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09
409화. 소문 (2)
테슬란 행정구의 어느 술집.
“자네, 이번 베오그라드 행정구에서 일어난 전쟁 이야기 들었는가?”
“전쟁? 베오그라드에서 전쟁이 났다구?”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소문을 못 들었나.”
“나야 술병 나서 요 며칠 집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술병 난 게 맞아? 마누라한테 술병으로 처맞아서 앓아누운 게 아니고? 하긴 나 같았어도 자네처럼 허구한 날 술 처먹고 돌아다니면 두들겨 패서라도 집에 가두었을 거네.”
“어허, 이 빌어먹을 새끼가 어디서 모함질이야!”
“모함은 무슨, 며칠 전에 자네 집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는 걸 이 동네 사람들 전부 들었구만.”
“…그 얘기는 그만하지.”
사내가 아직 멍이 덜 빠진 광대를 살짝 문지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그 전쟁 이야기 좀 해 보라고. 갑자기 웬 전쟁.”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크흠!”
맥주로 살짝 목을 축인 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얼마 전에 그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용병한테 들은 건데…….”
그리 운을 뗀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린 후드에서 산군의 첫 번째 제자가 내려와 베오그라드의 서쪽을 집어삼켰고.
그러다 울리 지클리를 중심으로 동쪽에 연합이 만들어지며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
그리고.
“허? 울리 지클리가 죽어? 그자 8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울리 지클리를 죽이다니… 산군의 제자가 쎄긴 오질라게 쎈 모양이네.”
“듣기로는 나이 여든을 넘긴 노괴물이라더군.”
“그럼 전쟁은 그 노괴물이 이끄는 연합의 승리로 끝났겠군.”
“그게 아닌 모양이야.”
“응? 어찌?”
눈을 끔뻑이는 친구를 향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젊은 영웅이 나타났다더군.”
“젊은 영웅?”
“소월 용병단이라고, 소수 정예로 이뤄진 용병단인데 하나같이 그 실력이 놀라운 수준에 달한 젊은 고수들이라 하네.”
“젊은 고수들?”
“그리고 그중 단연 독보적인 이는 소월 용병단의 단장이지! 그가 산군의 제자를 이겼다고 하네. 그런데 그치의 나이가 몇 살이라는 줄 아나?”
“노괴물을 이긴 젊은 영웅이라고 했으니 한 쉰쯤?”
“쯧, 요즘은 쉰 살도 젊은이로 치는가? 그럼 자네랑 나랑은 아주 갓난 애새끼일세?”
“그러면 한 마흔쯤 되나? 허, 나이 마흔에 공인 8단이라니. 확실히 젊은 고수라 칭할 만하군.”
“그것도 아닐세.”
“아니라고?”
“놀라지 말게… 그 용병단장이란 이의 나이가 겨우 스물하나라더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잉? 이 인간이 속고만 살았나. 뭐, 물론 나도 처음에는 못 믿었지만, 똑같은 소리를 해 대는 용병이 한둘이 아냐. 사실이라니까?”
“정말로 스물을 넘긴 애새끼가 그 정도로 고수라고?”
“그러니까 젊은 영웅이라고 하는 게 아니겠나?”
“허,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년 사내는 감탄하며 목을 축였다.
“그래서, 그 용병 단장이란 자의 이름이 뭔가? 어쩌면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거 같은데?”
“뭐였드라, 음… 무슨 ‘드’로 끝났던 거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지 고민하느라 일그러졌던 사내의 미간이 활짝 펴졌다.
“아! 유리 홀랜드! 그래! 유리 홀랜드라고 했네!”
그리고 그 외침이 있기 무섭게 한쪽에서 제삼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금 유리 홀랜드라고 했소이까?”
바(Bar) 테이블에 앉아 홀로 술잔을 홀짝이던 청년.
그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년 사내들에게 다가왔다.
탁-!
“내가 술 한잔 살 터이니 조금 전 했던 얘길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시게나.”
탁자 위에 골드를 올려놓은 나이 든 말투의 젊은 청년.
술집의 조명이 비추는 그의 머리카락은 진한 보랏빛이었다.
***
검은 눈동자가 빠르게 글귀를 읽어 내려간다.
보고서 형식의 서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 ‘유리 홀랜드’.
이를 눈으로 곱씹듯 몇 번이고 훑어 내린 끝에, 검은 눈동자의 주인이 주먹을 울끈 말아쥐었다.
부스럭-.
투박하고 거친 손에서 종이가 거칠게 구겨지고.
“…유리 홀랜드.”
들끓는 감정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와 밀실 안에 메아리쳤다.
***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서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빠르게 오갔고.
좁지 않은 실내에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렸다.
그렇게 대화 없이 일만 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츠즉- 탁!
두툼한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검수 인장까지 찍은 사내가 이를 들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러다 어느 한 문 앞에 선 사내.
똑똑-.
“부장님.”
“들어와요.”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사내는 서류 뭉치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죠?”
“세계 강자 열전에 실을 월간 소식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리 말하며 사내는 책상에 두 종류의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이쪽은 이번에 새롭게 편입된 자에 대한 정보를 취합한 자료입니다.”
그리 말하는 사내의 눈에 긴장의 빛이 서렸다.
‘제발 이번에는 통과하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으니.
붉은 머리에 매력적인 구릿빛 피부.
그리고 오른손이 있어야 할 소매에 불쑥 튀어나온 집게 형태의 의수.
그녀는 다름 아닌 루시 샤르츠였다.
“…….”
말없이 사내가 가져온 보고서를 훑어보는 루시.
거침없이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시선이 한 지점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였을 뿐.
루시는 별다른 내색 없이 자료를 쭉 읽어 나갔다.
이에 사내는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길 얼마나 흘렀을까.
“고생했어요, 나머지는 제가 마무리해서 국장님께 올릴 테니 이만 나가 보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인이 떨어지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내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곧장 방을 빠져나갔다.
혹시라도 루시가 자신을 붙잡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사라진 사내.
달칵-.
완전히 닫힌 방문을 한 번 바라보다가 루시의 시선이 다시 보고서에 닿았다.
세계 강자 열전에 새롭게 실린 한 이름.
그에 관한 자료를 읽는 루시의 눈에 서늘함이 감돌았다.
“유리 홀랜드…….”
그날… 단장에게서 한 가지 명령을 부여받았던 바로 그날.
[언젠가 그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그때까지만 해도 단장의 말에 긴가민가했었다.
그 엄청난 붕괴 속에서 과연 그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루시는 유리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살아 있었구나!’
단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리 홀랜드가 그 미궁의 붕괴에서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사히 요람을 수료해 이제는 세상에 이름을 떨치려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루시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으득-.
이를 악문 루시는 오른 팔목을 들어 보았다.
희고 고운 손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거무튀튀한 집게 의수.
유리 홀랜드가 자신의 손을 앗아 간 후 맞이하게 된 현실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언젠가는!’
은은한 살기를 억누르며 깊숙이 갈무리한 루시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부하 직원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해 나갔다.
빠르게 쌓여 가는 문장들.
그 내용은 부하 직원이 가져온 것과 대부분 일치했다.
다만, 한 부분.
츠즉-.
아론과의 싸움에서 유리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는 기묘한 금빛 왕관.
그것에 관한 내용은 보고서가 완성됐을 때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
비슷하게 생긴 두 자루의 검이 벼락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려 낸 하얀 궤적이 두 마리의 용처럼 뒤엉켰다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검과 검 사이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릉- 콰강-!
벼락을 두른 용처럼 뇌성과 폭음을 동반한 두 궤적은 아슬아슬하고 치열하게 서로를 노렸다.
두 궤적의 싸움은 백중지세.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을 싸움이 계속되자 한 검이 거대한 기운을 일으켰다.
이는 무한에 가까운 검로로 진화하였으니.
뇌전을 머금은 아신검이 적을 노리고 나아갔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다른 검.
그 또한 묵직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며 무한의 검로를 그려 냈다.
그렇게 완성된 아신검이 마주해 날아오는 상대의 아신검과 부딪혔다.
콰가가가강-!
곧 어마어마한 폭음이 심상의 공간에 울려 퍼지고.
“흠…….”
폭음이 잠잠해질 때쯤, 나직한 침음과 함께 등장한 요한이 유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 이후로 밖에서 몇 년이나 흐른 게냐?”
그런 요한의 물음에 유리는 검을 거두며 피식거렸다.
“몇 년은 무슨, 지난번에 보고 고작 3개월 정도 됐구만.”
“석 달이라…….”
요한이 유리를 보고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고작 석 달이란 말이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겨우 감을 잡아 가고 있던 녀석이 고작 석 달 만에 너무도 능숙하게 아신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유리가 완전히 벽을 깨뜨리고 공인 8단이 되어 나타난 거다.
‘아무리 심상 속에서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족히 2년,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걸릴 거라 여겼건만.’
매번 그렇지만, 유리 녀석은 늘 자신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래서일까.
요한은 크나큰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다 진짜로 얼마 안 가 내 밑천이 전부 털리겠구나!’
지난번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점점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드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요한 레드너가 가르칠 게 없어 저 어린 애송이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유리 놈이 자신을 비웃을 미래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요한이 부르르 어깨를 떠는 걸 본 유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뭐야? 지렸어? 왜 그렇게 몸을 떨어?”
“옘병할 애새끼, 저주받을 애새끼, 빌어먹을 애새끼.”
“……?”
난데없는 요한의 욕 세례에 유리는 눈을 끔뻑였다.
이를 마주한 요한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선을 휘휘 내저었다.
“됐고, 지난 석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풀어놔 봐라.”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갑자기 실력이 이리 늘어서 나타난 것인지 들어나 보게.
속마음은 그러했지만, 요한은 굳이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를 모르는 유리는 조금 으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깐 말야…….”
아예 철퍼덕 주저앉아 자리를 깔고 앉은 유리는 베오그라드 전쟁에서의 무용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을 즘.
요한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군.’
어째서 갑자기 벽을 허물고 나타났나 싶었더니만, 목숨 건 싸움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거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의 자화자찬 겸 설명을 듣던 중, 이야기의 거의 막바지에 이른 대목에서 놀라 입을 열었다.
“산군, 그 늙은이를 만났다고?”
“어! 그 늙은이 완전…….”
유리의 뒷말에 맞춰 요한도 말을 내뱉었다.
“음흉하더라.”
“음흉한 늙은이지.”
모처럼 뜻이 일치한 두 사람.
이에 요한이 작게 혀를 차며 마저 말을 이었다.
“쯧, 조심하거라. 그 교활하고 음흉한 호랑이에게 찍힌 것 같으니.”
요한의 기억 속 산군은 늙은 호랑이였다.
나이를 먹어 발톱과 이빨은 무뎌졌지만, 음흉하고 교활한 꾀를 통해 먹잇감을 자신의 굴로 유인하는 노호(老虎).
하지만 이제는 너무도 나이를 먹어 호랑이보다는 점점 마귀에 가까워진 괴물.
그게 바로 산군이었다.
그런 요한의 설명과 경고에 유리는 담담히 답했다.
“알고 있어, 그 노친네가 만만치 않은 괴물이란 걸.”
“알고 있으면 됐다. 그러면 전쟁이 끝나고 뭘 했냐?”
“뭘 하긴, 영감탱이 집으로 가는 중이었지.”
“하기사 전쟁이 끝나고 베오그라드에서 바로 출발했다면… 곧 도착하겠구나.”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나흘 내로 도착할걸? 그래서 하는 말인데 레드너 가문은 어떤 곳이야?”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게냐?”
“내가 그래도 명색이 영감탱이 검 들고 찾아가는 사람인데, 도착해서 누구한테 검을 넘겨줘야 할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
유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요한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제법 길게 이어지는 침묵 끝에…….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요한에게서 살짝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