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82
ㅍㅌ
382화. 신기술 (3)
부스스한 몰골로 잠에서 깬 유리.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액새액-.
새근새근 들려오는 친구들의 숨소리가 아직 눈을 뜨기에 이른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방 밖으로 빠져나온 유리는 여객선의 난간에 팔을 걸쳤다.
솨아아-!
어슴푸레 밝아 오는 하늘.
여객선에 부딪히는 물소리.
차갑게 얼굴에 맞닿는 새벽 공기.
제법 운치 있는 분위기였지만, 그 어떤 것도 유리의 눈에 담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심상 공간에서 요한과 나눈 이야기로 가득했다.
유리가 멍한 얼굴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일가(一家)라…….”
요한이 언급한 일가란 하나의 가문, 즉, 가문을 세울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요한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무(武)로 가문을 세우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능력만 있다면 혼자서 일인문(一人門)이라 칭하고 다녀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가문의 이름을 대륙의 역사에 새기고자 한다면 준비해야 할 게 많을 거다.]재물.
사람.
마체술.
준비하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열심히 갖춰 가문을 열었다고 해도 도태되어 사라지는 가문이 수두룩했다.
[도태의 원인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며, 경쟁에서 밀린 이유는 특색이 없기 때문이다.]요한이 말한 특색이란 여러 가지를 의미했다.
가문의 풍습.
가문의 규칙.
혈통에 따른 특이점 등등.
특색이란 가문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런 특색이 가장 잘 묻어 나는 게 바로 마체술이었다.
요한은 그런 의미에서 유리의 신기술을 높이 평가했다.
[마류와 혈무를 섞은 네놈의 기예, 이를 더욱 진화시켜 남이 익힐 수 있는 수준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면… 능히 한 가문의 근간으로 삼기 충분한 절기가 될 게다.]그런 요한의 이야기 곱씹으며 유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만든 나만의 절기.”
자신이 만들어 낸 독창적인 절기.
요한에게 이를 들었을 때 유리는 되물었다.
[나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짜깁기 아닌가?]요한이 만든 마류에 혈무의 원리를 섞은 기예다.
이를 어찌 자신만의 독창적인 절기라 한단 말인가.
그런 유리의 물음에 요한은 피식거렸다.
[혈무의 원리라고는 하나 이미 본래의 혈무와는 상이해진 수준이다. 저 이스카리오의 박쥐 새끼들조차 이게 혈무인 줄 모를걸? 그리고…….]잠시 뜸을 들인 요한.
[잊었냐? 마류는 ‘우리’가 함께 연구하던 거였다. 더욱이 마류의 거미줄을 처음 만들어 낸 게 네놈인데?]유리를 향한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말했잖으냐, 처음부터 완벽한 창조는 있을 수 없다고. 비록 혈무와 마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그 모두가 네놈의 손으로 재탄생시킨 것들이다. 그러니 이것이 네 것이 아니면 뭘까.]요한이 해 준 이야기를 떠올리는 사이 유리의 정면에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서서히 밀려드는 햇빛에 얼굴이 환해진 만큼 생각이 많아 보였던 유리의 표정도 맑아져 있었다.
“나만의 독창적인 절기와 일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한 가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러한 미래가 쉽사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요한이 한 말 자체가 크게 실감이 가지 않는 거다.
애초에 천애 고아인 자신이 일가를 세운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요한이 자신만의 절기와 일가를 언급할 때, 그걸 듣고 잠시 심장이 뛴 것도 사실이었다.
그건 분명히 설렘이었다.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마체술을 익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며.
처음 마체술을 익힐 때만 해도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것을 익히리라고는 예상조차 못 했다.
그리고 일가(一家)?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나중에 가면 충분히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거다.
‘가문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보는 거지.’
다만 문제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가 너무 많다는 거였다.
가장 가까운 과제로는 검술을 갈고닦아 아신검과 신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며.
나아가 마류의 궁극 역시 도달해야 하고.
고이 잠들어 있는 화신을 깨워 명인이란 칭호를 달아야 했다.
‘거기에 신기술의 완성까지.’
이건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심지어 이 과제들이 언제 끝을 볼 수 있을지 유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음, 어쩌면 이것들을 전부 이룬다면 자연스럽게 일가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피식 웃은 유리는 이제는 수면 위로 동그랗게 떠오른 해를 마주하고 쭈욱 기지개를 켰다.
“뭐, 차근차근 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차근차근.
그러나 확실하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당면한 모든 과제를 끝내는 날이 올 것이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또 고민해 보자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유리는 친구들을 깨우기 위해 객실로 들어갔다.
***
엔라이트 행정구에서 베오그라드 행정구까지 여객선의 운항 기간은 9일.
그 중반쯤에 도달했을 때부터 아린과 군터, 뽀삐는 괴상한 현상에 시달려야 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상한 환상과 소리, 기이한 냄새, 육신의 통증, 심지어 끔찍한 맛까지.
정말 난데없는 발생한 환시, 환청, 환취, 환통, 환미에 모두의 혼이 쏙 빠지고 만 것이다.
원인조차 파악되지 않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일.
오죽했으면 귀신 따위는 믿지 않던 군터와 아린이 이 모든 게 물귀신의 소행인가 의심하기도 했을까.
그렇게 며칠을 시달린 끝에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니.
세 사람은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넌 왜 멀쩡해?”
“왜 너만 멀쩡한 거지?”
“배고프다?”
모두가 겪는 기이한 괴현상에서 유리만 쏙 빠져 있다는 어마어마한 사실.
이를 알아차린 친구들의 물음에 유리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답했다.
“그러게? 왜 난 멀쩡하냐?”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에 친구들은 확신했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 기괴한 현상의 원인이 바로 유리라는 것을.
“너지!”
“젠장, 우리한테 무슨 짓거리를 해 댄 거냐!”
“배고프다!”
그들의 심증은 확실했지만, 유리가 이를 인정할 리 있겠는가.
“뭔 헛소리래?”
유리는 이번에는 반대쪽 귀를 파며 비웃음을 날렸다.
이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친구들은 더 따지지 못했다.
심증은 100%였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들은 유리로부터 확증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게 허사에 불과했다.
그렇게 심증뿐인 친구들의 수사가 지지부진해질 때쯤.
뿌우우우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에 유리가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 왔다! 짐 싸!”
아흐레의 시간 끝에 마침내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것이다.
***
베오그라드 행정구의 항구 도시, 그 후미진 뒷골목으로 4명이 조심히 모여들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이들이 모이자, 금발의 청년이 한숨을 담아 말했다.
“하아, 유난을 떠는군.”
그런 군터의 이야기에 유리가 쌍심지를 켰다.
“유난이라니 새꺄!”
“여기까지 왔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유리 일행은 다시 각자 흩어져 개인 여행자인 척 여객선에서 하선하였다.
이후 2시간에 걸쳐 각자 최대한 동선을 비비 꼬아 가며 이동 후, 최초에 약속했던 접선지로 모인 거였다.
군터는 바로 이 과정을 유난이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은 곧 이어진 유리의 말에 쏙 들어갔으니.
“아이언스랑 이스카리오가 전쟁이라도 나는 꼴이 보고 싶은 거냐? 왜, 아주 대놓고 아이언스 가문의 후계자가 이스카리오의 대공자를 죽이는 데 일조했다고 소문이라도 내고 다니지?”
“…….”
“하여간 이 새끼는 생각해 줘도 지랄이야. 쯧.”
혀를 차는 유리를 보고 군터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입술을 삐죽거릴 뿐이었다.
마치 유리가 할 말이 없을때 하는 행동처럼 말이다.
그렇게 군터의 입을 다물게 만든 유리가 먼저 발을 떼며 손짓했다.
“다들 따라와.”
분명 처음 오는 곳임에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 나가는 유리.
그 옆에 쪼르르 따라붙은 아린이 물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세계 용병 협회.”
“거긴 왜?”
“거기에 물품 보관소가 있거든.”
“응? 금괴를 거기에 보관하게?”
“어.”
유리의 이야기에 아린을 비롯한 친구들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떠올렸다.
이에 유리가 피식 웃으며 설명해 주었으니.
“원래 장물은 바로 팔면 안 되는 거다. 적당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때쯤 파는 게 최고지. 그래야 흔적을 지우기 더 좋고.”
“와. 유리, 꼭 해 본 것처럼 말한다?”
“…….”
“왜 아니라고 말을 못 해?!”
아린의 물음에 슬그머니 딴 곳을 보았던 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우와 말 돌린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에서 바로 안 파는 것도 있고, 또 다른 이유는 투자 때문이야.”
“투자?”
“내가 명색이 델리 아가스에서 황금을 다루는 상품에 투자한 사람인데, 지금 바로 이걸 팔면 되겠냐? 묵혀 뒀다가 황금의 가치가 오르면 그때 가서 팔아야지.”
“아하!”
아린이 확실히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입술이 제법 들어간 군터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물품 보관소라면 은행이 더 안전하지 않나? 왜 용병 협회로 가는 거지?”
“거긴 검사를 안 하거든.”
“응?”
“은행은 보관할 물품을 검수하지만, 용병 협회의 보관소는 검사 따위 없이 그냥 공간만 빌려 주는 곳이야.”
“그래도 되는 거냐?”
“애초에 용병들이 맡기는 물건에는 그들의 밥줄이 걸린 의뢰품도 있어. 그걸 일일이 검사했다가는 용병 협회 간판 떼야 한다고.”
“흠, 이해는 간다만… 그럼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당연히 있지. 대신 용병 협회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
은행의 물품 보관소는 보관품을 확실히 검사하고 위험한 물건은 받지 않는다.
대신, 한번 받은 물건은 끝까지 책임을 진다.
분실과 훼손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용병 협회는 그런 게 없었다.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 주겠지만, 혹시라도 보관품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우리랑 관계없는 일이다?’
그게 바로 용병 협회가 물품 보관소의 운영을 시작하며 알린 공지였다.
어찌 보면 무책임한 태도.
하지만 이를 알고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용병 협회의 물품 보관소를 이용했다.
주로 세상에 내보일 수 없는 물건을 소지한 이들이 이를 숨기는 데 말이다.
그런 유리의 설명에 군터는 신기한 걸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렇게 용병 협회로 걸음을 옮기던 유리가 잠시 우뚝 멈췄다.
말없이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유리.
“배고프다?”
“왜 그래?”
뽀삐와 아린의 물음에 유리가 살짝 딱딱해진 어투로 답했다.
“니들, 2시간 동안 돌아다니면 서 뭔가 못 느꼈냐?”
“뭘 느껴?”
“배고프다?”
아린과 뽀삐의 시선이 군터에게로 모여들었다.
너는 뭐 느낀 게 있냐는 물음이 섞인 시선이었다.
이에 군터가 고개를 가로젓자 유리는 혀를 찼다.
“쯧, 니들한테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아 왜! 뭔데!”
“배고프다?”
“뭐 때문에 그러냐?”
친구들의 재촉에 유리는 ‘가 보면 알겠지’라는 영문 모를 말만 내뱉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잠시 후.
세계 용병 협회의 지부에 도착한 유리 일행.
끼익-.
유리가 문을 열자 북적거리는 열기가 훅 하고 밖으로 밀려 나왔다.
동시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에 유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자리에 서서 협회 내부를 쓱 훑어본 유리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세 친구가 쪼르르 따라붙은 건 당연지사.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카운터에 서 있는 친절한 협회 직원의 물음에 유리가 자신의 용병패를 꺼내며 말했다.
“물품 보관소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기간은…….”
“10년. 보안 등급은 1급.”
자신이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친 유리의 말에 직원은 눈앞의 이 어린 청년이 완전 뜨내기 용병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사이 유리는 자신의 용병패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탁-.
“오면서 보니까 도시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잠시 말을 흐린 그가 주변에 자리 잡은 수많은 용병들을 둘러보며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여기 아저씨들 분위기도 활기찬 걸 보니, 어디 인근에 큰 싸움이라도 터졌습니까?”
‘큰 싸움’을 언급한 순간, 유리의 눈에 이채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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