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 함정 (1)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유리의 재촉에 율리아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더 자세히 말하고 할 것도 없어. 그게 전부야. 그 골족은 그렇게 사라졌고, 그 이후로 우리 쪽에도 딱히 들어온 정보가 없어.”
“전혀?”
“솔직히 말해서… 그 골족은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어. 당시 사건에서 중요한 건 백검병단이었고, 그 골족은 그저 백검병단에 협력한 조력자 정도였지.”
“중요도에서 밀려서 이후 제대로 정보를 모으지 않았다는 뜻이군.”
“맞아.”
율리아의 답변에 유리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나도 전혀 신경 쓰지 못했으니.’
자신 역시 요람에 복귀한 날 바로 무룡대전을 치르고.
거기다 이내 요한의 죽음을 겪은 뒤, 얼마 안 있어 요람을 수료했다.
하여 세경까지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연락할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라졌다니.’
그것도 그냥 사라진 게 아니고 백검병단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감탄스럽기도 했다.
‘제정신이 아닌 건 알았지만, 외부 세력과 결탁해서 요람에서 도망치다니… 그것도 요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서?’
폭마(爆魔)라는 정신 나간 별명부터.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요한에게까지 미친놈 소리를 듣지 않나.
참 여러모로 대단한 영감이었다.
‘확실히 그 노친네라면 뭔가 큰 사고를 한 번 칠 거 같긴 했는데…….’
이 정도로 대형 사고를 치다니.
속으로 그리 감탄하던 유리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가만… 사고?’
골족에게서 추방당해 요람으로 보내졌던 세경.
맨날 마이스터들을 욕하면서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골족에게 되돌아가는 게 소원이었던 그다.
연구에 대한 그 집착과 집념은 유리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한데, 그랬던 세경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그럼 요람에서 탈출해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지금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살짝 고민하던 유리가 주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드래곤 레어, 어떻게 발견된 건지 알고 있는 사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앞쪽에서 들려왔다.
“그건 내가 들었다.”
공동으로 들어가다 말고 멈춰 서서 유리 쪽을 바라본 군터와 아린, 뽀삐.
그중 입을 연 건 군터였다.
“몇 달 전, 대수림은 우기(雨期)였다고 한다. 그때 폭포수 인근의 나무가 쓰러진 모양이다. 해서 폭포수 줄기가 약해졌고, 그 덕분에 미궁의 입구가 있는 공간이 드러났다더군.”
군터의 설명에 아린이 덧붙여 말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때 우연히 어떤 골족이 발견했다나 봐.”
“배고프다!”
자신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뽀삐를 보고 유리는 표정이 조금 더 굳어졌다.
‘우연이라…….’
우연히 나무가 부러져 폭포 뒤쪽의 공간과 미궁의 입구가 드러나고.
이를 또 어떤 골족이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다 우연히도 그 미궁에 설치된 기관이 나와 세경이 설계한 것과 같다?’
유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정도로 우연이 겹친다고?’
물론 그 모든 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람에서 탈출한 세경.
연구에 대한 그의 집착.
그럼에도 몇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현재 상황.
그러한 조건들이 더해지니 유리는 더는 이 모든 상황이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설마…….”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감.
‘만약 이 미궁이 세경 영감이 만들어 낸 기관이라면?’
정말로 이 미궁이 그가 설계한 기관의 집합체라면.
그렇다면 이 끝에는 반드시 그것이 존재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세경이 만든 기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누구보다 많이 당해 본 유리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폭탄!’
세경에게 폭마라는 별명을 만들어 준 그 무시무시한 위력의 폭탄.
그라면 분명 이 미궁의 끝에 그것을 설치해 두었을 것이다.
‘어디에?’
그라면 대체 어디에 그것을 설치해 두었을까?
유리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통로 너머, 넓디넓은 공동 안.
그 안에 자리한 붉은빛이 유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거…….’
공동의 붉은빛은 붉은 수정 기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길이가 2m 정도 되어 보이는 붉디붉은 수정 기둥.
이를 본 유리의 본능이 위기를 알려 왔다.
저거라고.
분명 저것이라고.
그러니 당장 여기서 도망치라고!
그와 함께 붉은 수정 기둥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골족들을 본 유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황급히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그거 손대지 마!”
***
주홍빛 불빛이 가득한 지하 공간에 두 사람이 마주했다.
짧고 퉁퉁한 이와 길고 마른 이.
하나의 탁자를 놔두고 맥주를 나눠 마시던 도중 길고 마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저들의 개척 속도가 빠르더군. 당신은 분명 1, 2년쯤 걸릴 거라고 했을 텐데?”
“그랬었지.”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질문인지 추궁인지 모를 물음.
이에 걸걸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걸 내가 어찌 알까? 공사를 끝낸 뒤로 난 이 지하에 처박혀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데? 흘러가는 상황은 네놈이 더 잘 알지 않냐.”
“저쪽에는 메이 윈체스터가 있다. 멀리서 상황을 알아보는 것조차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럼 더 열심히 알아낼 생각을 해야지, 지하에 처박혀 술 마시는 늙은이를 닦달한다고 답이 나올까.”
“…….”
입을 다문 사내를 보며 땅딸보 늙은이, 세경 워커가 누런 이를 씨익 드러냈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무려 3년을 넘게 공들인 공사다. 준비는 완벽하니 저들의 탐사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에게 좋은 일 아니겠나? 이 지긋지긋한 대수림을 벗어날 시간이 가까워져 올 테니까.”
“저들이 이상함을 알아차릴 가능성은? 그 변수가 일을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일은 없다.”
세경이 피식거렸다.
“미궁 자체도 진짜 드래곤 레어이고, 기관 설치에 들어간 재료도 원래 레어에 있던 것들을 재가공해 만든 것들이지. 이건 마이스터가 아니라 마이스터 할애비가 와도 못 알아채.”
“…….”
“예상보다 시기가 앞당겨져서 걱정되는 건 이해하네만, 이왕 한배를 탔으면 나를 좀 믿어 줬으면 좋겠군, 페터.”
그리 말하며 세경은 페터 레만을 향해 술잔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페터는 여전히 무심한 눈빛을 할 뿐.
이에 세경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옘병! 좀 믿으래도! 기관 지식에 관해서만큼은 골족 내에서 나를 넘어설 놈은 없으니까!”
“그 말은 골족이 아니면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뭐, 있기야 있었지, 나랑 같아 기관을 연구하던 녀석이. 하지만 그 녀석에 관해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째서지?”
“뒈졌거든. 네놈들 때문에.”
“그게 무슨…….”
페터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캐물어 보려던 그 순간.
우르르르- 궁-!
지하에 전해진 격렬한 진동음.
이에 세경의 입꼬리가 크게 뒤틀렸다.
“거, 내가 뭐랬나. 걱정할 거 없댔지?”
세경의 미소를 본 페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대지 마아아아아-!
유리의 외침이 통로를 타고 공동 안으로 뻗어 나가 웅웅 메아리쳤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메이었다.
그녀가 통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스륵- 턱.
그때는 이미 마이스터 민수의 손가락이 붉은 수정 기둥에 닿은 뒤였다.
그제야 메아리치는 유리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는 민수.
그 옆에 있던 다른 마이스터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던졌다.
“손대지 말라는데?”
“뭘?”
“저거 아니겠나?”
마이스터들과 골족, 그리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붉은 수정에 닿은 민수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닿았네?”
“이미 댔는데?”
그렇게 모든 이들이 눈을 끔뻑이던 그 순간.
우르르르-!
갑자기 미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헙?!”
놀란 민수가 화들짝 손을 뗐지만,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격화되어 갈 뿐.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드르륵- 쿵!
가장 먼저 통로의 석문이 저절로 움직여 닫혔고.
드드드드-!
붉은 수정 기둥의 뒤쪽 공간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평평한 땅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헛?!”
“저, 저?!”
마치 커다란 제단이, 혹은 공연을 위한 무대가 나타나듯, 갈라진 땅속에서 평평한 돌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를 본 유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옘병.”
원래라면 그저 평평했을 돌덩어리.
한데 그 안은 넓게 파여 있었으며, 파인 공간에 다른 무언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유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 정신 나간 늙은이가 밥 먹고 폭탄만 만들었나?!’
저토록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이라니.
게다가 저 폭탄이 세경이 만든 것이라면 그 하나하나의 성능은 굳이 따로 검증할 필요도 없이 뛰어나리라.
그 소리는 곧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으니.
“…좆 됐네?”
바로, 이 공동에 갇힌 모두가 좆 됐다는 뜻이었다.
츠으으으—!
마이스터 민수가 수정에 손을 대고 기관 장치가 작동된 순간부터 이미 점화에 들어간 폭탄 더미.
그러다 마침내.
칙- 퍼펑-!
작은 기폭과 함께 곧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으니.
이는 곧 인간의 귀로 담을 수 없는 소리를 동반한 대폭발로 이어졌다.
——-!!!!!
빛과 열기가 공동 전체를 새하얗게 잠식한 순간.
우웅-.
새하얀 공간 속을 검은 그림자가 내달렸다.
***
쿠와아아아아아앙-!
드드드드드드-!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함께 무너질 듯 진동하는 대지에 세경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헤헤헤! 터졌구나! 터졌어!”
바로 이것이다.
이 폭음!
이 충격!
이 떨림!
이것이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 갈 진정한 폭력이었다!
“크하하하!”
양 주먹을 불끈 말아 쥔 채 번쩍 치켜든 세경을 보며 페터가 물었다.
“당신이 설치한 폭탄 정도면… 메이 윈체스터도 처리할 수 있겠나?”
페터의 질문에 세경의 웃음이 뚝 그쳤다.
그가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꼴랑 저 정도 양으로?”
저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을 터뜨린다고 해도 명인을 죽이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폭탄이 터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폭발 범위에서 도망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폭발의 힘을 막아 낼 수도 있을 거다.
명인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혹시 모른다.”
명인 중에서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메이 윈체스터.
그리고 밀폐된 공간과 지켜야 할 존재가 수두룩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메이 윈체스터가 제 안위를 포기하고 모두를 지키고자 한다면…….
“자아아알 하면 죽일 수도 있겠지? 그게 안 된다고 해도 큰 부상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만약 메이 윈체스터가 부상을 입은 상황이라면… 그놈들은 절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게야. 그 여자가 몸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적어도 우리의 시간이 부족할 일은 없다는 거군.”
“물론!”
세경이 페터를 향해 씨익 미소 지으며 재촉했다.
“그러니 얼른 출발합세! 후딱 각자 원하는 걸 챙기고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뜨자고!”
신이 난 세경이 먼저 지하 공간을 벗어나자,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페터 레만도 걸음을 옮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