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드래곤 레어 (1)
유리의 신경을 잡아끈 건 메이와 골족들의 대화 속 한 단어였다.
‘미궁?’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미궁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대화의 맥락을 짚어 본바, 유리는 확신을 얻었다.
“설마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일이 미궁과 관련된 일입니까?”
불쑥 끼어든 유리의 목소리.
이에 메이와 다른 골족들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흠… 이 꼬맹이들은 누군가, 메이?”
“에잉, 어른들이 말씀을 나누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끼어들다니.”
두 골족이 못마땅하다는 듯 유리를 바라보자 메이가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서 데려온다고 했잖아요.”
“이 꼬맹이들이 그 도와줄 사람이라고?”
“덜 자란 것들이잖은가?”
유리의 표정이 순간 삐딱해졌다.
‘이야?’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토록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를 받은 건.
하여 그의 입꼬리가 너무도 활기차게 씰룩거렸다.
“반 토막 난 늙은이들이 누굴 보고 덜 자랐대? 몸뚱이가 반만 자라면 세상도 반 토막으로 보이나?”
“…….”
“아니면 뇌가 덜 자라서 생각이란 것도 반만 해?”
그 거침없는 혀 놀림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는 폭풍이 치기 전의 고요에 불과했으니.
“저이, 저?!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못된 말만 처배운 게냐! 이 요한 같은 놈!”
삿대질을 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두 골족을 본 유리는 눈을 끔뻑였다.
‘뭐… 같은 놈?’
…잘못 들었나?
하지만 유리의 청력은 정상이었다.
“빌어먹을 요한 같은 놈!”
“저주받을 요한 같은 놈!”
“얼어 뒤질 요한 같은 놈!”
“똥통에 빠져 뒈질 요한 같은 놈!”
말끝마다 따라붙는 ‘요한 같은 놈’.
그 맥락을 분석한 유리는 깨달았다.
‘아, 저게 욕이구나.’
그리고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경탄했다.
‘이 영감탱이는 대체 여기서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닌 거야?’
대체 어떤 짓거리를 하고 다니면 그 이름이 욕처럼 쓰일까.
아무래도 골족 중에서 요한을 싫어하는 건 세경만이 아닌 듯싶었다.
그렇게 유리가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푸흡!”
작게 들려온 웃음소리에 좌중의 시선이 돌아가니 메이가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녀가 유리를 보며 눈웃음 지었다.
“쿡쿡, 확실히 닮았다니까.”
기분이 나빠진 유리의 미간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메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걱정 마세요, 이 아이들 실력은 제가 보증할 테니까요.”
그녀가 가연과 서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에 겨우 분을 삭인 두 골족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본 메이가 유리에게 말했다.
“네 생각이 맞단다.”
그녀의 긍정에 유리는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의 표정이 변했다.
미궁.
두려움과 흥미를 동시에 주는 단어.
그런데 메이가 자신들을 고용한 이유가 그 미궁 때문이란다.
좌중의 눈빛이 변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변화를 본 메이가 마저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자리를 옮기고 나누자꾸나.”
하지만 그런 메이의 제안은 중간에 개입한 누군가로 인해 저지당했다.
“어허,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나. 시간이 없거늘!”
“그러게나 말일세. 당장 출발해도 모자랄 판에!”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들은 새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늙은 골족들이었다.
새로이 나타난 그들을 본 메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민수, 도철…….”
민수라 불린 이는 왼 다리에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고 있었고.
도철이라 불린 이는 오른팔에 붕대를 감아 목에 걸어 둔 상태였다.
생채기가 났다는 말과 달리 그들의 상태는 꽤 위중해 보이지 않은가.
하여 메이의 눈매가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두 분… 제가 없을 땐 미궁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두 골족이 은근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크흠, 미, 미안하게 됐다.”
“나, 나보다 이 늙은이가 먼저 들어갔다!”
“웃기지 말아라! 네놈이 먼저 들어가는 걸 내가 똑똑히 보았거늘!”
도철과 민수가 서로를 향해 고함치는 상황에 메이가 한숨을 내쉬며 함께 이마를 짚었다.
그사이 민수가 화제를 잽싸게 전환했다.
“그래, 저 아이들이 메이 네가 데려온 조력자란 게냐?”
“맞아요. 실력은 괜찮고 믿을 만한 아이들입니다. 그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을 자신이 보장한다고 말하려던 메이.
그녀의 말을 민수가 끊어 냈다.
“됐다. 네가 데려왔다면 믿을 만하겠지.”
“믿어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그녀의 말을 이번에는 도철이 끊어 냈다.
“그 또한 됐다! 메이 네가 과한 걸 요구할 리 없겠지. 하물며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우리가 못 해 줄 게 뭐가 있을까!”
그의 말에 나머지 마이스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해 줄 수 있는 건 뭐든지 해 주마!”
흔쾌함을 넘어 시원시원하기까지 한 승낙.
자신을 믿어 주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메이가 살짝 감동하려는 찰나.
“그러니 얼른 출발하자고!”
“메이 네가 자리를 비워서 조금도 일이 진척되질 않았단 말이다!”
“우리는 이미 진즉 준비를 끝냈다!”
“너희도 얼른 짐 챙겨라!”
잔뜩 신이 난 골족들의 외침에 메이는 저들이 자신을 믿어서 흔쾌히 승낙을 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얼른 미궁으로 가고 싶었기에 대충 넘기려는 것뿐이었다.
메이는 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마이스터들이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었더니.’
원래라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골족의 최고 지도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자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걸 다 냉패개치고 이리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안달이 나도 제대로 난 모양이다.
메이가 그리 속으로 쓴웃음을 베어 물 때.
“뭐,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긴 한데…….”
그리 운을 뗀 유리가 말을 이었다.
“갈 땐 가더라도 제대로 된 상황은 듣고 가야겠습니다만?”
유리의 시선이 메이를 향했다.
“듣자 하니 우리가 필요한 게 미궁 때문이라고?”
“그래.”
“거기서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유리도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메이와 대화를 나누는 저 골족들이 그 유명한 마이스터들이란 것과 그들이 메이를 깊게 신뢰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마이스터들이 미궁 탐사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까지.
하여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미궁이란 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마이스터들이 저렇게 열을 올리는 걸까?
그리고 메이는 그 미궁에서 자신들이 무얼 해 주길 바라는 것일까?
그런 유리의 물음에 메이가 답했다.
“미궁의 탐사와 연구는 골족이 맡을 거야. 우린 골족들이 탐사하기 쉽게 함정과 장애물을 찾아 없애고 골족의 보호를 맡을 거고.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나 혼자 해 왔지만, 이제는 너희와 함께하려고 하는 거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유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혹시나 싶어 묻는 겁니다만, 그 미궁이 발견된 게 언젭니까?”
“대략 석 달 전쯤.”
“그런데 아직도 완전히 개척되지 않았다고?”
유리의 의문은 당연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명인인 메이가 참여한 미궁 탐사다.
그녀의 무력이라면 미궁에 그 어떤 위험과 난관이 있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터.
그런데 그런 메이가 석 달이나 참여하고 있음에도 미궁이 아직도 전부 개척되지 않았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오지게 위험하다는 거지.’
유리가 진지한 어투로 물었다.
“그 미궁… 단순한 미궁이 아니군요.”
그런 유리의 물음을 받은 건 메이가 아닌 골족의 마이스터들이었다.
가장 먼저, 크게 그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을 빛낸 가연이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암! 아니지! 아니고말고! 고작 단순한 미궁 따위에 우리가 이리 직접 나설까!”
그 말을 서준이 이어받았고.
“그 미궁은 드래곤의 것이다.”
이를 다시 민수가 이어받았다.
“드래곤의 미궁, 세간에서는 이를 흔히 이리 부른다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철.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한 눈을 한 채 그가 낮게 뇌까렸다.
“드래곤 레어.”
도철의 말이 끝나며 잠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정체에 유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으엥?”
“드, 드래곤 레어?”
“전설 속 그 드래곤의 둥지… 말입니까?”
“배고프다!”
“맙소사…….”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다섯 사람.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믿지 못할 정도로 경악하고 있었다.
한편 유리는 진실을 확인하듯 메이를 바라보았다.
“저 말… 사실입니까?”
그의 물음에 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개척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드래곤의 레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단다.”
그녀의 말에 옆에 서 있던 골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확신 가득한 얼굴로 말이다.
이에 유리는 짧게 결론을 내렸다.
“드럽게 위험하단 뜻이군.”
전설 속 드래곤.
그들은 자신의 둥지를 침입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온갖 함정과 장치들을 설치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골족과 메이의 반응을 보니 아직도 그러한 함정들이 작동하는 모양.
‘이제야 이해가 가네. 드래곤 레어라… 그러니 명인이 참여하고 3개월이나 됐음에도 여태 진척도가 20% 수준인 거겠지.’
얼마나 위험한 곳일까?
그리고 그 위험한 곳에 자신들이 가도 되는 걸까?
아니, 자신은 그렇다 쳐도 단원들은?
유리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메이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걱정 마렴, 그 미궁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메이가 유리와 소월 단원들을 둘러보았다.
“너는 물론이고 다른 아이들도 조심만 한다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란다. 특히 선두에서 미궁을 개척하는 건 내가 맡을 테니 걱정 놓으렴.”
그 말을 들었음에도 유리의 얼굴에서 의문은 걷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짙어졌다.
마치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데 왜 아직도 미궁을 완전히 개척하지 못했냐고 묻는 듯한 눈빛.
이에 메이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한숨과도 같은 말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가 보면 알 거란다.”
유리는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메이의 저 씁쓸한 미소가 무얼 뜻하는지 말이다.
***
유리 일행이 골족의 도시, 지저의 불야성에 도착한 당일.
그들은 제대로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다시 지상으로 나와야만 했다.
물론 그때는 훨씬 많은 이들과 함께였다.
“얼른 가자고!”
“드디어 다시 시작이다!”
“으하하! 좋구나, 좋아!”
자신들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골족들은 순식간에 탐사 준비를 끝냈다.
실제로 그들은 항상 준비를 해 놓고 메이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시 지상으로 나온 골족의 탐사대.
“미궁은 이곳에서 며칠 이동해야 해.”
겨우 살 만한 곳에 발을 들였는데 다시 이 열탕 지옥 같은 대수림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는 말에 유리 일행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며칠은 그들의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대수림에서 살아온 골족.
그 시간 동안 그들이 대수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온갖 편의 용품을 만들어 낸 덕분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너무도 수월하게 미궁에 도착할 수 있게된 유리와 골족의 탐사대.
“여기가 드래곤 레어?”
“뭔가 좀, 생각했던 것과는 느낌이 다른데?”
유리 일행이 본 드래곤 레어의 첫인상은 너무도 평범하다는 거였다.
콰가가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와 그 뒤에 자리한 동굴.
그건 대수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동굴 속으로 들어와 지하로 내려온 뒤.
그들을 맞이한 거대한 석문과 거기에 양각된 드래곤의 형상은 유리 일행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구그그그긍-!
“…세상에.”
“이, 이런 공간이 어찌?!”
석문 너머,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에 압도되고 말았다.
사람 10명이 팔을 이어 잡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둥이 일렬로 쭉 늘어서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고.
도대체 이런 공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미궁의 면적은 추측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또한, 수백 개가 넘는 석문과 거기서 이어지는 미로와 같은 통로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 미궁이었다.
‘규모가 이래서 진척이 느렸던 건가?’
미궁을 처음 보고 그리 생각했던 유리.
하지만 탐사에 참여한 첫째 날.
그는 알게 되었다.
어째서 명인인 메이가 자신들을 고용하게 됐는지.
어째서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탐사의 진척이 제대로 나가지 않고 있던 건지.
유리는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오옷! 이쪽이다, 이쪽!”
여기 기웃.
“아니지! 저쪽부터 가자고!”
저기 기웃.
미궁에 입장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골족의 탐사대.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눈깔이 돌아가 있었다.
때문에 ‘드래곤의 레어’라는 희대의 장소 앞에서 그들은 그저 호기심 왕성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꼭 사고를 쳤으니.
“이건 뭐에 쓰는 물건인고?”
덜컹-!
“으아악! 떨어진다!”
딱 봐도 함정인 게 뻔히 보이는 장치를 건드리는 골족부터.
“호오, 신기하게 생긴 장치로구나.”
쉭-!
“켁! 주, 죽을 뻔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장치를 잡아당기는 골족까지.
드래곤 레어에 들어오면서 단체로 지능이라도 떨어진 건지.
아니면 무조건 일단 건드려 봐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미쳐 버린 골족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온갖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진 건 당연지사였고.
동시에 유리의 복장도 같이 터졌다.
“…옘병, 이 정신 나간 새끼들이?!”
처음에는 어떻게든 골족을 막아 보려던 유리와 소월 용병단.
하지만 한 명을 막으면 다른 쪽에서 사고를 치고.
다른 쪽을 막으면 또 다른 쪽에서 사건이 터졌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까지 쭉 이러했던 모양.
하여 이 정신 나간 골족들을 데리고 고작 석 달 동안 미궁을 20%나 개척해 낸 메이에게 무럭무럭 존경심이 생겨났다.
쾅-!
쿠르릉-!
“끼악! 건들지 말라고요!”
“으악! 그거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연이어 터지는 폭음과 소월 용병 단원들이 내지르는 짜증 가득한 비명의 향연.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결국 유리의 뚜껑이 열려 버렸다.
“이 땅딸보 새끼들이… 지금 해보자는 거지?”
낮게 으르렁거리는 유리의 눈에 짙은 살광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