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얼굴 (5)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느꼈나 싶었던 유리.
하지만 옅은 진동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우웅우웅-.
거기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유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거……?’
계속되는 울림은 외부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의 몸에서 시작되고 있던 거였다.
웅-! 웅-! 웅-!
마치 자신을 부르는 듯한 울림.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설마?’
유리가 손을 내밀기 무섭게 그의 손바닥에서 금빛 액체가 일렁이며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중력을 거스른 액체는 이내 하나의 형상으로 변했으니.
마침내 손에 잡힌 부러진 황금 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월루, 네 짓이었냐?”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월루가 작게 몸을 떨었다.
우웅-.
덕분에 유리는 자신이 들은 울림이 월루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유리가 월루를 게슴츠레 내려다보았다.
“왜 갑자기 칭얼대냐?”
조금 이상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유리는 월루의 진동이 마치 자신에게 무언가를 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나 보다.
웅웅-!
유리의 손안에서 월루가 답을 하듯 다시금 몸을 떨었다.
“뭐 어쩌라고?”
대체 뭘 어쩌라고 이러는 거지?
그런 유리의 눈빛 공세에 월루가 스르르 액체로 분해되어 다시 유리에게 흡수되어 사라졌다.
아니, 대부분 사라지기는 했다.
아주 소량만을 남기고.
“응?”
이후 월루가 남기고 간 소량의 황금빛 액체가 작은 화살표를 만들어 냈으니.
“…여기로 가라는 거냐?”
윙-!
작은 화살표가 마치 모기 날갯짓 같은 소리를 냈다.
이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너, 생각보다 자기 주장이 제법 뚜렷하다?”
왼쪽이와 오른이.
그 두 녀석이 남기고 간 물건이니 평범한 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의 자아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리 감탄하며 유리는 월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골목골목을 빠르게 나아가는 유리.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황금색 화살표의 방향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유리는 어두운 밤임에도 별문제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에 어떻게 숙소로 돌아가냐인데.’
뭐, 그거야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될 일 아니겠는가?
지금은 걱정보다 월루 이 녀석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건지, 그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 클 뿐이었다.
그렇게 월루의 인도를 받아 얼마를 걸었을까.
유리의 앞에 나타난 높다란 담벼락.
화살표는 바로 그 담벼락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월루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쏘아 보내는 유리.
“이제는 하다 하다 남의 집 담벼락까지 넘으라고 시키는 거냐?”
입으로는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빠르게 주변의 인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없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유리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족히 3m에 달하는 담장을 두어 번 박차는 것만으로 가볍게 뛰어넘은 유리.
지면에 착지한 유리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쯧, 몸 상태가 확실히 안 좋긴 한가 보네.”
평범한 사람이 봤다면 감탄해 마지않을 몸놀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정도 높이마저 단숨에 뛰어넘지 못했다고 툴툴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유리는 손바닥의 황금빛 화살표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냐?”
위웅-!
화살표가 작게 몸을 떨며 오른쪽을 가리켰다.
이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유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흠, 버려진 저택인가?’
꽤 걸었음에도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
깨진 바닥과 듬성듬성 말라비틀어진 나무까지.
그가 발을 들인 대저택은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관리만 잘하면 꽤 괜찮을 거 같은데?’
곳곳에서 보이는 건물 양식과 장식만 해도 이 저택을 짓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그런 곳을 이리 방치해 두다니?
유리로서는 너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뭐, 부자들의 심리를 내가 어찌 이해하겠냐마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걸어가던 순간.
스르륵-.
지금까지 방향을 알려 주던 황금빛 액체가 완전히 유리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에?”
아니, 이건 또 무슨 거지 같은 경우래?
유리가 손을 탈탈 털어 보았지만, 이미 흡수되어 사라진 월루가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야!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나가는 길 정도는 안내해 달란 말이다!
월루가 만든 화살표 하나만 믿고 따라왔다가 난생처음 와 본 폐가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버림받은 유리.
그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파티장으로 쓰였을 거라 짐작되는 너른 공간.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삭아 버린 천과 부서진 가구들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대체 월루 이 녀석은 자신에게 무얼 보여 주고 싶어서 이리로 안내를 한 것일까?
살짝 턱을 쓸던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돌아갈까?”
무슨 일인가 싶어 가자는 대로 오긴 했는데, 굳이 이런 곳에서 뭘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가자!”
이건 괜히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해서 돌아가려는 게 아니다!
그냥 시간 낭비를 하기 싫은 것뿐이지!
그리 스스로 묻고 답까지 내린 유리는 왔던 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흐흐흐흐흐흑-.
미약하게 들려온 여자의 울음소리.
흡사 귀곡성처럼 들려온 소리에 유리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에, 에이 설마…….’
자신이 잘못 들었을 거다.
분명 그런 거다!
유리는 애써 그렇게 스스로에게 세뇌를 걸었다.
하지만.
꺄아아아아악-!
곧이어 들려온 어둠을 찢을 듯 높디높은 여자의 비명은 그런 세뇌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고.
유리의 입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옘병!”
월루 이 새끼가?!
날 대체 어디로 데려온 거냐!
와락 짜증을 낸 유리는 곧장 영역을 전개했다.
‘귀신한테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뭐라도 해 봐야지 않겠는가?
그렇게 위:영역과 진:영역을 동시에 펼친 유리.
곧 그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둘?’
유리가 펼친 영역에 두 종류의 기운이 걸려들었다.
다급하고 불안정한 기운 하나와 그 뒤를 쫓고 있는 제법 강맹한 기운.
그리고 그 두 기운은 생각보다 유리와 가까이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시시각각 유리를 향해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이에 유리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귀신치고는 묘하게 생기가 넘치는 느낌인데?”
이건 누가 봐도 사람의 기운이지 않은가.
그리 중얼거린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유리의 신형이 그곳에서 사라졌으니.
파측-.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작은 뇌전이 피어올랐다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 직후.
타닥- 타닥-!
“흐윽, 흐윽.”
울음기 섞인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한 여인이 유리가 있었던 장소로 뛰어들었다.
허름한 옷차림.
봉두난발한 머리.
지저분한 얼굴과 피로 물든 발.
“하윽, 흐윽! 흑흑…….”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달려온 여인의 뒤로 검은 무복 차림의 사내가 곧이어 나타났다.
그렇게 유리가 있던 곳에 나타난 두 사람과 한눈에 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
절망으로 가득한 표정의 여인은 정신없이 뛰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사색이 된 그녀는 허겁지겁 주변에 굴러다니는 낡은 촛대를 주워 들고는 뒤에 걸어오는 남성에게 겨눴다.
“오, 오지 마!”
엉덩이로 바닥을 뭉개며 뒤로 물러나는 여인.
공포에 질린 그녀의 외침에 검은 무복 사내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귀찮은 짓을 하는군.”
말은 그리했지만, 사내는 어째서인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인을 감시하는 눈초리로 가만히 서 있을 뿐.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유리가 그 점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볼 때.
흠칫-!
유리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뭔가… 온다!’
무언가 흐릿한 기운이 유리의 감각에 잡혀 들었다.
문제는 그 기운이 이미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는 거다.
미리 영역을 펼쳐 놓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한 기운.
그 같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내 감각의 영역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은신에 특화된 마체술 사용자이거나, 혹은 영역을 개화한 공인 7단 이상급의 강자이거나.’
차라리 전자의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후자인 경우였다.
타인의 영역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 자신의 몸 주위에 영역장을 두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지금 몸을 빼긴 늦었는데.’
이미 근처까지 도달한 정체 모를 상대.
하여 유리는 더욱더 기척을 죽였다.
그러다 마침내 미지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저벅저벅-.
검게 보일 정도로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는 희디흰 피부와 붉은 눈동자.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사내의 등장에 도망쳐 왔던 여인은 사색이 되었다.
“흐, 흐윽!”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싶은 표정의 여인.
반면 검은 무복의 사내는 새로 등장한 이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대공자님.”
“스스로 족쇄를 풀고 도망쳤다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절도로 잡혀 온 자인데, 자물쇠 따는 재주가 있던 모양입니다. 세밀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그쪽이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안 그래도 심심했던 찰나, 재밌는 유희였습니다.”
살포시 지어진 대공자의 미소에 검은 무복 사내는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반면 도망친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그녀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이에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는 대공자.
“살고 싶습니까?”
“사,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앞으로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고! 예, 예! 손 씻고 착실하게 살아갈게요! 야, 약속하겠습니다!”
“흠.”
고민하는 듯한 사내의 표정을 본 여인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한 듯 더욱더 간절하게 양손을 비볐다.
“제, 제발요! 제발 살려 주세요!”
“으음, 손 씻고 착실하게 살아가겠다라…….”
“네네, 착실하게 살겠습니다! 꼭, 꼭 그럴게요!”
“그러면 뭐가 달라지죠?”
“예?”
“당신이 손을 씻고 착실하게 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냔 말입니다.”
“그, 그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여인을 보고 대공자는 살포시 고개를 내저었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처럼 남의 집을 털며 살아가든, 손을 씻고 평범하게 장사나 하며 살아가든…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그…….”
“하지만.”
푸슉-!
대체 언제 접근한 것일까.
대공자의 손이 여인의 가슴 한복판에 꽂혀 있었다.
여인의 심장을 손에 쥔 대공자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이러면 달라집니다.”
“꺽-.”
“당신이 죽어 나의 일부가 된다면 그건 세상을 바꾸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한 셈이 되는 거죠.”
대공자가 그리 말하는 사이 여인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고, 동시에 빠르게 말라 가기 시작했다.
“커으!”
“손을 씻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 말을 할 때쯤 여인은 비쩍 마른 목내이가 되어 있었다.
이후 미련 없이 손을 빼낸 대공자.
푸슥-.
사람의 몸이 꿰뚫렸음에도 흘러나온 피는 없었다.
심지어 여인의 가슴을 꿰뚫은 대공자의 손에도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손가락 끝에 아주 살짝 핏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츠륵-.
이는 금세 대공자의 손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 낸 주검을 내려다본 대공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은 뒤, 목내이 위에 던졌다.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듯이.
“치우세요.”
“예.”
검은 무복의 사내는 대공자를 향해 짧게 목례를 해 보였다.
이에 미련 없이 등을 돌린 대공자.
그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렇게 한밤중 폐가에서 일어난 소동이 마무리되려나 싶던 순간.
위잉-!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울림에 대공자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이런…….”
단번에 표정이 굳어진 그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으니.
“쥐새끼가 숨어 있었군.”
그리 중얼거린 대공자가 벼락처럼 검을 뽑아 들며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서 검붉은 초승달 형태의 비검이 쏘아져 나와 수북이 쌓인 폐가구 더미를 강타했다.
콰가가강-!
폭음과 함께 비산하는 폐가구의 파편들.
그와 함께 일어난 먼지구름 속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오니, 이를 향해 대공자는 비검을 연이어 날렸다.
슈슈슈슈-!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검붉은 비검.
하지만 비검들은 목표물을 베어 내지 못하고 애꿎은 벽에 큰 흠집만을 남길 뿐이었다.
슈각- 스가각-!
그사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검은 인영.
예상치 못한 이유로 숨어 있던 걸 들켜 버린 유리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하아… 옘병 진짜.’
속으로 한숨을 내쉰 유리.
그는 처음에 너무 당황해서 꽉 움켜쥐고 말았던 주먹을 살짝 펼쳐 보았다.
그 안에는 갑작스럽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황금빛 화살표가 있었으니.
위웅-!
작게 진동하는 황금빛 화살표.
우웅-!
자신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화살표의 끝은 정확히 눈앞의 사내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유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목적이 바로 저 사내라고 알려 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