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베오그라드 전쟁 (12)
메이 윈체스터가 산군과 만남을 가진 그 시각.
테레시아의 고개가 북쪽을 향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보인 반응에 군터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냐, 그냥 누가 날 부른 거 같아서.”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턴 테레시아의 시선이 유리에게 향했다.
“그래서, 원래는 요한 님의 검을 가져다 놓기 위해 프롬펠 행정구로 가는 중이었다고?”
“뭐, 그렇지.”
전황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은 탓에 뒤늦게 유리로부터 그간 있었던 일을 듣게 된 테레시아.
3년 전 미궁의 붕괴 때, 유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후 그가 요람에 언제 복귀했고.
또, 수료 전 이어진 검주와 부절검의 세 번째 도전에서 요한의 최후가 어땠는지.
그러다 마침내 요람을 수료한 이후 용병단을 만들어 베오그라드에 이르기까지.
제법 간추리고 간추렸음에도 결코 짧지 않은 다채로운 이야기에 테레시아는 감탄했다.
‘참… 여러 의미로 놀랍네.’
미궁의 붕괴 이후 유리가 겪은 일들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놀람이었다면.
요람을 수료한 이후 약 4개월간 유리가 보인 행보는 ‘얜 여전하네?’라는 놀람이었다.
‘유리는 아직도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네.’
아니면 사건 사고가 터지는 곳마다 찾아다니는 건지.
그의 주변에는 늘 놀랄 일 투성이었다.
테레시아가 그렇게 감탄할 때.
“그런데 선배님은 왜 여기에 계신 겁니까?”
“아, 그건…….”
군터의 물음에 테레시아도 자신의 사정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벽에 막혀 정체된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용병으로 이번 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야기를 말이다.
이를 들은 유리의 눈이 작게 반짝였다.
“용병?”
“응.”
“용병패는 발급받았고?”
“물론이지.”
테레시아의 대답에 유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귀찮은 과정 하나는 줄었네.”
“……?”
유리의 혼잣말에 테레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군터는 ‘조만간 새로운 막내가 생기겠군’이라며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아린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텟샤 선배, 애니스톤 가문은 왜 간 거예요오?”
아린의 물음에 테레시아는 살짝 흠칫거렸다.
동시에 미약하게 흔들리는 동공.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찰나에 사라졌기에 이를 알아차린 이는 없었다.
“…수련 때문에.”
“수련요?”
“응, 애니스톤도 창을 쓰는 가문이니 막힌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될까 싶었거든. 고모님의 추천도 있었고.”
테레시아의 이야기에 군터가 반응했다.
“선배의 고모님이시라면… 그림자 여왕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혹시… 그분도 함께 오신 겁니까?”
군터의 시선에 기대감이 뒤섞였다.
그림자 여왕, 메이 윈체스터.
나이 오십이 되기도 전에 명인의 위에 도달한 천재 중의 천재.
혹자는 검주와 부절검의 뒤를 이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최강자로 그녀를 꼽기도 했다.
그런 메이에게 군터가 관심을 가진 건 너무도 당연했다.
검주와 부절검도 직접 본 군터지만, 그들은 그와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닿지 않는 현실 밖의 존재들.
흡사 전설 속 상상의 동물과 같달까?
반면 메이 윈체스터는 달랐다.
그녀는 비교적 최근에 명인이 되었으며, 앞선 인물들과 달리 현실감이 있었다.
또한,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시대의 최선두에 선 존재였다.
하여 한 번쯤 메이 윈체스터와 만나 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 군터의 기대감 섞인 질문에 테레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여기에 온 건 나 혼자뿐이야.”
나중에 합류한다고 해 놓고는 여태 메이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 건지.’
원래부터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걱정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은 했다.
“…그렇군요.”
테레시아의 답변에 실망한 군터.
그런 그를 뒤로하고 테레시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이래도 되는 거야?”
현재 그녀는 뽀삐가 끄는 수레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
그런 테레시아의 걱정에 유리는 뚱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가?”
“저 사람들… 저렇게 둬도 되는 걸까?”
“내가 따라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후방에서의 일을 어느 정도 수습한 뒤, 유리는 일행을 이끌고 다시 전방으로 출발했다.
가서 대충 싸우는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천천히라도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테레시아가 일행에 합류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다른 이들마저 따라붙은 건 유리도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예상치 못한 손님은 다름 아린 앨 지클리와 다른 베오그라드 명문가의 자재들.
그들은 유리 일행이 전방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대장의 허락을 받아 후방 부대에서 이탈하였다.
어딘가 모르게 비장한 기운을 폴폴 풍기는 걸 보니, 이번 습격을 통해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딴 시시콜콜한 것에 유리가 신경 쓸 리가 있겠는가.
그가 신경 쓰는 건 딱 하나였다.
‘졸졸 쫓아오는 게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핑곗거리로는 딱이니까.’
원래는 후방에서의 기습을 막아 내다가 다쳐서 전방으로의 합류가 늦었다고 핑계를 대려고 했던 유리.
그런데 이번에 따라붙은 짐 덩어리들 덕분에 알아서 합류 시기가 늦어지고 있었다.
‘이 속도면 대충 닷새에서 엿새쯤 뒤에 도착하겠군.’
그때쯤이면 이 전쟁의 결말이 대충 윤곽을 드러낼 터.
유리가 히죽 웃으며 외쳤다.
“뽀삐, 살살 몰아, 살살!”
***
의자가 우당탕 뒤로 넘어가며 막사 안에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후방을 지원하러 갔던 병력이 되돌아왔다니?!”
고함의 주인공은 울리 지클리.
그의 경악에 보고를 한 이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후방으로 보냈던 전령과 지원 병력이 되돌아온 상태이고,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페트라 님께서 설명하신다니 곧장 회의장으로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바로 가지.”
울리는 보고를 받자마자 곧장 회의용 막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소식을 전해 들은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으니.
울리 지클리는 본인의 자리에 앉기 무섭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무슨 소리요? 전령과 지원 병력이 되돌아왔다니?”
그런 울리의 물음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페트라를 향했다.
그들도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
좌중의 시선에 페트라는 자신이 받은 편지와 간략한 보고서를 울리 지클리에게 넘겼다.
이를 빠르게 확인한 울리에게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게… 사실이요?”
“편지에 찍힌 인장이 후방을 책임지고 있는 스티그 노딘의 것임을 확인했고, 같이 동봉한 앨 지클리 공자의 필체 역시 진짜입니다.”
“흠…….”
“또한, 상황을 보고 돌아온 전령의 말과 편지의 내용을 교차 검증해 본 결과… 사실임이 확실합니다.”
그런 페트라의 말에 울리는 탄식했다.
“허, 정말로 저들이 우리 후방을 노리고 기습을 했다? 그런데 단 4명이 기습을 막은 것도 모자라, 적 별동대를 섬멸? 그것도 벌목꾼 스물과 슈미트 연합의 정예 삼백을?”
“헙?!”
“흠……!”
울리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을 들은 수뇌부들은 저마다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벌목꾼 스물과 정예 삼백.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단 4명이 그 일을 해냈다고?”
“그들이 누굽니까?”
누군가가 물은 질문에 페트라가 답했다.
“소월 용병단입니다.”
“…소월 용병단?”
“그 4명이 용병이란 소립니까?”
여기저기서 소월 용병단을 놓고 수군거리는 사이, 울리는 아들이 보낸 편지를 다시 확인해 보고 있었다.
그 편지에는 소월 용병단이 어떻게 적의 별동대를 상대하였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적을 유인하는 계책을 썼다라…….’
편지에서 아들은 계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울리가 보기에 이는 계책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른 것이지 않은가.’
적을 불러들여 싸운다.
이는 본인들이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월 용병단이란 이들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써먹었고 실제로 성공하기까지 했단다.
배짱도 배짱이지만, 실력도 대단하다는 뜻.
‘단원들이 앨 녀석보다 나이가 어림에도 개개인의 실력이 엄청나고, 그중 단장의 경지는 아예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아들이 적은 편지의 내용.
그 속에 담긴 감탄과 경외의 문장에 울리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울리가 아들의 편지를 살피는 사이 좌중은 소월 용병단의 활약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대로 후방이 당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고작 넷이서 그만한 일을 했다니, 대단하군요.”
“크흠, 그나저나 정말로 우리의 뒤를 노릴 생각이었다니, 음흉한 놈들 같으니라고.”
자신이 이야기를 할 때는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던 이들이 정말로 후방에 기습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는 꼴에 페트라는 조소를 머금었다.
‘과연 저들이 기억하기나 할까?’
저들을 놀라게 한 소월 용병단이 얼마 전 본진에서 출발한 이들이란 걸?
분명 일전에 보고하기는 했지만, 저들은 그에 관해 분명 까먹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트라는 굳이 그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알려 준다고 해도 믿기 어렵다는 반응만 보이겠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결국 저들을 이해시킬 설명을 해 줘야 하지만, 문제는 페트라도 잘 이해를 못 하고 있다는 거였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구나.’
적 별동대의 기습이 일어난 시각은 소월 용병단이 출발한 지 겨우 반나절쯤이 지난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 소월 용병단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 먼 길을 주파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셈이니 저들을 어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하여 페트라가 그 부분은 대충 넘어가려 할 때.
“한데, 지원 병력이 되돌아왔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 꺼낸 질문에 페트라가 답했다.
“소월 용병단의 단장인 유리 홀랜드가 전령에게 지원 부대를 만나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되돌아오던 전령이 지원 부대와 만나 함께 왔다 하고요.”
“조치도 훌륭하군.”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에 관한 조치까지 알아서 처리해 놓자 여기저기서 흡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분위기가 살짝 풀린 찰나.
“때가 됐습니다.”
페트라의 굳은 목소리가 장내의 분위기를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때가 되었다니요?”
울리의 물음에 페트라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외쳤다.
“언제까지 적들이 쳐들어올지 눈치만 보고 있을 겁니까! 지금은 저희가 먼저 움직일 땝니다!”
“그 말은… 우리 쪽에서 먼저 공격을 하자?”
“맞습니다.”
페트라의 대답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중 누군가가 불안한 어투로 말했다.
“하,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저들의 전력이…….”
“대체!”
쾅-!
페트라가 내려친 책상이 크게 흔들렸다.
“당신들은 싸우러 온 겁니까, 아니면 싸움 구경을 하러 온 겁니까!”
지금까지 꾹꾹 눌러 왔던 페트라의 분노가 이번 일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
“이래서 못 싸우고, 저래서 못 싸운다? 왜, 우리 가문의 전력이 이 정도는 된다고 자랑질이나 하러 놀러 나왔습니까? 샌님들도 아니고 전쟁을 하러 왔으면 싸울 줄도 알아야죠!”
“그, 말씀이 좀…….”
“소월 용병단은! 고작 4명뿐인 그 용병들도 벌목꾼 스물과 정예 삼백을 상대로 이겼습니다!”
“…….”
“그들 덕분에 저들 전력에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소월 용병단이 이만한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줬는데도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면… 이건 애초에 여러분이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 아닙니까!”
이글이글 타오르는 페트라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수뇌부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주변을 쑥 훑은 페트라의 시선이 울리 지클리에게 닿았다.
“결정하시죠. 어찌하실 겁니까?”
지클리 연합의 최고수 울리 지클리.
대대적인 전면전의 경우, 결국 그와 아론 슈미트의 결투로 승패가 갈리게 될 터.
그 막중한 부담감을 오롯이 지고 있는 게 울리 지클리였기에, 이 싸움의 시작 역시 그가 결정하는 게 옳았다.
“흠…….”
울리는 고민했다.
‘지금까지 산군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아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메이 윈체스터에게도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상황.
그렇다면 페트라의 말처럼 지금이 최고의 기회였다.
적들의 전력은 깎였고, 산군이란 위험 요소는 배제된 상황.
자신이 신경 쓸 건 아론 슈미트뿐이었다.
‘그의 나이가 이미 여든을 훌쩍 넘겨 아흔을 바라보고 있다지?’
듣기로는 오랫동안 공인 9단의 벽을 넘지 못해 육신이 노쇠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반면 자신은 공인 8단에 접어든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론에 비해 젊고 강건한 육신을 지니고 있었다.
‘충분히… 싸워 볼 만하다.’
육신의 재생력, 힘, 체력, 지구력, 내구성 등등.
단기전이 아닌, 최대한 버티며 조심히 장기전으로 이끌고 나간다면 자신의 승리가 확실한 싸움일 되리라.
‘만약 내가 그를 잡는다면…….’
이 전쟁은 아군이 승리하게 되고, 자신은 승리의 주역이 된다.
그에 대한 명성은 가문을 살찌울 최고의 양식이 될 터.
‘그저 그런 가문이 아닌, 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명성과 명예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워야만 한다.’
강하게 주먹을 말아 쥔 울리 지클리.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단호히 말했다.
“다들 준비하십쇼. 전면전을 치를 터이니.”
“……?!”
울리 지클리의 선언에 장내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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