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8.5
338화. 세 번째 (5)
검 끝이 검은 태양에 닿은 순간.
요한은 속으로 탄식했다.
‘허…….’
느껴진다.
눈으로 본 것보다, 이렇게 직접 검을 대고 그 흐름을 건드니 이 검디검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힘이 얼마나 끔찍한지 너무도 잘 느껴졌다.
‘이런 힘을… 이제야…….’
이제야 검주에게 이 정도 힘을 끌어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요한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게… 검주의 전부일까?’
검주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였건만, 지금껏 자신은 검주의 전력을 본 적이 없던 거였다.
하물며 지금 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힘도 검주의 전력일지 아닐지 모른다.
그 같은 생각에 요한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미안하구나. 내 뒤를 쫓아올 네놈에게 마지막 선물 하나쯤은 남겨 주려 했는데.’
검주의 전력.
그걸 유리에게 보여 주고 싶었건만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여기까지인 듯싶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긴 하마!’
요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우고 이를 꽉 깨물었다.
“크아아아악!”
악에 받친 듯한 요한의 외침.
그와 함께 마류가 검은 태양의 흐름을 잡아끈 순간.
지이이이잉-!
검은 기운이 터지며 세상을 집어삼켰다.
“이런?!”
위기감을 느낀 고든이 재빨리 검을 휘두르니 거대한 나무의 화신이 솟구쳐 그대로 그와 유리를 감쌌고.
그러기 무섭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진동, 그리고 충격이 두 사람을 감싼 고목의 화신을 뒤흔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쉼 없이 고든의 화신을 두들기는 폭발의 여파.
그 속에 섞인 심상의 편린이 어찌나 강했던지 고든의 화신이 연신 떨려 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서서히 사그라드는 진동.
그러다 마침내 모든 진동이 사라지자 고든이 화신을 거두었다.
그러기 무섭게 먼지 섞인 강풍이 유리의 얼굴을 때렸다.
훙-!
눈을 따갑게 하는 흙먼지에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앞을 가린 유리.
잠시 후, 돌풍이 사라진 뒤 손을 내린 그는 자신의 시력을 의심해야만 했다.
“미… 친.”
크게 치떠진 눈.
절로 튀어나온 나직한 욕설.
그것이 현재 유리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 유리의 시선이 닿은 곳.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희뿌연 먼지구름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울창했던 숲은 물론, 드넓었던 대지까지.
그 모든 게 사라진 상태였다.
좀 더 정확히는 요람의 동쪽 섬 중 3분의 1가량이 누가 오려 낸 듯 날아가 버린 상황.
그 놀라운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던 유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훑었다.
‘영감!’
조금 전 요한은 마류를 사용했다.
그건 분명 검주의 힘을 되돌리려는 시도였으리라.
그런데 그 힘이 애먼 섬을 날려 버렸다는 건 요한의 마류가 제구실을 못 하였다는 뜻.
그럼 마류를 사용한 요한이 멀쩡할 리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유리가 요한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
“……?!”
저 멀리, 지면에 널브러진 한 인영이 유리의 시야에 잡혀 들었다.
이를 보자마자.
파측-.
유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런 유리를 고든은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끝났군.”
무려 20년 만에 행해진 부절검의 세 번째 검좌 찬탈.
그 마지막 도전이 조금 전 끝이 난 것이다.
* * *
유리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장소.
그곳에 그가 누워 있었다.
어깻죽지부터 날아간 왼팔.
온통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
피부의 주름은 자글자글 늘어, 평소보다 족히 스무 살은 더 먹은 듯한 모습.
그건 생명을 담보로 힘을 끌어 다 쓴 이의 말로였다.
하늘을 보고 누워 있던 요한은 인기척을 느끼고 힘겹게 눈을 떠 유리를 바라보았다.
“왔… 냐?”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유리는 천천히 요한에게 다가가 그 옆에 무릎 꿇었다.
“…영감.”
유리가 요한의 상체를 살짝 일으켜 제 무릎에 기대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요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파리함을 넘어 새하얗게 변한 낯빛.
거기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는 이의 얼굴이었다.
그 사실에 유리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시선을 내리깔 때.
“거… 내… 그랬잖으냐, 다 늙어서… 몸에 좋다고 이것저것 챙겨 먹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그때 엘릭서 같은 걸… 주워 먹었더니… 한 방에… 안 뒈지고… 이리 버티는 게지. 쿨럭.”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말투.
그러나 점점 힘이 빠지는 목소리.
이에 유리가 말을 아끼라고 하려던 그 순간.
죽어 가는 얼굴로.
흐릿하게 꺼져 가는 눈빛으로.
턱-.
요한이 힘겹게 들어 올린 하나 남은 손이 유리의 어깨에 올려졌다.
그와 함께 순간 또렷해진 발음으로 요한이 자신의 마지막 뜻을 전했다.
“이제 네놈 차례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짊어졌던… 내 인생을 짓누르던 것을…….”
요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이어… 받아라. 그리하여…….”
유리는 자신의 어깨에 닿은 손이 점차 무거워짐을 느꼈다.
“힘껏 들어 떨쳐 내라.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너만은 반드시 떨쳐 버리리라……!”
유리와 요한의 시선이 마주하고.
“믿는다.”
선명하고 강한 신뢰가 유리를 직시했다.
그 순간 요한의 두 눈에 담겨 있던 무언가가 유리에게 전해졌으니.
그건 바로 수십 년 세월 동안, 요한 레드너란 인간이 쉼 없이 단련해 온 불굴의 집념이었다.
이를 넘겨받고, 고개 숙였던 유리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옘병.”
나직한 욕설.
“하여간 바라는 것도 드럽게 많아요.”
“망할… 애새끼… 말하는 싸가지는…….”
툴툴거리는 유리.
그 변함없는 모습에 요한은 이상할 정도로 안도감이 들었다.
이에 요한이 힘겹게 낄낄거리며 문득 질문을 던졌다.
“클흘… 잘… 봤냐?”
“잘 봤지. 영감이 신나게 두들겨 처맞는걸.”
“그래… 잘… 봤… 구만… 쿨럭!”
만족했다는 듯 미소 짓는 요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유리가 나직이 그를 불렀다.
“영감.”
요한을 부르는 유리의 목소리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에 요한이 유리를 마주하자.
“오늘 좀… 멋있었어.”
그가 주먹으로 요한의 가슴을 가볍게 툭- 치며 그리 말했다.
유리가 전한 진심이 가슴에 닿은 순간, 점점 흐려지던 요한의 눈빛이 잠시 맑아졌다.
그와 함께 그의 입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렸다.
‘멋있었다라…….’
이 염병할 애새끼의 입을 통해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듣다니.
평소였다면 지랄 말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게…….
‘…나쁘지 않구나.’
무언가 인정을 받은 듯싶어 가슴이 충만해졌다.
요한은 생각했다.
‘내 일생이 그리 헛되지는 않은 겐가?’
비록 패배하였을지언정, 그리 헛된 삶은 아니었던 거 같다고.
요한은 그리 마지막으로 즐거이 웃으며.
툭-.
눈을 감았다.
“…….”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유리.
분노하지도, 그렇다고 눈물을 보이지도 않은 채.
그는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혹여라도 요한이 다시 눈을 뜰까.
다시 벌떡 일어나 자기 안 죽었다고 낄낄거리지는 않을까.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은 채.
유리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은 요한.
그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유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한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저 멀리, 언제 내려온 것인지 지상에 서서 자신과 요한을 바라보고 있는 검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리는 문득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
‘이 간격…….’
검주와 자신이 떨어진 거리.
이는 너무도 익숙한 간격이지 않은가.
잠시 그렇게 검주의 모습을 눈에 담은 유리가 손을 귀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찰각- 찰각-.
양쪽의 귀걸이를 모두 벗겨 낸 뒤, 요한의 손에 쥐여 주며 작게 중얼거렸다.
“…전력을 다하면 망가질 수도 있다고 했으니… 잠깐 맡아 줘.”
귀걸이를 쥔 요한의 손을 그의 명치에 살며시 올려 둔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검주를 마주 보고 서서 입을 열었다.
“약속하셨었습니다.”
유리의 담담한 목소리가 마나를 타고 앞으로 전해졌다.
어쩌면 백 보보다 약간 더 멀지 모르는 거리.
그 너머에 오연히 서 있는 검주에게로 말이다.
이에 검주의 눈에 작은 흥미가 일었으니.
그사이 유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게 언제든 도전하라고, 기꺼이 기다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런 유리의 물음에 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리 약속하였었지.”
[때가 되었다 여기면, 언제든지 도전하라. 내 기꺼이 기다릴 터이니. 너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두 번째 백보 의식이 끝나고, 유리는 검주로부터 그런 약속을 받아 냈었다.
이를 검주가 인정하자 유리는 거침없이 요구했다.
“지난 3년, 요람에서 벌어진 사고로 인해 제가 치렀어야 할 나머지 3번의 백보 의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하여?”
“하여 아직 제게 그 세 번의 기회가 남았음을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유리는 말하고 있었다.
이제 요람을 수료하지만, 수료 이후에도 남은 세 번의 백보 의식을 치르게 해 달라고.
이는 사고에 휘말려 치르지 못한 백보 의식에 대한 합당한 요구일 수도 있으나, 어찌 보면 억지 요구일 수도 있었다.
유리도 이를 알고 있기에 그 결정권은 오롯이 검주에게 넘긴 것이다.
당신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듯.
하지만 그 눈빛만은 반드시 내 요구 조건을 들어 달라는 듯 강렬하고 매서웠다.
이에 검주는 한동안 아무런 답 없이 유리를 바라보았다.
“…….”
길어지는 침묵.
그럴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유리의 눈빛에 검주는 아주 보일 듯 말듯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으니.
“인정하마.”
마침내 검주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유리는 당차게 소리쳤다.
“그 세 번의 의식 중 하나를 지금 이 자리에서 쓰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유리의 선언.
이에 검주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돌변한, 검주와 유리 사이의 기운이 답을 대신해 주었다.
고오오오오오-.
유리는 눈앞에 만들어진 백보 의식의 장을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자기로부터 딱 백보의 공간을 만든 건가?’
검주는 유리의 요청에 자신으로부터 정확히 백보에 걸쳐 기운을 풀어냈다.
아마도 유리가 이대로 몇 걸음만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백보의 영역장에 들어설 터.
앞으로 나아가기 전 유리는 잠시 말없이 요한을 내려다보았다.
“…….”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일 뿐.
다시 고개를 든 그는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유리의 등 뒤.
그가 보지 못한 곳에서 한 가지 기이한 일이 일어났으니.
스으으-.
유리가 막 두 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요한의 가슴에서 무지개색의 작은 빛 덩어리가 하나가 살며시 빠져나온 것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호두알 크기의 빛.
이는 잠시 요한의 가슴 쪽을 배회하다가 요한의 손 쪽으로 내려갔고.
스륵-.
그대로 유리가 쥐여 준 귀걸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모든 게 극히 찰나에 벌어진 일.
하여, 자신의 등 뒤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을 까마득히 모른 채, 유리는 오로지 앞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점차 검주가 펼친 백보 의식의 간격에 가까워지는 유리.
그러다 마침내 백보 의식의 영역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 둔 순간.
두그- 두그- 두그-.
두둥- 두둥- 두둥-!
유리가 품은 두 개의 마나 핵이 공명하며 거칠게 박동했다.
평소였다면 적당한 선까지만 마나를 증폭시켰을 유리.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늘 영감이 처맞은 건… 내가 언젠가 반드시 되갚아 줄게.’
그는 한계치까지 마나를 끌어올렸다.
자신의 육신이 버텨 낼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조금은 망가져도 상관없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한계치까지.
그 수준까지 끌어올린 마나는 두 마나 핵의 증폭 과정을 거쳐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을 정도의 양으로 늘어났고.
고오오오-!
이는 곧 유리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마나의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그와 함께 유리의 머리 위에 금빛의 찬란한 왕관이 씌워졌다.
휘몰아치는 마나의 폭풍 속,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을 발하는 황금빛 달의 왕관.
이를 본 검주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으니.
“…금광월관.”
아주 작게 읊조린 검주의 두 눈에 진한 기쁨이 피어올랐다.
그는 마치 보물을 바라보듯 유리를 응시했다.
그러던 그 순간.
쿠웅-
유리가 마침내 백보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익숙하게 전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압력.
그 속에서 유리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이건 내가 영감한테 하는 약속이니까… 잘 지켜보라고.’
그가 전신에 끓어 넘치던 마나를 오로지 단 한 걸음의 운보에 모조리 쏟아부어 버렸다.
콰아아아아앙-!
유리가 발을 내디딘 지면이 폭발하듯 움푹 꺼지고.
파즈즈즉-!
짙푸른 청뢰에 휩싸인 유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그그그-.
어마어마한 압력에 뭉개지는 바람 소리.
운보와 뇌익을 펼친 유리는 증폭된 마나의 힘으로 백보 의식의 압력을 떨쳐 내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검주를 향해 나아갔다.
첫 백보 의식에서 아득바득 피를 토하며 겨우 도달했던 열다섯 보.
두 번째 백보 의식에서 힘겹게 닿았던 51보를 지나.
그 뒤로도 유리는 한참을 더 나아갔다.
60보.
65보.
70보.
검주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압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앞을 향해 나아가던 유리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75보에 이르러.
‘마류!’
마류를 펼친 유리는 압력을 해소하며 떨어진 속도에 힘을 실었다.
80보.
85보.
그렇게 그가 노력한 5년의 세월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온 끝에.
더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지독할 정도의 압력에 유리는 멈추어 섰다.
탁-.
두 발이 지면에 안착하자마자 유리는 검주와의 거리를 재어 보았다.
‘앞으로 열 보.’
놀랍게도 유리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공간을 격하고, 단숨에 90보를 건너뛰었다.
이는 유리가 보낸 노력의 5년과 요한의 피땀 어린 20년 세월이 합쳐진 끝에 도달한 결과였다.
유리는 열 걸음 너머에 서 있는 검주를 노려보았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제 검주와 남은 거리는 단 열 걸음.
그 열 걸음의 간격 속에는 지금껏 거쳐 온 구십 걸음보다 더욱 끔찍한 압박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리에게는 그 압박을 뚫고 검주에게 나아갈 여력이 충분했다.
그럼에도 그는 더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의미 없는 짓이다.’
한 번의 도약으로 고작 구십 보 따위가 아닌, 검주의 코앞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게 아닌 이상 아득바득, 아둥바둥 검주를 향해 나아가는 건 부질없는 짓이리라.
하여 유리는 검주를 향해 더 걸어가는 대신 다른 것을 선택했다.
스르릉-.
서서히 뽑혀 나오는 유리의 검.
척-.
그 검 끝을 검주를 향해 겨눈 유리가 말했다.
“앞으로 두 번… 남았습니다.”
그건 요한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자.
“머지않아 찾아 뵙죠.”
검좌 찬탈의 선포였다.
이에 검주는 너무도 기쁘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으니.
“기다리마.”
요한의 죽음에 아쉬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온 것에 대한 기쁨을 여실히 드러낸 채.
검주는 밝게 웃으며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후 말없이 검주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유리.
“…….”
그의 머리 위로 작은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12월 15일, 용의 요람.
요한의 싸움이 시작되었던 그곳에서, 그가 수십 년간 이어 온 세 번의 도전이 끝을 고했으며.
요한의 싸움이 끝난 그곳에서, 세 번째 백보 의식을 통해 유리가 검주에게 검 끝을 겨누었으니.
이는 과거를 잇는 새로운 도전의 포부였다.
『#Season.02 – End』
에필로그. 위대한 영혼
12월 16일.
잠시 피난을 떠났던 요람의 모든 이들이 되돌아온 그날.
요한의 장례식이 요람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이는 유리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인 아린과 뽀삐, 군터와 무치뿐.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정성스레 쌓은 마른 나무 장작더미에 요한의 시신이 올려졌고.
화르르-!
곧 뜨거운 불길이 치솟으며 그의 육신을 불살랐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장례에 참여한 이들은 고요히 지켜보았다.
“…….”
“…….”
그리고 그 누구보다 불길에 가까운 곳에 유리가 서 있었으니.
뽀삐가 유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배고프다.”
나직한 목소리.
그리고 두툼한 손을 통해 울림이 전해졌다.
비록 여전히 뽀삐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던 유리.
이에 불길로 뒤덮인 요한에게서 시선을 뗀 그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털어 뽀삐의 손을 떨쳐 냈다.
“됐어, 인마. 나 괜찮아.”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불길에서 등을 돌렸다.
“나 좀 쉬다 올 테니까, 불 안 꺼지게 잘 지켜봐.”
그리 말을 남긴 그는 홀연히 뇌전에 휩싸여 사라졌다.
파측-.
이후 그의 친구들은 떠나간 유리의 자취를 눈으로 좇으며 속닥였다.
“유리 선배… 울러 간 걸까요?”
“글쎄? 평소였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요한 님의 죽음이니, 유리 녀석도 상심이 크겠지.”
“배고프다…….”
자신들 역시 요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는데 유리라고 멀쩡하겠는가.
아린은 유리가 사라진 방향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뽀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거 무슨 말이야?”
난데없는 질문에 뽀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프다?”
‘무슨 말?’이라고 되묻는 듯한 표정에 아린이 답을 줬다.
“왜, 아까… 위대한 영혼이 네 곁에 남아 여전히 널 바른길로 이끌 거라고 말했던 거. 그게 무슨 뜻이야?”
“배고프다.”
뽀삐가 알려 주지 않겠다고 약을 올린 것일까?
아린이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칭얼거렸지만.
“아, 왜! 뭔데? 나도 알려 줘!”
뽀삐는 그저 말없이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평온히 잠든 요한의 얼굴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