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내 귀에 경험치 (1)
서로가 한 말을 들은 건지 유리와 요한이 똑같이 흠칫거렸다.
“…네놈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게로구나.”
“영감도?”
유리의 되물음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리 영체라고 하여도 네놈처럼 그리 순식간에 회복되는 경우는 없다. 하물며 이곳이 망자의 땅이라면 네놈의 영(靈)이 잠시 육신을 벗어났다는 뜻이거늘, 그렇다면 더더욱 그러한 회복세를 보일 수는 없지.”
영혈을 열고, 화신을 연구하며 영체에 관해서도 오랜 시간 공부해 온 요한이었다.
그런 그의 지식 내에서 상처 입은 영체가 유리처럼 빠르게 회복하는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곳이 ‘망자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건 그저 의심의 씨앗이었을 뿐.
요한에게 이곳이 망자의 땅이 아니란 확신을 심어 준 건 다른 이유였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뭔데?”
“지난번에 나와 만난 이후로 며칠이 흘렀더냐?”
“이틀.”
“후우…….”
유리의 답을 들은 요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기억이 없다.”
“무슨 기억?”
“네놈과 만나고 난 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유리의 영체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을 보고 얻은 위화감 덕분에 한 가지 의문을 얻을 수 있었다.
조금 전 유리와 다시 만나고 든 첫 의문.
그건 바로 ‘지금까지 자신은 무엇을 했나?’였다.
“…어쩌면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기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쉽게 말해, 깊이 잠들었다가 깬 느낌이란 건가?”
“그래, 기절했다가 일어난 느낌이지.”
“흠…….”
유리가 뭔갈 고민하는 듯 턱을 쓸자, 그 모습을 본 요한이 물었다.
“그러는 네놈은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어찌 알아챈 거냐?”
“그게…….”
유리는 요한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 입은 상처가 당장에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지만, 꿈에서 깬 이후에는 그 고통이 몰아서 닥치는 상황.
그걸 잠잠히 듣던 요한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네놈은 수면 상태에서만 이곳으로 온다는 말이냐?”
“맞아, 그러니까 내가 이걸 꿈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흠, 잠이 든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라…….”
요한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공부한 내용 중 현재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만한 지식은 없었다.
하여 지금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추론하여 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쯧.”
짧게 혀를 찬 요한이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으며 물었다.
“내가… 죽은 게 확실한 게냐?”
이에 유리도 그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죽었어. 시신은 화장한 뒤 몽파르체 호수에 뿌렸고. 그건 확실해.”
“얼마나 되었냐, 내가 죽은 지.”
“이제 두 달 정도.”
“흠… 그럼 현재 내가 영체라는 건 확실한 셈이군.”
요한이 팔짱을 낀 채 턱을 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리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경우가 흔한가?”
“흔하겠냐? 나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보통 한이 깊은 귀신이 이승을 떠돌다가 산 사람한테 들러붙기도 한다며?”
“이 새끼가? 네놈은 내가 그런 귀신으로 보이냐!”
“맞잖아? 죽어서 귀신인 것도 맞고, 검주한테 져서 한이 맺힌 것도?”
“…시부럴 애새끼,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재주는 여전하구나.”
“진짜 그래서 나한테 들러붙은 건가?”
“쯧, 인석아. 내가 검주한테 진 게 그리 한이 맺혀 악귀가 됐다면, 들러붙어도 검주 그 작자한테 들러붙어서 괴롭혔겠지, 왜 애꿎은 네놈에게 붙었겠냐?”
“하긴 영감탱이 성깔이면 그게 더 맞기는 하네.”
유리가 타당한 변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예사로운 일이 아닌 건 확실하네. 이런 거 전문적으로 해결해 주는 사람 없나?”
“전문적으로 해결해 주는 사람이라…….”
그때 요한의 눈이 반짝였다.
“네놈 친구 중에 윰족의 수도사가 있었을 텐데? 그 아이에게 물어본다면…….”
“그 새끼, 돌팔이야.”
“어째서?”
“들러붙은 귀신 처리하는 주문이 하나도 안 통했잖아? 제 입으로 자기가 그쪽 방면 전문가라더니만! 하여간 돌팔이 새끼,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라.”
“…….”
요한은 깨달았다.
저 새끼가 진심으로 자신을 퇴마하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요한의 주먹이 절로 울끈 말렸다.
그러던 그 순간, 그의 뇌리에 스친 생각이 있었으니.
‘가만?’
들러붙은 귀신?
그리고 윰족의 수도사?
몇 가지 단서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결론에 요한이 버럭 소리쳤다.
“그래, 샤리!”
“응?”
“네놈 샤리 귀걸이 말이다!”
“그게 왜?”
“그거 아직도 차고 있느냐?”
“그렇긴 한데?”
“혹시 그 귀걸이랑 내 죽은 육신이 접촉한 적이 있더냐?”
“무슨 헛…….”
당연히 없다고 답하려던 유리의 뇌리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요한이 죽었을 당시.
광인을 최대 출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귀걸이를 빼 요한의 주검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이에 표정을 굳힌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있었네? 있었어! 영감이 죽은 뒤에 바로!”
“그거구나!”
“그게 왜?”
“저번에 분명 말했을 텐데? 샤리에 부작용이 있다고.”
“설마……?”
유리가 살짝 질린 얼굴로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 그거 진짜였어? 귀신이 들러붙는다는… 그 부작용이?”
“그럼 내가 없는 말 지어냈을까 봐?”
“이 정신 나간 노친네가?! 내 몸에 그따위 부정한 물건을 박아 두다니!”
유리가 노발대발하거나 말거나, 요한은 마침내 찾은 실마리에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리된 거군. 내 영체가 샤리에 이끌려 그리 들어간 게야. 흠… 그렇다고 하여도 대체 여긴…….”
요한은 혼자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다 홀로 다음 답을 찾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긴… 네놈의 심상 속인 것 같구나.”
“내 심상이라고? 여기가?”
“그래…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말이 되지.”
애초에 유리의 영체가 몸 밖으로 빠져나온 게 아니기에 그리 회복이 빠를 수 있는 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영체가 그리 순식간에 회복되지는 않을 텐데?’
그 또한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했다.
‘아마도… 이 또한 유리 녀석이 지닌 특이한 체질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열려 있던 영혈.
영혈 속에 존재하던 마나 핵.
이미 범상치 않은 특이 체질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는데 유달리 영체가 빨리 회복되는 특이 체질이 추가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앞선 두 가지 체질에 비하면 그 정도는 오히려 더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이 녀석, 얼마 전에 두 가지 마나 핵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것 역시 이 기현상을 일으킨 원인일 수도 있었다.
‘육신과 영혈의 마나 핵이 연결된 상태에서 내가 깃든 샤리가 어떠한 작용을 한 거라면?’
과연 그 ‘어떠한 작용’이 대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요한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그 모든 것이 얽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 짐작만 할 뿐.
‘기이한 일이구나.’
기이하고 신기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여러 복합적인 우연을 통해 벌어진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그러한 느낌을 칭하는 단어를 요한은 알고 있었다.
‘…이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운명(運命).
요한은 어째서인지 지금의 상황이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속으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명(命)은 검주에게 패하여 스러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나 보다.
‘지독하구나, 참으로 지독해.’
자신에게 하늘이 내린 천명.
그 말로는 어쩌면 이것이었으리라.
‘오냐, 그래! 이것이 정녕 하늘이 정한 내 마지막 소명이라면… 내 기꺼이 이 녀석의 양분이 되어 주마!’
그리고 또한, 어쩌면 이는 운명이자 하늘이 주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이미 뒈져 버린 마당에 아껴서 뭐 할까.’
죽기 전의 유리는 조력자이자 자신의 뒤를 바짝 뒤쫓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하여 무의식중에 자신의 것을 나눠 주는 것을 꺼려 했었다.
그게 요한이 말년에 부린 마지막 욕심이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가슴속에 자리한 큰 후회였다.
‘그런데 이리도… 그 후회를 털어 낼 기회가 주어지는구나.’
자신의 도전은 끝났고 그 뒤를 유리가 이어받았다.
이제 유리는 자신의 계승자였으며, 자신은 그를 응원하는 처지다.
그러니 아낄 필요가 없었다.
‘남김없이 퍼 주마!’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에 요한은 기꺼운 웃음을 지었다.
이를 본 유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그래서 이게 내 심상이라고? 아무튼 뭐가 됐든… 나한테 귀신이 붙었다는 거잖아? 그럼 이거 어떻게 해결할 방법 없어?”
그 질문에 요한이 인상을 썼다.
“네놈, 등신이냐?”
“갑자기 왜 또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실까? 뭐가 불만이셔?”
“이 좋은 기회를 왜 똥통에 내다 버리려는 게야!”
“대체 뭔 소리야.”
“남들은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할 보물을 쥐고도 그 가치를 모르다니. 쯧쯧.”
“보물은 무슨 보물?”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요한이 엄지로 자신을 콕 가리켰다.
“여기 있잖으냐! 네놈 보물!”
“…왜 갑자기 시비야? 이거 싸우자는 거지?”
“쯧쯧, 아직도 모르겠냐?”
요한이 보내오는 한심하다는 시선에 잠시 발끈하려던 유리는 순감 멈칫했다.
‘기회? 보물?’
유리는 ‘귀신이 붙었다’라는 소름 끼치는 상황을 조금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붙은 ‘귀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요한이었다.
부절검 요한 레드너.
그리고 그와 대화는 물론,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상황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유리의 머릿속에 어제 요한이 보여 준 경이로운 검술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그게 단순히 꿈속 허상이 아닌, 영감이 진짜로 사용한 검술이라는 뜻인데.’
앞으로 그러한 검술을 이 꿈… 아니, 심상의 공간에서 겪을 수 있다면?
유리는 탄식했다.
“아!”
그는 그제야 완벽히 이해한 것이다.
요한이 자신을 스스로 보물이라 칭한 이유를.
그게 유리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
“…내 경험치 덩어리?”
“…방금 굉장히 무례한 말을 들은 거 같다만?”
요한의 눈이 게슴츠레 변했지만, 그럴수록 유리의 눈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났다.
‘그렇네! 저걸… 아니, 영감이 수십 년간 쌓은 전투의 경험치를 녹여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냥저냥 한 이도 아니고, 한때 명인 중의 명인이라 칭해진 노인네가 평생토록 쌓은 경험이다.
검술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상상도 못 할 온갖 전투의 경험치가 그에게 축적되어 있으리라.
이룩한 경지에 비해 경험치가 얕은 자신에게 그보다 값진 보물이 또 있을까.
‘그걸 다 흡수한다면 아신검은 물론… 어쩌면 신검까지도 넘볼 수도 있을 거다.’
유리의 눈빛이 돌변한 것을 본 요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각오해라. 못 먹겠다고 해도 꾸역꾸역 처넣어 줄 테니까.”
요한이 처넣어 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유리가 도발적인 미소를 보냈다.
“내가 길바닥에서 빌어먹던 거렁뱅이라 이것저것 다 잘 처먹거든? 그러니 다양하게 준비해 줘.”
두 사람이 비슷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백색의 심상 공간에서 유리와 요한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유리가 이름 붙인 ‘경험치 빨아먹기’란 수련이 말이다.
***
심상 공간 속 수련.
그 첫 시작에서 요한이 꺼낸 말을 들은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아(沒我)에 들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