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꿈 (2)
갈색의 더러운 후드를 푹 눌러쓴 사내.
하필 정면에서 그를 딱 마주친 덕분에 유리의 진로가 막혀 버렸다.
“…….”
“…….”
잠시 말없이 서로를 흘끗거리는 시선이 오가고.
유리가 질질 끌고 오던 아린과 뽀삐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사내가 살짝 흠칫거렸다.
짙게 음영 진 후드 사이로도 놀란 기색이 엿보이자 유리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마치 뭘 보냐는 듯한 눈빛.
이를 눈치챈 사내는 또 한 번 더 움찔거리며 길을 비켜섰다.
그러자 유리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사내가 비켜선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기이익-.
어김없이 질질 끌려가는 아린과 뽀삐.
그렇게 그들의 짧은 만남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는 듯 보였다.
단.
“응?”
유리가 몇 발짝을 내디디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시!”
다급한 외침에 유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발길을 돌려 유리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이에 유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뭡니까?”
유리가 경계의 눈초리로 대하자 사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후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갈색 머리카락의 시골 청년 같은 평범한 얼굴이 드러났다.
마치 자신은 무해하다는 듯한 느낌을 물씬 풍겼지만, 유리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세상에는 저런 순박한 얼굴로 사람을 등처먹는 인간들이 널렸으니까.
유리가 눈에 힘을 풀지 않자 사내는 양손을 다급히 내저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말게!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말하는 게 수상한데?”
“…아직 별말 안 했네만은?”
“말투부터가 벌써 수상하잖아?”
“…….”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일인데요?”
유리가 눈앞 청년의 전신을 슥 훑으며 묻자 그가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그… 혹시 말일세.”
청년의 시선이 기절한 아린과 뽀삐에게 닿았다.
“푸른 머리의 미소녀와 이마와 코에 붉은 문신이 있는 거한… 혹시 저 두 사람이 아린 헬가와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가 아닌가?”
청년의 이야기에 유리의 경계심이 살짝 풀어졌다.
그가 허탈하다는 듯 툴툴거렸다.
“뭐야, 송달꾼이었어?”
그 혼잣말과 같은 중얼거림에 사내가 깜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내가 송달꾼인 건 어찌 알았나?”
“얼굴에 송달꾼이라고 쓰여 있는데?”
“뭣이?!”
놀란 청년은 제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물론 그의 얼굴에 그런 게 적혀 있을 리 만무했다.
유리가 그의 정체가 송달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린과 뽀삐, 그들 모두 나한테는 딱히 마중 나올 사람이 없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런 녀석들을 만나러 왔다고?
그것도 둘 중 한 사람만 만나러 온 것도 아닌 두 사람 전부를?
거기다 청년은 아린과 뽀삐의 용모를 보고 나서야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장기간 여행한 것치고는 가벼워 보이는 짐, 실용성 위주의 낡은 로브, 마른 몸, 발달한 하체, 깨끗한 상태와는 달리 유달리 닳아 있는 신발 밑창,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듯한 정보.’
여러 정보가 조합되며 사내의 정체가 ‘송달꾼’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정보의 출처는 아린과 뽀삐의 외모를 알고 있는 사람. 아마도 의뢰주겠지. 그리고 굳이 이 수료 시기에 맞춰서 송달꾼을 보낼 사람이라면…….’
씨익 웃음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줘 봐요.”
“뭘 말인가?”
“얘들한테 편지를 전하러 온 거 아닌가?”
“내가 전하려는 게 편지인 거는 또 어찌…….”
송달꾼이라고 편지만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의뢰받은 물건을 목적지까지 전달하는 존재가 송달꾼.
그런데 유리가 콕 집어서 편지를 말하니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유리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그의 말을 잘라 내며 손을 팔락거렸다.
“됐고, 얼른 내놓기나 해요.”
유리의 재촉에 송달꾼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이 편지는…….”
“아아,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해야만 한다?”
“그렇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주억거린 유리가 기절한 뽀삐와 아린에게 다가갔다.
그들 옆에 쭈그리고 앉은 그는.
쫙쫙쫙-.
“야야, 일어나 봐. 편지 왔어!”
쫙쫙쫙-.
“편지 왔다니까!”
아린과 뽀삐의 양 뺨을 거침없이 후드려 갈겼다.
쫙쫙쫙-.
좌우로 왔다 갔다.
연신 휘둘러지는 손.
거기서 나는 소리가 어찌나 크고 찰진지 송달꾼은 자기가 맞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움찔 떨어 댔다.
하지만 정작 얻어맞고 있는 아린과 뽀삐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양 볼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쳐 댄 유리가 나지도 않은 식은땀을 훔치며 일어섰다.
“휴우… 많이들 피곤했나 보네.”
유리는 살짝 넋이 나간 송달꾼을 향해 다시 손을 내밀며 환히 웃었다.
“봤죠? 얘들 지금 정신이 없는 거?”
송달꾼은 유달리 해맑은 유리의 미소가 참으로 무섭다고 느꼈다.
‘미, 미친놈이었군.’
그가 유리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들려온 목소리.
“수취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수령이 불가능할 경우 송달꾼의 판단하에 대리 수령 여부를 결정한다.”
“……?!”
“몇 년 사이에 규범이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걸 어찌… 자네 이쪽 사람이었나?”
유리가 언급한 건 송달꾼들 사이의 업무 규범이었다.
다만, 대리 수령으로 인한 책임 역시 송달꾼이 지기 때문에 쉬쉬하며 잘 알리지 않아 같은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규범이기도 했다.
“잠깐 몸담았었죠. 아무튼 상황이 이러니까 저한테 넘겨요.”
“…….”
과연 이 의뢰 물건을 저 미친놈에게 넘기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이 되는 찰나.
“걱정 마요, 그쪽 의뢰주랑 나도 제법 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제가 지죠.”
“정말인가?”
“물론.”
“…좋네. 그럼 서명하게.”
고민하던 송달꾼은 품에서 작은 일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렇게 의뢰 물건 전달 절차가 모두 끝나고.
송달꾼은 유리에게 두툼한 편지 한 통을 내밀며 물었다.
“그래서… 대리인의 이름은?”
유리가 편지를 받아 들며 답했다.
“유리 홀랜드.”
“확실히 전달했네. 그럼 난 가 보겠네.”
“수고해요.”
완전히 편지를 넘긴 송달꾼은 임무를 종료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유리.
부욱-.
거침없이 봉투를 개방한 그는 빠르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유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
사각사각-.
너른 실내.
그 안에서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소리의 진원지는 엄청난 서류의 더미에 파묻히다시피 한 책상.
사삭- 사각-.
단 한 번도 끊기지 않는 소리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탁-.
펜대를 내려놓는 짧은 소리와 함께 높게 쌓인 서류 더미 위로 양손이 불쑥 치솟았다.
“다 했드아아아아!”
깍지를 끼고 쭉 위로 당겨지는 새하얀 손에는 검은 잉크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팔이 내려가고, 서류 더미로 하얀 머리가 쑤욱- 올라왔다.
우득- 우드득-.
“아그그그!”
의자에서 일어나 요란하게 허리를 돌려 대는 이는 다름 아닌 율리아였다.
그녀는 허리부터 시작해서 목과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굳은 몸을 풀어 주었다.
그러다 작은 한숨이 율리아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니.
“…집에 가고 싶다.”
그녀가 음울한 얼굴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수북이 쌓인 서류 더미.
사방의 벽면에 연결된 수십 개의 금속관.
실내에 있는 가구라고는 문서를 처리하는 책장과 책상뿐.
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 바로 요람을 수료한 이후 율리아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였다.
‘하… 이 징글징글한 곳에서 2년을 더 있어야 하는 거야?’
이 지긋지긋한 장소에 붙은 명칭은 정보종합통제관리실.
그중에서도 중추 통제관리실이었다.
하지만 이 지독한 공간에서 의무적으로 3년을 지내야 하는 싱 가문의 직계들에게는 대개 ‘개미굴’이라 불리는 장소.
율리아는 이 암울한 곳에서 2년을 더 버텨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했다.
“하아…….”
그렇게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쉴 때.
텅- 텅텅- 텅그렁-!
벽면에 연결된 금속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율리아의 한숨이 더욱 짙어졌으니.
“하아아아아아, 또야?”
정말 무슨 사건·사고가 이리도 끊이지 않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정보가 밀려들었다.
율리아는 지친 발걸음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금속관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걸음 속도에 맞춰, 금속관에서 작은 구슬이 굴러 나왔으니.
구슬의 색깔을 본 율리아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적색?”
정보지를 담은 금속 구슬은 녹색, 황색, 적색으로 분류된다.
그중 적색은 시급을 다투는 정보였다.
율리아는 바로 구슬을 비틀어 그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린후드 연합 소속 벌목꾼 무리 남하 중.] [무리를 이끄는 건 그린후드 연합의 제1공자로 확인됨.]정보지를 확인하자마자 율리아의 머릿속에 온갖 정보가 빠르게 떠올랐다.
지난 1년간 개미굴에서 머릿속에 욱여넣은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
그것들이 빠르게 조합된 끝에.
“이런?!”
화들짝 놀란 율리아가 빠르게 정보지를 움켜쥐고 개미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방의 주인이 빠져나간 방.
율리아가 쓰던 책상의 한쪽에는 크고 작은 2장의 서류가 겹쳐 놓여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살핀 것인지 살짝 구겨진 흔적이 보이는 서류들.
그중 밑에 깔린 넓은 정보지의 상단에는 [특]이라 분류 표시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특] [612회 차 용의 요람 동향 보고서>…
…
…
-평균 12월 중순에 개최되던 무룡대전이 월초로 앞당겨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었던 유리 홀랜드의 생존이 무룡대전을 기점으로 확인됨.
-유리 홀랜드가 무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음.
…
…
…
-부절검 요한 레드너의 세 번째 검좌 찬탈이 요람의 동도(東島)에서 벌어진 것으로 확인됨.
-검좌 찬탈의 여파로 동도의 37%가 소실.
…
…
…
-부절검 요한 레드너의 사망 확인.
작년 12월의 한 달 동안 요람에서 있었던 일들이 빼곡이 적힌 보고서.
그 맨 밑줄에는 아직 세상에 공표되지 않은 부절검의 사망 소식이 적혀 있었다.
또한, 그 보고서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에는 단 한 줄기 글귀만이 적혀 있었으니.
[50기 유리 홀랜드 요람 수료]그 문구에는 율리아가 직접 그린 것으로 보이는 별 모양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
“…이건 또 뭐야?”
주변을 둘러보는 유리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이 낯선 공간에 떨어지기 전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아린과 뽀삐를 끌고 성문을 통과한 뒤.
송달꾼을 만나 편지를 수령했으며.
그러고 나서 성벽의 통로를 완전히 빠져나와 델리 아가스의 중심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온통 백색으로 가득한 세상.
위, 아래의 구분도 쉽지 않고, 그 넓이조차 짐작 가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백색 공간.
유리는 난데없이 괴상한 공간에 떨어진 자신의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그는 조금 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이 이 영문 모를 공간에 덩그러니 서 있기 전 마지막 행동은…….
‘…누웠는데?’
도무지 깨어날 줄 모르는 뽀삐와 아린을 질질 끌고 다니는 데 짜증이 나서 그들을 내팽개치고, 그 옆에 드러누운 거였다.
다만.
‘잘 생각은 없었는데?’
유리는 잠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인적이 드물고, 절대 영역의 감각이 있다고 한들 대책 없이 길바닥에서 잠들 생각 따위를 하겠는가.
하여 유리는 그저 친구들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잠들었다고?’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유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내가 정말 잠들어서 지금 여기가 꿈속이라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또 한 가지.
유리가 현 상황에서 너무도 이상하게 여기는 점.
그건 바로.
“이렇게 말똥말똥한 게 말이 돼?”
의식이 너무 맑다는 거다.
조금의 몽롱함도 없이, 너무도 또렷한 정신.
‘자각몽?’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꿈.
하지만 유리는 자신의 현 상황이 그런 자각몽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게 뭐지?’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뭘 대가리 화살 맞은 거처럼 넋을 빼고 있는 게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기에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어쭈? 옘병할 애새끼, 지금 무시하는 게야?”
재차 들려온 소리에 유리는 등골에 소름이 삐죽 솟아올랐다.
‘……!’
조금 전 그건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다만 문제는 그게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여겼던 목소리라는 거다.
‘설마?!’
유리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와 함께 그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어?”
아마 유리가 제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있었다면 분명 혀를 내둘렀으리라.
그 정도로 그는 자신이 평생 지어 본 적 없는 너무도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맞은편.
불과 3m 정도 떨어진 곳에.
“클클, 귓구멍이 막힌 건 아니었구나.”
뒷짐을 진 요한이 유리를 향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