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베오그라드 전쟁 (5)
유리의 입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들뜨려는 마음을 억누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중앙 산맥은 데일 강에 맞닿아 있다. 만약 저들이 데일 강을 따라 이동한다면 충분히 이쪽 후방을 노릴 수 있어.’
유리는 최대한 냉철하게 자신의 생각을 분석해 봤다.
‘너무 억측인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감과 짐작만으로 내린 결론.
이는 단순히 상황을 자신의 입맛대로 끼워 맞춘 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계속해서 자신이 내린 결론에 마음이 쏠렸다.
만약 자신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만약 억측이 아니라면?
정말 그렇다면, 그때는 지클리 연합에 큰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또한 이는 자신에게 기회가 될 터.
“확인 정도는 해 봐야겠네.”
이게 과연 자신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 억측인지.
아니면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스륵-!
유리의 신형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
지클리 연합의 회의장으로 쓰이는 거대한 막사.
상당히 격한 논의가 오가는 듯 막사 안쪽에서는 쉼 없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젠장, 대가리에 똥만 찬 등신들!”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페트라가 천막을 걷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당히 화가 난 듯 잔뜩 일그러진 표정.
그녀는 분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씩씩거리던 페트라가 본인의 막사 근처에 도착한 순간.
“이 아줌마가 왜 이렇게 성이 났대?”
그녀의 막사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유리가 히죽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이에 더욱 표정이 굳어진 페트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음에 와라.”
“일이 잘 안 풀렸나 봐?”
“다음에 오란 말 못 들었니?”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번에 눈빛이 사나워진 페트라.
하지만 그랬던 눈빛은 곧 이어진 유리의 말에 풀리고 말았다.
“윗대가리들은 뭐래? 적들이 우리 똥꼬를 찌를지도 모른다니까?”
“…너.”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유리의 눈동자.
이를 탐색하던 페트라가 조금 화가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
“따라 들어와라.”
먼저 막사로 들어간 페트라.
유리가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라 페트라를 따라 막사로 들어섰다.
용병들을 지휘하는 총대장답게 개인 막사를 보급받은 페트라.
그녀의 막사에는 작은 간이침대와 책상, 의자만이 전부였다.
유리가 단출한 실내를 두리번거릴 때.
“그건 네 생각이냐?”
페트라가 던진 질문에 유리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뭘?”
“적들이 우리의 똥구멍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럼 내가 하지, 누가 대신 해 주나?”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전면전을 치를 것처럼 간만 보고 있는 게 벌써 열흘째야. 구린내가 너무 심하게 나지 않아?”
유리의 답변에 페트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어린애도 하는 생각을 그 나이만 처먹은 등신들은 왜 못 하는 건지.”
한탄이 가득 담긴 페트라의 중얼거림에 유리는 자신이 내린 결론이 단순히 망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 아줌마도 나와 비슷한 걸 생각했나 보군.’
한 사람만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이는 망상일 수도 있으나,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면 최소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법이다.
하물며 비슷한 생각을 한 이가 만인장이라 불리는 페트라였다.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이는 망상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다.
그리고 이어진 페트라의 첨언.
“아무래도 저들의 동태가 이상해. 분명 전면전을 치를 것처럼 움직이고는 있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단 말이야.”
“분위기? 그게 어떤데?”
“너무 여유로워.”
“……?”
유리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페트라가 학생을 가르치듯 설명해 주었다.
“금방이라도 전면전을 치를 놈들이 후방에서는 느긋하게 보급 물자를 쌓고, 식사 때마다 여유 있게 불을 피워 대?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적들의 진영도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여 자신도 종종 나서서 저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기는 했었는데.
‘…난 그런 거 못 봤는데?’
자신이 살펴봤을 때, 적들에게서 그런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리의 물음에 페트라는 혀를 찼다.
“쯧, 자고로 전쟁을 업으로 살아가는 용병이라면 오가는 보급 물자의 횟수나, 식사 때마다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그 정도는 눈치챘어야지.”
“그렇군.”
결국에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리 생각했던 유리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것도 재능이야.’
전쟁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없다면 그녀가 어찌 만인장이라 불렸겠는가.
유리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볼을 살짝 긁적였다.
‘나는 망상이었지만, 이 아줌마는 근거 있는 결론이었네.’
자신은 감에 의존해 결론을 내렸지만, 페트라는 자신의 경험과 정보를 통해 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건 저들의 눈속임이 확실해.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놈들이 할 짓이 뭐가 있을까? 당연히 구린 짓이겠지.”
“예를 들어 중앙 산맥으로 들어가는 척하면서 남하한 후, 데일 강을 따라 이동해 우리의 후방을 친다든지?”
“바로 그거지!”
회의 때 쌓인 게 많은 듯, 유리의 이야기에 페트라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유리가 물었다.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윗대가리들이 믿지 않은 건가?”
“그래! 정말 입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그런데 저 머저리들은 앵무새라도 되는지 똑같은 말만 지껄일 뿐이었지!”
“뭐라는데?”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산군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니 함부로 병력을 빼내어 전력을 분산시킬 수는 없다.”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면 어떻게든 병력을 빼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말이 바로 그거다! 저 등신들은 말로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씨부리지만, 후방 보급의 중요성을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해요! 칼질만 잘하고 마력만 쎄면 다 이기는 줄 알아. 싸움만 알지 지들이 전쟁에 대해 뭘 알겠어!”
페트라의 답답하다는 외침을 들으며 유리는 턱을 쓸었다.
‘이해는 가네.’
만약 슈미트 연합이 중앙 산맥 쪽으로 보낸 적들이 별동대가 맞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별동대에 넣은 벌목꾼 20인은 확실히 엄청난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저들에게는 벌목꾼 20인이 남아 있었다.
반면, 지클리 연합은 그 별동대를 상대하기 위해 고수들을 차출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적들에 비해 고수의 수에서 밀리는 형국이니.’
만약 적의 별동대를 상대하기 위해 중간급 고수를 차출하면, 지클리 연합 본대의 허리 라인이 끊길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고 상위 고수급을 뺄 수도 없는 입장이고.’
산군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에 짓눌린 지클리 연합으로서는 상위 고수를 빼내는 선택을 할 수도 없으리라.
물론 유리가 보기에는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말이다.
‘명인이란 존재가 어떤 괴물인지 모르니 머릿수로 버텨 볼 수 있으리라 여기는 거겠지.’
공인 7단 이상의 고수?
그들이 아무리 많아 봤자 그저 조금 튼튼한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명인이란 태풍이 한 번 불면 단번에 뽑혀 날아갈 버릴, 허수아비.
‘명인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화신을 개방한 명인일 뿐이야.’
전 세계를 뒤져도 채 20명이 되지 않는 명인들.
하여 많은 이들이 명인을 경외하지만, 모순되게도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이에 속으로 혀를 한 번 짧게 찬 유리가 물었다.
“울리 지클리는 뭐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보니, 그래도 울리 지클리라면 어느 정도 말이 통했을 거 같은데?”
“오히려 가장 고집을 부렸던 게 바로 그 사람이다.”
“읭? 어째서?”
유리가 눈을 끔뻑이자 페트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울리 지클리한테 개인적인 정보통이 있던 모양이다.”
“개인적인 정보통?”
페트라의 이야기에 유리의 뇌리로 스치는 이의 얼굴이 있었다.
‘율리아겠네.’
자신을 이리로 보낸 존재가 율리아였으니, 그녀가 울리 지클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진 페트라의 이야기가 그런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그래, 그것도 꽤 확실한 정보통인지 울리 지클리가 그 정보통을 신뢰… 아니, 거의 맹신하고 있더군.”
확실히 싱 가문의 정보라면 확실히 그럴 만도 하지.
그런 생각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려던 유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음… 그래서 그 정보통이 뭐라고 했기에 울리 지클리가 고집을 부리는 건데?”
“아무것도.”
“응?”
“딱히 전해진 정보가 없는 모양이더라.”
“아아, 뭔가 문제가 있으면 정보가 전해졌을 텐데 아무것도 온 게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 건가?”
“정확히 바로 그거다!”
울리 지클리가 율리아를 얼마나 맹신하고 있는지,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만약 율리아에게 문제가 생겨서 정보를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거면 어쩌려고?’
속으로 혀를 찬 유리가 페트라에게 물었다.
“그래서 윗대가리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그 물음에 페트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단은 후방으로 경계에 집중하라는 전령을 보냈다.”
“언제?”
“오늘 오전.”
“지원 병력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조금 전까지 싸우다 온 건데… 정말로 저들의 별동대가 우리의 후방을 노린다는 확실한 흔적을 찾는 게 아닌 한 정예급 지원은 없을 거 같다.”
페트라의 설명에 유리는 고민했다.
‘확실한 흔적? 그걸 확인하고 출발하면 늦는다.’
안 그래도 이미 열흘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저들이 어디까지 도착했을지 어찌 아는가.
‘그렇다면 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건데.’
살짝 숙였던 유리의 고개가 똑바로 섰다.
“정예급 지원이 없다는 건 비정예급 지원은 가능하다는 거네?”
“그래. 하지만 그마저도 많이 뺄 수는 없을 거다. 기껏해야 용병이나 각 가문의 말단들을 긁어모아 200명 정도 보낼 수 있을 듯싶군.”
그런 페트라의 이야기에 유리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아니, 넷이면 충분해.”
“응?”
“그 지원 내가, 아니…….”
살짝 말끝을 흐린 유리가 강한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우리 소월 용병단이 갈게.”
***
하하하-!
호호호-!
멀찍이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테레시아의 한숨이 깊어졌다.
“하아… 이럴 거 같더라니.”
그녀가 속한 부대는 상당히 젊은 남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단순히 젊기만 한 거는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걸출한 실력을 갖추고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젊고 실력 좋은 젊은이들이 아니란 거다.
‘젊고 귀한 존재라는 거지.’
이번 전쟁에 참여한 각 가문의 후계자 및 혈통들.
그들을 한데 모아 둔 게 바로 테레시아가 속한 부대의 정체였다.
‘부대가 출전한다고 해서 혹시나 싶었더니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겨우 후방 부대라니.’
완전히 후방의 보급 부대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방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
그로 인해 적당히 전방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면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안전을 챙길 수도 있는 위치.
현재 테레시아가 속한 부대는 바로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문의 젊은 혈족들이 전쟁을 체험 학습 할 수 있는 절묘한 자리네.’
물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가문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이들을 보전하려는 심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한 가문의 후계자일수록 더욱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쌓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테레시아에게는 현 상황이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후계자 부대 특유의 분위기도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데 일조했다.
‘긴장감이 없어.’
긴장은 고사하고 친목을 다지러 온 것인지 하하호호 웃고 떠들기 바쁘다니.
‘저들만 보면 이곳이 전쟁터인지 사교장인지 헷갈릴 지경이야.’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20여 명의 젊은 후계자들을 향한 테레시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
유리의 지원군 자청에 페트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혹여라도 정말 적군 별동대가 후방을 노리는 상황이라면, 지원군의 유무가 이 전쟁의 승패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지원군에 고작 4명뿐인 용병단을 보내다니.
그것도 만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용병단을?
이는 지원군을 보내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페트라는 고민이 됐다.
‘이제 와서 병력을 꾸려 보내면 너무 늦는다. 소수의 정예를 빠르게 파견하는 게 나아.’
그리고 그 소수 정예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을 지닌 이들이 바로 소월 용병단이었다.
‘게다가 분위기만 보면 이 녀석이 소월 용병단의 최고수인 거는 확실한데.’
그런데 유리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감추고 있을지는 자신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자신마저도 그럴진대 윗대가리들 중에서 이 녀석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유리를 비정예 전력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뜻.
게다가.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나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전황을 읽는 눈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
또한, 어릴 때 교육을 담당했기에 유리의 임기응변과 독기, 잔머리가 어떤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특히 저 성공을 확신하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묘하게 느낌이 좋았다.
하여 그녀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소월 용병단 단독으로는 안 돼.”
“그럼?”
“병력을 꾸려서 보낼 거다.”
“그랬다가는 너무 늦는 걸 알잖아?”
“소월 용병단이 먼저 출발하면, 그 뒤로 추가 병력을 보내마.”
페트라의 설명에 유리도 이게 최선의 방법이란 것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얼른 윗대가리들한테 보고하고 오라고.”
“하아… 그 징글징글한 늙은 면상들을 또 봐야 한다니.”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페트라.
하지만 막사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막 회의가 끝났을 성난 모습과 달리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준비해라.”
회의에 다녀온 페트라를 통해 소월 용병단의 출전 허가가 정식으로 떨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