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훈수 (2)
당장에라도 골족의 영역을 떠날 것처럼 서둘렀던 유리.
하지만 그건 그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와 소월 용병단은 다음 날이 됐음에도 여전히 골족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번 의뢰에 대한 보수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리가 골족을 찾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사용할 검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유리는 자신이 사용할 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검은 마이스터 도철이 직접 벼려 준다고 약조한 상황.
그 변덕쟁이 늙은이가 무슨 트집을 잡으며 갑자기 해 주기 싫다고 말을 바꿀지 모르니 재촉조차 못 하고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리 일행이 떠나지 못한 두 번째 이유.
그건 바로 메이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모였니?”
유리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일행 전부가 메이의 부름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에 군터가 메이를 향해 물었다.
“이렇게 돌아다니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한동안 침상 생활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던 마이스터들의 말과 달리 메이는 너무도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안색이 조금 창백한 것을 보아 아직 완치된 건 아닌 모양.
약간의 걱정이 담긴 군터의 물음에 메이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 마렴. 이 정도 내상도 다스리지 못할 거였다면 이미 죽어도 수백 번은 더 죽었을 테니까.”
그녀의 내상이 심각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더 상태가 좋지 못했던 적이 수두룩했다.
그때도 이를 악물고 움직였었는데.
골족의 수준 높은 의약품과 영약, 그리고 가연과 서준의 치료를 받는 지금은 무리한다고 말할 축에도 끼지 못했다.
가볍게 군터의 걱정을 일축시킨 메이가 말을 이어 나갔다.
“텟샤에게 얘기는 들었다. 곧 떠날 거라고?”
그녀의 물음에 좌중의 시선이 유리에게 돌아갔다.
용병단의 일정을 결정하는 건 단장인 그의 권한.
‘네가 답해’라는 단원들의 눈빛에 유리가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네 검은 물론이고, 다른 아이들이 받기로 한 무구도 아직 완성이 안 됐으니… 떠날 때까지 제법 시간이 남아 있겠지?”
“그으런데요오?”
“그 시간, 내게 줄 수 있을까?”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 유리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시간을? 갑자기? 왜요?”
“훈수를 좀 둘까 하고.”
“훈수?”
유리의 짤막한 되물음에 메이가 소월 용병단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조카인 테레시아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아이들 역시 하나같이 재능이 출중했다.
아니, 이건 출중하다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이런 녀석들만 모아 뒀나 기가 찰 노릇.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싱 가문의 여자아이조차 여느 명가의 직계와 비교해도 결코 모자란 게 아니야.’
이제 고작 21살의 어린아이들이 공인 4단을 넘어 5단을 바라보고 있다니.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이렇게 하나의 소속으로 모여 있는 게 참으로 놀랍고.
또한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있어 요람의 후배들이라니 참으로 대견하기까지 했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찬란히 빛날 아이들이 모자라게 느껴지는 건 유리라는 거대한 태양이 떡하니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조카인 테레시아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없던 테레시아가 난데없이 부탁이란 걸 해 왔다.
그리고 그 부탁은 놀랍게도 자신과 소월 용병단을 지도해 달라는 거였다.
‘내 몸 상태를 내내 옆에서 간호해 온 텟샤가 모를 리 없는데도 그런 부탁을 해 왔다는 건…….’
그건 테레시아가 그런 부탁을 청해야 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며.
또한…….
[이제는 제가… 유리의 등을 보고 쫓기도 힘들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어쩌면 앞으로 전 그 녀석이 나아간 발자취만을 좇아 평생을 따라갈지도 모르죠. 아니, 분명 그럴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진심으로 간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려 주고는 싶어요. 네 뒤를 아직 내가 쫓고 있다고… 너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직 널 쫓고 있다고…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알려 주고는 싶어요.]이미 과거에 자신을 추월한 유리가 앞만 보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는 걸 테레시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도무지 쫓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손을 뻗어 불러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여 죄의 미궁에서도.
베오그라드의 전쟁에서도.
그리고 이번 백검병단이 골족을 습격하는 상황에서도.
유리가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나서는 걸 늘 바라보기만 해 왔다.
그 같은 현실에 테레시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자신이 유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 거고.
자신의 존재가 유리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유리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에게 가해질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여 오랜 고민 끝에 테레시아는 어렵사리 메이에게 말을 꺼냈고, 그런 조카의 진심에 고모가 응해 주었다.
“그래, 훈수. 너희에게 훈수를 좀 둘까 하는데?”
“흐음…….”
메이의 이야기에 유리의 눈이 살짝 게슴츠레 변했다.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이해했고, 딱히 싫은 건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뭔가 찝찝해하는 듯한 기색.
호의를 단순히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리의 반응에 메이는 피식거렸다.
“너, 아직 신검에 대한 실마리를 잡지 못했지?”
“…….”
유리가 움찔거렸다.
이를 본 메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요한 아저씨보다는 못하다고 해도 가볍게 훈수 정도는 둘 실력은 되는데…….”
“…….”
“어때? 내 훈수를 받아 쓸 의향이 있니?”
미소를 머금은 메이의 물음에 벌써 그녀 곁에 자리한 군터와 친구들이 유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메이가 말하는 훈수.
그게 말이 훈수지 사실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조언임을 그들도 알고 있는 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그림자 여왕이라 불리는 명인의 조언을 언제 들어 본단 말인가.
이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였다.
당장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뭐 하냐는 친구들의 눈빛 공세에 유리가 옅은 한숨 섞인 물음을 내뱉었다.
“…공짜죠?”
그 와중에 확인까지 하는 유리를 보고 메이는 어이없으면서도 재밌다는 듯 웃었다.
“물론.”
“좋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훈수꾼 아줌마.”
그렇게 유리와 메이가 결론을 내리자 주위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 * *
메이가 해 주겠다는 훈수는 대련으로 시작됐다.
유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이 동시에 메이와 대련을 하는 방식.
이에 테레시아가 우려를 표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너무 무리하셔서 내상이 덧나거나 하시면…….”
“이런 부탁을 해 놓고는 이제 와서 걱정하는 거니?”
“…죄송합니다.”
“후후, 농담이야. 그리고 걱정할 거 없단다. 나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라 가볍게 재활 훈련을 해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말인즉슨 자신들 다섯을 상대하는 것 정도는 메이에게 가벼운 운동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이에 테레시아는 걱정을 접었다.
‘저리 말씀하실 정도니 문제는 없겠지.’
메이의 성격상 무리라고 생각된다면 분명 거절하였을 터.
그녀가 하자고 하는 거면 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하여 테레시아는 걱정을 접고 현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탁해서 시작된 일이야.’
그러니 그 누구보다 지금의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고모님의 마음에 감사함을 표하는 길일 거다.
그렇게 테레시아가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사이, 다른 이들도 들끓는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요즘 맨날 유리만 다쳐…….’
‘이번 기회를 최대한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배고프다.’
요람에서부터 유리와 함께했고,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왔었다.
하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테레시아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와 점점 벌어지는 격차.
그걸 알고 있음에도 쫓을 수 없는 현실.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유리에게 짐이 되리란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실력 증진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던 와중에 던져진 메이의 제안은 그들에게 마른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러니 세 사람도 상당히 진지하게 열의를 보였다.
한편 테레시아를 비롯한 이들이 보이는 강한 열의까지는 아니어도, 율리아 역시 이번 기회를 꽤 반기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였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니?”
창이 아닌 나무 봉을 든 메이의 도발에 다섯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돌변했다.
동시에 그들의 대형이 자연스럽게 갖춰졌다.
가장 선두는 뽀삐.
두 번째로 군터와 세 번째에는 아린.
가장 후미의 율리아.
마지막으로 대열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은 테레시아.
그들의 대형을 본 메이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하루 이틀 손을 맞춰 본 솜씨가 아니구나.’
싱 가문의 아이가 좋은 머리로 자연스럽게 진형을 맞춘 것과 달리 나머지 넷은 습관처럼 진형을 구사한 거였다.
오랜 시간 연습해 온, 가장 효율적이고 위력적인 최적의 대형으로 말이다.
메이가 그들을 향해 봉을 까딱거렸다.
“진단 좀 해 보려고 하는 거니까… 전력으로 오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월 용병단원들이 메이를 향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진형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방패이자 벽이며, 철퇴가 되는 뽀삐.
호시탐탐 틈을 노리며 상대를 몰아넣는 군터.
모든 공격의 흐름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주는 윤활유 역할의 테레시아.
끊임없이 지원사격 하며 위기를 반전시키고 기회를 창출해 내는 아린.
그리고 눈치껏 비어 있는 공격의 여백을 채워 나가는 율리아까지.
다섯이 펼치는 맹공이 쉼 없이 메이를 몰아쳤다.
하지만 그토록 위력적인 다섯 사람의 합격은 메이를 스치지도 못했다.
너무도 평온하게 맹공 사이를 유영하는 메이 윈체스터.
과연 이게 아직도 부상에서 완치가 되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너무도 여유로웠다.
반면 시간이 흐를수록 맹공을 펼치고 있는 다섯 사람의 이마에만 땀이 맺혀 갔다.
그리고 오래되지 않아 결판이 났다.
빡-!
나무 봉에 오금을 얻어맞은 뽀삐가 너무도 손쉽게 무릎을 꿇었고.
퍼버벅-.
이어 잔상을 그리며 회전한 봉에 군터, 뽀삐, 테레시아가 얻어맞고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마지막으로 등짝을 얻어맞고 호쾌하게 앞구르기를 하는 아린까지.
그것으로 다섯 사람의 맹공은 허무히 끝을 맺었다.
“꺄옷!”
“윽!”
“아욱!”
“큭!”
“배고프다…….”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신음.
이를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오? 저거 괜찮은데?’
대체 어떻게 때린 걸까?
고작 나무 봉에 얻어맞았을 뿐이건만, 다섯 사람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맷집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뽀삐마저도 말이다.
‘잘 봐 둬야겠네.’
아마도 무언가 비결이 있을 터.
배워 두면 요긴하게 쓰일 기술 같으니 유리의 눈이 절로 빛났다.
한편, 그사이 메이는 연신 끙끙거리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누워서 들으렴.”
그리 운을 뗀 메이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너희 모두 나이에 비해서는 경험이 많은 편이구나. 그리고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숙지하고 있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테레시아, 아린, 뽀삐, 군터는 유리와 무수히 싸워 왔다.
그 경험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가 보기에 그들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희의 문제는 다수로 강자를 상대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거란다.”
“예?”
테레시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자 메이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보다 강한 사람과 싸워 이겨 본 게 언제니, 텟샤?”
“그거야…….”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너희보다 강한 상대에게 다수가 아닌 혼자 덤벼들었던 적이 언제지? 혼자서 강자를 이겨 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
그 물음에 테레시아는 물론 다른 이들도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유리와 일대일 대련을 해 왔었다.
하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대련 방식 대부분이 유리 대 다수의 싸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강한 사람을 상대로 다수가 덤벼드는 게 너무도 당연해져 버렸다.
충격을 받은 이들을 보며 메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너흰 나와 일대일로 대련을 해야겠구나.”
다수로 강자를 상대하는 감각은 이미 이 아이들에게 충분했다.
하여 메이가 이들에게 알려 줄 건 혼자서 강자와 싸워서 이기는 감각이었다.
저 아이들이 오랫동안 잊고 지낸 바로 그 감각을 깨워 줘야 할 터.
그런 메이의 진단에 모두가 납득하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렇게 모두가 나가떨어지자 이번에는 유리가 어깨를 휘휘 돌리며 다가왔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하지만 메이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유리를 막았다.
“미안하지만, 너와는 대련하지 않을 거란다.”
“엉? 어째서?!”
놀란 유리를 보고 메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현재 내 몸 상태가 너와 대련할 수준까지는 되지 않았거든. 그리고 애초부터 너와는 대련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이거 차별 아닙니까?”
“내가 신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 언제 대련을 한다고 했니?”
“……?”
“지금 너에겐 대련보다는 이 방식이 더 효과가 좋을 거 같구나.”
“어떤 방식요?”
유리의 물음에 메이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논투(論鬪).”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