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의심 (5)
불야성의 상공에 떠오른 퇴각 신호.
그 위치를 본 유리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저리로 모이는 거지?’
백검병단의 병력이 모여들고 있는 곳에는 외부로 나가는 출입구가 없었다.
아니, 출입구는 고사하고 그냥 불야성의 한복판이나 다름없었다.
‘뭐, 애초에 대놓고 신호탄을 터뜨린 곳으로 병력을 집결시키는 것부터가 대책 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유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다음 상황이 쉽사리 상상 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가 옆에 앉은 도철에게 물었다.
“영감, 저기에 뭐 있어? 밖으로 나가는 비상 탈출구 같은 거?”
그런 유리의 물음에 도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다.”
“저 건물은 뭔데?”
“시청.”
도철의 답변에 유리는 턱을 쓸었다.
‘농성이라도 벌이려는 건가?’
신호탄이 터진 밑에 자리한 꽤 화려한 건물.
백검병단은 그 건물 앞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였다.
‘뭐, 지켜보면 알겠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불야성에서 탈출하려고 하는지.
유리는 백검병단의 동태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후 얼마나 흘렀을까.
‘아무 일도 없는데?’
약 30분 정도가 흘렀음에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유리의 의문이 짙어진 찰나.
드드드드-.
갑작스러운 진동이 불야성을 덮쳤다.
이에 유리의 표정이 일그러진 건 당연지사.
‘또야?!’
이 지긋지긋한 진동!
하여간 땅속에만 기어 들어오면 꼭 이런다니까!
불길함을 예고하는 진동에 유리는 잔뜩 긴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다행히도 이번의 불행은 그가 아닌 골족들에게 닥쳤다.
불야성을 쉼 없이 흔들던 진동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기괴한 소리가 불야성 전역에 울려 퍼졌다.
지이이이잉-!
치지지직-!
마치 무언가가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
실제로 매캐한 탄내가 불야성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유리의 시선이 불야성의 하늘… 아니, 지하 도시의 천장을 향했다.
천장에 생겨난 커다란 주홍빛의 점.
이는 점점 크기를 키우며 주변으로 번져 나갔으며, 점차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불야성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탄내는 바로 그곳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유리의 촉각이 곤두섰다.
그렇게 몇 초 뒤.
붉게 달아오른 새빨간 천장을 꿰뚫고 거대한 빛 기둥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지이이이잉-!
콰가가강-!
상상도 못 한 광경에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옆에서 터져 나온 도철의 경악성이 유리의 귀로 흘러들었다.
“드, 드래곤 브레스?!”
모든 걸 파괴한다고 알려진 드래곤의 최강 공격기.
그중에서도 골드 드래곤의 브레스가 바로 저런 형태라고 했었다.
도철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사이 빛 기둥은 서서히 가늘어졌고, 종국에는 완전히 소멸했다.
한 줄기 빛 기둥이 만들어 낸 광경을 보며 유리의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미친…….”
빛 기둥이 훑고 지나간 시청은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그대로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청이 있던 자리.
그 천장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보며 도철이 탄식했다.
“허… 왜 하필 저리로 모여드나 했더니만…….”
“왜?”
“저 자리의 지층이 가장 얇아서다.”
“아아…….”
유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야성의 입구는 거대한 절벽 속 동굴에 자리 잡고 있지만, 불야성이 전부 절벽 밑에 자리한 건 아니었다.
절벽을 벗어난, 가장 얇은 지층이 자리한 곳.
광선은 바로 그곳을 노린 것이다.
이에 뻥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던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또… 뭐야?”
커다란 구멍 속 작디작은 하나의 점.
그것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덕분에 유리는 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섬? 아니, 성?’
저건 분명 성이었다.
다만 12개의 기둥과 12쌍의 날개를 지닌, 하늘을 나는 성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도철이 주었다.
“마, 맙소사. 천해용궁이라니?!”
이미 한 번, 요람에 모습을 드러낸 전적이 있던 천해용궁이었지만, 당시 유리는 지하에 있었기에 이번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천해용궁?”
유리의 작은 되물음에 도철은 천해용궁에 눈을 떼지도 못한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홀린 듯 내뱉었다.
“드래곤 일족이 만들어 낸 최후의 보루. 마지막 로드 크라탄이 열두 동족을 융합해 만든 공중 요새이자… 최강의 결전 병기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천해용궁을 본 도철은 불야성에 구멍이 났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반쯤 넋이 빠져 있었다.
반면 유리는 익숙한 이름을 듣고 상념에 잠겼다.
‘마지막 로드 크라탄?’
흑룡고에서 왼쪽이와 접촉한 순간 보았던 기이한 환영.
그때 거인이 드래곤을 보고 외친 이름이 바로 크라탄이었다.
‘설마… 그건가?’
그렇게 도철과 유리가 각자의 사정으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응?”
“허?”
천해용궁에서 뻗어 나온 푸른 빛이 구멍으로 내리꽂혔다.
처음에는 또 다른 공격인가 싶었지만, 빛은 그저 수직으로 불야성에 내려앉을 뿐이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푸른 빛 속으로 백검병단의 병력이 뛰어드는 모습과 그로 인해 벌어진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 난다?! 날아?! 저게 뭐야?!”
푸른 빛 속으로 뛰어든 백검병단의 병력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에 도철의 설명이 뒤따랐다.
“마법이다.”
이에 유리가 눈을 끔뻑였다.
“농담이지? 마법이라니?”
세상에 마법이란 개념이 존재하긴 했다.
다만 그건 모두 지어 낸 허구의 이야기일 뿐.
실제로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게 이 세상의 상식이었다.
그런 유리의 물음에 도철이 작게 답했다.
“고대에는 마법이 존재했다고 한다. 다만 드래곤이 멸족하며 마법의 힘 역시 사라진 것뿐이지.”
“…그게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고?”
“마체술이 인간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힘이라면, 마법은 드래곤들에게서 빌려 오는 힘이었다. 그렇기에 드래곤이 사라지며 마법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게지.”
“그럼, 저건 뭔데?”
“천해용궁의 힘이다. 저 천해용궁을 이루고 있는 건 무려 열두 드래곤의 유해니까.”
유리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천해용궁을 바라보았다.
‘천해용궁…….’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광선도 뿜어내고, 심지어 마법이라는 힘까지 사용할 수 있는 성이 있다고?
그에 대한 유리의 감상은 간단했다.
“…가지고 싶다.”
어떤 물건을 보고 이토록 강렬한 욕망에 휩싸인 게 얼마 만이던가.
그간 유리의 욕망 중 90% 이상이 강함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머지는 10%는 재물에 대한 욕망이었는데 오늘은 한 15% 정도 되는 강렬한 탐욕이 일었다.
‘저거… 가지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떠돌이 생활을 해 온 유리가 품은 소원 중 하나.
그런 바로 내 집 마련의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천해용궁이 유리의 내 집 후보 1순위로 등극했다.
‘진짜 가지고 싶다!’
그렇게 유리가 천해용궁을 보고 입맛을 다시던 그때.
“저, 저?!”
옆에서 터져 나온 경악성에 유리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그러자 푸른 빛을 따라 느릿느릿 오르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이를 본 도철이 기함을 토했다.
“세경이 저놈이 기어코 저걸 가져가는구나! 막아야… 막아야 해! 저건 막아야 한다!”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싶은 도철의 뒷덜미를 유리가 잡아챘다.
“막긴 뭘 막아. 잊었어? 우린 오늘 여기 안 온 거라니까? 페터랑 그렇게 얘기 끝냈잖아.”
“하지만 저건… 끙…….”
유리에게 잡혀 팔다리를 파닥거리던 도철이 앓는 소리를 내며 축 늘어졌다.
이후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저렇게 기울어졌어도 쏟아 내리지 않는 걸 보니 청유가 굳어 버린 모양이군.”
그나마 다행이었다.
청유가 굳었으니 족히 수십 년은 안전할 터.
그렇게 도철이 안도하는 사이 마지막까지 주변을 경계하던 병력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끝으로 모든 백검병단이 철수를 끝마쳤다.
동시에 천장에서 내려온 푸른 빛도 사라졌고, 천해용궁이 날개를 펄럭이며 멀어져 갔다.
백검병단이 완전히 철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여.
이에 유리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그랬던 거군.’
퇴로를 확보하지도 않는 안일함.
불야성의 한복판으로 집결하는 어이없는 작전.
유리는 백검병단이 너무 대책이 없다고 여겼건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완벽한 대책이 있었던 거다.
천해용궁이란 상식 밖의 대책이 말이다.
그렇게 백검병단이 떠나간 뒤, 유리는 도철의 뒷덜미를 놓아주었다.
“영감, 우리도 얘기를 좀 할까?”
“뭔 얘기?”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유리를 올려다보던 도철.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곧 이어진 유리의 말에 딱딱히 굳어지고 말았다.
“용살자… 아니, 월왕과 관련된, 골족이 감추고 있는 진실.”
“…….”
도철은 자신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유리의 시선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
너른 대전 안.
단상 위의 화려한 의자에 앉은 이안 오클랜드.
그가 주먹으로 턱을 받친 채 물었다.
“실패했다?”
흡사 검주와도 같은 권태로운 눈빛이 향한 곳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페터 레만이 있었다.
그가 이안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어찌하여 실패했지?”
페터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답했다.
“골족의 영토, 불야성에는 그분의 유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덤덤한 목소리.
곧이어 심유한 눈길이 자신을 훑는 걸 페터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눈길은 이내 멀어졌다.
“흠… 골족 놈들이 그걸 어디다 숨겼을까.”
“…….”
“어쩔 수 없지. 없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리 잔잔하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말야.”
“…….”
“정말 없었나?”
“…그렇습니다.”
“그대가 찾지 못한 건 아니고?”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페터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 그대가 고생한 걸 알고는 있지만, 이번 일에 3년이란 시간과 엄청난 예산이 들어갔어. 심지어 천해용궁까지 막대한 기운을 소모하여 한동안 운영이 불가능할 지경이지. 들어간 품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으니… 그에 따른 책임은 져야 할 게야. 아무리 부단장이라고 해도 말이지.”
페터의 고개가 더욱 깊게 숙여졌다.
“어떤 벌이든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한 페터가 품에서 원형 플라스크를 꺼내 무릎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스륵-.
무형의 기운에 휩싸인 플라스크가 이안을 향해 날아갔다.
턱-!
플라스크를 손에 쥔 이안이 말했다.
“가서 근신하고 있게. 무슨 벌을 내릴진 내 천천히 생각해 볼 터이니.”
“그리하겠습니다.”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인 페터가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도 페터는 덤덤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대전을 빠져나온 페터.
쿵-!
대전의 문이 닫힌 순간 그의 눈에 미약한 이채가 스쳤다.
‘그건…….’
뒤돌아 나오기 전.
고개를 든 순간, 페터는 볼 수 있었다.
이안의 손에 들린 원형 플라스크 속 황금빛 작은 방울이 요동치는 걸 말이다.
‘분명 다른 곳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황금빛 방울은 이안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핏빛 기운이 황금 방울을 얽매어 끌어당겼다.
페터에게는 그게 마치 황금빛 방울이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이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한 모습으로 비쳤다.
“…….”
잠시 문을 등지고 멈춰 선 페터의 머릿속에 유리의 목소리가 흘렀다.
[가. 돌아가서 직접 확인하고 비교해 봐. 과연 당신이 믿고 따르던 용살자의 전인이란 자가 진짜일지… 아니면, 내가 진짜인지. 직접 비교해 보고 결론을 내려.]어째서일까.
페터는 자신을 당당하게 바라보던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쉽사리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더불어 마음속에 피어난 한 줄기 의심.
‘단장님은 정말… 진짜가 맞는 걸까?’
며칠 전이라면 불경하다고 스스로 자책했을 생각.
하지만 너무도 당당했던 그 황금빛 눈동자가 뇌리에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마음속에 피어난 한 줄기 의심은 더욱더 단단히 뿌리를 내려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