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신기술 (1)
4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좁은 공간.
그중에서도 2층 침대에서 시작된 유리의 실험은 어느덧 2일 차를 맞이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유리의 실험은 딱히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그간의 일을 복습하는 유리.
‘뭐가 문제지?’
마류로 혈무의 흐름을 비슷하게 흉내 내, 매개체로서 대신하게 만든다는 자신의 계획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며 유리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감각에 간섭이 일어났다면, 실험체들한테서 뭔가 반응이 나타나야 할 텐데?’
하지만 지난 며칠간 녀석들에게서는 별다른 이상 반응이 없었다.
‘진짜 시간 낭비를 한 건가.’
타인의 감각에 혼란을 주는 기예.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혈무가 꼭 필요한 것일까?
혈무가 있어야지만 제 성능을 발휘하는 걸까?
‘타인의 감각에 간섭하는 원리가 아니라, 혈무를 만들어 내는 원리를 빼내 왔어야 했나?’
유리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럴 때 영감이 도와주면 좀 편할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유리는 다시 요한이 있는 심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떨쳐 낸 유리는 의지를 다졌다.
‘이제 고작 며칠째니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해 보자고.’
그냥 이대로 놓아 버리기에는 혈무의 능력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하여 유리는 다시 실험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다시 만 하루 정도가 지났을 무렵.
‘진짜, 왜 안 되는 거지? 뭐가 문제냐?’
또다시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던 유리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씨, 이건 뭐 반응도 없으니 허공에 주먹질하는 기분이네.’
무슨 반응이라도 있어야지 자신이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틀렸는지를 알 텐데.
그 어떤 반응도 없으니 실험의 진척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다. 반응이 없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꺼지려는 의지의 불씨를 다시 키운 유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걸 되짚어 보기로 했다.
‘타인의 감각에 간섭해서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혈무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걸 마류로 대체한다고 치면…….’
유리의 사고가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감각의 혼란. 그러고 보니 감각의 혼란은 왜 일어나는 거지?’
감각의 혼란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어떤 방식으로?
‘감각의 혼란은 타인의 감각을 뒤흔드는 거다. 타인의 감각에 간섭해 감각 자체에 혼란을 주는 건데… 가만? 꼭 타인의 감각에 간섭해야만 하는 건가?’
사고의 심해를 유영하던 유리의 두 눈이 번쩍 띄었다.
‘타인의 감각을 내가 조작해서 혼란을 주는 건 너무 어려운 방식이다. 특히 혈무라는 매개체가 없는 나한테는 더더욱! 그러니 이를 조금 더 쉽게 할 방법은?’
유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굳이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효과를 낼 필요는 없잖아? 보다 쉬운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비슷한 효과를 낼 방법은 없나? 비슷한 효과… 비슷한 효과라…….’
고민에 고민을 이어 가던 유리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동시에 현실의 유리도 눈을 번쩍 떴으니.
‘내 감각을 타인에게 때려 넣을 수 있다면?!’
갑자기 내가 보는 것과 다른 시각이 눈에 보이고.
지금 내가 맡던 냄새와 전혀 다른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하고.
촉각, 미각, 청각에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 섞여 든다면?
‘그 또한 감각의 혼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마리를 얻은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는 곧장 자신이 얻은 영감을 실천으로 옮겼다.
영감이란 금방 휘발된다.
때문에 이를 놓치기 전에 곧장 실험에 써먹어 봐야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바로 옆 침대에 실험체로 써먹기 좋은 대상이 곤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감각… 내가 느끼고 있는 감각.’
천장을 뚫어져라 보며, 유리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각을 전한다는 생각으로 마류의 실을 군터에게 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혈무에서 빼낸 원리를 적용했으니.
‘제발 돼라, 돼라, 돼라앗!’
그런 유리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
벌떡-!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운 군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눈을 비비적거리는 아니겠는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침대가 크게 흔들리자 아린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2층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왜 그래?”
“음, 뭔가를 본 느낌이 들어서…….”
그런 군터의 이야기에 게슴츠레 변한 아린의 눈매.
그 따가운 눈빛 공세에 군터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잠깐 졸다가 꿈을 꾼 모양이군.”
“졸지 말고 자라고! 침대 흔들지 말고!”
“…알았다.”
아린에게 핀잔을 들은 군터가 다시 침대에 눕는 것을 본 유리는 주먹을 울끈 말아 쥐었다.
‘됐다!’
조금 전 그가 군터에게 전한 감각은 바로 시각.
바로 자신이 보고 있던 천장이었다.
‘된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자 신이 난 유리는 한 가지 응용에 들어갔다.
‘감각이 굳이 꼭 현재의 감각일 필요가 있나?’
상대에게 때려 넣는 감각이란 결국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감각의 상(想)을 전하는 거였다.
그렇다면 기억하고 있는 감각의 상이 선명하기만 하다면, 과거의 것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유리는 두 번째 실험을 시작했다.
‘돼라, 돼라, 돼라, 돼라아아아!’
그렇게 몇 초가 흘러.
유리의 간절함 바람이 다시 통하였는지 군터가 스르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침대 난간으로 머리를 내밀고 아린을 불렀다.
“…아린.”
“으, 응?”
살짝 졸린 눈으로 다시 얼굴을 빼꼼히 내민 아린.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군터가 나직이 말했다.
“배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라.”
“……?”
“…이 정도 냄새면 사실 이미 쌌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 말을 남기고 군터의 머리가 쪼르르 사라지는 걸 아린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뒤늦게 군터의 말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얼굴이 시뻘게져 소리쳤다.
“무, 무, 무슨 소리야! 나 아니야!”
그녀가 침대를 흔들었다.
“나 방귀 안 꼈어!”
이에 군터가 짧게 한마디를 보탰다.
“냄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 아니라고오오!”
아린의 괴성이 더욱 커졌다.
그때 군터와 아린의 침대로부터 등을 돌린 유리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으니.
“…이게 되네?”
응용 실험도 매우 성공적.
재밌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 유리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초롱초롱 빛났고.
그가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뽀삐의 우렁찬 코골이에 묻혔다.
***
“이야, 이거 웃기네?”
유리는 자신을 불러들인 심상 공간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필요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연구가 얼추 마무리되니까, 불러들인다고?”
조금 더 빨리 오게 해 줬으면 좀 좋아?
유리는 너무도 제멋대로인 심상 공간을 향해 투덜투덜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연구? 뭘 연구를 했다는 거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유리의 눈에 음흉함이 깃들고.
“아, 별거 아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요한에게 환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에 요한이 피식거렸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일이 잘 풀린 모양이로구나.”
“물론 잘 풀렸지! 완전 잘 풀렸지!”
“그래서 내 검은? 찾았냐?”
“내 말 뭐 들었어? 잘 풀렸다고 했잖아? 당연히 회수했지!”
유리가 요한을 향해 엄지를 척 하니 들어 보였다.
그 경망스러움에 요한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뒤처리는 잘한 게야? 이스카리오 그 박쥐 새끼들이 은근히 집요한 구석이 있는데?”
“걱정 마.”
여유만만해 보이는 유리를 보고 요한은 그제야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유리 녀석이 저리 자신감을 보일 정도라면 확실하게 믿어도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여 요한은 걱정 대신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래, 지금쯤이면 베오그라드로 가고 있겠군.”
“어?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레드너 가문으로 간다고 했으니, 엔라이트 행정구 다음으로는 베오그라드이지 않겠냐?”
“맞아, 지금 베오그라드로 가는 여객선에 있어.”
“잘됐구나. 그럼 당분간은 별일 없을 테니 수련이나 하자.”
“…살살 때려. 나 아직 다 안 나았어.”
“이 애새끼, 왜 이리 쫄보가 됐어?”
“노친네도 그 고통을 맛보면 나처럼 될걸?”
“쯧, 걱정 마라, 내 알아서 조절할 테니.”
“그렇다면야.”
“알았으면 얼른 검이나 만들어라.”
요한의 재촉에 유리는 바로 검을 만들어 건넸다.
사실 엄살을 피우기는 했지만, 그 역시도 내심 이 수련을 반기고 있었다.
‘수련 효과 하나는 끝내주니까.’
블레어와의 전투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검술 실력이 늘어났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요한과 한 검술 수련은 고작 한 번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여 유리가 이 수련을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게 통하려나?’
실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며 히죽거리는 유리를 보고 요한은 괜스레 기분이 언짢아졌다.
“…자꾸 그리 실실 쪼개면 내 검이 제법 매서워지는 수가 있다.”
“에이, 오랜만의 수련이라 신나서 그래. 그냥 이해해 줘.”
“흠…….”
유리를 뚱하게 바라보는 요한은 강하게 촉이 왔다.
저 새끼 저거, 지금 뭔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뭔 지랄 같은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릉-.
“흠씬 처맞다 보면 다음부터는 그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요한이 검을 뽑아 들고 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유리와 요한의 두 번째 검술 수련이 시작되었다.
***
새하얀 공간 속에 두 줄기의 은빛 궤적이 어지러이 뒤엉켰다.
카강- 캉캉-!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에 들리는 건 오로지 소리뿐.
하지만 요한은 유리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검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놈 그동안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이리 는 게야?!’
심상 공간 속, 다시 유리와 만날 때까지가 자신에게는 고작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녀석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며칠 혹은 수십 일이나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리의 검술 실력은 시간 대비 너무 비약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해 심상 속에서 혼자 검이나 휘둘렀다지 않았나?’
보통은 육체와 정신의 괴리감으로 인해 심상 속 수련은 대단한 효율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리 늘었어?! 그 수련 방식이 잘 맞는 건가?’
어쩌면 심상 속 수련이 유리의 체질에 딱 맞는 수련 방법일지도 몰랐다.
하여 요한의 가슴속에 스멀스멀 경각심이 피어올랐다.
‘이거 밑천이 거덜 나는 게 어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성싶구나.’
유리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퍼 주기로 결심했던 요한.
하여 유리가 빠르게 강해지는 건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분명 좋긴 좋은 일인데…….
‘…왜 이리 재수가 없을꼬?’
아낌없이 퍼 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날로 먹다 못해 아주 후루룩 들이마시는 꼬락서니를 지켜보고 있자니 묘하게 배알이 꼴렸다.
아마도 자신이 수십 년간 일군 결실이, 유리 녀석에게는 후루륵- 들이마셔도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기쁨과 짜증, 한탄과 대견함 그 중간의 어떤 감정에서 요한이 얼굴을 구긴 사이.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생긴 빈틈을 포착한 유리의 눈에 빛이 번쩍였다.
‘지금!’
유리는 마류의 실을 풀어내 요한에게 연결했다.
그와 함께 현실에서 군터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니.
“……?!”
요한은 경악했다.
크게 치떠진 두 눈.
그리고 절로 튀어나온 당혹성.
“헙?!”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거울을 마주한 것도 아니건만, 자신의 놀란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의 시야에 겹친 기괴한 상(狀).
분명 자신의 두 눈은 유리 녀석을 향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그 위로 자신의 모습이 떡하니 겹쳐진 것이다.
요한은 그 상이 단순히 환상이 아닌 자신의 실제 모습이란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런 해괴한 경우가?!’
정말 수십 평생 통틀어 이보다 더 놀랐던 적은 손에 꼽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경악 덕분에 유리의 검은 너무도 손쉽게 틈을 비집고 들어가 요한의 목에 겨눠졌다.
척-.
“내가 이겼네? 부절검 요한 레드너를?”
잔뜩 신이 난 유리의 히죽거리는 말투.
이에 검을 거둬들인 요한이 넋이 나간 어투로 물었다.
“네놈… 뭔 짓을 한 거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