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비사 (2)
도철이 너무도 진중해, 처음에는 살짝 놀랐던 유리.
하지만 그는 곧 평온을 되찾고 뚱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알아.”
고대 동방.
그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하나의 상식이었다.
고대라 불리는 아주 먼 옛날.
라이먼트 대륙에서 동쪽으로 배를 타고 십수 년을 가면 나온다는 하나의 대륙.
그곳은 당시 라이먼트 대륙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신비의 땅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대륙이 붕괴하며 탈출한 이들이 바로 고대 동방의 사람들이라는 게 현재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고대 동방의 땅이 붕괴돼 바닷속에 가라앉았단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런 유리의 이야기에 민수가 코웃음을 쳤다.
“설마 우리가 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나 해 주자고 그 바쁜 와중에 열흘 가까이 회의를 한 거 같으냐?”
“그럼?”
유리의 되물음에 도철이 마저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륙은 처음부터 오로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뿐이었다. 십 년 넘게 동쪽으로 배를 몰면 동대륙이 나온다는 것도, 그리고 그 대륙이 지금은 가라앉아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어?”
유리의 눈에 혼란이 일어났다.
평생을 사실이라 믿고 살았던 상식이 부정당했으니 그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럼… 고대 동방은 뭔데? 그게 전부 지어 낸 이야기였다고? 마체술은? 그것도 고대 동방에서 비롯된 거라며? 그것도 거짓이라고?”
유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럴 수가 있나?’
만약 고대 동방의 이야기가 전부 거짓이라면, 고대 동방의 현인에게 비롯되었다는 레드너 가문의 역사는 전부 거짓이 되는 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게 말이 돼? 마체술뿐만이 아니야. 고대 동방에서 비롯되었다는 문자, 의복, 건축, 언어와 관습… 심지어 당신들이 쓰는 이름까지 전부 고대 동방의 것이잖아? 이 모든 게 전부 거짓이라고?”
고대 동방의 문화는 이미 오랜 시간 라이먼트 대륙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에 따른 실제 자료가 대륙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거짓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말이 된다고 해도 누가 무슨 이유에서 그런 거짓을 세상에 퍼뜨렸단 말인가?
유리가 살짝 흥분한 모습이 되자 서준이 살짝 손을 내저었다.
“진정해라, 우리가 언제 고대 동방의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 고대 동방으로부터 전해진 것들이 거짓이라고 했냐?”
“……?”
“동방의 땅에서 그들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전해진 수많은 문화가 이 땅에 녹아든 것도 전부 진실이지.”
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방의 땅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지만, 동방의 땅에서 온 건 사실이다?”
“그렇지.”
“그게 엄마 아빠 없이 애새끼가 세상에 홀로 태어났다는 거랑 뭐가 달라?”
“큭큭, 가끔은 말이 안 되는 말이, 말이 되기도 하는 거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것처럼 말이야.”
“…뭐?”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을 끔뻑이는 유리를 보며 도철이 명확한 답을 주었다.
“고대 동방이란 나라는… 아니, 고대 동방이란 곳에서 왔다고 칭해지는 존재들은 차원의 난민들이었다. 그들은 동방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나라를 버리고, 멸망하는 차원으로부터 도망쳐 우리의 세상에 온 이들이었다.”
“…….”
유리는 말이 없었다.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분석하던 그의 미간이 절로 좁혀들었다.
“…농담이지?”
멸망하는 세상에서 도망쳐 차원을 넘어 다른 세상에서 온 이들이라니.
이를 듣자마자 믿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 유리의 물음에 가연이 피식거렸다.
“비싼 약주까지 처먹여 가며 우리가 네놈과 농담 따먹기나 할 한갓진 노인네들로 보이는 게냐?”
“응.”
“…처마시고 있는 걸 뺏기고 싶은 게지?”
가연이 눈을 부라리자 유리는 약주를 홀짝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진실이라 이거지?’
말이 안 될 거 같지만,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을 해야지만 설명할 수 있다.
고대 동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모든 문화.
그리고 지금도 실존하는 고대 동방의 자료와 유물들.
그 모든 게 허구의 것이 아니란 것을 설명하려면 마이스터들의 말이 진실이어야 하는 거다.
때문에 유리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것들. 내가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을 버려야 한다.’
고대 동방의 진실을 듣기에 앞서, 이미 보았지 않은가.
드래곤의 유해로 만들어진 하늘을 나는 용궁에 드래곤 브레스와 마법까지.
그 모든 게 자신이 가진 상식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여 더는 놀라지 않고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현시대의 상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리 결정하자 유리의 눈빛이 한결 심유해졌다.
그가 마이스터들을 보며 물었다.
“그들, 동방의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 있었을 거 같은데?”
단번에 분위기가 바뀐 유리를 보며 마이스터들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있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명족이라 불렀다.”
“명(明)족?”
유리의 작은 되물음에 도철이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당시 차원을 넘어온 이들은 그 수가 수만 명에 달했다.”
“엄청 많았네?”
“적은 거지. 한 나라의 모든 백성이라 치기에는.”
“그 수만 명이 전부 한 나라에 속한 이들이었단 말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멸망하는 차원에서 생존한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룬 거였다. 다시 말해 한 차원의 생존자가 고작 수만에 불과했다는 뜻이지.”
“많이도 죽었네. 그래서 그게 그들이 명족이라 불린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
“그 수만 명의 사람을 이끄는 3개의 가문이 있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대한 빛의 가문인 명가라 칭했지. 그리고 그 명가란 말이 현시대에 이르러서는 명문가를 뜻하는 말이 된 거다.”
“호오?”
“흠흠, 여튼! 그 명가가 차원의 난민들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명족이라 부르게 된 게다.”
“명가와 명족이라… 재밌네.”
고대 동방의 진실.
아니, 세상에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 유리의 눈이 반짝였다.
“그 세 명가는 어떤 곳이었어?”
“흑일명가, 금월명가, 은천명가. 이것이 당시 명족을 이끌던 위대한 세 가문의 이름이다.”
이를 들은 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은빛 하늘과 금빛 달, 그리고 검은 태양이라… 참 공교롭네.’
은천명가를 제외한 금월명가와 흑일명가.
그 둘을 상징하는 말이 어딘가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하지만 유리는 딱히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굳이 재촉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분명 결말에 도달할 테니 말이다.
그런 유리의 생각을 아는 것일까.
도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300여 년 전 나타난 명족들과 당시 원주민들… 즉, 우리의 조상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지. 난데없이 나타난 불청객을 누가 좋아하겠어? 게다가 멸망하는 세계에서 생존해 온 그들이 약했을 리 없지. 그런 이들이 한 지역을 차지해 나라를 세우는 걸 기존의 국가들이 반겼을 턱이 있나.”
마치 그 시대의 상황이 뻔히 보인다는 듯한 유리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봤다. 그 이유로 당시 모든 국가와 세력이 명족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향을 잃은 명족은 무조건 우리의 세상에 정착해야만 했지. 그럼 그들이 어찌했을 성싶으냐?”
과연 이것도 알 수 있겠냐는 듯한 서준의 질문에 유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별거 있어?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평생 살아야 할 집에 영영 불청객으로 남기 싫으면 이것저것 가져다 바치면서 주인의 환심을 사는 수밖에.”
“호오? 예를 들면?”
“주인의 눈에 나라를 세우는 게 거슬려 보인다면 나라를 만들지 않고, 주인이 객의 힘을 두려워한다면 힘을 나눠 주는 거지.”
“네놈,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유리의 말이 사실이었다.
기존 원주민들의 배척에서 벗어나고자 명가는 명족 전부를 대륙 곳곳으로 퍼뜨렸다.
나라를… 아니, 작은 집단조차 이루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간 명족들이 현대 마체술의 근간이 되는 마나의 운용법을 세상에 가르쳤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힘의 근간을 세상에 나누어 준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퍼져 나간 명족과 그 후손들이 바로 오늘날 고대 동방의 현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된 게다.”
그런 가연의 추가 설명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열심히도 살았네.”
유리의 표현대로 명족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 뿌리를 내려 안착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열심히 살았다.
힘을 가진 자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힘을 포기한다?
유리로서는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의 멸망을 겪은 자들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인 건가?’
그들은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자존심을 내던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리가 당시 명족들의 심정을 추측하는 사이 마이스터들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명족의 등장과 그들이 베푼 모든 것은 이 세상의 문명을 몇 단계 진보시켰다.”
“문헌에 보면 당시를 문명의 황금기라 칭하더라.”
“문제는 그 황금기가 화를 불러왔다는 게지.”
“세상의 급격한 발전에 심기가 불편해진 이들이 나타난 거다.”
이를 들은 유리에게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드래곤.”
“맞다. 그들이지.”
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인간과 유사 인종들에게 드래곤은 현세의 신과 다름없었다.
감히 대적할 존재가 없는 최강의 생명체.
하지만 명족의 등장과 함께 힘을 지니게 된 사람들의 눈에 현세의 신이라 칭해지던 드래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무적이자, 기적이나 다름없었던 마법.
오로지 드래곤에게 허락을 구한 소수의 몇몇만이 누리던 그 힘이 명족이 세상에 뿌린 마체술로 인해 빛이 바래 버렸다.
그로 인해 현세의 신으로 군림하던 드래곤의 위상이 점점 추락하고, 그들을 향한 두려움이 옅어져 갔다.
극복할 수 있는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법.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드래곤들은 세상을 명족의 등장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다.
그로 인해 1,100년 전.
모두가 신화로 기억하는 백년전쟁이 발발했다.
“인간뿐 아니라 드워프, 엘프, 거인족까지… 모든 인류가 뜻과 힘을 모아 드래곤에 반하여 대항을 이어 나갔다.”
고작 100마리도 되지 않았던 드래곤들.
한데, 그들은 강해도 너무도 강했다.
드래곤들은 전쟁 내내 자신들이 어째서 현세의 신이라 불렸는지를 똑똑히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명족과 명족이 전해 준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를 몇 단계나 진화시킨 마체술이란 경이로운 기예.
그리고 오랜 세월 끝에 하나로 집결된 명족.
그 모든 게 불가능이라 여겼던 드래곤과의 전쟁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인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건 명족을 이끄는 3명의 절대자였다.
“그 신화적인 전쟁에 참전한 명족들의 선두에는 명가의 주인인 삼왕이 있었다.”
은천명가의 천왕.
흑일명가의 일왕.
금월명가의 월왕.
드래곤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던 절대자들.
그들 덕분에 몇 년이면 끝났을 전쟁이 무려 백 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다 전쟁의 끝 무렵… 그가 나타난 거다.”
“아니지! 그가 나타났기에 전쟁이 끝을 고할 수 있었던 게지!”
“신화의 종점을 찍은 자.”
“월왕 이한.”
마이스터들이 돌아가며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유리의 뇌리에 선명히 틀어박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