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용병 (7)
위험한 빛으로 번뜩이는 황금빛 눈동자.
‘어, 언제!?’
분명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었는데, 대체 어느 틈에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아니, 그 전에 우리가 여기 숨어 있는 걸 어찌 알고?!’
혼비백산 놀란 채주와 부채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사이 아린과 뽀삐가 유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배고프다?”
“이 사람들 뭐야?”
“산적.”
“진짜? 나 산적 처음 보는데.”
아린은 신기하다는 듯 산적들을 관찰했다.
그렇게 유리와 친구들이 아무런 긴장감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채주와 부채주는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그때였다.
“동작 그만.”
“……?!”
“가긴 어딜 가시나, 우리 산적님들?”
움찔거리며 뒤로 뺀 발을 원상 복귀 시키는 두 사람.
그와 함께 채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하하하, 무,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우린 산적같이 흉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는 채주.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가, 강자다!’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산적 노릇을 해 오길 20년.
그 긴 세월 약소하기 짝이 없는 세력으로 이만큼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분수에 맞게 몸을 사려 온 긴긴 세월.
그 덕분에 터득한 건 눈앞의 상대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냐 없냐를 파악하는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저 녀석은 자신이 감당할 깜냥을 넘어도 아득히 넘어선 존재라고.
‘자칫 잘못이라도 했다간… 죽는다!’
똥인지 진흙인지 꼭 찍어서 냄새를 맡아 봐야지 아는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똥 중의 똥이었다.
그것도 위험한 구린내를 물씬 풍기는 커다란 똥!
채주의 대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저, 저희는 그저 여길 지나가던 중이었던지라… 아, 안 그러냐?”
“마, 맞습니다!”
부채주는 목이 떨어져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주로 모시고 있는 이의 옆에서 버틴 십여 년.
그가 위험한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는 건 이미 수없이 많은 검증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런 채주가 이토록 몸을 사린다는 건 눈앞의 저들이 위험천만한 존재라는 뜻.
하여 부채주는 눈치껏 채주의 장단에 맞췄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부정하자 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지나가는 중이라던 사람들이 아주 팔자 늘어지게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대? 난 또 배때기가 땅에 붙어 있는 줄?”
“…오늘따라 유달리 피곤해서.”
“저는 갑자기 일어나면 좀 어지러워지는 증상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필사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던 그때.
“아, 그래?”
유리의 손에 무언가가 덜렁거렸으니.
“그럼 이것도 모르시겠네?”
그의 손에 들린 가늘고 기다란 호각을 보자마자 부채주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저, 저, 저걸 언제… 헙?!”
허둥거리는 그를 본 유리는 기다릴 새도 없이 호각을 불어 재꼈다.
피이익-!
높고 가느다란 고음이 산속으로 퍼져 나감에 따라 채주와 부채주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저 멀리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으니.
와아아아아-!
쳐라!
으하하, 일할 시간이다!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르며 창, 칼, 도끼 등을 들고 달려오는 20여 명의 장정들.
“두목!”
“두모오옥!”
빼도 박도 못 할 증거를 찾은 유리가 물었다.
“그래서 누가 두목인데?”
“이분이십니다!”
“이 새…….”
유리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부채주가 손가락을 뻗어 채주를 가리켰다.
절로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욕설을 간신히 되삼킨 채주.
그가 가까스로 인상을 풀고 부채주에게 으르렁거렸다.
“뭐 하냐, 가서 빌어먹을 새끼들 조용히 안 시키고!”
“예, 옙!”
채주의 짜증에 부채주가 달려오는 산채 식구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사이 채주는 간신배처럼 양손을 비비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하, 하하… 죄, 죄송합니다. 이 직업이 워낙에 미움을 받는 직종인지라 일단 발뺌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암, 알지. 이해하고말고.”
“놀라셨을 텐데, 어서 지나가시지요!”
“거짓말!”
“예?”
난데없이 유리가 소리를 빽 치자 채주는 얼빠진 얼굴로 그리 되물었다.
그런 그를 향해 유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말도 안 돼!”
“…예?”
“그냥 가라니!”
“…….”
“이렇게 직업정신이 없을 줄이야! 산적이 행인을 그냥 보내 준다는 게 말이 돼?!”
“…….”
“정말 우리 그냥 보낼 거야?”
상처받은 유리의 눈망울에 채주는 자신의 감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채주는 최대한 미소를 머금고 허리를 굽혔다.
“그… 그냥 가 주시면 안 됩니까?”
“…….”
돌아오지 않는 답이 원래 이토록 무서웠던가?
길어지는 침묵에 채주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그는 다시금 부탁을 해 보았다.
최대한 비굴하게.
“…제발?”
울상이 된 채주의 간절한 부탁에 유리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우리 쉬었다가 갈래?”
동의를 구하는 유리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
나무 수레가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끼익끼익-.
그 안에는 세 사람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으니.
산속, 주변의 풍광을 즐기며 아린이 즐거운 목소리로 쫑알거렸다.
“유리!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옛날 같지 않아?”
“옛날?”
유리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아린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왜, 그때도 우리 셋이서 이런 거 탔었잖아?”
“아아!”
유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작의 숲에서 한 달간의 생존 시험을 끝내고, 처음으로 요람의 북도에 발을 디딘 날.
그날도 이렇게 셋이 수레 같은 마차를 타고 이동했었다.
‘그때는 웬 미친놈들인가 싶었는데.’
다짜고짜 배고프다며 달라붙던 미친놈과.
쓸데없이 해맑은 정신 나간 여자.
두 미친 종자들이 자꾸만 들러붙기에 짜증이 났었는데, 그때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니.
참 재밌지 않은가.
유리가 그렇게 산길 풍경을 눈에 담으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때.
덜컹.
수레가 크게 흔들렸다.
그와 함께 유리의 눈이 자동으로 부리부리해졌다.
“쓰읍! 운전 똑바로 못 하지? 내 허리 나가면 니들이 책임질 거냐? 앙?”
유리의 삐딱한 시선에 채주의 목이 자동으로 움츠러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유리에게 갈굼을 받은 채주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뭐 하냐! 손님들 불편하시다잖아! 살살 몰아라, 살살!”
“…예”
“거기 뒤에 팍팍 안 미냐!”
“끄응, 네…….”
채주의 잔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수레 주변에 달라붙은 산적들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들의 얼굴은 잔뜩 땀으로 젖어 일그러져 있었으니.
‘젠장, 힘들어 죽겠구만!’
‘지는 밀지도 않고 입으로만 하면서!’
‘아니, 고작 세 명인데 뭐가 이렇게 무거워?!’
미처 가위바위보를 끝내지 못한 유리와 친구들을 대신해 수레를 끌고 있는 산적들.
그들로서는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게 뭔 짓거리냐!’
‘우리가 이걸 왜 끌고 있는 건데!’
작업을 친다기에 불려 왔건만 난데없이 처음 보는 어린 연놈들을 태운 수레나 끌고 있다니.
이런 상황에서 불만이 안 생기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수레를 밀어 산비탈을 올라가는 산적들을 보고 유리는 살짝 감탄했다.
‘이 녀석들, 생각보다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네?’
아무리 채주의 명령이라지만, 이런 명령까지 군소리 안 하고 잘 들을 줄이야.
대머리 채주는 생각보다 신뢰받는 우두머리인 듯싶었다.
‘그러고 보니 눈치도 제법이었지.’
자신들 일행은 어리고 그 수도 적었다.
아까 같은 상황이라면 대머리 채주는 자신들의 쪽수를 믿고 공격을 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섣부른 공격 대신 유리 일행을 그대로 보내는 선택을 했다.
명색이 산적이라는 자가 말이다.
‘감이 좋은 건가?’
유리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반짝이는 민머리를 바라보았다.
이에 강한 불안감이 엄습하자 부르르 몸을 떤 대머리 채주.
“빠, 빨리! 더 속도를 높여라!”
그는 고함을 내질러 애먼 부하들을 독촉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일까.
“도, 도착!”
“흐어어!”
“주, 죽겠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산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기 무섭게 수레에서 폴짝 하고 뛰어내린 유리 일행.
“오, 뭐야? 산적치고는 잘해 놓고 사네?”
“배고프다!”
아린과 뽀삐는 산적들의 소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담한 산채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사이 유리는 채주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고생했어. 그리고 신세 좀 지자.”
“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쉬시지요!”
“그럴까? 그럼 제일 깨끗하고 좋은 방은 어디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막내야, 손님들 모셔라!”
채주의 명령에 헥헥거리고 있던 젊은 산적이 쪼르르 달려와 유리와 친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자.
“이게 뭡니까!”
“아니, 저 어린 연놈들이 대체 뭐라고!”
산적들 사이에서 참아 왔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에 부채주가 손을 번쩍 들었으니.
“조용!”
“하지만!”
“백색 경보였다.”
그의 말에 산적들이 술렁였다.
“헉?!”
“배, 백색?!”
백색 경보.
그건 채주의 신체 변화에 따른 3가지 경보 중 최상의 단계였으니.
채주의 반들반들한 민머리가 붉게 물드는, ‘해볼 만하다!’의 적색 경보.
아예 머리가 검푸른빛을 띠는, ‘후퇴!’의 청색 경보.
그리고 핏기가 빠져 새하얗게 변해 버리는, ‘죽음’의 백색 경보.
채주가 느끼는 위험성에 따라 그의 머리 색이 변하는 것에 착안해 산채의 식구들이 만든 경보 단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 맞는지는 직접 경험한 산채의 식구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 백색 경보가 뜬 적이 있었나?”
“없지, 가르도 놈들한테 포위당했을 때도 청색 경보였잖아?”
산적들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채주의 백색 경보가 의미하는 건 저 어린 연놈들이 100명이 넘는 가르도의 산채보다 더 위험하다는 뜻이다.
고작 3명이 말이다.
그렇게 수하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자 채주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괜히 자극하지 말고 조금만 참아라. 딱 봐도 명가에서 오냐오냐 귀염받으면서 큰 싸가지 없는 것들이잖냐. 저놈들이 이런 산채에서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어. 하루도 겨우 버티고 떠날 거다.”
유리 일행이 금방 떠날 거라 예상한 채주.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감이 완벽하게 빗나갔다.
***
“우리 왔어!”
“배고프다!”
유리의 쉬고 가자는 말에 산적들의 산채에 눌러앉기를 사흘 차.
심심하다고 뽀삐와 산책을 다녀온 아린이 유리의 곁으로 뽀르르 다가와 재잘거렸다.
“유리,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왜, 싫어? 갈까?”
“아니! 오래 있자고! 나 여기 좋아!”
“배고프다!”
아린의 이야기에 뽀삐도 동의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몇 날 며칠 이어지는 노숙에 쉼 없이 수레를 끌었던 나날.
그에 반해 지금은 지붕 있는 집에, 때 되면 밥까지 차려 주고, 이것저것 수발을 들어 주는 산적들까지 있었다.
아린과 뽀삐에게는 이곳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친구들의 반응에 유리는 피식거렸다.
“충분히 쉬다 가자.”
원래 그의 목적지는 트위그 산맥 너머의 항구도시.
근처에 하이브라는 작은 도시도 있어 그곳을 거쳐 갈까도 고민해 봤으나.
‘얘들이 너무 열심히 뛰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수레 끌기에서 벗어나고자 아린과 뽀삐가 이 악물고 달려 준 덕분에 굳이 그곳에 들를 필요가 없어졌다.
괜히 경로를 틀어 하이브에 들렀다 갈 시간이라면 이미 항구도시에 도착하고도 남을 터이니 말이다.
‘뭐, 여기까지 빨리 오기도 했고, 어차피 한 번쯤은 쉬어 가기도 해야 할 테니.’
도시에 들어가서 괜히 돈 쓸 바에는 여기서 푹 쉰 뒤, 다음 도시에 짧게 머물다 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리라.
“누워 있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쉬었다가 출발하자고!”
“좋아!”
“배고프다!”
유리의 이야기에 아린과 뽀삐가 신이 나 소리쳤다.
한편 들뜬 두 사람을 본 유리의 표정이 갑자기 뚱해졌으니.
“야, 그런데 나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뭐가?”
“뽀삐 저 새끼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건 뭐냐?”
질문을 던진 유리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에는 웬 시커먼 사람 하나가 뽀삐의 어깨에 수건처럼 걸려 있었다.
그 질문에 아린이 별거 아니란 투로 답했다.
“아, 저거? 어제부터 요 근처에 숨어서 염탐하고 있기에 일단 잡아 놨어.”
“아, 그래? 잘했네.”
고개를 끄덕여 준 유리가 시커먼 복장의 사내를 보며 턱을 쓸었다.
“흠… 차림새를 보니 일반적인 산적 나부랭이는 아닌 거 같은데?”
그리 홀로 중얼거리는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산적도 아닌 놈이 여길 염탐을 하고 있었다라…….’
이것 봐라?
뭔가 좀 냄새가 나는데?
자연스럽게 씨익 말려 올라가는 유리의 입꼬리.
그가 벌떡 일어나 뽀삐와 아린에게 말했다.
“니들, 일단 저거 묶어서 묻어 놔 봐.”
“묶어? 묻어?”
“어. 꽁꽁 묶어서 목만 남겨 놓고 꼼꼼히 잘 묻어.”
“왜?”
“배고프다?”
“일단 묻어 놓고 있어 봐. 그사이 난 어디 좀 다녀올 테니까.”
“어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린과 뽀삐를 향해 유리가 해맑게 웃어 보였다.
“개미 주우러.”
그 말을 남긴 유리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개미?”
“…배고프다?”
도무지 유리가 무슨 생각인지 알지 못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던 아린과 뽀삐.
그들은 유리가 왜 염탐꾼을 묶어서 묻으라고 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개미를 주워 온다고 한 것인지.
“으갸아아아! 마, 말할게! 말한다고! 훅훅! 마, 말한다니까아아아!”
그 모든 걸 염탐꾼이 깨어나며 깨닫게 되었다.
***
“산적 토벌이라.”
아린이 산책을 나갔다가 주워 온 중년 사내의 정체는 헌트라는 가문에서 파견된 정예병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문 아닌 고문을 가해 그가 산적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그 감시의 목적이 하이브 3대 가문의 산적 토벌 계획 때문임을 알게 된 유리.
이후 그가 취한 행동은 간단했으니.
“부, 부르셨습니까?”
잘 쉬고 있는 산채의 주인을 불러와…….
“야, 니들… 용병 고용해 볼 생각 없냐?”
피할 수 없는 마수(魔手)를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