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5
34화. 입도 (3)
요람에서 경쟁자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경쟁자와의 잦은 충돌은 결국 빠른 마모로 이어질 터.
다시 말해 적이 많을수록 낙오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소리였다.
경쟁을 줄이는 방법으로 경쟁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만큼 좋은 건 없었다.
거기다 내 편으로 만든 경쟁자가 유능할수록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그러니 편 가르기의 포섭 대상이 된 이들은 명문가의 자손, 혹은 한 지역에 이름난 천재들일 수밖에 없었다.
군터 아이언스는 그중 후자의 경우에 속해 있었다.
“제의는 고맙지만, 거절하지.”
오늘만 벌써 3번째 같은 말을 내뱉은 군터.
정중하지만 딱딱한 말투에 제의한 상대방의 얼굴도 굳어졌다.
“보니까 지금까지 받은 제안을 전부 거절하고 있던데?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닌 거 같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알아서 진다.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냐.”
“그런가? 실례했다.”
자신을 어느 행정구, 어떤 가문의 누구라고 밝혔던 소년.
그는 군터의 완고한 거절에 더는 제안을 건네지 않았다.
그 대신 처음 접근할 당시 보였던 호의를 거두고 적의를 드러냈다.
군터는 냉랭하게 뒤돌아 멀어지는 소년을 보며 지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바쁘군.’
내 편이 아니면 적.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이제 겨우 십 대 초중반의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있었다.
검주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
어린 시절부터 경쟁이란 환경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일은 너무도 당연한 거였다.
물론 이는 군터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내 편’ 없이 모두를 경쟁자로 여길 뿐이란 거다.
군터는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대다수가 쭉정이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요람에 용패 추천이 아닌 기부 추천이 있다는 것을.
그들 두고 아버지인 아쉬라프 아이언스는 냉혹한 평을 했다.
[군터, 네가 신경 쓸 존재는 그딴 기부 추천으로 들어온 쭉정이가 아니다.]그리고 그 평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두세 명 정도가 모인 소수의 무리.
척 봐도 열 명이 넘어가는, 다수가 삼삼오오 모인 이들까지.
나름의 세력을 구축한 이들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지만, 군터가 보기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사교 모임에 불과했다.
쭉정이 스물이 모이면 뭐 하겠는가.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저들을 와해시키는 데 10분이면 충분했다.
‘내가 경계해야 할 이들은 고작 저런 녀석들이 아니다.’
바로 자신처럼 홀로 떨어져 있는 이들.
그 누구와 맞붙어도 이길 자신감이 넘치기에 세력 따위는 거추장스럽다고 여기는 존재들.
그들이 바로 자신이 경계해야 할 진짜 경쟁자들이다.
군터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이반 바스킨, 클라리스 반, 넬리 블랑.’
아이언스 영지가 자리한 북방에까지 그 명성을 떨치는 가문의 자손들.
저들 외에도 진짜 명가의 후예는 고고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2m는 훌쩍 넘음직한 엄청난 거구의 대머리 청년.
푸른 머리카락을 지닌 미모의 소녀 등.
누군지는 모르나 독특한 개성과 함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이들도 있었다.
‘이름난 명가의 자손들보다는 어쩌면 저들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지 모른다.’
명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알려진 정보가 많다는 소리였다.
따라서 알려진 게 없는 실력자들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기대되는군. 과연 저들이 어떤 이들일지.’
옅은 긴장과 흥분으로 군터가 주먹을 살짝 쥐었다 폈다가를 반복했다.
대형 객실에 은은하게 깔린 전운(戰雲).
여기저기서 뿜어지는 진득한 기세를 감지한 군터는 살짝 미소 지었다.
‘이 항해가 끝나면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리란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검을 맞부딪히는 싸움이 아닌, 기세의 싸움.
이는 마치 객실 안에 작은 태풍이 몰아치는 듯싶었다.
다만…….
고롱- 고롱-.
객실 안의 분위기가 모두 그렇다는 뜻은 아니었다.
편 가르기?
탐색전?
태풍이 몰아치는 분위기?
마치 그딴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듯, 완전히 동떨어진 분위기 속에 지내는 이도 있었으니.
드르렁-.
요란하게 울리는 코 고는 소리에 군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러자 바들바들 몸을 떨며 잠꼬대하는 검은 머리 소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귀… 시인… 시러어어…….”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
한 차례의 잠꼬대 후, 인상을 찡그린 검은 머리 소년.
악몽을 꾸는 듯 연신 몸을 꿈틀거리던 그는 깨어날 듯싶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고 다시 단잠으로 빠져들었다.
긁적긁적- 쩝쩝-.
볼도 긁적이고 입맛도 다시고.
검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꼬옥 끌어안은 채 숙면 중인 모습이 너무도 편안해 보였다.
다들 살벌하게 기세를 피워 올리는 와중에도 어쩜 저리 깊게 잘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거기다 더 놀라운 점은…….
‘…지금 저게 며칠째지?’
검은 머리 소년이 배에 오른 뒤로 쭈욱- 잠만 자고 있다는 거였다.
그가 깨어 있는 시간은 단 한 가지 경우뿐이었다.
바로 흑검병들이 도시락을 나눠 줄 때.
소년은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잠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가 비웃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하긴 거지새끼가 가장 잘하는 게 아무 길바닥에서나 처자는 거니까.”
혼잣말치고는 꽤 컸던 목소리.
경멸이 담긴 그 말에 다수가 동조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머리 소년은 그 등장부터 매우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옷인지 걸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거적때기.
치렁치렁 산발한 머리카락으로 인해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드러난 부분도 퉁퉁 부어 있어 원래의 생김새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쓰레기장에서 뒹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악취까지.
가장 마지막에 승선한 소년은 안내한 흑검병이 없었다면 웬 거지새끼가 배에 숨어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배 안에는 나름 한 개성 한다는 이들이 제법 있었지만, 검은 머리 소년만큼 개성이 넘치는 존재는 없었다.
그 충격적인 등장을 보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더 힘들 지경.
때문에 예비 기수들은 ‘저 녀석은 뭐지?’라며 너도 나도 관심을 표출하며 검은 머리 소년을 관찰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초라한 행색과 더불어 특별함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매번 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무방비함의 극치.
그 와중에도 밥 시간은 어찌나 기가 막히게 맞춰 일어나는지, 도시락만 왔다 하면 가장 먼저 흑검병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게 검은 머리 소년이었다.
그러고는 걸신이 들린 것처럼 음식을 씹어 삼키고 다시 잠을 청했다.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하는… 무신경함을 넘어 짐승에 가까운 행동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경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질 쓰레기 같은 족속.’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녀석이다.’
‘대체 저런 게 무슨 수로 요람에 들어온 거지?’
‘예의 따위는 배운 적도 없는 거야? 저급해.’
혹시, 뭐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관찰하던 이들도 5일 내내 변하지 않는 모습에 관심을 접었다.
그나마 ‘과연 저 녀석이 얼마나 더 잘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 정도가 남아 있달까?
그렇게 검은 머리 소년은 예비 기수들의 인식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었다.
어찌나 철저히 배척하던지 반경 2m 내로 접근하는 이조차 없었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피하듯 말이다.
군터는 바닥과 한 몸이 된 검은 머리 소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라…….’
흑색의 머리카락을 보니 자연스럽게 그 녀석이 떠올랐다.
‘유리 홀랜드…….’
자신과 같은 나이였음에도 시험관이었던 흑검병을 쓰러뜨린 소년.
그리고 부절검 요한 레드너의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된 불세출의 천재.
그 또한 저 녀석처럼 검은 머리였다.
‘유리 홀랜드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는 대륙 어딘가에서 요한 레드너의 지도하에 지옥 같은 수련을 이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분명 하루하루, 강해지는 중이겠지.
그런 생각에 군터는 살짝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득-.
자신이 누군가에게 뒤처진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유리 홀랜드가 부린 화신이란 존재를 보기 전까지는.
그 정도로 그날 보았던 유리의 존재는 군터에게 충격적이었고,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겼다.
이는 군터의 경쟁심리를 자극하여 유리를 반드시 꺾어야 할 경쟁 상대로 만들었다.
‘다음에 만난다면… 지지 않겠어.’
군터가 기억 속 유리를 상대로 투지를 불태우던 순간.
“흠냐… 쩝쩝.”
입맛을 다시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군터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검은 머리 소년의 손이 바지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시야에 잡혀 들었다.
벅벅-.
바지 속 어딘가를 시원하게 긁어 대는 그 모습에 군터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는 속으로 사과했다.
‘미안하군, 유리 홀랜드. 고작 머리색이 같다는 이유로 저런 녀석을 보고 널 떠올렸다니.’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 군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때문에 그는 조금씩 부기가 빠져 제 형상을 찾아가는 검은 머리 소년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또한, 군터를 비롯한 대다수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원래 태풍이 부는 중심은 그 어떤 곳보다도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마치 객실 안, 몰아치는 태풍 같은 분위기 속에서 검은 머리 소년의 주변만이 잠잠한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닷새 뒤인 12월 1일.
촤아악- 끼익- 쿵!
작은 태풍을 품은 흑선이 선착장에 닿았다.
* * *
“흐아아암!”
늘어지게 하품한 유리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우득 우득-.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켜 가볍게 굳은 몸을 푸니, 온갖 뼈마디가 비명을 내질렀다.
우드득-.
듣는 이는 소름이 끼친다고 고개를 내저을 소리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유리의 얼굴은 온수에 몸을 담근 아저씨와 같이 풀어졌다.
노곤고곤, 말랑거리는 찹쌀떡이 된 유리.
“에흐… 에흐흐, 시원하다. 역시 사람은 쉴 땐 푹 쉬어야 하는 거였어.”
처음 범선에 올랐을 당시, 그의 몸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반년간 행해진 고문과도 같은 수련.
뒤이어 수중 마류 단련을 시작했고, 입도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순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붕붕이를 밀어야 했다.
그렇게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질식사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나를 운용했다.
마지막으로는 요한에게 덤볐다가 잘근잘근 다져지기까지.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수개월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죽지 않은 게 용했네.’
죽지는 않았지만, 몸이 축나기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
유리에게는 몸을 회복시킬 휴식의 시간이 간절했다.
한데 때마침 휴식할 시간과 등을 붙일 공간, 거기에 공짜 도시락으로 영양분을 챙길 환경이 조성됐다.
유리는 이를 십분 활용했다.
그렇게 좋은 휴식을 취했기 때문일까?
잘근잘근 다져졌던 육신은 온전히 회복되었고, 얼굴의 부기도 거의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리에게 고된 수련만큼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깨닫게 해 준 사실이 있었으니.
‘몸이 더 단단해졌어.’
유리는 근육이 늘었음을 크게 체감했다.
근육의 증가는 근력의 증대.
다시 말해, 휴식을 취했을 뿐이건만 유리는 한 발짝 더 성장해 있었다.
남들이 아직 서로를 견제하느라 심력을 낭비하는 사이.
누군가가 자신을 천박한 짐승으로 여기든 말든, 그는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유리는 최상의 상태로 준비를 끝마쳤다.
요람이란 미지를 헤집고 다닐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