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얼굴 (2)
“마력 측정을 하러 가고 싶다.”
군터가 꺼낸 이야기에 유리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졌다.
“마력 측정?”
‘내가 이걸 어디서 들어 봤는데?’라는 듯한 표정.
그는 곧 아주 오래전에 파묻힌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아아, 그 마력 측정?”
과거 요한에게 마력에 관해 배울 때,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현시대에 보편적으로 강함의 척도가 되는 기준 단위인 마력.
요한은 분명 이를 측정하는 장치가 있다고 했었다.
“갑자기 그건 왜 측정하려고?”
“시간이 날 때 공인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다.”
“아아, 맞네. 마력 수치가 1,000은 넘어야 공인 1단 시험에 응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던가?”
그것도 분명 요한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어서 유리는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공인 시험은 갑자기 왜? 굳이 공인 단증을 딸 필요 있나?”
요람에서는 공인 시험 따위를 치르지 않았음에도 개개인의 경지를 구분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여 굳이 공인 시험을 통해 단증을 취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유리의 이야기에 군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 여기는 요람이 아니다.”
“그런데?”
“요람에서는 자주 부딪혔기에 다들 너희 강함을 알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 요람에서 공인 단증이란 걸 만든 거다. 개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직관적으로 보여 줄 수 있으니까.”
“허세용이라는 거네.”
“공신력을 가진 증명이란 거다!”
“그게 그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리도 군터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쟁 때마다 매번 일일이 칼 뽑아 들며 능력을 증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기는 하지.’
그럴 때마다 공인 단증을 딱 꺼내 놓고 누가 누가 높은지 가리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또한, 일반인에게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것 중 공인 단증만큼 효과가 좋은 건 없었다.
특히 군터처럼 명가의 자손들은 높은 단증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사람들에게 회자될 터.
능력 있는 후계자는 곧 가문의 영화이니 말이다.
하여 군터도 공인 단증을 딸 생각을 한 거였다.
‘뭐, 있으면 나쁠 게 없지.’
군터의 이야기에 유리도 단증을 따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이 있었으니.
“야, 군터. 그 마력 측정하는 비용 엄청 비싸다며?”
“그렇다고 하더군.”
“그런데 요람 출신은 공짜라던데… 사실이야?”
“사실이다.”
“좋았어! 뽀삐, 나 업어! 당장 가자! 어디야? 군터 앞장서!
유리가 활짝 미소 지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랬던 미소는 곧이어 들려온 군터의 이야기에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혹시나 싶어 묻는 거다만, 너 마력 측정소가 이 항구 도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엉? 그런 거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다.”
“엔라이트 행정구에 있다며?”
“엔라이트에 있다고 말했지, 거기가 여기라고는 안 했다만?”
“…그래서 거기가 어디인데?”
유리의 떨떠름한 물음에 군터는 깔끔하게 답했다.
“이곳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지역에 마력 측정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들었다.”
“하루? 그럼 왔다 갔다 하면 이틀이네?”
“마력 측정을 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사흘 정도는 소요될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러니 준비를 해서…….”
군터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리는 퉁명하게 답했다.
“나 안 가.”
“하아… 갑자기 왜 또 삐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삐지긴 누가 삐져? 내가 삐져서 안 간다고 하는 건 줄 아냐?”
“…그런 거 아니었나?”
그런 군터의 물음에 아린과 뽀삐도 그런 거 아니었냐는 듯 눈빛을 보내왔다.
이에 유리가 짜증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누굴 쫌생이로 아나!”
“배고프다?”
“쫌생이 아니라고, 이 새끼야!”
아린의 통역 없이도 단번에 뽀삐의 말을 알아들은 유리.
잠시 씩씩거리던 그가 혀를 찼다.
“쯧. 야, 생각해 봐. 내가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뽀삐한테 업혀 다니는 마당에… 뭐? 왕복 이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라고? 옘병, 사람 잡을 일 있냐?”
“음…….”
“지금 당장 마력을 측정할 필요도 없는데 굳이 그 개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거, 우린 근처 숙소에서 쉬련다. 그냥 너 혼자 갔다…….”
“그럼 나도 나도! 나도 마력 측정이란 거 해 보고 싶어!”
“그래, 아린이랑 같이 갔다…….”
“배고프다!”
“…시부럴, 나 빼고 다 갔다 오겠다고?”
군터의 옆으로 쪼르르 붙은 아린과 뽀삐를 본 유리는 울컥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 전부 가라, 가! 어차피 모레쯤이면 나도 걸을 수는 있을 테니,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대신!”
강한 어조와 달리 유리의 표정은 상당히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이번에는 살짝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갈 거면 나 여관까지는 데려다주고 가.”
***
“정말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
선착장 근처의 사꾸려 여관으로 뽀삐에게 반쯤 업혀 온 유리.
여관 침대에 궁둥이를 붙이기 무섭게 날아온 질문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군터를 바라보았다.
“그딴 말을 할 거면 최소 문 안으로 들어와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당장이라도 떠나려고 문밖에 서 있으면서 걱정하는 척은.”
“걱정하는 척을 한 적 없다.”
“그럼?”
“난 정말로 걱정하고 있을 뿐이지.”
“…너 지금 입꼬리 씰룩거리는 거 알고 있냐? 완전 신나 보이는데?”
“그럴 리가.”
순식간에 미소를 지운 군터를 보며 유리는 한탄했다.
‘저 새끼 저거… 왜 나날이 뻔뻔해지냐?’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유리였다.
“아, 됐고. 갈 거면 얼른 꺼져. 나 이만 쉴 거니까.”
유리는 끙끙거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건만 벌써 피로해 보이는 얼굴.
평소의 유리를 알고 있다면 현재 그의 몸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응? 평소의 유리?’
골골거리는 유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린.
“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은 그녀가 씨익 웃으며 외쳤다.
“유리, 너에게 대련을 신청한다!”
“……?”
이게 갑자기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아린의 당돌한 외침에 유리가 눈을 끔뻑이는 것과 달리 군터와 뽀삐는 도리어 눈을 빛냈다.
“그렇군.”
“배고프다!”
마치 기회를 포착한 매의 눈빛.
그들은 아린의 뒤에 쪼르르 줄을 섰다.
“아린 다음은 내 차례다.”
“배고프다!”
“나 다음은 뽀삐라는군.”
그들의 대련 신청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니들 제정신이냐?”
이에 세 사람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다!”
“물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널 이겨 볼까. 상대가 약해진 순간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싸움의 기본이다.”
“이거 다 너한테 배운 건데?”
친구들이 뿜어내는 거센 기세에 유리는 깨달았다.
‘이 새끼들… 진심이구나?’
자신이 잘 키운 건지, 아니면 잘못 키운 건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매서운 기세를 내뿜는 친구들을 보며 유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갈 길이 멀지 않아? 얼른 가라, 얼른!”
“괜찮아! 어차피 금방 끝나!”
“지금의 너라면… 마력 측정을 하기 전에 가벼운 몸풀기 정도는 되겠군.”
“배고프다.”
“너 같은 조루는 3초면 된다고 뽀삐가 전해 달래!”
“…….”
진심이 느껴지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유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으니.
“…한 번만 봐주세요.”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싹싹 비는 것뿐.
그것도 최대한 비굴하게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빌고 난 뒤, ‘어쩔 수 없군, 오늘은 봐주겠다’, ‘봐준 거니 내가 이긴 거다!’, ‘3초가 되기도 전에 끝났군’ 등의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친구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던 유리.
“…….”
친구들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가 주먹을 울끈 말아 쥐며 중얼거렸다.
“…저주받을 놈들, 다 나은 뒤 두고 보자.”
일단 뽀삐 새끼부터 3초 안에 조져 놓으리라.
유리는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유리를 제외한 친구들이 마력 측정을 위해 떠났고.
그로부터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
좁은 가도(街道)를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어가고 있었으니.
터벅터벅-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그들은 다름 아닌, 마력 측정을 위해 유리의 곁을 떠났던 아린과 뽀삐, 군터.
그들은 무사히 마력 측정을 끝내고 방금 막 출발했던 항구 도시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걷던 중 뽀삐가 갑자기 군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배고프다.”
“…이건 무슨 의미냐?”
뽀삐의 손길이 어딘가 모르게 괜히 기분이 나쁜 건 그냥 단순히 자신의 착각인 걸까?
하지만 그건 군터의 착각이 아니었다.
“뽀삐가 힘내래.”
“힘? 갑자기 그게 무슨……?”
“배고프다.”
“넌 우리 중에 최약체지만, 제법 괜찮은 실력을 지녔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힘내래! 그대로 계속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토닥토닥-.
아린의 통역.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진, 어깨를 두드리는 뽀삐의 손길에 군터는 울컥하여 소리치고 말았다.
“나… 난 아쉬워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 마력 수치는 정상이다! 너희의 수치가 비정상적인 것뿐이지!”
이번 마력 측정에서 군터가 받은 수치는 13,121.
일반적으로 갓 공인 4단에 든 이의 마력 수치가 10,000이고.
공인 5단의 기준점이 15,000인 걸 감안하면, 5단급을 넘보고 있는 군터에게 딱 알맞은 마력 수치가 측정된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뽀삐와 아린이었다.
“배고프다!”
군터의 말에 콧방귀를 흥- 뀌는 뽀삐의 마력 수치는 18,376.
이미 공인 5단의 범위를 훌쩍 벗어난 수치.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아린이었으니.
“맞아, 맞아! 비정상이 아니라, 특출나다고 표현해 주지 않을래?”
당당하게 어깨와 가슴을 편 그녀의 마력 수치는 다름 아닌 31,739였다.
무려 공인 6단의 기준점이 되는 3만의 마력 수치를 넘긴 상태.
군터의 표현대로 그들은 이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이 녀석들 진짜… 뭐냐?’
분명 뽀삐와 아린의 경지는 자신과 같은 수준인 공인 4단이었다.
그런데 마력 수치만 따지면 뽀삐는 공인 5단, 아린은 공인 6단급이지 않은가.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마력 수치가 경지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는 건가?’
각 공인 단수별 기준이 되는 마력 수치는 수많은 표본을 조사하여 만들어진 평균.
다시 말해 아린과 뽀삐의 수치는 그 평균을 훌쩍 벗어나, 비정상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이에 군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뽀삐는 윰족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아린, 저 녀석은 뭐지?’
대체 경지와 너무도 동떨어진 그녀의 말도 안 되는 마력 수치를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담아 바라본 순간 아린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다 왔다!”
그녀의 외침이 너무도 시의적절하고 자연스러웠기에 군터는 자연스럽게 아린을 향한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아린의 외침대로 저 멀리 유리가 묵고 있는 선착장 인근의 여관이 시야에 잡혀 들었다.
그런데 시야에 걸려든 건 여관만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유리가 묵는 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여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다리 인근에 많은 사람이 둥글게 모여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에 그 근처로 다가간 세 친구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배고프다!”
“여기 사람 지나가요!”
커다란 덩치의 뽀삐가 선두에서 인의 장벽을 뚫으니 그 뒤에 따라붙은 아린과 군터는 너무도 수월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여 여유가 있는 군터가 옆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뱃사람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답을 줬다.
“조금 전에 시체 하나를 강에서 발견해 건져 올렸다더군.”
“시체 말입니까?”
“아무래도 칼에 맞아 뒈진 외지인을 또 누가 강에 버린 모양일세, 쯧쯧, 세상이 이리 흉흉해서야.”
강에서 시체를 건져 올린 게 제법 잦은 일인지 선원은 별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한편, 군터가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사람들을 뚫고 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뽀삐와 아린.
“배고프……!”
“지나가……!”
인파의 중심에 도달한 순간 그들의 발걸음은 우뚝 멈추고 말았다.
두 사람을 멈춰 세운 원인.
그건 다름 아닌 인파의 중심에 놓인 한 구의 시체였으니.
“어?”
사람들이 만든 둥근 공간에 홀로 평온히 눈을 감은 이의 얼굴을 확인한 아린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내뱉고 말았다.
“…유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