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필요악 (1)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중 태반이 부상자와 그런 부상자를 부축하는 이들이었다.
마치 패잔병과 같은 몰골.
그들은 다름 아닌 성공적으로 산적 토벌을 마치고 가문으로 복귀하는 하이브 3대 가문의 정예들이었다.
한데 성공적인 산적 토벌이라는 과업을 달성한 것과 달리 그들의 분위기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그 같은 사실에 군터는 씁쓸히 웃고 말았다.
‘모순이군. 뒷정리를 위해 남은 이들이 가문으로 복귀하는 이들보다 더 표정이 밝았으니.’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들은 유리가 파 놓은 함정과 거기에 빠진 산적들의 뒤처리를 위해 남았다.
원래라면 남아서 궂은일을 해야 하는 그들이 울상을 지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주변 분위기에 군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산적한테는 제대로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이 꼴이 났으니.’
싸우다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고 함정에 빠져 다쳤다.
그것도 작전에서 열외가 될 정도로 말이다.
고작 이 정도 함정에 부상을 입었다고 노려보는 부대장들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웠던지.
훈련으로 고달파질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 같아도 심란할 것이다.
저벅저벅-.
그렇게 대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 속.
다만 오로지 한 곳만이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도 군터의 바로 옆에서.
“이야, 날 죽인다!”
뒷짐을 지고 싱글벙글 웃는 유리와.
“응, 그러게! 날씨 좋다!”
“배고프다!”
그 옆에서 신나게 양팔을 휘두르며 즐거워하는 아린과 뽀삐.
주변 분위기를 읽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건지.
‘…아마도 후자겠지.’
정작 이런 분위기를 초래한 원인들은 그저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군터가 한숨을 포옥 쉬는 순간.
“그러고 보니 네가 여기 왜 있냐?”
난데없이 날아온 유리의 질문에 군터는 더 크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묻는 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참 빨리도 물어보네.
이런 질문은 보통은 만나자마자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군터가 투덜거리자 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제법 바빴잖아?”
“그래, 바쁘기는 했지.”
군터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 따위는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바쁜 상황이기는 했다.
그렇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인 군터.
“내가 여기에 있는 건…….”
그는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린과 뽀삐도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그로부터 잠시 시간이 흘러.
“…된 거다.”
제법 긴 군터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유리의 뚱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야,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집에서 쫓겨났다는 거네?”
“허락을 받은 거다! 내 얘기를 뭐로 들은 거냐!”
“오, 방금 성질부리는 게 딱 권터 그 새끼 같았어.”
“이 씨……!”
목젖까지 치민 쌍욕을 가까스로 억누른 군터.
부들부들 떠는 그를 향해 유리가 씨익 웃어 주었다.
“뭐, 아무튼 집에서 쫓겨나서 우리를 쫓아왔다는 거네?”
“…안 쫓겨났다고.”
“그럼, 가출이라고 하자.”
“큭!”
부들거리며 얼굴이 붉어진 군터의 어깨를 유리가 음흉한 눈으로 토닥여 줬다.
“새끼, 부끄러워하긴. 그새를 못 참고 쪼르르 따라오다니… 그렇게 이 형이 보고 싶었냐?”
군터의 붉어진 얼굴은 누가 봐도 부끄러움 때문이 아닌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라 그런 거였지만, 유리는 그따위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잘 왔다!”
안 그래도 한 놈을 어디서 구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주다니.
유리에게는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후후후.”
“……?!”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반기는 유리의 모습을 본 군터는 순식간에 화가 가라앉았다.
아니, 정확히는 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불안감이 자리한 거였다.
‘뭐지? 왜 좋아하는 거지?’
이상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 군터가 슬금슬금 유리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유리는 떠나는 군터를 잡지 않았다.
대신 뽀르르 제리의 옆으로 다가갔다.
“쩨리, 오랜만!”
“…….”
“뭐야, 나 지금 누구한테 인사하냐?”
“…왜.”
“뭔데? 왜 그렇게 죽상인데?”
“…너 같으면 죽상이 안 되겠냐?”
제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유리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무슨 고민 있어? 나한테 말해 봐. 내가 다 해결해 주지!”
“정말?”
“지인이니까 특별히 의뢰비를 깎아 줄게.”
“…고민 없다. 아무것도.”
그걸 또 의뢰비를 처받으려고 하네, 지독한 새끼.
‘네놈이 내 고민의 근원이란 말이다!’
제리는 속으로 절규를 내질렀다.
하지만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그러다 땅 꺼지겠다.”
흠칫-!
유리의 말에 여기저기서 흠칫거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지금 이 꼴이 난 게 땅이 꺼지며 거기에 줄줄이 빠져 버린 탓이지 않은가.
이를 상기하게 된 사람들이 더욱 풀이 죽자, 이를 읽은 알론 비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헛흠, 그…….”
“어? 아저씨 몸은 좀 괜찮아요?”
“아, 아저씨?”
태어나 난생처음 들어 보는 호칭에 알론 비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이를 이상하게 본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어디 안 좋아요? 이상하네. 세게 치면 뒈질까 봐 살살 쳤는데?”
나름 의뢰주이기에.
그것도 아직 의뢰 대금을 치르지 않은 의뢰주이기에 세심하게 배려한다고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 말들이 알론의 가슴에 못 박혔다.
“크흡!”
“아파요? 흐음, 늙어서 뼈가 약해졌나?”
“내가… 그렇게 늙지는 않았다네.”
“상당히 아파 보이는데?”
“…조금 가슴이 뻐근하기는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네.”
“그럼 됐어요.”
유리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생채기 났다고 의뢰비 깎으려 들지는 않겠네.’
물론 아직 의뢰 대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괜히 트집 잡힐 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유리가 남몰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때.
“크흠! 그래서… 의뢰비는 어찌할 셈인가?”
유리에게 휘말렸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하고 싶은 말을 꺼낸 알론.
그 질문에 유리가 덤덤히 답을 했다.
“아, 그거요? 그건…….”
“그건?”
“다른 가문의 가주님들이 전부 모이시면 얘기하죠.”
레이디버그가와 헌트가의 가주는 알론이 부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를 먼저 산에서 내려보냈다.
자신들이 남아서 뒤처리를 하겠다며 말이다.
물론 그게 유리 홀랜드란 존재를 자신에게 떠넘기는 것임을 알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렇군. 알았네.”
알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가 히죽거렸다.
“그리고 명색이 손님인데 며칠 신세 지는 건 허락하시겠죠?”
“…그렇게 하게.”
“그럼 사양치 않고 푹 쉬다 가겠습니다!”
알론은 유리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이상하게 가슴이 뻐근해지며 피곤함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그때였다.
“아 맞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유리.
“아저씨, 하이브에 용병 협회 지부 있어요?”
“용병 협회 지부라면, 5년 전쯤 생겼다네.”
“다행이네.”
“그건 왜 묻나?”
“용병단 좀 만들려고요.”
“아아, 그렇군. 용병단을 등록…….”
유리의 말을 따라 되뇌던 알론이 우뚝 멈췄다.
그는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어 연신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들어찬 의문을 아들인 제리가 대신 물어봐 주었다.
“용병단을… 이제 만든다고?!”
“어.”
“네가 용병단 단장인가, 뭔가라며!”
“이제부터 하면 되지.”
유리는 뭐가 문제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차피 용병단을 만들고 그 이름에 실적을 쌓으나, 미리 만든 이름에 실적을 쌓아 놓고 그걸로 용병단을 만드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게 왜 그게 그거냐! 엄연히 순서가 다른데!”
“에이, 너무 자잘한 거에 신경 쓰지 말라고. 머리 빠져.”
“아니……!”
이게 자잘한 거면 대체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야지 신경 쓴다는 거지?
있지도 않은 용병단의 이름으로 의뢰를 받은 건 엄연히 허위와 사칭 아닌가?
울컥했던 제리는 치밀어 오른 외침을 한숨으로 흩트리며 나직이 물었다.
“하아… 너 대체 그 짓거리를 언제까지 하려고 했었냐?”
“용병단을 만들 때까지?”
“…그게 언제인데?”
“용병단을 만들려면 딱 한 사람이 더 필요했었는데…….”
마침 그 마지막 한 사람이 제 발로 알아서 찾아왔네?
생각지도 못하게?
그 말까지는 내뱉지 않은 유리가 저 멀리 먼저 걸어가고 있는 군터의 뒤통수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
그날 오후, 비 가문의 접객용 별채.
유리의 옆에서 알짱거리던 아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유리, 뭐 하는 거야?”
하이브를 돌며 몇몇 물건을 사 들고 온 유리는 곧장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에 열중했다.
“보면 모르냐. 그림 그리잖아.”
“그니까, 무슨 그림?”
“용병단을 상징하는 문장. 용병단을 만들려면 있어야 하거든.”
“아하!”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린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유리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근데 유리, 뭘 그리는 거야?”
“달.”
“달? 달인데 왜 안에 이상한 선이 있어?”
“표정이야, 웃는 표정.”
“그러면 달이 웃는 거야? 아니면 웃는 달인 건가?”
“웃는 달.”
유리의 답변에 아린이 작게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용병단 이름이 소월인 거구나!”
“맞아.”
“그으은데 유리? 이거 달 색깔이 왜 이렇게 노래?”
“원래는 황금색 달을 그리려고 했는데…….”
“는데?”
“황금색 물감은 비싸더라고. 그래서 그냥 노란색을 골라 왔지.”
“짠돌이, 돈도 많으면서.”
“시끄러워.”
“그러어언데 유리이이?”
“에이 씨! 야, 나 집중하는 거 안 보이냐? 저리 안 꺼져? 엉?”
유리의 협박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린은 방긋방긋 웃으며 물었다.
“있지, 왜 하필 용병단 이름이 웃는 달이야?”
그런 그녀의 물음에 그림을 그리던 유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스쳐 지나갔으니.
[월루(月淚).] [월루?] [달의 눈물이라는 뜻이다.]월루.
오른이가 마지막으로 주고 갔던 선물.
이를 떠올린 유리가 작게 피식거렸다.
“뭐, 그냥 친했던 친구가 준 선물이 떠올라서.”
“너, 우리 말고 친구 없잖아?”
“…아무튼, 슬퍼서 흘리는 눈물보다는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 낫다는 소리지.”
“대체 뭔 소리래?”
“있어, 그런 게. 음… 좋아! 다됐다!”
유리가 드디어 완성된 용병단 마크를 들어 보였다.
진노랑의 원 속에 찍힌 2개의 점과 기다란 호선.
이를 지그시 응시하던 본 아린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유리, 저거 입이 좀 삐뚤어진 거 같지 않아?”
“그래?”
“응, 뭐랄까…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비웃는 거 같은데?”
아린의 지적에 그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리가 피식 웃었다.
“뭐, 그것도 웃는 거니까.”
그리 결론지은 그의 미소는 용병단 문장의 미소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흡족하다는 듯 웃은 유리가 용병단 문장이 잘 마르도록 펼쳐 놓을 때.
마침, 뽀삐와 군터가 유리를 찾아왔다.
군터는 물감으로 얼룩덜룩한 유리의 손을 보고 미간을 모았다.
“곧 식사 자리에 갈 텐데 최소한 손이라도 씻어라. 예의를 지키라고 해 봤자 듣지도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최소 기본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잔소리는 여전하네.”
툴툴거리면서도 수건을 찾아 손을 씻어 내던 유리는 자신들이 배정받은 별채를 둘러보며 살짝 감탄했다.
“근데 쩨리 상당히 잘사네? 아까 오면서 보니까 집도 꽤 크던데?”
여기가 그 찌질한 제리의 가문이라고?
유리는 그런 감탄을 내뱉었다.
이에 군터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브라는 도시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비해 꽤 규모도 크고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비 가문은 이 하이브의 토착 가문이라더군.”
“그래? 난 또 여기 가주라는 인간이 영 매가리가 없기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가문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네?”
“2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고 하더군.”
“와? 그렇게나 오래된 가문의 가주가 그리 비리비리하다고? 중간에 가문이 한 번 쫄딱 망했었나?”
“음?”
유리의 말속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군터.
“유리, 너 설마…….”
자신이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하던 군터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네가 이룩한 경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 위상인 건지 모르는 거냐?”
군터의 질문에 유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뭔 소리야. 내 경지? 위상?”
그 되물음에 군터는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 전에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뭘.”
“너, 공인 7단인 거지?”
예전부터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던 궁금증.
군터는 이를 직접적으로 물어보면서 유리의 반응을 살폈다.
이에 유리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는데?”
그런 반응에 군터는 자신의 짐작이 어느 정도 사실인 거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모르나? 공인 7단이란 경지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그 물음에 유리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 위치는 개뿔.”
자신을 그리 평가하는 유리를 보고 군터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기가 찼다.
‘이 녀석… 정말 모르는 거군.’
장난도, 농담도 아니라 정말로 녀석은 모르고 있던 거다.
현재 자신의 수준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상에 도달했는지.
또한, 어떤 위신을 갖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