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꿈 (1)
홀로 남겨진 군터는 점점 작아지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이 나가 있던 것도 잠시.
군터의 얼굴에 서서히 희색이 번져 나갔다.
“아버지…….”
남이 들었다면 다소 모질다고 여겨질 부친의 언사였다.
하지만 어찌 군터가 모르겠는가.
만약 아버지가 자신에게 정말 실망하였다면 이렇게 여비와 짐까지 챙겨 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부친의 눈빛 정도는 자신도 읽을 줄 알았다.
다소 매몰차게 문을 닫던 부친의 눈빛은 질책이 아닌 대견함을 담고 있었다.
하여 군터는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마차를 향해 가볍게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자신의 고민을 읽어 길고 긴 외유까지 허락해 주신 아버지.
그 이해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부친이 나아간 방향을 향해 깊이 절을 올린 군터가 몸을 일으켰을 때.
“후우.”
짧게 숨을 내뱉은 그의 얼굴은 밝게 변해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고민을 잠시 하였지만, 별 의미가 없는 고민이란 것을 깨달았다.
‘요람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곳.’
다시 말해 거꾸로 요람에서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도 무조건 거쳐야 하는 관문.
하여 먼저 떠나갔던 유리와 다른 친구들도 분명 그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출발은 내가 좀 늦었지만, 마차를 타고 왔으니 얼추 비슷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저들이 평범하게 걸어왔다면 어쩌면 자신이 먼저 도착할 수 있으리라.
“좋아, 가자!”
곧 친구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 여긴 군터.
그가 세상을 향해 당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1월 4일 오후.
너른 대지 위에 끝도 없이 늘어선 거대한 장벽.
요람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완공한 그 길고 긴 장벽은 용의 요람으로 향하는 이들의 첫 번째 관문이자, 요람에서 나오는 이들을 맞아 주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러한 성벽의 유일한 출입구로 작은 먼지구름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음?”
“뭐지?”
성문에서 경계를 서던 두 명의 초병은 먼지구름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검은 옷차림의 청년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창을 들었다.
“저, 정지!”
“정지이이이이!”
다급한 초병들의 외침에도 달려오는 청년을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같은 상황에 놀라 늙은 초병이 품에서 기다란 호각을 꺼냈다.
다른 초소로 비상 상황을 알리려는 행동.
그 신속하고 빠른 조치가 그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건지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초병이 호각을 입에 물려는 찰나.
파측-.
작은 뇌성과 함께 초병의 손에 들린 호각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그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
“에헤이, 이런 거 함부로 불면 안 되죠.”
자신들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초병이 기겁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호각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는 유리가 있었으니.
이에 두 초병이 그를 향해 창날을 들이밀었다.
“감히 델리 아가스 관문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신원을 밝혀라!”
상당히 날 선 그들의 반응에도 유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만들려는 거 같아서 뺏은 것뿐입니다.”
유리는 가볍게 호각을 던져 돌려주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던 젊은 초병은 그제야 유리가 입고 있던 옷차림에 시선이 갔다.
다소 먼지가 껴 뿌옇지만 검디검은 옷.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 저런 옷을 입고 돌아다닐 존재라면?’
젊은 초병이 얼굴을 펴고 물었다.
“혹시… 요람의 수료생이십니까?”
“그렇죠.”
“…아무리 요람의 수료생이라고 하여도 델리 아가스의 관문에서 이리 행동하시면 곤란합니다.”
“옙,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장난스럽게 손을 휘휘 내젓는 유리를 향해 살짝 한숨을 쉰 나이 든 초병이 본연의 임무를 시작했다.
“관문을 지나고 싶으시거든 신분을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저 요람의 수료생입니다만?”
“그러니까 그 수료생임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저 말이 뭔가 싶어 눈을 끔뻑이던 유리.
그는 곧 초병의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하!”
요람의 수료생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주는 물건이 무엇이겠는가.
유리는 품에서 작은 패를 꺼내 초병에게 던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물건은 받아 든 나이 든 초병.
이를 옆에서 본 젊은 초병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은색?”
지금껏 그가 보아 온 요람의 용패는 대개 황색, 은색, 황금색, 백은색이었다.
그런데 검은색이라니?
‘모양새는 용패가 맞는 거 같은데?’
그렇게 그가 의아해하는 사이, 늙은 초병은 검은 용패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흐, 흑룡패?!”
그 말에 그제야 아주 오래전 초병 교육을 받으면서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 젊은 초병.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그 흑룡패란 말입니까?!”
초병 임무를 맡은 지 벌써 3년째지만,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흑룡패.
그 물건의 등장에 젊은 초병은 물론이거니와 나이 든 초병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흑룡패주라니!’
흑룡패주를 보는 건 27년 초병 생활을 해 온 그로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그저 다른 이들이 흑룡패를 보았다는 걸 전해 들은 게 전부일 뿐.
‘허,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려 했더니만… 이리 흑룡패를 받아 보게 되는구나.’
무수히 많은 초병 중에서도 직접 흑룡패를 본 이는 손가락에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흑룡패주는 고작 열뿐이었으니 말이다.
뜻밖의 행운에 미소를 머금은 초병이 흑룡패를 돌려주었다.
“열 번째 흑룡패주를 이리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그는 유리의 얼굴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흑룡패주치고 이름을 떨치지 않은 자가 없으니, 이 청년 또한 머지않아 그리되겠지.’
그때쯤이면, 곧 태어날 손주들이 제법 자랐을 터.
그러면 손주들에게 이야깃거리 삼아 들려 줄 수 있을 거다.
자신이 그 유명한 사람의 용패를 보았다고 말이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미래를 그리며 늙은 초병이 길을 비켜섰다.
“신분 확인되었습니다. 지나가셔도 됩니다.”
유리는 용패를 품에 갈무리했지만, 성문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조금 있다 가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유리의 이야기에 두 초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조금만 기다리면 흑룡패주의 일행이 오리라 대충 어림짐작하며.
하지만.
10분.
30분.
1시간.
그렇게 무려 두 시간여가 흘렀음에도 흑룡패주의 일행이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렸다 가겠다던 흑룡패주는 아예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었으니 초병들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헛흠, 그…….”
이에 나이 든 초병이 작게 헛기침을 한 순간.
“왔네.”
심드렁하게 누워 있던 유리가 구시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쯧, 하여간 느려 터졌구먼.”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초병들은 유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돠돠돠돠돠-!
유리가 나타났을 때처럼 먼지구름이 빠른 속도로 관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먼지구름의 크기가 엄청 크다는 것뿐.
“저, 저?!”
“헉!”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먼지구름.
그리고 그 속에는 족히 수 미터는 되어 보임 직한 거인과 멀리서도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푸른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배고프다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땀을 줄줄 흘리는 그들은 악에 받친 얼굴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경쟁하는 모양새.
그리고 그게 진실이었다.
[야,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하자. 꼴등 한 사람이 델리 아가스에 도착해서 1등한테 옷 사기. 어때? 제발 이 지겨운 훈련복 좀 벗고 다른 것 좀 입자고!]요람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루함에 지친 유리가 제시한 내기.
[배고프다.] [싫어, 어차피 해 봤자 네가 이길 거잖아.]물론 아린과 뽀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유리가 스스로 핸디캡을 자처하니.
[니들이 먼저 출발하면, 난 한나절 뒤에 출발할게.] […배고프다?] […정말?]마침내 호구들이 흥미를 보였다.
이를 놓칠세라.
유리가 확실하게 호구들을 엮었다.
[아니다, 차라리 하루 뒤에 출발해 줄게. 뭐, 그 정도면 싱겁게 끝나지는 않겠지.]다소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아린과 뽀삐가 살짝 발끈해 소리쳤다.
[좋아! 후회하지 마!] [배고프다!]그렇게 내기가 성사되기 무섭게 아린과 뽀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 나갔다.
이에 유리는 매우 성실하게 그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정말로 하루가 지나서야 출발을 한 것이다.
하지만.
[뭐야, 고작 여기까지밖에 못 온 거야?]유리는 너무도 쉽게 그들을 따라잡았고, 역전해 버렸다.
심지어 아린과 뽀삐는 잠조차 자지 않고 4일간 내내 달렸음에도 하루 6시간씩 숙면을 취하며 달려온 유리를 떨쳐 내지 못했다.
상황이 그리되니 아린과 뽀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나만 아니면 돼!’
‘배고프다!’
어차피 꼴등이 1등에게 사 주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 꼴등이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필사의 의지를 세운 것이다.
그 의지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저 상황이었다.
“흐랴아아아아아아!”
“배고프다아아아!”
눈깔이 반쯤 뒤집혀 달리는 아린과 뽀삐.
둘의 치열한 막판 경쟁을 지켜보며 유리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쓸었다.
“호오? 거의 박빙인데?”
처음에는 아린이 뽀삐를 따돌리고 압도적으로 선두로 치고 나갔었다.
원래부터 속도 면에서는 50기 내에서 유리 다음이던 그녀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체력.
잠조차 자지 못하고 4일을 내리 달렸으니 다소 체력이 부족한 아린의 속도가 상당히 떨어진 것이다.
반면, 체력과 힘은 유리조차 압도하는 뽀삐.
거기다 녀석에게는 거인화라는 능력이 있었다.
비록 거인화를 길게 유지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걸음에 수 미터는 쑥쑥 나아가는 속도는 마지막 격차를 따라잡기에 충분했으리라.
‘자, 거인화로 단숨에 격차를 따라잡은 뽀삐냐, 그것도 아니면 막판 쥐어짜기로 속도를 높인 아린이냐?’
유리조차 쉽사리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박빙의 승부 끝에.
“내 승리다아아아아아앙!”
“배고프다아아아!”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려 성벽을 짚었다.
콰앙-!
“히익?!”
“흐익!”
성벽으로부터 들려온 어마어마한 울림에 돈 주고도 구경 못 할 경주를 직관한 두 초병의 목이 움찔거렸다.
그런 초병들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에는 아린과 뽀삐가 널브러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기절… 아니, 숨이 넘어갈 듯싶은 그들이 유리를 향해 물었다.
“누, 누가 이겼…….”
“배, 배고프…….”
숨을 할딱거리는 그들은 자신이 먼저 성벽에 손이 닿았다고 확신했다.
이에 팔짱을 낀 유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흠… 어렵군.”
그가 신중하게 물었다.
“뭐, 그래도 확실히 결과를 보긴 했다만… 어찌, 두 사람 모두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아린과 뽀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유리가 다시 물었다.
“그게 어떤 결과라고 해도 감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무, 물론…….”
“배고프다…….”
“정말? 약속합니까?”
“그, 그래! 약속해!”
“배고프다!”
힘들어 죽겠으니 빨리 말하라는 두 사람의 눈빛 공세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결과를 발표하마. 두 사람의 승부는…….”
유리의 입만을 바라보는 아린과 뽀삐의 눈에 서린 긴장과 기대.
이는 곧 의아함으로 바뀌었으니.
“무승부다!”
“……?”
“……?”
예상치 못한 결과에 둘의 눈이 연신 끔뻑거리는 가운데.
유리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이야,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야, 둘 다 정말 아주아주 완벽하게 동시에 들어왔더라고.”
그리 설명하는 유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니.
“고로, 무승부! 다시 말해… 둘 다 꼴등이란 뜻이지.”
“…….”
“거참,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닌데… 덕분에 옷이 두 벌이나 생겼네?”
“…….”
“니들이 사 주는 옷 잘 입으마. 감사!”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유리를 본 아린과 뽀삐는 동시에 ‘당했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너, 이 나쁜 새……!”
“배고프……!”
유리를 향해 삿대질하며 벌떡 일어났던 두 사람.
그들은 욕을 마저 내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체력이 바닥을 치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혈압이 오른 탓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유리가 뽀삐의 방패 위에 뽀삐를 올리고 그 위에 아린을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뽀삐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며 초병들을 향해 물었다.
“아, 이 녀석들 신분 증명해야 하는 거죠? 용패 꺼낼까요?”
천진난만한 유리의 눈빛에 초병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괘, 괜찮습니다!”
“흑룡패주께서 신분을 보장해 주신다면… 그, 그냥 가셔도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답을 들은 유리는 희희낙락 손을 흔들며 휘적휘적 성벽의 통로로 들어섰다.
대충 아무렇게나 포개진 두 사람을 질질 끌고서.
기이이이이익-.
금속 방패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성문 안쪽에서 기괴하게 메아리치며 흘러나왔다.
이를 들으며 두 초병은 잠시 넋이 빠져 버렸고.
“…….”
“…….”
한참 뒤 젊은 초병이 어색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오… 올해 기수들은 상당히 개성이 넘치는군요.”
“그, 그렇구나.”
“…….”
“…….”
“그, 그런데 저들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고작 나흘 만에 요람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 아닙니까?”
“허… 마차로 열흘 걸릴 거리를 사람이 달려서 나흘 만에 주파하다니…….”
조금… 아니, 상당히 기괴하기는 했지만, 떠나간 삼인방의 능력은 역시 요람의 수료생다웠다고.
그렇게 애써 감탄하며 두 사람은 다시금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익-.
“흐흐흥-.”
기절한 뽀삐와 아린을 질질 끌며 콧노래를 흥얼거린 유리.
그렇게 그가 성벽 반대편에 거의 도달한 순간.
척-.
한 사내와 유리가 통로 중앙에서 제대로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