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신기술 (2)
얼빠진 요한의 물음에 유리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야, 이게 통하네?’
심상의 공간에서도 통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게 이렇게 되다니.
요한이 저리 놀라는 것을 보니 자신의 감각이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과 달리 유리는 시치미를 뚝 뗐다.
“하다니? 내가 뭘?”
“흐음…….”
“그나저나 내가 이긴 거 맞지? 그치?”
요한은 으스대는 유리를 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허허, 이 애새끼가?’
분명 조금 전 일은 유리 녀석이 부린 수작이 확실했다.
그런데도 저리 시치미를 뚝 떼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설마 패배의 충격에 실어증이라도 걸린 거야? 세상에 맙소사, 그렇게나 충격적이었어?”
“허허허.”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린 요한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오냐, 네놈이 그리 나오겠다면… 내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자고로 매질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좀 많이 처맞다 보면 알아서 불겠지.’
입꼬리가 삐딱해진 요한이 유리를 향해 검을 까딱였다.
“다시 오거라.”
“영감이 오라고 하면 내가 네 하고 가야지!”
요한의 도발적인 검 놀림에 유리가 자신감 있게 튀어 나갔다.
그렇게 요한과 유리의 2차전이 발발했다.
***
“이크! 아고!”
자신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내며 빠져나가는 유리를 보며, 요한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자, 언제 그걸 써먹을 셈이냐?’
원래 계획했던 대로 열심히 후드려 패서 불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살살 낚아 볼 것인가.
‘원래 성질 같아서는 후드려 패는 게 맞겠지만…….’
유리 녀석의 성깔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는 만큼 요한은 일단은 낚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여 요한은 일부러 틈을 내보여 주었다.
녀석이 얼른 이를 덥석 물고 ‘그것’을 쓰기를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유리는 쉽사리 이를 물지 않았다.
‘거, 깐깐한 애새끼.’
유리 녀석도 아는 거다.
자신이 일부러 빈틈을 내보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요한은 더 크게 틈을 내보여 주었다.
‘이래도 안 들어올 거냐?’
아마 저 신중한 성격이라도 이 정도 틈이면 안 들어오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요한의 의도가 통할 것일까?
휙-!
유리가 갑자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응?’
열심히 칼질하다 말고 난데없이 저게 무슨 짓인가 싶었던 요한이었지만, 이내 유리가 벌인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흡!”
유리가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요한의 시야에 또 다른 상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휙-!
유리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상이 휙휙- 바뀌었다.
본래 자신의 시야에 겹쳐진 새로운 시야 탓에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
하지만 오히려 요한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것 봐라, 네놈 짓 맞지 않느냐!’
자신의 시야에 겹치는 시야의 주인이 유리임이 이로써 명백해졌다.
그렇게 눈앞이 휙휙 바뀌어 버리는 틈을 타 유리의 검이 거슬러 올랐다.
하지만.
‘어림없다 욘석아!’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줄 알고?
처음에야 아무런 생각 없이 방심하고 있다가 난데없는 기사(奇事)에 놀라 허를 찔렸다지만, 똑같은 수에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요한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눈앞의 시야가 뒤죽박죽임에도 요한은 침착하게 검을 놀렸다.
동시에 틈을 노리고 들어왔던 유리의 검은 너무도 손쉽게 튕겨 나갔다.
그사이 시야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요한의 오감이 본격적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은.
우와아아-!
갑자기 귓가에 엄청난 괴성이 메아리치고.
킁킁-!
‘옘병! 이건 또 뭔 냄새냐?!’
난데없이 코끝에 구린내가 감돌며.
우엑-!
‘웁?!’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쓴맛이 입에 맴돌기도 했다.
유리와 검을 맞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더 미쳐 날뛰는 감각에 결국 요한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야이, 빌어먹을 새끼야! 이러고도 시치미를 떼는 거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이거 뭐냐! 어디서 이딴 해괴한 걸 배워 왔어?!”
“아, 그러니까 난 영감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옘병 지랄하네. 귀에 걸린 입꼬리나 어쩌고 그딴 헛소리를 해라!”
요한은 유리의 씰룩이는 입꼬리를 아니꼽다는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요한을 더욱 아니꼽게 만든 건.
‘저… 저 새끼 눈깔!’
유리의 눈깔에 번들거리는 기운이 실로 재수가 없다는 거였다.
요한은 그 눈빛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망할 놈의 새끼가 날 상대로 실험하고 있구나!’
부아가 치민 요한은 오기가 솟구쳤다.
‘오냐, 이렇게 된 거 내 이게 뭔지 샅샅이 파헤쳐 주마!’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조금 전부터 이 주변의 흐름이 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애새끼가 마류를 쓰고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문제는 마류에 이딴 해괴한 기능은 없다는 거였다.
마류를 창시한 이가 자신이니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럼 근래 새로 터득했다는 건데…….’
그런 변화가 있으려면 무언가 계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최근 유리가 그런 계기를 얻을 만한 일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요한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혈무로구나!’
분명했다.
유리 녀석이라면 혈무에서 무언가 단서를 얻어 이런 해괴한 기예를 쓰고 있는 것일 터.
심지어 혈무 역시 감각에 혼란을 주는 절기였으니,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다.
다만 유리 녀석이 부리는 해괴한 술은 혈무와 결이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였지만, 요한은 그 문제는 일단 대충 넘겼다.
‘흐흐, 아무튼 혈무라 이거지?’
유리에게 마류를 가르친 게 자신이며 혈무에 관해 알려 준 것도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이 해괴한 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쓸 만한 걸 만들어 왔구나!’
좋은 건 나눠 써야 하는 법이었다.
속으로 웃으며 요한은 유리의 마류를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감탄했다.
‘호오? 신기한 방식이로군.’
유리의 위:영역을 몇 번 보는 것만으로 베껴 냈던 천재성이 어디 간 것이 아닌 듯.
요한은 유리가 사용하는 기예를 빠르게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흘러.
유리가 사용하는 괴상한 술의 운용법과 원리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요한.
그런데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진 상태였다.
요한이 갑자기 검을 거두며 소리쳤다.
“잠깐 멈춰 봐라!”
이에 똑같이 검을 거둔 유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뭐야? 왜? 한참 재미 보고 있었는데?”
유리를 가만히 노려보는 요한.
미간을 모은 그는 주저했다.
과연 이걸 말하는 게 나을지 아닐지.
자존심상 절대 저놈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지금은 자존심보다도 호기심이 더 강했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물었다.
“네놈… 이걸 어찌 그리 간단히 쓰는 거냐?”
“뭘?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도통…….”
다시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려던 유리는 곧 이어진 요한의 이야기에 표정이 굳어졌다.
“혈무의 원리 중 하나를 마류로 구현해 내어 감각의 상(想)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까지는 내 충분히 이해했다.”
요한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유리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순식간에 털려 버렸네.”
그래도 조금은 더 오래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지금까지 벌어진 기괴한 일이 자신이 한 것이라 자백하는 것이었지만, 요한은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네놈… 이걸 어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야?”
“원리를 알고 방식까지 만들었는데 쉽게 못 할 건 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한이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내가 느낀 감각의 상을 타인에게 입힌다는 게 그리 쉽게 될 성싶으냐!”
“쉽게 되던데?”
“말이 되냐!”
“한 번에 됐는데?”
“……?”
“나 이거 만든 지 몇 분 안 됐어. 여기로 끌려 오기 전에 막 만든 따끈따끈한 신기술이라 이 말이지.”
유리의 설명에 요한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막 만든 신기술이다?”
“응.”
“그… 잠깐만… 그래, 잠깐만 기다려 봐라.”
혼란스러운 얼굴이 된 요한은 검까지 집어넣고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파악한 것들을 그 자리에서 즉각 따라 해 보기 시작했다.
“보자 이걸 이렇게 해서…….”
“……?!”
자신이 마류로 혈무의 원리를 모방해 낸 것을 요한이 순식간에 따라 하는 것을 느낀 유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이 영감탱이도 규격 외란 말이지.’
아무리 마류를 알고 있다고 해도 고작 그 짧은 시간 동안 본 걸 단번에 따라 하다니.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 요한이 만들어 낸 마류의 흐름이 더욱 정교하고 세밀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유리가 요한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끙…….”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요한이 유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느낌이 오냐?”
“뭔 느낌?”
“…지금도? 안 와?”
“뭘 하고 있긴 한 거야?”
지루하다는 하품을 쩍 해 대는 유리를 보고 요한이 결국 참다못해 또 버럭 소리쳤다.
“이걸 대체 어찌하는 게야?!”
“아 그러니까 뭐가?”
“마류에 감각의 상을 입혀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거 말이다.”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그냥 하니까 되는데?”
“그냥은 뭔 얼어 죽을 그냥!”
요한이 답답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감각의 상 또한 심상의 상이다. 아무리 마류라는 매개체가 있다 한들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게 ‘그냥’이라는 말 하나로 퉁 칠 수 있을 거 같냐? 엉?! 보통은 심상의 상이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휘발되는 게 정상이다!”
“어… 그런 거야?”
“…네놈이 뭔 짓을 한 건지도 모르는 게야?”
“정말 그냥 하니까 됐다니까?”
“저 이……!”
눈을 말똥말똥 뜬 유리를 보며 주먹을 울끈 말아 쥐었던 요한.
금방이라도 저 동글동글한 대갈통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는 이내 주먹에 힘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그거 다시 나한테 써 봐라.”
“다시?”
“알아볼 게 있으니, 얼른. 어차피 네놈도 연습이 필요할 게 아니냐?”
“뭐, 그렇긴 하지.”
사뭇 진지한 요한의 요구에 유리도 더는 장난을 치지 못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요한의 말처럼 안 그래도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요한의 요구대로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신기술을 연이어 펼치기 시작했다.
“음…….”
다시 미쳐 날뛰기 시작한 감각에 요한은 짧게 신음을 낸 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더욱 정밀하게 모든 현상을 분석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 애새끼는 단순히 그냥이라 말했지만, 이거 분명 무언가 있다.’
자신은 안 되는 데 유리 녀석은 되는 이유.
그 차이점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요한이 유리가 만들어 내는 감각의 이상에 얼마를 시달렸을까.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유리가 신기술에 제법 익숙해졌을 즘.
“허?”
마침내 무엇을 알아차린 듯 요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유리를 노려보았다.
‘이게 정녕… 사람 새끼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알아낸 유리와 자신의 차이점.
그건 바로 심상을 전달하는 속도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상을 그려 내어 마류에 실어 옮기는 그 과정이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특히 유리 녀석이 심상을 그리는 속도는 찰나에 불과한 수준.
자신이 하나의 심상을 그려 내는 데 1초 남짓 걸린다면, 유리 녀석은 시간 측정이 어려울 정도였다.
요한은 유리가 심상을 그려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자신의 10분의 1 수준이라 어림잡았다.
말 그대로 최소 10분의 1수준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심상을 그려 내는 작업.
이는 심상의 구현이라 불리는 화신을 불러내는 과정 중 하나였으니.
바로 화신의 형을 그려 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화신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 녀석이 이미 완벽히 화신을 만들어 낸 자신보다 그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저놈은 자기가 한 일이 뭔지도 모르고 있고.’
그건 유리가 노력하여 손에 넣은 게 아닌, 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란 뜻이었다.
유리의 말처럼 ‘그냥’ 말이다.
하여 유리를 보는 요한의 눈에 짜증이 가득했다.
“…재수 없는 애새끼.”
“영감탱이 노망났어?”
“제 놈이 쥐고 태어난 게 뭔지도 모르는 염병할 새끼.”
“…이거 지금 싸우자는 거지?”
유리가 으르렁거리며 검을 들어 올림에도 요한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대신 한숨으로 짜증을 흩어 버린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이 만든 이 신기술인지 뭔지, 지금은 하나의 감각만 전달할 수 있는 거냐?”
“어, 아직은.”
“흠…….”
“보니까 감각의 상이 유지되는 시간이 고작 1초도 안 되는 듯싶은데?”
“그것도 아직은 그렇지.”
요한이 턱을 쓸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유리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건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무궁무진하구나.”
지금은 단순히 한 가지 정도의 감각을 남에게 때려 넣는 수준이고 유효한 시간마저 극히 짧았다.
또한, 허를 찌를 수는 있지만, 한 번 당한 이상 두 번이나 당할 수준까지도 아니었다.
더욱이 생사를 오가는 싸움에서라면 오히려 허를 찌르는 장점마저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도로 집중력이 높아진 상태라면 이 정도 변수 정도는 충분히 대처 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오감에 달한다면?’
한 번에 다섯 가지의 감각을 전부 때려 넣을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마저 더 늘어난다면?
과연 유리가 혈무로부터 훔쳐 와 변형시킨 이 기예는 과연 어떤 진화를 이룰 것인가.
그 미래를 잠시 머릿속에 그려 본 요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동시에 그가 내뱉는 목소리가 꽤 무거워졌다.
“네놈이 만든 이 기예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깊이 있게 연구해 봐라.”
“응?”
“처음부터 완벽한 창조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비록 혈무에서 따온 원리와 마류를 섞었다고는 하나, 이를 만들어 낸 건 너다.”
요한의 이야기에 유리의 표정도 덩달아 신중해졌다.
그가 요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다시 말해 이는 세상에 너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예란 뜻이지. 그것도 너의 손으로 만들어 낸 너만의 것.”
“……!”
“만약 이 기예를 완성시켜 절기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나아가 그 체계를 정립할 수 있다면…….”
요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넌 능히 일가를 이룰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게다.”
요한의 이야기에 유리의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