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베오그라드 전쟁 (2)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유리의 답에 군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 볼 만하다?”
“고작 4개월이야, 그 1공자라는 놈이 베오그라드의 서쪽을 집어삼키는 데 걸린 시간이. 거기서 뭐 느낀 게 없냐?”
유리의 물음에 군터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그린 후드가 그만큼 이번 일을 철저히 준비했다는 뜻 아니냐? 그래서 해 볼 만하다는 건가?”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생각한 정답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에 군터가 다른 답을 생각하는 사이 수레를 끌고 있던 아린이 끼어들었다.
“내가 보니까, 저 새끼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 같다! 쟤들 완전 허접이야! 이거 해 볼 만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그녀의 외침에 유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거지!”
“…정말이냐?”
군터가 어이없다는 듯 보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4개월이란 시간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잖아? 그린 후드에서 아무리 철저히 준비했다고 해도 베오그라드의 절반을 집어삼키는 데 고작 4개월밖에 안 걸렸다? 이건 그만큼 전력이 우위에 있었다는 뜻이지.”
“음… 그렇긴 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베오그라드와 브리웰 행정구의 연합은 그린 후드를 중앙 산맥에 가둬 두고 팼어.”
“가둬 두고 팬 게 아니라 그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걸 텐데?”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나온 거지. 나오면 처맞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산군도 아닌 산군의 제자 따위가 밖으로 나와 분탕질 치는 것도 막지 못하고 이 지경까지 와 버렸어.”
“흐른 시간만큼 중앙 산맥을 둘러싼 세력이 쇠락했다는 건가.”
“아니면 중앙 산맥에 숨은 그린 후드의 산적들이 이를 갈고 힘을 길렀거나.”
“배고프다.”
“둘 다일지도 모른대!”
뽀삐의 말을 통역해 준 아린은 다시 열심히 다리를 놀렸다.
그사이 군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쩔 생각이냐?”
“어쩌긴 뭘 어째? 계약서도 썼고 선금도 받았으니 제대로 일해야지.”
“뭔가 생각이 있으니 기여도에 따른 추가 보상을 조건으로 건 거 아니냐?”
“그딴 거 없는데?”
유리의 시큰둥한 발언에 아린이 우뚝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엥? 없어? 왜 없어?”
그리고 그건 군터와 뽀삐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프다?”
“없다고?”
유리라면 무언가 계획이 있으리라 확신했었기에 그들은 너무도 당황스러워했다.
반면 유리는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이 새끼들은 내가 무슨 전쟁의 신(神)이라도 되는 줄 아나? 수백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맞는 계획을 어떻게 척척 만들어 내냐?”
“…….”
“일단 손해 볼 거 없으니 우선은 추가 보상 조건 걸어 놓고 나머지는 현장에 가서 결정하려고 했지. 내가 이런 것도 알려 줘야 하는 거냐? 쯧.”
유리의 타박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가 추가 보상 건을 언급한 건 벤에게 전쟁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의 일.
계획을 짜고 말고 할 시간 따위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유리라면 무언가 계획이 있을 거라고 여겼기에 세 친구는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실망 가득한 눈빛에 괜히 울컥한 유리.
“이것들이?! 야, 전쟁에 얼마나 변수가 많은데! 계획은 직접 현장에 가서 발품 팔면서 짜는 거라고!”
“…….”
“이 새끼들… 눈빛 뭐야? 니들이 현장을 알아? 앙? 아냐고!”
“…….”
“야, 아린 뭐 해? 얼른 안 가냐? 이러다 전쟁 끝나고 도착하겠다!”
그런 유리의 타박에 아린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나 할당량 채웠어. 다음 차례 뽑아야 해.”
“…….”
오늘도 평화로운 유리와 친구들.
잠시 가위, 바위, 보를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 뒤, 이내 수레가 다시 앞을 향해 빠르게 튀어 나갔다.
이번에 수레를 끌게 된 이는 군터였다.
***
강변의 바위 위에 앉은 테레시아.
그녀는 달빛이 비치는 강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닌데.’
테레시아가 이번 전쟁에 참여하고자 한 건 고모인 메이 윈체스터의 권유도 있었지만, 본인이 강하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경지를 나아감에 있어 선천적으로 자주 벽을 맞닥뜨리게 되는 저주받은 체질.
요람에 있을 당시에는 자신이 그러한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요람을 수료한 이후였다.
‘답답해.’
요람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수련을 하고 있음에도 성장 속도는 너무도 더뎠다.
심지어 최근 3개월 동안은 벽에 막혀 한 걸음도 내디디지 못했다.
‘너무… 답답해.’
저주받을 천형으로 인해 자신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창을 내질러 왔고, 그것에서 지루하거나 답답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창을 내지름에 있어 테레시아는 갑갑함을 느꼈다.
‘빠른 성장에 취했던 걸까?’
그리 생각했지만, 테레시아는 그게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원동력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
그것이 바로 이 답답함의 원인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답답한 기분과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그녀는 자청해서 이 전쟁에 끼어든 거였다.
목숨을 건 실전을 겪다 보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하아…….”
그녀는 며칠 전 자신이 배정받은 부대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내뱉은 한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때였다.
“여기 계셨군요, 테레시아 님. 한참 찾아다녔습니다.”
인근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테레시아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짙은 남색 머리카락의 사내가 서 있었으니.
사내의 이름은 앨 지클리.
베오그라드 동(東) 연합 사령관인 울리 지클리의 아들이자, 테레시아와 같은 부대의 대원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자신을 향한 진홍색의 눈동자를 보며 앨 지클리는 은은한 미소를 보내왔다.
“조금 전 임무가 배정되며 출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출전 명령요? 지금 이 시간에 말입니까?”
“예, 2시간 내로 준비를 마치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얼른 막사로 돌아가시죠.”
“알겠습니다.”
“…….”
“…….”
앨 지클리가 떠나지 않고 말없이 서 있는 것을 본 테레시아가 조심히 물었다.
“…무슨 다른 볼일이라도?”
“아, 별거 아닙니다. 그저 테레시아 님과 같이 돌아가려 했습니다.”
“…….”
앨 지클리가 보내오는 호의적인 시선.
그것이 단순히 동료 간의 호의가 아닌 그 이상의 것임을 느낀 테레시아는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전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이런… 무슨 고민이라도? 미력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얘기해 주시죠.”
“말씀은 감사하지만, 남에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갈 테니 늦지 않게 돌아오세요.”
“예.”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시아을 아쉬운 눈으로 스치듯 바라본 앨 지클리.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앨 지클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레시아는 순간 흠칫했다.
짙은 남색의 머리카락.
어두운 밤, 언뜻 칠흑처럼 느껴지는 색.
이에 앨 지클리의 뒷모습으로 테레시아의 기억이 투영되었다.
요람에서 자신이 쫓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말이다.
이후 앨 지클리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후우…….”
짙은 한숨으로 기억을 흩날린 테레시아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 뒤.
테레시아가 속한 부대가 진영을 떠나갔다.
***
테레시아가 진영을 떠난 다음 날.
베오그라드 동쪽 연합군의 진영에 수레 한 대가 접근해 들었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이가 수레를 끌고, 그 뒤에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 보초들은 곧장 검을 빼 들었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보초들의 제지에 우뚝 멈춰 선 수레.
“유리, 유리! 다 왔어!”
“그만 일어나라, 언제까지 처잘 생각이냐?”
잠시 수레 안에서 소란이 있고 난 후, 유리가 어기적거리며 수레에서 내려섰다.
그러고는 그는 하품을 쩍- 하며 걸어와 보초들에게 말없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에 보초들이 머리를 모아 이를 확인했다.
“음? 의뢰서?”
“용병인가?”
유리가 내민 건 다름 아닌 용병협회에서 정식으로 발급받은 의뢰서였다.
의뢰인 울리 지클리의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할 실력 있는 용병을 구한다는 내용.
그리고 용병 협회에서 이 의뢰서를 가진 이의 신원과 실력을 보증한다는 내용까지.
이후 의뢰서와 유리 일행의 용병패를 일일이 대조해 확인한 보초들은 길을 터주며 말했다.
“용병들 막사는 가장 외곽에 있다. 알아서 찾아가라.”
“예이예이.”
보초들의 무성의한 태도에도 유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일행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전에 똑같은 관문을 거쳐 간 테레시아와는 전혀 다른 대우였지만, 이것이 용병들에게는 정석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후 흡사 고향에라도 온 듯 너무도 편안하게 유유자적 막사들 사이를 휘적휘적 걸어 들어간 유리와.
“우, 우와!”
“음… 지저분하군.”
“배고프다.”
마치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유리의 뒤를 졸졸 쫓으며 연신 주변을 둘러보는 친구들.
그렇게 친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유리는 담당자를 찾아 자신들의 막사까지 일사천리로 배정받아 버렸다.
너무도 능숙하고 빠른 유리의 일 처리로 인해 친구들이 주변 구경을 끝냈을 땐, 그들은 어느새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너무도 조용한 공터 주변.
그러나 은은하게 느껴지는 숨은 시선들에 군터가 중얼거렸다.
“흠… 용병들치고는 상당히 얌전하군.”
“그러게? 너무 조용하다…….”
“배고프다.”
어딘가 모르게 실망한 듯한 친구들의 말투.
이에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던 유리가 슬쩍 고개를 들며 게슴츠레한 시선을 보냈다.
“니들, 지금 용병 비하한 거냐?”
“…왜 말이 그렇게 되지? 그냥 이런 상황에서라면 텃세를 부린 다든지, 아니면 얕잡아 보고 시비를 거는 용병들이 나올 법도 한데 너무 조용해서 한 말이었다.”
“응응!”
“배고프다!”
군터의 변명에 아린과 뽀삐가 동의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들, 소설을 너무 봤네. 왜, 니들이 읽은 소설에서 용병들이 항상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냐?”
“…….”
유리의 뚱한 시선에 세 친구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차마 그들은 말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용병의 표상은 거칠고, 예의 없고, 막무가내의 성격을 지닌 존재라는 걸.
마치 ‘누구’처럼 말이다.
친구들이 꾸욱 입을 다물자 오해를 한 유리가 혀를 찼다.
“쯧쯧, 하여간 말도 안 되는 소설이 용병이란 이름값을 다 깎아 먹는다니까. 요즘 세상에 그딴 싸구려 용병 같은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오? 이게 뭐야, 어디서 이런 뽀송뽀송한 햇병아리들이 들어왔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유리 일행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걸어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확인하고 네 사람의 반응은 갈렸다.
“오와!”
“오호?”
“배고프다!”
딱 봐도 거칠고 예의가 없어 보이는 껄렁껄렁한 분위기.
완벽히 자신들이 상상하던 용병의 표상과도 같은 모습에 아린과 군터, 뽀삐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고.
“…있네, 옘병.”
정말로 나타난 싸구려 용병에 유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사이 유리 일행을 에워싼 용병들은 즐겁다는 듯 한마디씩을 던졌다.
“못 보던 애기들인데?”
“솜털도 안 가신 얼굴이 하나같이 반반… 아니, 저 떡대 빼고 얼굴이 반반한 게 용병보다는 다른 일이 어울리겠어. 킬킬.”
“어이, 애송이들?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짐 싸서 돌아가지? 그러다 오줌 지려.”
“푸흐흐, 적당히 놀려라. 가출한 도련님이나 아가씨일 수도 있으니.”
“그래, 그러다 울겠다!”
‘가출한 도련님’이란 대목에서 군터가 살짝 움찔한 순간.
유리가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아무나 빨리 처리해.”
그가 귀찮다는 듯 등을 돌려 버리자 아린이 강하게 의견을 냈다.
“이런 일은 용병단의 막내가 하는 거랬어!”
“배고프다!”
“막내? 우리에게 막내가 있었나?”
“…….”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린과 뽀삐의 시선에 군터가 눈을 끔뻑였다.
“…그 막내가 나였던 거냐?”
“네가 용병단에 가장 늦게 들어왔잖아!”
“인원이 모자라서 못 만들고 있다가 내가 들어온 덕분에 용병단이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아, 아무튼 늦게 합류했으니 막내지!”
“배, 배고프다!”
아린과 뽀삐의 억지에 대꾸하기도 귀찮아진 군터.
“하아…….”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너른 회의장.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의 남녀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때는 베오그라드의 서쪽을 주름잡던 가문의 주인들.
한데 그런 이들이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가주들의 신경이 쏠린 곳.
“흠…….”
걸걸한 콧소리가 흘러나온 탁자의 상석에는 기골이 장대한 반백의 노인이 턱을 괸 채 앉아 있었으니.
그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이 회의장의 공기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게 할 말들이 없는가?”
베오그라드 서(西) 연합의 폭군.
그린 후드의 제1공자인 아론 슈미트가 내뱉은 말에 가주들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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