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23
423화. 탈출 (1)
딸꾹-.
민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딸꾹질.
좌중의 고개가 돌아가니 아린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죄송함돠…….”
“괜찮다. 충분히 이해하니.”
고작 폭탄 하나로 인해 대륙의 절반이 날아간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한편, 유리는 유리대로 놀라고 있었다.
“와씨, 그 영감탱이 쓸데없이 능력이 좋은 것도 문제네.”
그는 이제야 더욱더 확실히 납득이 됐다.
‘그 영감탱이 성격상 분명 그걸 터뜨리려 할 테니…….’
실제로도 세경은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 마저 연구를 끝내고 폭탄을 터뜨려 보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구 진척도는 90%.
나머지 10%만 채우면 최소 행정구 하나에서 최대 대륙의 절반이 날아가고 마는 거다.
이러니 골족 내에서 세경을 영구 추방하고 연구실에 다가오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유리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군터가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세경이란 골족이 이번 일을 꾸민 거 같은데, 그 혼자 이런 가짜 드래곤 레어를 만들 수 없을 테니 분명 백검병단이 그를 도왔을 겁니다.”
그런 군터의 이야기에 도철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틀렸다.”
“예?”
“여긴 가짜 드래곤 레어가 아니다.”
그 말을 민수가 이어받았다.
“아무리 정교하게 가짜를 만든다고 한들 절대 숨길 수 없는 게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세월이다.”
민수의 말에 다른 마이스터들이 설명을 덧붙였다.
“수천 년 전에 지어진 미궁,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수천 년 전의 재료. 아무리 정교하게 가짜를 만든다고 한들 우리가 그런 것에 속을 성싶으냐.”
“그건 느낌부터가 달라!”
“이 미궁이 진짜 드래곤 레어라는 건 논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군요.”
마이스터들의 이야기에 군터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분야에서만큼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게 바로 골족의 장인들이다.
그런 장인 이백 명에 심지어 마이스터까지 있었다.
그들이 무려 수개월 동안 이 미궁에서 뒹굴었는데 진짜와 가짜조차 구별 못 할 리 있겠는가.
“운도 좋지. 드래곤 레어를 발견하다니.”
“우리가 운이 없었던 게지. 수백 년 넘게 지척에 이런 보물을 두고도 찾지 못했다니. 쯧.”
“세경이 그놈이 이걸 알았을 리는 없으니, 분명 그 백검병단인가 하는 것들이 미리 선점했던 드래곤 레어일 걸세. 그러다가 이번 일에 쓰려고 내준 걸 테고.”
그런 마이스터의 설명에 한쪽에서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 어쩐지 뒤지는 곳마다 죄다 빈털터리더니. 이미 싹 털어 간 빈집이었다는 거네.”
마이스터들은 자신들이 먼저 왔다면 더 귀중한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유리는 자신이 먼저 왔다면 먼저 털었을 텐데라며 입맛을 다셨다.
그때 율리아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는 거 같은데요? 세경 워커가 연구 자료를 손에 넣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당장 돌아가 봐야죠!”
그녀의 다급한 재촉에 서준이 씨익 웃었다.
“너무 걱정 말아라, 우리 골족이 마체술을 익히지는 못한다고 한들 약하진 않으니. 세경이 그놈이 백검병단인지 뭐시긴지, 흑검병단 흉내나 내는 그런 버러지들과 함께 쳐들어간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 낼 거다.”
그런 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어이, 늙다리. 아까 내 얘기 못 들었어?”
“응?”
“그 세경 워커가 백검병단과 함께 요람에서 빠져나왔다고 했잖아.”
“들었다만?”
“들었는데도 감이 안 와? 무려 그 요람에서 도망친 거라고. 그 흑검병단 흉내나 내는 것들이.”
“…….”
“댁네 골족이 얼마나 잘나신지는 모르겠지만, 요람에 숨어들어서 실컷 분탕질을 친 뒤 무사히 빠져나올 수는 있어?”
“……?!”
그 흑검병단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는 건 최소 그 정도의 무력을 갖췄다는 뜻.
그제야 무언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이스터들.
“괘, 괜찮다! 아직 여유는 있으니!”
“확신해?”
“무, 물론! 그 위험천만한 것에 우리가 아무런 방비도 안 해 뒀을 거 같으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 뒀다, 이 말이다! 게다가 세경이 그놈이 그 방대한 연구 자료와 시설을 옮기려 해도 족히 며칠은 걸릴 테고!”
“아암! 애초에 그놈의 연구는 그 시설이 있어야 가능하거든. 그러니 분명 통으로 뜯어 갈 생각이겠지.”
서준이 말하고 가연이 덧붙인 설명.
이에 유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리 여유가 많은 건 아니지.”
이 미궁에서 골족의 불야성까지 가는 데만 며칠이 소요된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에라도 당장 출발함이 옳을 터.
우득-.
가볍게 어깨를 돌린 유리의 머릿속에 찰나 속 들은 메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뒷일을 부탁하마.]‘목숨 빚을 졌는데 부탁 정도는 들어줘야겠지.’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목숨의 빚을 졌다.
아무리 양심이 없는 유리라고 해도 그 부탁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유리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굳게 닫힌 출입문이 있는 곳.
유리가 움직이자 소월 용병단을 비롯해 골족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닫힌 석문 앞에 선 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바로 출발하자고.”
비록 이렇게 갇혀 있는 신세기는 했지만, 고작 돌로 된 문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이라면 저 정도는 충분히 부술 수 있으리라.
‘보자, 뭐로 후려칠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당연히 아신검이었다.
가장 최근에 얻은 힘.
하지만 유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신검은 쓸모없어.’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아신검이 두려운 이유는 절대성 때문이었다.
[그 어떤 가능성으로도 분화할 수 있기에 절대 막을 수 없는 공격.]그 절대성이 물리력에 더해지니 모두가 아신검을 두려워하는 거였고.
이는 다시 말해 아신검의 절대성이 더해진다고 물리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러니 아신검이 생물이라면 모를까, 가만히 서 있는 돌덩이에는 위력적일 리 있겠는가.
하여 지금 저 돌문을 부숴 없애는 데 가장 적합한 건 딱 하나였다.
스르릉-.
검을 빼 든 유리.
“호오? 시작하는군.”
“자신만만해하더니 어디, 애송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선으로 늘어뜨렸던 유리의 검이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머리 위로, 반원을 그리는 검의 궤적.
그와 함께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세가 피어올랐다.
우우웅-!
마침내 유리의 검이 천장을 향했을 때.
그의 머리 위에 초승달의 형상이 떠올랐다.
‘작월.’
유리가 익힌 것 중 물리력으로 따지면 첫손에 꼽히는 절기.
성검보다도 훨씬 강맹한 달의 검기가 유리의 검 끝을 따라 구현됐다.
이에 여유롭게 바닥에 널브러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이스터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음?”
“허?”
“어?”
“응?”
저마다의 방식으로 미약한 의문을 표한 마이스터들.
그들의 시선은 유리가 만들어 낸 초승달 형태의 기운에 닿아 떨어질 줄 몰랐다.
집중된 좌중의 시선 속에 초승달이 석문을 향해 날아들었고.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석문에 일어났다.
그 뒤로 잠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광경에 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삐딱해졌다.
“쯧.”
잔뜩 금이 간 석문.
톡 치면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이었지만, 한 번에 부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리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하여 그는 비딱한 표정으로 석문을 향해 비검을 날렸다.
작월에 비하면 한없이 나약한 기운을 품은 초승달 형태의 기운이 석문에 적중했고.
쿵-.
콰르르륵-!
안 그래도 잔뜩 금이 가 있던 석문이 마침내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하여 드디어 탈출할 수 있겠거니 싶어 밝아졌던 좌중의 표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어두워졌다.
반면 유리의 표정은 살짝 밝아졌다.
“어쩐지 한 번에 안 부서지더라니.”
석문이 부서지며 그 자리에 드러난 건 거무튀튀한 금속 질감의 문이었다.
돌로 만들어졌다고 여긴 문은 사실 석재를 덧씌운 금속 문이었던 것.
자신의 공격이 약한 게 아니란 사실에 자존심을 찾은 유리는 다시금 검을 휘둘러 초승달을 그려 냈다.
그렇게 또다시 세상에 떠오른 금빛 초승달이 금속 문을 향해 날아갔다.
투쾅-!
짧고 굵은 소리가 나며 작게 진동하는 금속 문.
이에 유리가 슬쩍 미소 지었다.
“오, 좀 단단하네?”
이거 아무래도 보통의 작월로는 안 될 듯싶은데?
하여 유리는 광인을 발동시켰다.
우웅-!
육신과 영혈 속 두 개의 마나 핵이 공명하며 그의 전신에 금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유리의 머리 위로 황금빛 왕관이 만들어졌으니.
이미 그 같은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는 소월 용병단원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으나 다른 이들은 달랐다.
“머리에서 빛이 나다니. 신기한 능력이군.”
“어두운 광산에서 작업할 때 쓸모 있겠어. 우리가 배울 수 있으려나?”
빛을 내는 왕관을 보고 흥미로워하는 대다수의 골족과.
“헛?!”
“……?!”
“그, 그럴 리가?!”
“저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마이스터들.
“…….”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두 눈 가득 이채를 품은 율리아까지.
각양각색의 시선 속에 유리는 전력으로 달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초승달보다 훨씬 커다란, 만월에 가까워진 달의 형태.
어두운 통로를 달빛으로 환히 밝힌 유리의 작월이 금속 문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작월이 문에 작렬하며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통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발생했다.
이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은 채 기대를 품고 눈을 떴으며, 유리 역시 기대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닿은 문은…….
“멀쩡하네?”
“…멀쩡한데?”
“완전 말짱한데?”
…요란한 소리와 달리 너무도 멀쩡했다.
하여 누구보다 큰 기대를 하고 있던 유리에게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오, 시발… 존나 단단하네?”
어…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의 자신만만했던 유리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
지하 미궁에 폭발이 발생한 날로부터 이틀 뒤.
대수림의 녹음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태양에 놀란 날짐승들이 푸드득 날아오르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햇빛이 대수림을 밝혔다.
그리고 그때, 동굴의 입구에 한 발을 걸친 세경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있었으니.
“쓰읍- 하!”
콧속으로 파고드는 내음.
그건 바로 고향의 냄새였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비록 초입이기는 하지만 이 동굴을 쭉 따라간다면 자신의 고향인 불야성에 도착하게 될 터.
그 사실이 사뭇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경의 눈에 광기가 번쩍였다.
‘저곳에 있다. 내 연구 자료가!’
연구 자료는 물론이거니와 연구에 필요한 기구들까지.
수십 평생을 바쳐 완성한 것들이 바로 저 동굴 속 지하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그것들을 다시 제 품에 안을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감격에 참을 수 없는지 세경이 뒤를 보며 재촉했다.
“어서… 어서 가자고!”
수백 명의 백검병단을 향해 그리 소리친 세경은 짧은 다리를 놀려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페터가 수하를 향해 턱짓했다.
“예정대로 움직여라.”
“예, 부디 안전히 목적한 바를 꼭 이루십쇼. 부단장님.”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페터가 가볍게 답하자 백검병단 수백 명이 먼저 달려간 세경을 쫓아 사라졌다.
홀로 남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터는 눈을 감았다.
이번 일에 동원된 백검병단은 총 500명.
그중 일부는 세경을 도와 연구 자료를 챙기는 임무를 맡았지만, 거의 대다수는 골족의 불야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오로지 자신이 불야성의 금지까지 잠입할 수 있게 시선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그리 의지를 다지며 눈을 뜬 페터.
번쩍-!
짙은 안광을 갈무리한 그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골족의 불야성을 향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