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베오그라드 전쟁 (1)
큰 기여에 따라 보상을 지급해 달라는 유리의 요구.
이를 들은 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건 제 권한 밖인지라…….”
벤의 역할은 소월 용병단을 만나 율리아가 정해 준 의뢰를 타진하는 것뿐.
의뢰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건 그가 가진 권한 밖의 일이었다.
그런 벤의 이야기에 유리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권한 밖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야… 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시를 받은 적이 없어서…….”
조금 전까지 당당하게 말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벤을 보고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자가 어떤 유형인지 이제야 좀 알겠네.’
맡긴 일은 확실하게 해내지만, 임기응변에는 약한 자.
즉, 시킨 일만 잘하는 전형적인 관리직의 표본이었다.
그런 사실을 눈치챘음에도 유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말했다.
“실망인데?”
“예?”
“명색이 싱 가문에서 나왔으면서 이 정도 권한도 없는 거야?”
“그것이… 저는 그냥 싱 가문의 말단인지라…….”
“율리아는 어째서 당신 같은 말단에게 이런 일을 맡겼을까?”
“그건 아마도… 제가 율리아 님의 직속 수하여서 그럴 겁니다.”
“율리아의 직속 부하고 그녀를 대신해서 왔다면 당신이 율리아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네?”
“그렇… 겠지요?”
“율리아라면 아마 내가 이렇게 나올 거란 걸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그녀라면 내 성향이 어떤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음…….”
낮은 침음을 흘린 벤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싱 가문의 직계 혈손인 율리아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말이 없어진 벤을 보고 유리가 히죽거렸다.
“싱 가문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야지 않나?”
“시… 싱 가문의 사람이라고 전부 대단한 거는 아닙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업무는 원래 행정 쪽……!”
“아, 거기까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고.”
“킁.”
“아무튼, 율리아가 당신을 대변인으로 보냈으니 의뢰 계약 조율에 관한 것도 충분히 당신의 권한이란 소리지.”
“음,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유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타박하듯 말했다.
“아니면 다시 가서 율리아한테 물어보고 오든가.”
“…….”
이대로 다시 가문까지 돌아간다면 왔다 갔다 하는 데에만 족히 십수일이 걸린다.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비밀리에 가문을 빠져나왔다는 것.
그 과정도 율리아가 꽤 많은 것을 신경 써 줘서 조용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가 율리아 님을 만난다면…….’
그것도 고작 이런 간단한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찾아왔다고 한다면 그건 자신의 무능을 증명하는 일일터.
그리고 이는 자신의 출셋길을 자처해서 막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벤이 입을 열었다.
“추가 조건은… 그거면 되겠습니까?”
“물론.”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라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십니까?”
“그건…….”
자신의 말 한마디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벤을 보며 유리는 배시시 웃었다.
“나중에 율리아와 직접 얘기할게.”
“…예?”
“여기서 당신이 해 줄 일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계약서에 추가해 주는 것까지야.”
“예?”
“왜, 싫어? 아예 추가 보상 건에 관해서도 당신이 세세하게 조율해 줄래?”
“아, 아닙니다!”
벤은 다급히 양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 용병 단장이라는 자가 뭘 요구할지도 모르는데 그걸 내 선에서 처리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만약 용병 단장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면 어쩌겠는가.
하여 유리가 한 제안은 오히려 벤의 부담을 덜어 주는 일이었기에 그의 얼굴은 대번에 환해졌다.
“그럼 후딱 계약서 써 볼까?”
“알겠습니다!”
유리의 마음이 바뀔세라 벤은 미리 준비해 온 계약서를 허겁지겁 품에서 꺼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휘리릭 계약서를 작성해 나가는 유리와 벤을 구경하던 군터가 작게 중얼거렸다.
“…마귀 새끼와의 계약이라.”
그 말에 아린과 뽀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였으면 안 했다.”
“배고프다.”
일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도 보기는 했다.
하지만 과연 유리의 저 제안이 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제안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세 사람은 얼마든지 절대 아니라 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계약서를 살피는 데 정신이 팔린 벤을 불쌍히 바라볼 때.
찌릿-!
입 닥치고 있으라는 듯, 살벌하기 짝이 없는 유리의 눈빛을 마주한 세 사람은 황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로부터 잠시 시간이 흘러.
지슥-!
깔끔하게 서명을 마친 유리는 계약서를 품에 챙기며 환히 웃었다.
“좋은 계약이었습니다, 고객님!”
계약서를 나눠 가지기 무섭게 존대로 변한 유리의 말투에 벤이 오히려 적응이 안 된다는 듯 머리를 굽실거렸다.
“아, 아닙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자, 이제 계약도 했겠다, 이번 일에 대한 간단한 정보 정도는 주시겠죠?”
“물론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율리아에게 지시를 받은 것이 있는 듯 벤은 자신감을 가지고 막힘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베오그라드를 양분한 전쟁은 대략 4개월 전 그린 후드 연합의 제1공자가 벌목꾼 무리를 이끌고 내려온 것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린 후드 연합의 벌목꾼?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난데없이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튀어나오자 유리는 물론이거니와 느슨하게 퍼져 있던 다른 친구들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그들이 자세를 고쳐 잡는 것을 본 벤이 다시 자세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그린 후드 연합.
세간에는 간단히 그린 후드라 불리는 이 조직은 중앙 산맥의 벌목꾼 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브리웰 행정구와 베오그라드 행정구라 불리는 두 지역 사이에 자리한 중앙 산맥.
나아가 대륙을 양분하는 이 거대한 산맥은 밑으로는 대륙의 젖줄인 데일 강과 맞닿아 있었고, 그 데일 강을 건너면 바로 옛 엔라이트 제국의 황도가 나타난다.
하여 중앙 산맥은 예로부터 황제의 목재창이라 불리웠기에 수많은 벌목꾼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갔다.
또한, 이는 다시 말해 수많은 벌목꾼이 재정적인 부분을 황도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검주가 막 부상하기 시작했을 무렵.
제국이 망조에 들자 중앙 산맥의 벌목꾼 연합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최종적으로 찾은 활로는 다름 아닌 ‘산지기’였다.
대륙의 동과 서를 오가는 가장 빠른 육로가 중앙 산맥을 넘는 것이었으며.
상업이 발달해 부유했던 브리웰과 베오그라드 행정구가 지척에 있었고.
또한, 그들에게는 험한 벌목을 하느라 다져진 체력과 힘, 벌목용으로 만들어진 마체술이 있었다.
이를 어찌 이용할까 싶었던 벌목꾼들은 녹색의 후드를 두르고 자신들을 그린 후드라 소개하며 중앙 산맥의 산지기를 자처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린 후드들은 중앙 산맥에 길을 만들고 이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단.
[우리가 만든 길을 이용하고 싶다면 통행세를 내라!]공짜로 봉사하는 산지기가 아닌 돈을 받고 일하는 산지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도생(圖生)은 제대로 먹혀들었으니.
넓고 쾌적한 가도.
맹수와 도적으로부터의 보호.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길 안내.
조금 비싸기는 해도 그들이 만든 길은 충분히 통행세를 낼 만하다는 게 당시의 평이었다.
덕분에 초창기의 그린 후드는 제법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이 성공하면 이를 따라 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법.
[우리 길을 이용해라! 우리가 만든 길의 통행료가 더 싸다!] [아니다! 우리가 만든 길이 더 싸다! 이리로 와라!]여기저기서 통행료를 내린 경쟁자들이 무더기로 나타나자 그린 후드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대로는 굶어 죽는다!]그리고 굶어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어차피 결과는 매한가지였기에 그린 후드는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중앙 산맥의 주인을 놓고 벌어진 전쟁.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또한 새로운 이들이 그린 후드에 합류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무려 십여 년이 흘러.
마침내 중앙 산맥의 진정한 주인이 탄생했으니.
수많은 산지기 조직을 흡수하고 이제는 ‘그린 후드 연합’이 된 조직의 주인은 스스로를 산지기들의 군주, 산군(山君)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산군이 처음으로 내린 명령에 대륙이 술렁였다.
[앞으로 중앙 산맥을 넘고 싶거든 우리 그린 후드 연합이 만든 길‘만’을 이용해라!]그동안 산지기들의 길을 이용하는 건 통행자들에게 있어 선택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강제 사항이 되니 당연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흐하하! 거부하시겠다? 어디 할 테면 한번 해 봐라! 대신 그때는 우리가 이 중앙 산맥에 흘린 피가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을 거친 그린 후드 연합은 더 이상 단순한 벌목꾼 출신의 산지기들이 아니었다.
오랜 전쟁으로 이제는 벌목꾼이 아닌, 완전한 무력 단체로 탈바꿈한 그린 후드 연합.
그들은 이제 자신들을 산지기라 칭하는 성질 고약한 산적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린 후드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산맥을 넘으려던 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불귀의 객이 되는 일이 속출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중앙 산맥 인근 도시의 가문들이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산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거라.]벌목꾼 시절부터 그린 후드에 이를 동안,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산에서 지내고 싸워 온 이들을 산에서 상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토벌에 나섰던 이들 중 몇몇만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되돌아왔을 뿐.
이에 또다시 분노한 가문들과 그린 후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산을 요새처럼 사용하며 버티는 그린 후드.
이를 어떻게든 공략하려는 브리웰과 베오그라드의 연합.
그들의 지지부진한 전쟁이 막을 내린 건 검주가 세운 요람이 세상에 막 이름을 알렸을 즘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앙 산맥의 전쟁은 종식된 게 아니라 다른 가문들이 더는 그린 후드를 쉽게 넘볼 수 없게 되어 소강상태에 접어든 거였다.
바로 스스로를 중앙 산맥의 군주라 칭하던 산군이 60대의 나이에 명인의 반열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그 하나의 존재로 인해 중앙 산맥을 둘러싼 싸움은 사그라들었고 그로 인한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산군 그 사람이 검주와 요한 영감탱이 이전에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댔나?’
무려 검주보다도 나이가 많은 산군은 현재 110세를 넘어 120세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베오그라드의 전쟁를 일으킨 이는 바로 그런 산군의 첫 번째 제자이자 제1공자라 불리는 이.
물론 아직도 공자라 불리고 있으나 그 나이가 이미 여든을 넘긴 상태라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벤에게 들은 정보를 정리하며 유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 1공자라는 이가 벌목꾼들을 이끌고 베오그라드로 내려온 건 고작 4개월 전.’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파죽지세로 주변 도시와 영지의 가문들을 휩쓸며 세력을 규합했고.
순식간에 베오그라드의 서쪽을 집어삼켰다는 게 벤의 설명이었다.
머릿속으로 들은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유리에게 군터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냐?”
“뭘?”
“그린 후드가 벌인 이번 일에 대해서 말이다. 수십 년 넘게 중앙 산맥에 웅크리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왜 이런 일을 벌인 거 같냐?”
아무래도 벤의 설명을 듣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건 유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민한 티가 묻어나는 군터의 물음에 유리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