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골족 (2)
유리의 눈이 커진 것을 본 메이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표정을 보니, 워커 학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걸 자신이 어찌 모르겠는가.
골족의 4대 학파 중 야금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워커 학파.
그들이 만든 금속 제품의 품질은 일반적인 인간 장인은 시도도 못 할 정도로 고품질이었다.
하물며 워커 학파의 일반 장인도 아닌 무려 마이스터가 만든 검이란다.
아무리 랄프 슈넬의 검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보다 뛰어날 수는 없으리라.
하여 유리가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따라가기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습니까?”
“워커 학파의 장인이 만든 검이라면 얼마든지 손에 넣게 도와줄게. 하지만 마이스터가 만든 검은 쉬이 내주지 않을 거란다.”
유리의 미간이 살짝 모여드는 것을 본 메이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말했잖아. 널 부른 용건이 두 가지라고.”
“…….”
“지금 내가 골족 내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있단다. 한동안 내 옆에서 그 일을 도와주렴.”
“그 일이 뭔데요?”
“그건 골족의 영역에 도착해서 이야기해 주마.”
“흠…….”
“그 일만 도와주면 네가 마이스터의 검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마. 내가 이래 보여도 그 정도 발언권은 있거든.”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메이를 보고 유리는 속으로 한숨을 머금었다.
‘어쩔수 없지.’
사실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족히 1년 가까이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냉벽 산맥.
거기까지 가서 랄프를 만나 검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메이를 따라가는 게 훨씬 효율적인 일이었으니 말이다.
“좋…….”
그렇게 유리가 승낙하려던 순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군터가 둘의 대화 속으로 쓱 끼어들었다.
이에 메이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무슨 일이니?”
“우선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이언스 가문의 군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소월 용병단 소속의 단원이죠.”
“그래, 군터 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니?”
“지금 하신 그 이야기는 유리 개인에게 하신 의뢰입니까, 아니면 소월 용병단에 하신 의뢰입니까?”
“응?”
“단장과 저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치 실과 바늘과 같달까요? 그러니 유리가 이번 의뢰를 받아들이면 저희도 따라가야 합니다.”
다소 억지가 섞인, 군터의 뜬금없는 주장에 유리가 눈을 끔뻑거렸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한 시선은 덤이었다.
반면 메이는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한 의뢰를 소월 용병단에 정식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수로 골족의 무구(武具)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음… 그러니까, 유리뿐만 아니라 너희도 골족의 무기를 얻게 해 달라?”
“바로 그것입니다.”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는 당당한 군터의 요구에 주변에서 술렁임이 흘러나왔다.
“군터 쟤… 원래 저런 애였니?”
“와, 뻔뻔한데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멋있어!”
“배고프다!”
율리아와 아린, 뽀삐는 감탄했고.
한편 테레시아는.
“군터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느새 군터의 옆에 서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런 둘을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군터와 테레시아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너무도 태연했다.
‘유리,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 이게 다 널 보고 배운 거니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무려 골족의 무구를 손에 넣을 기회다.
마체술을 익힌 사람으로서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한편 유리와 테레시아, 군터가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본 메이는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러면서 그녀는 소월 용병단원들을 쓱 훑어보았다.
조카인 텟샤는 물론이거니와 당돌한 요구를 해 온 군터란 청년.
거기다 궁수로 보이는 여인과 윰족 청년까지.
하나하나가 저 또래 중 천재 소리를 들었을 법한 실력들이었다.
그나마 무리 중 가장 실력이 떨어져 보이는 이가 있긴 했는데.
‘쟨, 싱 가문의 혈족인가?’
붉은 눈동자 속 뚜렷한 은환.
누가 봐도 현가의 일족임을 알 수 있는 특징이었다.
하여 다른 이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실력은 현가의 일원이란 사실로 충분히 모자람을 채우고도 남았다.
물론 현가의 아이도 다른 단원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거지, 또래의 여느 아이보다는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어디서 이런 녀석들만 모아서 용병단을 만든 건지.’
대형 용병단에서조차 군침을 흘리며, 거금을 주고서라도 데려가려 할 인재들로만 구성된 소월 용병단.
확실히 저들이라면 충분히 쓸 만했다.
하여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녀의 승낙에 군터의 얼굴이 환해졌다.
‘골족의 무구라니!’
돈이 있다고 해도 쉽사리 구하기 힘든 게 바로 골족의 무구였다.
이를 얻을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쏘냐.
“바로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군터가 콧노래를 부르며 연무장을 벗어나는 것을 본 다른 이들도 이내 몸을 돌렸다.
“우리도 준비하자!”
“배고프다!”
“기대되네, 골족의 영역이라니.”
“나, 용병단에 합류하길 잘했다고 방금 처음으로 생각했다?”
저마다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씩 내뱉은 단원들.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본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야, 왜 니들 마음대로 정하냐?”
단장은 난데?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지만 그런 유리의 말을 들어 줄 단원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유리가 아닌 군터와 단원들로 인해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고.
당장이라도 골족의 영역으로 향할 듯싶었던 소월 용병단은 레드너가를 떠나지 못했다.
바로.
“어머니께서… 위독하십니다.”
메이와 유리에게 전해진 비보(悲報) 때문이었다.
***
짙은 죽음의 냄새가 내려앉은 실내.
새액 새액-.
미약한 숨소리가 힘겹게 지고 있었다.
침대를 곁에 두고 선 리오 부부와 수아, 메이.
그리고 유리가 엘레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유리가 처음 왔을 때도 엘레나 레드너는 이미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요한과 다섯 살 차이라면 그녀도 일흔에 가까운 나이.
노환에 병마까지 찾아와 하루하루 생명력이 깎여 나갔음에도 그녀는 악착같이 삶을 연명해 나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말이다.
‘영감탱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
삶의 마지막에 요한을 만나고 싶었기에 버텨 왔던 엘레나.
하지만 유리가 전해 온 요한의 죽음을 듣고 그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이다.
삶을 연명할 이유가 사라졌을 테니까.
유리가 그리 생각하던 순간.
“어, 어머니!”
“어머님!”
눈을 뜬 엘레나에게로 리오 부부가 빠르게 다가갔다.
슬퍼 보이는 아들 내외를 보고 엘레나는 미약한 미소를 보냈다.
“슬퍼… 말거라. 이리 가는… 것 또한… 축복이니.”
“어머니!”
“어머님, 흑…….”
리오 부부는 결국 참아 온 눈물을 터뜨렸다.
반면 수아는 난생처음 마주한 누군가의 죽음에 어떤 감정을 내비쳐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엘레나는 그런 손녀를 향해 그저 상냥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메이에게 닿았다.
“메… 이.”
“네, 저 여기 있어요.”
“고마… 웠어요.”
“저야말로… 엘레나 당신이 있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메이의 슬픈 미소를 본 엘레나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유리에게 닿았다.
이에 그녀가 입을 열기 전 유리가 먼저 물었다.
“요한 영감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런 유리의 질문에 엘레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와 동시에 죽어 가던 그녀의 눈에 잠시 생기가 되살아났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마지막 생명력을 불태운 그녀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의 자랑이었습니다.”
삶의 마지막에 내뱉은, 그리 길지 않은 그 말로 인해 엘레나가 평생 요한을 어찌 생각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유리가 그녀의 말을 깊이 되새길 때.
엘레나의 눈이 감겼다.
색— 새액-.
점점 끊기는 호흡.
그러다 마침내.
“어머니!”
“어머님!”
엘레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을 고했다.
***
리오는 모친의 죽음을 따로 알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엘레나의 장례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례식에 참여한 이는 레드너 일가와 메이 윈체스터, 소월 용병단뿐이었다.
그리고 아린, 군터, 뽀삐는 어쩌다 보니 요한과 엘레나 남매의 장례식에 모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간 치러진 장례 절차가 모두 끝이 나고.
떠나려는 유리 일행을 레드너 일가가 배웅하러 나왔다.
“잘 쉬다 갑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오히려 저희가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또 외삼촌의 제자시면 저희 식구나 마찬가지니, 잊지 마시고 앞으로도 종종 놀러 오십쇼.”
“뭐, 여유가 된다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리와 리오가 악수를 나눴다.
그때 리오의 다리 부근에 바짝 붙어 있던 수아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엉망이 된 얼굴.
그렇게 울고도 아직도 눈물이 남았는지 녀석은 연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이를 본 유리가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내가 질질 짜지 말랬지?”
다소 냉혹한 말이었지만, 수아는 빠르게 눈물을 닦아 냈다.
그런 수아를 향해 유리가 서늘한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만나면 숙제 검사 할 거다.”
유리는 지난 한 달간 수아를 개조하면서 틈틈이 마류의 기초를 가르쳤다.
생각보다 수아가 잘 따라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진한 수준이었다.
하여 마류에 대한 기초 이론이 적힌 공책을 수아에게 넘겨준 유리.
그가 말하는 숙제는 바로 이를 익혀 내는 거였다.
“혼나기 싫으면 열심히 해 둬.”
수아가 팔(八)자 입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유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보였다.
“너, 이게 뭔지 아냐?”
“……?”
“흑룡패라는 거다. 한 사람이 요람의 증명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 주는 추천장 같은 거랄까?”
수아는 흑룡패의 가치를 몰라 멀뚱거렸지만, 리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요람의 추천장?!’
그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요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용패를 가진 이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용패 추천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말이다.
물론 그도 흑룡패가 어떤 물건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유리도 굳이 그 가치를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은 흑룡패를 수아에게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4년 뒤 날 찾아와. 네가 이 흑룡패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그때 확인해 보마.”
유리가 흑룡패를 다시 품에 넣으며 엄포를 놓았다.
“단, 찾아올 거면 각오하고 찾아와야 할 거야. 애새끼라고 봐주는 건 오늘 이후론 없을 테니까. 그러니… 숙제 열심히 해라.”
경고인지 격려인지 모를 이야기.
이에 수아는 유리를 올려다보며 의지 가득한 눈망울로 답했다.
“꼭… 찾아갈게요.”
그런 수아의 머리를 두 번 토닥여 준 유리는 뒤돌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행의 곁으로 다가갔다.
“수아 안녕!”
“배고프다!”
“또 보자!”
뒤돌아 활기차게 인사를 하는 이들의 틈에 섞인 유리가 곧 그들과 한데 뭉쳐 정문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린 유리 일행.
그럼에도 여전히 그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수아를 보고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앞으로 4년.
그 시간 동안 리오 역시 제 품을 벗어날 딸아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실로 오랜만에 붕붕이를 타고 움직이는 게 아닌, 다 같이 걷게 된 유리 일행.
상황이 그렇게 된 건 골족의 영역이 대수림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대수림.
수레가 지나갈 만한 너른 길도 없을뿐더러.
지나쳐 왔던 길도 하룻밤 사이에 자라난 수풀에 집어삼키는 마당에 수레 따위를 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여 유리 일행은 수레를 버리고 메이의 인도를 받아 대수림을 며칠째 나아가는 중이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수, 숨이 막혀요… 흐잉.”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군.”
“배고프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든 법이야.”
레드너 가문이 자리하고 있던 초입만 해도 후텁지근할 정도로 덥고 습했다.
하지만 ‘진짜 대수림’은 그와 차원이 달랐다.
마치 뜨거운 열탕 속에 들어온 듯 숨이 턱 막히는 열기와 습기.
그뿐만 아니라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는 예사요, 온갖 독충과 독사가 즐비했다.
‘용병 아저씨가 어째서 대수림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했는지… 이제야 좀 알겠네.’
유리 역시 대수림의 악명이 어찌 생겼는지 이제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가 대수림의 환경에 혀를 내두를 때.
“대수림에 처음 온 게 맞니?”
그런 메이의 물음에 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입니다만?”
“그런 것치고는 생각보다 잘 버티네? 첫 방문에는 대부분 저 꼴이 되는데.”
메이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거의 물귀신이 되어 버린 유리의 일행이 있었다.
땀과 열기, 살인적인 습기에 푹 절여져 흐물거리는 다섯 사람.
심지어 독충에 물리기라도 했는지 입술마저 푸르딩딩했다.
메이를 따라 그들을 본 유리는 피식거렸다.
“제가 저것들처럼 약골은 아니라서.”
그러면서 유리는 속으로 요한에게 따봉을 치켜들었다.
‘영감, 잡탕 효과 최고야!’
잡탕, 혹은 조화신수라 불린 레드너 가문의 비약.
안력을 극대화하는 동술과 체내의 불순한 물질을 분해하는 그 탁월한 효능 덕분에 유리는 독충과 독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여유를 담아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날려 준 뒤, 메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골족의 영역에는 언제 도착하는데요?”
“곧?”
“그 소리만 믿고 걷다가 쟤들이 저 꼴이 난 거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이란다. 몇 시간 내로 도착할걸?”
“흠…….”
그때까지만 해도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던 유리.
하지만 몇 시간 뒤, 그는 메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란다.”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되리라 생각했던 이동이 멈췄다.
그렇게 우뚝 선 유리를 반겨 준 건 커다랗게 입을 벌린 시커먼 동혈과…….
우웅-.
갑자기 내면에서 비롯된 작은 울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