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드래곤 레어 (3)
유리의 호칭에 마이스터들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선생님?’
반 토막 난 늙다리가 어쩌고 거리며 반말 찍찍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뭔 예의를 차린단 말인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하여 궁금해졌다.
과연 이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마이스터들을 대표해 도철이 묻자 유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즉답했다.
“통제권을 저한테 넘기시죠.”
“통제권? 무슨 통제권?”
“이 미궁을 탐사하는 동안 골족들을 통솔할 권한 말입니다.”
그 말에 민수가 콧방귀를 꼈다.
“흥! 통제권을 넘긴다 한들 저 고집 쎈 늙다리들이 네놈 말을 퍽이나 듣겠다. 우리 말도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마지못해 듣는 것들인데.”
이에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고요.”
“……?!”
유리의 미소를 본 마이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저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밑에 아이들에게 지옥도가 펼쳐지리란 걸.
이에 가연이 살짝 침음을 흘리며 물었다.
“음… 그럼 너에게 통제권을 넘긴다면, 우린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안전하고 빠르게, 이 미궁 탐사를 끝낼 수 있을 겁니다. 못해도 반년 안에.”
“바… 반년?!”
고작 20%를 개척하는 데 석 달이 걸렸는데 반년 안에 이를 끝낼 수 있다니?
마이스터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말을 어찌 믿느냐? 네가 반년 안에 탐사를 끝내게 한다는 걸 우리가 어찌 믿을까?”
“싫으면 말든가요.”
“…응?”
마이스터들이 눈을 끔뻑이는 걸 본 유리가 서둘러 말을 던졌다.
“이게 저 좋자고 이러는 거 같습니까? 사실 미궁 탐사를 일찍 끝내면 저보다는 골족들한테 좋은 거 아닙니까? 저야 그냥 대충 빈둥빈둥 시간이나 때우다가 보상받고 끝내면 됩니다만?”
“그… 그렇긴 하지.”
마이스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족에게 있어…….
아니, 마이스터들에게 있어 미궁 탐사보다는 사실 탐사를 통해 얻은 것들을 연구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하여 탐사를 일찍 끝내면 끝낼수록 연구할 시간이 늘어나니 탐사 시간을 단축하는 건 저 용병단의 꼬마보다 자신들에게 더 좋은 일이었다.
“그저,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만 통솔권을 넘기면 됩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반년만.”
“음…….”
“제게 통솔권을 넘기고 선생님들은 방관… 아니,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는 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해 드리죠. 그쪽 방면으로는 우리 애들이 또 일류라.”
“…우리는 그냥 우리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고?”
“물론이죠. 솔직히 말해서 말이 통솔권이지, 그거 그냥 귀찮은 일 떠맡는 거지 않습니까? 밑에 것들 챙기랴, 미궁 관련 일을 손보랴,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좀 많습니까? 밑에 놈들은 윗사람의 고충도 모르고 징징대기만 하고. 안 그래요?”
유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이스터들은 조금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커흠! 네놈이 뭘 좀 아는구나.”
“아암! 그렇고말고! 하여간 밑에 놈들은 윗사람들이 놀기만 하는 줄 알지!”
“오래간만에 생각이 제대로 박힌 청년을 보는군!”
“거, 말 한번 잘했다!”
마이스터들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본 유리가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 제게 통솔권을 넘기세요. 미궁과 관련해서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귀찮은 건 전부 제가 처리하죠. 제 손을 잡으면…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유리가 손을 마이스터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투박한 손.
그 주변에 ‘자유’라는 글자가 쉼 없이 맴돌았다.
그건 분명 악마의 손이었다.
지금 저 손을 잡게 된다면 밑에 아이들의 자유를 넘긴 대가로 자신들이 그 자유를 얻을 수 있을 터.
마이스터들은 그 하얀 유혹의 손을…….
“잘 부탁합세!”
“통솔권? 얼마든지 가져가라지!”
“좋다! 이 얼마 만의 자유냐!”
“으하하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잡았다.
‘밑에 놈들의 자유?’
‘우리가 알 바냐?’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아니면 되는데?’
귀찮은 것도 덜어 주고 자유까지 준다는데 이걸 어찌 참겠는가.
“흐흐흐흐!”
“후후후후.”
그렇게 하얀 손의 악마와 네 명의 마이스터들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악수를 나누는 걸 전부 지켜본 메이.
“…….”
그녀는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유리와 마이스터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계속 화를 내야… 하는 건가?’
마저 화를 내자니 유리나 마이스터들이나 너무 만족해하고 있지 않은가.
끼어들기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메이는 유리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알고 저리 행동한 걸까?’
드워프의 피를 이어받은 골족은 대개 불같으면서도 외골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중에서 한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나이 든 골족일수록 더욱더 그런 성향이 두드러졌으니.
이는 마이스터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골족의 지도자들에게 우선시되는 건 수준 높은 전공 지식일 뿐.
그런 환경 속에서 근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에 몰두해 온 마이스터들이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이기적이겠는가.
다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일족을 책임지는 수장들이기에 그런 성향을 억누르고 지내 왔을 뿐이다.
유리는 그런 마이스터들의 심리를 단번에 꿰뚫어 협상을 시도했고, 손쉽게 승낙을 받아 낸 거다.
메이로서는 다소 신기한 상황이었다.
‘분명 골족의 영역에는 처음 왔다고 했는데?’
그런데 어째 저리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어쩜 저리 자연스럽게 섞여 든 것일까?
‘혹시 알고 지내던 골족이라도 있었나?’
의문 섞인 메이의 눈초리가 유리의 동글동글한 뒤통수에 닿았다.
***
마이스터들에게 허락을 받고 온 유리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꽁술 영감 말이 사실이었네.’
요람 시절, 틈만 나면 마이스터들을 욕하던 세경.
그 탓에 유리는 마이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듣기 싫어도 주워들을 수밖에 없었다.
도철 워커.
민수 라멜.
서준 앙리.
가연 켈러.
골족 4대 학파를 이끄는 위대한 장인들이자, 하나같이 세수 150이 넘은 노괴들.
세경의 욕 속 그들은 하나같이 야비하고 이기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꼬장꼬장한 늙다리들이었다.
물론 다소 악감정이 섞인 평가였지만, 그 말이 전부 틀린 건 아니었다.
덕분에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마이스터들의 성향이 어떤지 알 수 있었던 유리는 손쉽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좋아, 어디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뒤돌아 골족들을 바라보는 유리의 눈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
달그락 달그락-!
채강!
쿵쿵-!
너른 미궁에 온갖 소리가 뒤엉켜 들었다.
그 소리의 중심에는 20명의 골족이 있었으니.
삽, 곡괭이, 끌과 망치 등등.
온갖 도구를 동원하여 미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골족들.
놀랍게도 그들은 어디로 흩어지지도 않고 질서 정연하게 정해진 구역을 파헤치는 중이었다.
레어에 들어온 첫날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난리를 쳤던 걸 생각하면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변화.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낸 건 골족들의 발목에 묶인 10m 길이의 밧줄이었다.
칼로 잘라도 잘 잘리지 않을 듯싶은 굵기의 밧줄이 골족들의 발목에 튼튼히 묶여 있었고.
그 20개의 밧줄은 하나의 거대한 말뚝에 연결된 상태.
물론 밧줄을 푼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골족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몸을 놀릴 뿐.
그렇게 대화 소리라곤 하나도 없는 조용한 작업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구구.”
우드득-.
곡괭이질을 하고 있던 한 골족이 굳은 허리를 툭툭 두들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허리를 툭툭 두들기는 골족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에 흠칫 놀란 골족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서늘한 눈빛을 한 군터가 있었다.
“31번 골족, 곡괭이질이 느려졌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서늘한 눈길에 골족은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며 변명했다.
“그… 허리가 조금 아파서…….”
충분히 봐줄 법한 상황이었지만, 군터의 서늘한 기운은 풀리지 않았다.
“힘에 부치면 빠지십쇼. 늙은 당신을 대체할 젊은 골족들이 밖에서 항시 대기 중이니까.”
“무, 무슨 소리! 나 아직 팔팔해!”
군터의 이야기에 골족이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건진 것도 없는데 벌써 빠질 수는 없지!’
이를 악물고 곡괭이질을 하는 골족을 한 번 바라본 군터는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졌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골족은 조금 속도를 늦춰 다시 곡괭이질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상황에 귀를 쫑긋하고 있던 다른 골족들도 군터의 눈치를 보며 부지런히 작업을 해 나갔으니.
그런 상황은 다른 네 곳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깡깡-!
탕탕-!
발목에 밧줄을 묶은 20인의 골족들.
그들은 미궁 여기저기서 열심히 발굴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눈에 불을 켜고 감시 중인 소월 용병단원들이 있었다.
그와 같은 체계가 만들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모든 골족이 공평하게 한 번씩 기절하고 깨어난 그날.
유리는 골족들의 발목을 밧줄로 묶어 놓고 선포했다.
[앞으로 그 밧줄을 푸는 골족은 미궁에서 추방이다.]행동을 제약하는 그의 강압적인 방식에 골족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유리에게는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꼬우면 댁들 마이스터한테 가서 따지세요. 이건 그 늙은이들도 허락한 일이니까.]물론 마이스터들이 허락한 건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뿐이었지만, 유리는 굳이 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골족의 1차 반발을 누그러뜨린 유리는 마저 선포했다.
[또한, 앞으로의 탐사 작업은 하루에 100명씩 교대로 투입될 거다.]총원 200명의 탐사대 중 하루에 100명, 20명 2개 조가 5조씩 탐사에 투입되는 방식.
그리고 나머지 100명은 밖에서 대기한다는 유리의 설명에 골족들이 또다시 반발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탐사 작업은 우리 소월 용병단의 감시 아래 진행되며, 감시자의 명령에 불복종 시 바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거다.]그 말에 골족의 탐사대가 제대로 들고일어났다.
이에 비웃음을 날린 유리.
[꼬와? 꼬우면 관둬. 댁들 대신 여기 들어오고 싶은 골족들은 넘쳐 나니까.]그럼에도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자 유리는 결정타를 날렸다.
[대신, 탐사 기여도 순위에 따라 미궁에서 얻은 유물을 선점할 기회를 줄 거다. 기여도 성적 상위 50명에게만.]그 발언이 골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원래 미궁에서 얻어진 유물은 분야별로 나뉘어 각 학파의 연구소로 전해질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골족들이 탐사에 참여한 이유는 미궁 자체가 거대한 유물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미궁에서 어떤 유물이 나오는지 미리 알아내고자 함이었다.
미궁에서 나올 유물은 한정적이고, 경쟁자는 넘쳐 나는 상황.
그러니 어떤 유물이 있는지 미리미리 알아 두고, 어떻게든 선점할 기회를 엿보려는 거였다.
그로 인해 남들보다 먼저 연구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물을 선점할 기회라니!’
‘이건… 놓치면 안 된다!’
만약 탐사가 끝나고 유물이 학파로 보내진다면 그걸 얻기 위해 골족 전체와 경쟁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200여 명과 경쟁을 하기만 하면 된다.
유리의 이야기에 골족 탐사대가 군침을 흘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기여도는 개인의 실적 점수 50%와 감시자의 평가 점수 50%로 매겨질 거다.]즉, 다시 말해 실적도 실적이지만, 감시자에게 반항하면 높은 기여도 점수는 물 건너 간다는 뜻.
[싫으면 지금 빠져. 기회는 다른 골족에게 돌아갈 테니까.]그 말이 끝났을 땐 당연하게도 더 이상의 반발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장 시작하자고 성화를 내는 골족들이 나올 정도.
그리고 그런 체계 속에 한 주가 흐른 지금.
캉캉-!
깡깡-!
‘적어도 내가 저놈보다는 점수가 높아야 한다!’
‘질 수 없다!’
보상 심리에 알아서 자발적인 경쟁까지 붙은 골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미궁을 파헤쳐 나갔다.
실로 놀라운 속도로 말이다.
한편, 그와 같은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마이스터 서준은 볼을 긁적였다.
“흠, 어찌 모양새가 좀…….”
머나먼 과거.
조상인 드워프들이 노예로 부림을 당했다면 딱 저런 모습일 듯싶지 않은가.
하지만 서준은 찝찝함을 금세 털어 냈다.
‘뭐, 모양새가 좀 그렇기는 해도… 개척 속도는 빠르니.’
밑에 아이들이 갈려 나가는 만큼 탐사가 쑥쑥 진척되고 있었다.
또한, 처음엔 다소 강압적인 듯싶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으니.
‘흠, 기여도에 따라 애들에게 유물을 선점할 기회를 준다라…….’
서준은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가 이걸 동의한 적이 있던가? 언제?’
미궁에서 발굴될 유물은 일족 전체의 공동 재산.
그런 유물을 개인이 선점할 기회를 준다는 건 꽤 중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의문을 털어 냈다.
‘그토록 중요한 일을 말 안 했을 리가 없겠지.’
그리고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라면 분명 다른 마이스터들의 동의도 있었을 터.
하여 서준은 들었는데 자신이 깜빡한 것이라 여겼다.
“에잉, 나이가 드니 자꾸 깜빡거린다니까, 쯧쯧.”
아무래도 기억력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듯싶다고.
서준은 뒷짐을 진 채 그리 중얼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다른 마이스터들과도 얘기가 된 거겠지’라는 생각을 한 게 그뿐만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모두의 뇌리에서 자연스레 잊혔고.
그렇게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