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용병 (2)
유리와 아린, 뽀삐가 자신보다 한참을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군터.
그는 조급함을 버렸다.
‘어차피 녀석들도 그곳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릴 거다.’
자신은 애초에 테레시아 선배가 있는 곳을 향해 최단 거리로 갈 생각이지만, 그 녀석들은 아닐 수도 있을 터.
‘중간중간 녀석들이 다른 곳으로 빠질 확률도 있지.’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녀석들보다 먼저 애니스톤 가문에 도착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 녀석들이 무슨 생각인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여 군터는 델리 아가스에서 간편하게 여행 준비를 마친 뒤, 이틀 만에 빠져나왔다.
그렇게 서둘러 애니스톤 가문으로 향하는 여로에 오른 군터.
확실한 목적지가 생겼기에 그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행을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나이가 스물을 넘겼지만, 10대의 대부분을 가문에서 보냈고, 다시 수년을 요람에만 갇혀 있었다.
하여 군터로서는 이리 떠나는 여행이 처음이었다.
‘이건 좀… 설레는군.’
두 다리로 세상을 걸어 떠나는 여행길.
어린 시절 읽은 소설 속, 모험가들의 여행은 제법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일을 자신이 하게 되었다니, 군터는 어쩐지 조금 즐거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여행 초반의 일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너른 평야를 걷고 또 걷고.
그게 하루하루 쌓여 2주를 넘어가니 여행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루하군.”
지루해도 너무 지루했다.
보통 이야기책에서는 이렇게 걷다 보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던데?
하지만 자신은 그저 평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걷고 또 걷고, 그리고 딱딱한 건량을 먹고 자는 일의 반복.
심지어 델리 아가스에서 점점 멀어지니 민가도 드물어졌고, 사람을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무리 델리 아가스에서 멀어졌다고 한들 인적이 이리도 빨리 사라지다니.’
한숨을 내쉰 군터는 억지로라도 기운을 냈다.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군터가 목적지로 잡은 곳은 데일 강의 항구.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젖줄인 만큼 데일 강에는 수없이 많은 선박이 운행 중이었다.
하여 목적지로 삼은 항구 도시에 도착해서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래…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지도에도 그리 나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는 여행 초보의 흔한 실수였으며.
기본적인 축척(縮尺)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잡화점표 싸구려 지도를 믿은 군터의 잘못이었다.
그렇게 조금이라고 여겼던 일로부터 다시 2주가 더 흘러.
“음?”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에 군터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건 흡사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이의 표정이었다.
“도, 도시!”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도시란 말인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건가?!’
신이 난 군터는 거의 뛰다시피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다 점점 도시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소리가 나지 않는다.’
목표로 했던 항구 도시라면 분명 데일 강 인근에 있을 터.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도시에 가까워지니 그 주변을 둘러싼 산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길을… 잘못 들었군.’
애초에 자신이 잡은 경로에 이런 산과 도시는 없었다.
즉, 길을 잃었다는 뜻.
“…….”
잠시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던 군터는 머쓱함을 털어 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하자.”
그간 소규모 민가를 보긴 했지만, 숙박할 정도는 되지 않아 지금까지 쭉 노숙을 해 왔었다.
하여 제대로 된 숙식을 할 수 있는 도시가 나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행 물자를 보충할 필요도 있었고 말야.’
애써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합리화한 군터.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무난하게 검문을 통과하여 도시 내로 들어선 그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생각보다 더 변화한 곳이었군?’
멀리서 보아 성벽이 제법 오래되어 보여 설마 했는데 영지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숙소를 잡고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어.’
그런 계획을 세운 군터는 괜찮은 숙소를 찾고자 대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너 혹시 군터냐?”
정확히 자신의 이름을 언급한 목소리에 군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으니.
허리춤에 찬 송곳처럼 보이는 검.
꿀을 바른 듯 짙은 금발과 암갈색의 눈동자.
낯익은 이를 본 군터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제리 선배님?”
***
조금 전까지 대로변에 서 있던 군터는 어느새 너른 실내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방을 슥 둘러본 뒤, 제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님 가문이 이 도시에 있었군요.”
현재 군터가 들어와 있는 곳은 비 가문의 손님용 방.
대로에서 만난 군터가 숙소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리가 그를 가문으로 초대한 것이다.
“명가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가문이지.”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로 씨익 웃으며 그리 답을 한 제리.
그 미소에서 군터는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밖에서 보니 느낌이 다르군.’
그가 기억하는 제리의 모습은 허구한 날 유리에게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었다.
물론 그 시절 유리에게 안 처맞은 사람이 없다지만, 그래도 49기 중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 바로 제리였다.
‘그때는 뭐랄까, 비굴함의 끝이었는데…….’
밖에서 만난 제리는 어엿한 한 가문의 후계자였다.
이에 군터가 감탄하고 있을 때.
“안 들어오고 뭐 하냐?”
제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방문이 살짝 열리며 작은 얼굴이 빼꼼히 나타났다.
이제 열네다섯쯤 되어 보이는 소년.
이미 인기척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군터는 별로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선배님 동생이신가 보군요.”
“누가 봐도 그렇지?”
“예, 선배님을 똑 닮았습니다.”
“나를 닮은 게 아니고 아버지를 닮은 거겠지, 아무튼… 야, 뭐 하냐. 와서 인사 안 하고!”
그런 제리의 호통에 소년이 쪼르르 와 군터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베리 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씩씩함에 군터도 살짝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군터 아이언스입니다.”
“됐어, 존칭은 무슨. 그냥 네 동생이라고 여기고 편하게 대해.”
“하지만…….”
“혀, 형님 말씀대로입니다! 편하게 대해 주셔도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마.”
가볍게 통성명이 오가고, 베리가 군터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그, 저의 형님보고 선배라고 하시는 거면… 이번에 수료하신 요람의 기수이신 거죠.”
“그래.”
“우, 우와!”
“…이게 그리 감탄할 일인가? 너희 형님도 요람을 무사히 수료하신 분이신데?”
“저희 형님은 요람을 수료한 사람이란 느낌이 안 들어서.”
동생의 솔직한 표현에 짜증스러운 눈빛이 된 제리.
“이 새끼가 뒈지고 싶지?”
“저 보십쇼! 저런데 어떻게 요람의 수료생으로 생각됩니까! 자고로 요람의 수료생이라면 군터 님처럼 묵직한 분위기가 있어야죠!”
베리의 이야기에 군터가 움찔거렸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다.”
아무래도 베리는 요람에 무언가 환상을 품은 듯싶었다.
마치 몇 년 전의 자신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환상은 유리와의 만남으로 와장창 깨져 나갔지만.
그렇게 군터가 움찔하는 것을 본 제리가 동생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냅 둬라, 요람에 가서 된통 깨져 봐야 저딴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동생분도 요람에 들어가는 겁니까?”
“지가 들어가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그럼 선배님의 용패를 추천장으로?”
“아니, 그건 후대를 위해 남겨 두고, 쟤는 기부 추천으로 들어갈 예정이야.”
“아, 황룡패…….”
제리와 군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베리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군터 님께서는 무슨 패셨나요?”
그 물음에 제리가 눈을 부라리며 꾸짖었다.
“요람의 기수에게 패의 등급을 묻는 건 실례다.”
“아, 죄, 죄송합니다!”
베리의 사과에 군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백룡패다.”
“배, 백룡패!”
베리의 눈이 다시금 휘둥그렇게 변했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제리가 말을 이었다.
“이해해 줘라. 내년 기수로 요람에 들어갈 거라고 잔뜩 들떠 있는 상태라 저런다.”
“괜찮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군터를 향해 이번에 제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냐? 가문으로 가는 중이었나? 너희 가문에서는 마중 안 나왔어? 가만… 아니지? 아이언스 영지로 가는 거면 이쪽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갔어야 하는데?”
“아, 그게…….”
살짝 움찔한 군터는 고민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유리 녀석들을 놓쳐서 혼자서 따라가는 중이라고?
아니면 중간에 길을 잃어서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고?
제법 길게 고민하던 군터는 절반의 진실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홀로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여행?! 아이언스의 후계자가? 가문에서 그걸 용인해 줬어?”
“물론입니다.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야… 그건 좀 부럽네.”
요람을 수료한 이후, 가문의 일로 쉴 틈이 없었던 제리로서는 군터의 여행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눈빛에 살짝 뜨끔한 군터가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이 도시 이야기 좀 해 주시죠. 성벽이 고풍스러운 게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 같은데요?”
“아, 그래!”
이후 제리는 물론이거니와 베리까지 합세해 자신의 가문이 자리한 도시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군터는 제법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하이브.
산자락의 끝부분에 자리해, 마치 벌집처럼 보인다고 하여 그리 붙은 이름이랬다.
또한, 과거 몽파르체 호수와 데일 강을 잇는 경로의 중간에 위치한 하이브.
하여 데일 강으로 가는 마지막 산자락을 넘기 전,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비 가문은 그런 하이브의 토착 가문이었고, 도시가 커지며 같이 성장했다고 한다.
‘그럼 데일 강이 근처에 있다는 소리군.’
데일 강이 머지않았다는 소리에 군터는 다행이라는 심정이 들었다.
자신이 마냥 길을 잃고 헤맨 건 아니라는 뜻이니 말이다.
“나중에 제가 도시 소개시켜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살 물건들이 있었거든.”
“네! 아, 그런데…….”
씩씩하게 답하던 베리가 슬쩍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했다.
“왜 그러지?”
군터의 물음에 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백룡패이시면, 군터 님은 얼마나 강하신 거예요?”
아무래도 조금 전 백룡패라고 말해 준 거에 꽂혀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던 모양.
베리는 살짝 설레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서, 설마 50기 중에 있었다던 그 괴물이… 읍!”
그때, 제리가 다급히 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하. 하. 하!”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군터의 눈치를 보는 제리.
그가 왜 그러나 싶던 군터는 깨달았다.
‘아, 선배는 모르시겠군. 그 녀석이 살아 있다는걸.’
유리가 살아 돌아온 건 제리가 수료한 이후의 일.
하여 제리는 여전히 유리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 앞에서 그 녀석 이야기를 꺼낸 게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군터는 그러한 사실을 정정해 주고자 말을 꺼냈다.
“선배님…….”
“이, 이런 우리가 너무 붙잡고 있었지? 이만 갈 테니까 편히 쉬어!”
“…읍읍!”
“너도 나와. 손님 쉬시게! 아버지께 말씀드렸으니 이따가 같이 저녁 식사나 하자고!”
…말을 꺼내기는 했다.
전부 내뱉지는 못했지만.
군터는 후다닥 사라지는 비 가문의 형제들을 보고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뭐, 나중에 말해 주면 되겠지.”
***
제리, 베리 형제가 사라지고 1시간 뒤.
씻고 방에서 쉬고 있던 군터는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방을 나섰다.
“모시겠습니다.”
비 가문의 집사로 보이는 이가 정중히 머리를 숙인 뒤 군터를 안내했다.
그렇게 집사를 쫓아 걷던 군터.
“음?”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