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의심 (1)
월루.
바로 등 뒤, 도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분명 그것이었다.
이에 유리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야, 영감이 월루를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 물음에 도리어 경악성이 되돌아왔다.
“저, 정녕?! 진짜 월루란 말이냐?!”
월루를 알아보기는 했지만, 확신은 없었던 모양.
유리가 고고히 빛나는 저 황금빛 검이 월루임을 재확인시켜 주자 그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그사이 월루는 다시 황금빛 화살표로 모양을 바뀌어 있었다.
웅웅웅-!
마치 얼른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는 듯 재촉하는 월루의 태도에 유리의 표정이 뚱해졌다.
“내가 지금 좀 바쁘거든? 다음에 놀자.”
위이이잉-!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벌레 쫓듯 손을 휘휘 내젓는 유리.
이에 바르르 몸을 떤 월루가 휙 하고 날아와 유리를 콕콕 찔러 댔다.
“아파, 새꺄! 왜 갑자기 지랄인데?”
웅웅-!
월루는 콕콕 찌르다 못해 이제 정수리까지 탁탁 두들겼다.
다행히 그게 효과가 있던 걸까.
유리는 월루의 행패에서 무언가 다급한 감정을 느꼈다.
“…너, 뭐 때문에 그러냐?”
위웅!
유리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듯싶자 월루가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마치 어서 빨리 자신을 쫓아오라는 듯한 행동.
이에 유리의 눈이 게슴츠레 변했다.
“확실해? 이번에도 장난질 치려는 거 아냐?”
휙휙-.
화살표 머리가 좌우로 내저어졌다.
“진짜?”
휙휙-!
“진짜로?”
휙휙-!
“진…….”
콕콕-!
“아파 새꺄!”
그렇게 유리와 월루가 나누는 대화 아닌 대화를 지켜본 도철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 월루에게 자아가 있다는 걸 문헌으로 보기는 했다만… 그 말이 정녕 사실이었다니.”
자아가 깃든 무기.
이는 야장의 업을 이어 가고 있는 이에게는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던 그 환상의 실체를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한편 그런 도철의 중얼거림에 유리의 표정이 게슴츠레 변했다.
“그래서 영감은 어떻게 월루에 대해 알고 있는 건데?”
“책에서 봤다.”
“그 책, 나도 좀 보고 싶은데?”
“골족의 비서다. 그걸 외인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다. 한데 나도 묻고 싶구나. 네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지난번 유리의 머리 위로 떠올랐던 삼지창 형태의 금빛 왕관.
그걸 보고 혹시나 싶은 마음이 생겼었다.
하지만 갑자기 드래곤과 그 혈족들에게만 반응하는 문을 열기에 ‘그 왕관’은 그냥 비슷한 마체술의 일부라 단정 지었다.
그랬었는데.
‘이제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월루마저 지니고 있단 말이지.’
도무지 유리의 정체를 종잡을 수 없기에 도철의 머릿속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저 녀석의 말대로 저것이 진짜 월루라면. 그럼 이 아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문만 품고 답을 하지 않으니 대화가 이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침묵에 휩싸여 있을 때.
콕콕-!
월루가 다시 유리의 팔뚝을 찔렀다.
마치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한 재촉.
이에 유리는 고민했다.
‘어쩔까.’
지난번, 골족의 영역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월루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려 했었다.
그때는 애써 무시했었지만, 녀석이 또다시 이러는 걸 보니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
게다가…….
‘이 영감탱이 반응도 좀 수상하고 말이지.’
월루의 재촉에 도철의 낌새가 무언가 이상해진 걸 유리는 놓치지 않았다.
마치 월루가 왜 이러는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거 같은 반응이지 않은가.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 월루가 따라가 보고 싶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 그럴 여유가 있냐는 거였다.
족히 수백 명에 달하는 백검병단 무리가 불야성에 침입했고, 세경은 언제 연구 자료를 가지고 튈지 모르는 상황.
한가하게 월루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유리가 내적 갈등을 하고 있을 때.
“따라가 봐라.”
등 뒤에서 도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보라고?”
“그래.”
“얘가 어딜 가라고 하는 줄 알고?”
“…….”
도철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알고는 있으나 답을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유리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끝까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이쯤 되니 이제는 자신도 그냥은 넘어가기 싫어졌다.
대체 이 영감탱이가 무엇 때문에 입을 이리 꾹 다무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이다.
“뭐, 그러자고.”
그리 말한 유리가 곧장 동굴 안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웅웅-!
어서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듯 월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
골족의 불야성으로 들어가는 궤도차를 탈 수 있는 T자 형태의 갈림길.
그 앞에 도달한 유리는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싸움이 있었다.’
내부 곳곳에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지키는 골족과 백검병단 간에 충돌이 있었던 모양.
유리의 시선이 지면을 향했다.
‘선로가 끊겼다.’
백검병단 놈들과의 싸움에서 망가진 것인지.
아니면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골족이 손을 쓴 것인지.
궤도차용 선로가 상당 부분 망가져 있었다.
이 상태로는 궤도차를 탈 수 없을 터.
이에 유리가 위:영역을 크게 펼쳐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기운은 걸려들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지금까지 혹시라도 백검병단을 마주칠까 싶어 잔뜩 경계하며 달려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자신감이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예비 인원도 남겨 두지 않고, 심지어 퇴로조차 확보해 놓지 않았다니.
‘이놈들,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백검병단 녀석들의 의중이 자못 궁금해지는 유리였다.
그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니 오해한 도철이 말했다.
“날 내려 주고 잠시만 기다려라. 이 정도 수준이면 금방 수리할 수 있으니까.”
궤도차와 선로는 골족에게 있어 필수적인 이동 수단이었다.
하여 수리를 위한 비상 자재를 늘 관리하고 있었다.
워커 학파의 마이스터로서 선로 수리 정도는 눈 감고도 가능한 일.
이 정도 손상이면 몇 분 내로 수리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도철의 말에 유리는 대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필요 없어.”
“응? 뭔 소리냐? 필요 없다니?”
월루의 화살표는 정확히 불야성이 있는 지하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여 결국에는 불야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궤도차 없이 어찌 밑으로 내려간단 말인가.
그런 도철의 의문에 유리는 짧게 답했다.
“뛰어갈 거야.”
“엉?”
“뛰어서 간다고.”
유리의 답을 들은 도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오른 찰나.
탁-!
이미 유리의 신형은 좌측 통로로 들어선 뒤였다.
“헛?!”
옅은 어둠이 잠식한 통로.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간 까마득한 지하로 추락할 좁은 선로를 따라 유리는 어마무시한 속도로 내달렸다.
그렇게 선로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이 정면에 나타났지만, 유리의 속도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어?”
처음에는 유리가 알아서 하겠거니, 상황을 지켜보던 도철.
하지만 꺾어야 할 지점이 가까워짐에도 도무지 속도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으어어?!”
이내 창백해진 얼굴로 유리의 어깨를 탁탁 쳤다.
“아, 앞에?! 앞에 봐라!”
“보고 있어.”
짧게 답한 유리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였다.
그러다 허공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탓-!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에 유리는 씨익 웃었다.
‘골족의 궤도차가 빠르긴 해도.’
그게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최단 거리로 움직이는 것보다 빠를까?
유리는 신이 나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도철의 안색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뛰, 뛴다며?!’
뛴다고 했잖아!? 뛴다고!
그런데!
‘이게 뛰는 거냐?!’
이건 뛰는 게 아니잖아!
“떠, 떨어진다아아아!”
야, 이 미친놈아!
그렇게 유리와 도철, 월루.
그 셋은 한 덩어리가 되어 수직 낙하를 시작했고.
“끼아아아아오오오오오오–!”
도철의 절규가 어두운 공간에 끔찍하게 메아리치다 사라졌다.
***
불야성.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골족의 영토.
그 아름다운 매력을 가진 도시가 전화(戰火)에 휩싸였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교전.
두 골족이 분투를 벌이고 있는 곳도 바로 그런 교전지 중 하나였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기어들어 온 게냐!”
“크하하, 제 발로 지옥에 기어들어 왔구나!”
호기롭기 짝이 없는 외침.
하지만 그와 달리 두 골족은 등은 맞댄 채 4명의 백검병단에게 포위를 당한 상태였다.
“안 들어오고 뭐 하냐!”
“쫄은 게냐! 후딱 들어와라!”
포위를 당했음에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연신 비웃음을 흘리며 도발하는 골족들.
고작 두 명뿐인 그들의 도발에 백검병단원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그들을 얕보고 달려들었다가 널브러진 동료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게, 게륵-.
크륵-.
바닥에 널브러져 목을 부여잡은 채 피거품을 게워 내는 동료들.
그들의 끔찍한 몰골은 백검병단에게 은은한 두려움을 주었다.
그런 백검병단의 시선이 골족들의 손에 들린 두 가지 물건에 닿았다.
순식간에 여러 발을 쏘아 내는 자동 연사 석궁.
작은 화포처럼 생겼으나 일시에 수십 발의 바늘을 비처럼 쏘아 내는 기괴한 암기.
그것들이 바로 자신의 동료들을 저 몰골로 만든 물건들이었다.
‘빌어먹을!’
‘대책 없이 뛰어들면… 나 역시 저 꼴이 된다.’
솔직히 다연발의 화살이든 수십 발의 바늘이든.
작은 부상을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눈앞에서 깐죽거리고 있는 골족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지닌 무기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화살과 바늘에 발린 극독이었다.
고대의 전설 속, 드래곤마저 죽였다는 드워프의 독.
이를 계승한 게 바로 골족이었다.
저들의 화살이나 암기에 스치기만 해도 자신들 역시 피거품을 게워 내는 신세가 되리라.
“흐하하! 새끼들 쫄았구만!”
“기다려 줄 테니 언제든 들어와라! 단, 니들 중 적어도 둘 이상은 피똥 쌀 각오를 해야 할 거다!”
“큭!”
백검병단의 조원들은 계속되는 도발에 골족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치가 길어질 때쯤.
끄아아아아아아오오오-!
어디선가 들려온 끔찍한 비명에 모두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에 두 골족의 시선이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자연스럽게 올라갔으니.
그들이 천장을 바라보는 것을 본 백검병단 조원들의 눈에 빛이 번쩍였다.
‘멍청하긴!’
‘싸움 중에 한눈을 팔다니!’
저들의 저런 멍청함과 안일함은 곧 자신들에게 큰 기회였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그간 받아 온 혹독한 훈련이 헛된 거나 마찬가지리라.
‘죽어라!’
‘뒈져라!’
백검병단의 조원들이 일시에 골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
그건 바로 그들이 받은 혹독한 훈련 중에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다는 거였다.
‘응?’
‘어?’
갑자기 머리 위로 어둑어둑한 그늘이 졌다.
이에 한 백검병단원이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든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그림자가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콰즉-.
어마어마한 충격이 한 사람의 목뼈와 척추뼈를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측-!
푸른 뇌전이 일어나며 돌풍이 주변에 몰아쳤고.
툭- 투둑-.
곧 3개의 머리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정확히 백검병단원만 죽인 그림자는 곧장 방향을 틀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난데없는 상황에 놀라 굳어 버린 두 골족이 시선을 마주했다.
“뭐, 뭐지?”
“그… 그러게나 말일세.”
일단 적들을 전부 죽여 준 걸 보니 아군인 듯싶긴 한데,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음, 근데… 아까 그 청년 뒤에 업힌 사람 말일세…….”
“게거품 물고 기절한 작자?”
“그래, 그 작자…….”
“그게 왜?”
“…혹시 도철 할배 아니던가?”
“에이, 설마…….”
“그치? 아니겠지?”
“…….”
“…….”
잠시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던 두 골족이 눈을 부릅뜨고 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이 시선을 돌렸을 때는 이미 유리의 모습이 사라진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
똑- 똑-.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가운데.
선명한 불빛이 나타나 어두운 갱도를 밝혔다.
그와 함께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페터 레만.
한 손에 발광석을 든 그는 지도가 없다면 골족조차 길을 잃는 개미굴 같은 갱도를 거침없이 누볐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손에 쥔 원형의 유리병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형 플라스크 안에 담긴 황금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액체가 비결이었다.
스르륵-!
원형 병 안에 둥둥 떠올라 한쪽으로 나아가려는 작은 액체 방울.
그것이 페터가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액체 방울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얼마나 걸었을까.
피르르르르-.
병 안의 액체가 요란스럽게 원을 그렸다.
그러다 방울이 유리병의 바닥을 콩콩 내리찍는 걸 보고 페터의 두 눈이 빛났다.
‘여기인가?’
발광석과 유리병을 한쪽에 가만히 내려 둔 페터는 맨손으로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1m 정도를 팠을까.
턱-.
손끝에 걸린 딱딱한 무언가에 페터가 우뚝 멈췄다.
‘있다.’
흙도 돌도 아닌, 차갑기 그지없는 무언가.
이를 느끼기 무섭게 페터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땅을 파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는 보지 못했다.
한쪽에 가만히 놓여 있던 원형 플라스크.
그 속에 담긴 액체 방울이…….
틱틱틱-.
격렬히 유리병에 부딪히며 요동치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