즐거워했다.
윰족이 아닌 진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경험.
이를 누려 본 존재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유리가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기대한 순간.
[가지.]기억의 주인이 읊조린 한마디와 함께 세상이 온통 황금빛으로 뒤덮여 갔다.
그리고 황금빛이 완전히 사그라졌을 때.
“아…….”
유리는 자신이 숙소로 되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에게 허락되었던 누군가의 기억이 끝났다는 표현이 옳았다.
이를 아쉬워하는 유리의 앞에 나타난 잘린 왼팔.
슥-.
녀석이 유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 익숙한 행동에 유리도 손을 마주 뻗었다.
그러자.
톡-.
잘린 왼팔로부터 황금빛 액체 한 방울이 유리의 손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고작해야 새끼손톱 정도 크기의 한 방울.
이는 유리의 손바닥에 닿기 무섭게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왼팔이가 꽃잎처럼 흩날리기 시작했으니.
오른이가 그러했듯 모든 것을 전한 왼팔 역시 사라지고 있었다.
“너도 가는 거냐?”
빠르게 빛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녀석.
그러다 마침내 왼팔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공을 향해 유리는 또다시 과거에 했던 질문을 던졌다.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말이다.
“니들 진짜… 정체가 뭐냐?”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기억의 편린.
어쩌면 왼팔과 오른팔, 그 주인이었을 이의 기억.
그건 분명, 이제는 신화의 시대라 칭하는 아득히 먼 과거의 한 장면이었으리라.
자신이 보았던 그 장면을 머릿속에 새기며.
“…….”
유리는 왼팔이 머물렀던 공간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 *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왼팔이 보여 준 신비한 기억의 여운에서 벗어난 유리는 월루를 꺼내 보았다.
그와 함께 그의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으니.
“에게? 이거, 커지긴 한 거야?”
고작 새끼손톱 크기만 한 정도의 황금빛 액체를 흡수했기 때문일까.
월루의 크기 역시 그다지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자세히 봐야 조금 커진 정도?
이에 유리는 턱을 쓸며 고민했다.
‘분명 어딘가에 월루의 다른 조각이 있을 건데…….’
그리고 그 조각을 찾아야지 토막 난 월루를 원상 복귀 시킬 수 있을 터.
문제는 그 조각들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는 거다.
이에 유리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보았다.
‘왼팔과 오른팔처럼 절단된 다른 신체 부위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신체 부위에 월루가 담겨 있을 것이다.
왼팔과 오른팔이 그러했듯.
‘문제는 이 또한 그저 가정일 뿐이라는 건데…….’
절단된 신체 부위가 왼팔과 오른팔뿐이라면?
그럼 다른 월루 조각의 행방은?
그런 고민이 이어지자 유리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냈다.
‘어차피 이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남은 월루 조각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사회로 나가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될 뿐이다.
그렇게 한 가지 고민을 치워 버린 유리는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가 흑룡고에서 가지고 나온 고민은 두 가지.
그중 한 가지가 잘린 왼팔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사라진 요한의 다리에 관해서였다.
텅텅 비어 있던 진열대.
그것이 계속해서 유리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사라진 영감탱이의 다리… 그게 무슨 의미일까.’
여러 가지 경우가 유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설마.’
그러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정을 떠올리고는 낯빛이 굳어진 순간.
“뭐 하고 있냐?”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
그 덕분에 유리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가 고개를 드니 언제 온 것인지 문 앞에 요한이 있었다.
이를 본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온 거야?”
“네놈이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낑낑거리고 있을 때부터?”
“왔으면 인기척이나 좀 낼 것이지.”
“내 누누이 말했지만, 남이 숨긴 기척을 찾아내는 것도 실력인 게다! 늘 긴장하고 기척을 찾아내려 하지는 못할망정, 그마저도 날로 먹으려 드는 거냐? 쯧쯧쯧, 실력이 딸리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거늘.”
“뭐래? 나만큼 노력하는 천재가 또 어디 있다고.”
“호오? 얼마나 노력을 했기에 그리 자신하냐?”
“꽤 많이?”
“지난 3년간도?”
“물론.”
“그렇단 말이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요한이 문밖을 향해 턱짓했다.
“나와라.”
“응?”
“나오라는 말 못 들었냐?”
“왜?”
“지난 3년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잠시 말끝을 흐린 요한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실력 한번 보자.”
* * *
유리와 요한은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했다.
요한의 옆에서 가볍게 몸을 풀던 유리가 슬쩍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영감, 이런 상황에서 하기는 좀 뭐한 질문이지만…….”
“그럼 하지 마라.”
“하지만 궁금한걸?”
“옘병할 애새끼가… 뭐냐, 궁금한 게.”
“나, 귀걸이 어떻게 해? 저번에 한 번 뺐었는데?”
유리의 질문에 요한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 빨리도 처묻는다.”
귀걸이를 뺀 지가 언제 적인데.
그런 힐난 섞인 눈초리에 유리가 발끈했다.
“저번에 물어보려 했는데 영감탱이가 훌쩍 사라졌잖아!”
“그 도둑질하기 전에 물어봤으면 되는 거 아니냐?”
이번에는 유리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눈빛을 말이다.
“영감,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귀걸이가 고장 난 일이 네놈의 그 도둑질보다도 보잘것없는 사안이다?”
“당연하지.”
“…글러 먹은 애새끼.”
“그래서 어떻게 하는데? 영감이 다시 뭔가 조치를 해 줘야 하는 거야?”
재차 이어진 유리의 질문에 요한은 혀를 차며 답했다.
“쯧, 됐다.”
“됐다고? 왜?”
“애초에 그 귀걸이는 네놈의 영혈을 틀어막는 용도였으니… 이젠 굳이 다시 할 필요는 없겠지.”
귀걸이는 본신 마나 핵의 운용을 위해 영혈로 마나가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그런데 유리가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이상, 굳이 더는 귀걸이가 필요치 않을 터.
그런 요한의 설명에 유리는 살짝 귀걸이를 매만지며 물었다.
“계속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해 보지도 않았는데.”
“별문제 없겠지? 영혈에 무리가 간다든가? 아니면 마나 운용에 지장이 있다든가?”
“귀걸이 다시 찬 이후로 마나 운용을 하는 데 걸리적거림이 느껴진 적 있더냐?”
“아니? 괜찮던데?”
“그럼 앞으로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다만 네놈의 영혈 속 마나 핵, 그건 나도 어찌 장담하지 못하는 요소인지라…….”
“…지라?”
“혹시 모르지. 마나를 전력으로 운용하면 귀걸이가 망가질 수도.”
“흠… 그렇단 말이지.”
“귀걸이가 망가질 게 걱정된다면 그냥 빼 버리면 되지 않냐? 이제는 너한테 필요도 없는 물건이건만?”
그런 요한의 물음에 유리는 혀를 찼다.
“쯧, 후줄근한 꼴로 다니는 영감이 멋이란 걸 알아?”
“…나는 멋 대신 실용성을 선택한 것뿐이다, 이 새끼야!”
“그럴 거면 옷이라도 좀 빨고 다니든가.”
“그러는 네놈도 허구한 날 시커먼 거적때기만 걸치고 다니는 주제에?”
“그래서 이렇게 귀걸이로 멋을 더해 주는 거잖아? 그리고 말야…….”
살짝 말끝을 흐린 유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비틀렸다.
“난 그딴 거적때기만 걸치고 다녀도 돼.”
“어째서?”
“얼굴이 되니까.”
“…….”
“모든 멋은 결국 얼굴이 완성하는 거거든.”
마치 ‘아, 영감은 모르겠네? 평생 그 얼굴로 살았으니까?’라는 듯.
다소 측은한 유리의 눈빛에 요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거였구나.”
그는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이 싹퉁머리 없는 애새끼를 교정시키는 것이 하늘이 내게 맡긴 마지막 소명이로구나.’
크나큰 깨달음을 얻은 요한은 결심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절대 봐주지 않겠다고.
진심을 다해 후드려 패야겠다고.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흐흐흐.”
흐릿한 미소가 사악한 기운을 흘려 대니.
“음… 여, 영감? 지금 눈깔이 살짝 돌았는데?”
몸을 풀다 말고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유리.
그런 그를 향해 요한이 달려들었다.
“뒈져랏, 옘병할 애새꺄!”
흉흉한 기운을 머금은 오른 주먹을 내뻗으면서 말이다.
“고이 뒈져 다음 생에는 금수로 태어나거라!”
이에 놀란 유리가 황급하게 뇌익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쫑알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니, 선배가 후배한테 선공을 양보하고 그런 거 없냐고!”
다급히 고개를 숙인 유리.
그의 뒤통수로 요한의 오른 주먹이 스쳐 지나갔다.
“네놈이 언제부터 선후배를 따졌다고? 위아래 구분도 못 하던… 아니, 안 하던 싸가지 없는 애새끼!”
곧바로 오른손을 수거한 요한은 이번에는 양손을 뻗었다.
파바바바방-!
잔상만 남을 정도의 무수한 주먹질이 유리의 얼굴을 노렸다,
“치사하게! 명인씩이나 되는 인간이 다짜고짜 기습하는 건 정상이냐, 이 노망난 늙은아!”
어깨 위로만 움직이는 것으로 요한의 주먹 세례를 피해 내는 유리.
몸통은 하나인데 얼굴은 수십 개가 된 듯한 잔상을 만들어 낸 그는 뒤로 몸을 물렸다.
동시에 뒷걸음질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곡예를 선보였다.
“명인은 강해서 명인이 된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명인이 된 거다! 명인이라고 기습을 안 할 거 같냐? 오히려 그 자리에 오른 연놈들이 더 더럽고 치사한 새끼들이지!”
나무에 착 달라붙은 듯 올라가는 유리를 쫓아 요한 또한 나무를 걸어 올라갔다.
“아무리 그래도 약자를 먼저 공격하냐!”
쫓아오는 요한을 피해 나무를 박찬 유리.
“이게 노약자 우대 선빵이란 거다, 이 모자란 놈아!”
요한도 유리를 쫓아 나무를 박찼고.
“나이 처먹어서 좋겠다!”
쫓아오는 요한을 노리고 유리가 강한 기운을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오냐, 눈물 나게 좋다! 어쩔래?”
허공에 뜬 채로 유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낸 요한은 다시금 소나기처럼 주먹을 뻗어 냈으며.
투돠돠돠-!
“유치하게 진짜!”
이에 유리도 지지 않고 똑같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나무에서 나무로.
곡예를 하듯 번갈아 나무를 박차며 초고속의 싸움을 이어 나가는 유리와 요한.
그들의 움직임은 어지간한 사람은 감히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
그건 바로 그들이 나무를 박차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그 어떤 나무에서조차 쌓인 눈이 떨어져 내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투드드드-!
숲속에 울려 퍼지는 건 그저 요한과 유리 두 사람이 내뻗는 주먹질 소리와.
“야, 이 미친 노친네야! 왜 아까부터 자꾸 꼬추만 노리는데!”
“클클, 네놈 주둥이는 아무래도 과한 양기가 위로 뻗쳐서 그런듯싶으니 그 기운을 좀 꺾어 주려고 그런다.”
그들이 주고받는 저질스러운 욕지거리뿐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점은, 그들이 주고받은 경이로운 공수가 그저 가벼운 몸풀기 내지는 일종의 탐색전에 불과했다는 거였다.
탁-.
한참을 공중에서 경합을 벌이던 유리와 요한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땀 한 방울,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두 사람.
5m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가운데.
스르릉-.
먼저 칼을 뽑아 든 요한.
“내가 먼저 공격한 게 치사하다고 했더냐? 그럼 어디, 먼저 달려들어 보아라.”
그가 유리를 향해 칼을 까딱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날 죽이겠다는 각오로.”
요한이 칼을 먼저 뽑은 모습에 유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영감탱이.’
검술을 알려 줄 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대련에서 요한이 자신을 상대로 칼을 뽑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번 주먹질 혹은 나뭇가지만으로도 자신을 상대해 왔던 요한.
그랬던 그가 자신을 상대로 칼을 뽑았다는 사실에 유리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묘한 흥분이 그의 가슴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딘가 모르게 요한에게 인정받은 듯한 기분.
하여 유리가 씨익 웃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말… 후회할걸?“
황금빛 눈동자를 빛낸 유리.
파측-.
짙푸른 뇌전에 휩싸인 그가 요한을 향해 전력으로 쇄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