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36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436화(436/445)
436화. 훈수 (3)
“논투?”
유리가 되묻는 사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친구들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도 논투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좌중의 시선에 메이가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를 해석하면 싸움을 풀어 논하는 거란다.”
“말싸움? 오? 주둥이로 시비 터는 거면 내 전문 분야이긴 합니다만?”
“…그게 아니라, 네가 하고자 하는 공격을 입으로 표현하는 거야.”
“엉?”
“예를 들면 내가 말하는 공격을 듣고 이를 어떻게 맞받아칠지 생각해서 입으로 말하는 거지. 그리고 난 그걸 듣고 다시 내가 행할 수를 말로 받아치는 거고. 이런 식으로 투로를 이어 말하는 게 논투란다.”
“흠…….”
“단, 이 모든 건 네가 진짜로 행할 수 있는 투로여야 한다는 게 중요해.”
“내가 막 화신 같은 걸 뽑아서 공격한다느니… 그러면 안 되다는 거군.”
“바로 그거지.”
설명을 들은 유리의 표정이 살짝 미심쩍게 변했다.
“그게 의미가 있나?”
직접 싸우는 것도 아니고 입으로 싸운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는 유리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메이가 말한 논투가 무슨 소용이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율리아만이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주변의 약간 시큰둥한 반응에 메이는 미소 지었다.
“한번 해 보겠니?”
“뭐, 그러죠.”
“내가 먼저 시작하마. 처음은 우리가 10m를 떨어져 있다고 가정할게.”
유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메이가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0.6초 동안 8m 30㎝의 거리를 주파. 네 정면의 15도 방향에 서서 너의 심장, 오른쪽 어깨, 오른쪽 눈을 0.1초 동안 차례로 찌른다.”
메이의 설명에 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런 식이란 거지?’
자신이 가진 무기의 길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속도.
그 외에도 힘과 위치 등등.
자신이 그릴 수 있는 투로를 정확히 수치화하여 이를 입으로 표현하는 것.
그게 메이가 말한 ‘논투’의 핵심이었다.
대략적인 방법을 이해한 유리가 빠르게 대응했다.
“0.1초 동안 뒤로 30㎝ 물러난 뒤, 몸의 중심축을 45도로 비틀어 0.2초 동안 2m 전진, 시간차 없이 바로 당신의 오른 팔목을 향해 베기 공격.”
“곧장 제자리에서 오른쪽으로 360도 회전. 회전하는 도중 창대의 중간 부분을 잡고, 회전력을 이용해 너의 허벅지를 강타.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0.4초.”
“그럼 나는…….”
곧장 반격하는 유리.
이후 메이도 지지 않고 다시금 반격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를 옆에서 잠잠히 듣고 있는 좌중의 머릿속에 유리와 메이가 빠르게 교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맙소사! 저런 식으로 싸우는 거였구나!’
‘이게… 내가 보지 못하는 극쾌의 영역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었군.’
만약 유리와 메이가 직접 맞부딪혔다면 보는 것조차 허용치 않았을 싸움의 순간순간.
이를 두 사람이 논투를 벌여 상세히 설명해 주는 덕분에 생생히 머리에 담을 수 있었다.
그 수준 높은 공방의 해설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에겐 기연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좌중은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논투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후 유리와 메이의 논투가 50수를 가뿐히 넘어갔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의 대답이 조금씩 늦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다음에는 반 박자 늦게.
그다음에는 한 박자 늦게.
점차 늦게 답을 하는 유리의 표정은 살짝 굳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응이 늦어지는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건 실제로 싸우는 것과 달라.’
싸움은 단순히 수를 생각해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수를 예측하고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싸움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유리는 수를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본능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경우의 비중이 더 높았다.
이는 경지가 낮았을 때보다, 점점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더욱 그런 경향이 짙어졌으니.
그건 극쾌의 영역에서 싸움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고 움직이면 늦으니까.’
극쾌의 영역에서는 상황을 보고 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지극히 적었다.
머리보다는 감각으로 판단을 내려야지만, 극쾌의 영역에서의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감각적인 판단과 움직임이 완전히 배제된, 오로지 계산된 수로만 싸우는 논투는 유리에게 팔다리 하나씩을 자르고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렇게나 감각에 의존해 싸워 왔었구나.’
감각으로 때우던 순간을 계산된 투로로 대처하려니 자신이 얼마나 감각에 의존해 왔는지 더더욱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느려지던 유리의 대응은 어느 순간 완전히 멎었고.
메이가 눈웃음을 지으며 물어 왔다.
“어때? 어렵지?”
이에 유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쉽지 않네. 감각적인 걸 계산적인 걸로 바꾼다는 게.”
“우리처럼 속도에 중점을 둔 마체술을 익힌 사람들은 필시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단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냐. 굳이 이를 교정할 필요도 없고.”
“그럼 이걸 왜 하는 겁니까?”
“순서를 바꿔 보라는 거야.”
유리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순서?”
“체화한 걸 이해하는 게 아닌, 이해한 걸 체화해 보라는 거지.”
메이의 말에 남들은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을 지을 때.
“아!”
유리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 소리군.’
지금껏 유리는 주로 싸움을 통해 우선 몸으로 체화를 한 뒤 이를 나중에 머리로 이해를 해 왔었다.
하지만 이 논투에서는 본능적인 감각을 배제하니 머리로 먼저 이해를 해야만 했다.
메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신검의 경지에 도달할 실마리인 건가?”
신검은 마음을 단련한 끝에 얻을 수 있는 거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마음을 단련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유리의 물음에 메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가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검이 뭐라고 생각하니?”
“마음을 단련한 끝에 얻게 되는 절대의 힘.”
“요한 아저씨가 아무것도 안 가르친 건 아닌가 보네. 그래, 맞단다. 신검은 수없이 마음을 단련한 끝에 얻을 수 있지. 그럼 그 마음이란 건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유리도 이미 예전부터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 오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물론 이미 요한에게도 물어본 상태.
꿈속에서 만난 그는 유리의 질문에 이리 답해 주었다.
“고민… 이라고 요한 영감탱이가 알려 줬습니다만?”
고민하라는 것.
요한은 오로지 그리 말했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인지 되물으니 ‘내가 말한 고민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는 것 또한 단련이다!’라면서 설명을 거부했다.
그런 유리의 이야기에 메이는 배시시 웃었다.
“하하, 아저씨다운 설명이었네.”
“이게 맞는 겁니까? 영 사기 당한 느낌인데?”
“마음을 어떻게 단련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설명의 차이가 있단다. 고민하라는 것. 그건 요한 아저씨의 설명인 거고.”
“그럼 아줌마는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마음의 단련이… 깨달음을 얻는 거라고 생각한단다.”
“흠, 깨달음이라…….”
팔짱을 낀 채 턱을 쓰는 유리를 보며 메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작든 크든, 얕든 깊든. 수차례에 걸쳐 얻은 깨달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층층이 쌓인 깨달음이 네가 신검으로 나아갈 계단이 되어 줄 거란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올 때까지 노력해야지.”
“너무 막연한 답 아닙니까? 방법 같은 건 없어요?”
“가장 좋은 건 너보다 깨달음을 많이 쌓은 자를 통해 그 깨달음을 엿보는 거란다.”
“정론(定論)이네.”
“정도(正道)인 거지. 그러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보렴.”
“나보다 강한 자를 찾아다니면서 대련을 하면 되려나?”
“그것도 한 방편이겠지. 하지만 너보다 강한 자가 꼭 많은 깨달음을 쌓은 건 아니며,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반드시 강자인 것도 아니란다.”
잠시 말을 끊은 메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
언젠가는 유리가 머문 지금의 경지에 저 아이들도 도달할 것이다.
그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너보다 약한 이도, 혹은 마체술을 익히지 않은 사람도 너보다 많은 깨달음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네게 필요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
“깨달음을 얻는 자아가 전부 다르기에 개개인의 깨달음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 보렴. 강자와의 대련도 좋고, 약자와의 대련도 좋아. 그렇게 얻은 그 경험을 성찰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깨달음이 찾아올 거다.”
메이가 유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논투는 내가 깨달음을 얻었던 방식 중 하나란다. 그러니 너도 고민하고 생각해 보렴. 내가 이 논투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지. 그리고 네가 여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깨달음을 얻은 방식이라고는 했지만, 이 방식 자체가 그녀가 얻은 깨달음이었다.
깨달음을 얻어 논투의 방식을 고안해 냈고, 이를 통해 다른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방법은 알려 주었다.’
과연 유리가 논투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게 자신이 얻은 깨달음과 같을까?
그 무엇 하나 메이는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방법을 알려 주었을 뿐.
이를 통해 무언가 결과를 이뤄 내는 건 유리에게 달린 일이리라.
그렇게 결론을 내린 메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다들 쉴 만큼 쉬었지? 다시 시작해 보자꾸나.”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널브러져 있던 이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메이와 일대일 대련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그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유리.
그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이런 게 참된 교육자인가?”
몸 상태가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싫은 내색,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일대일로 한 사람씩 봐주는 메이.
말보다는 주먹, 주먹보다는 몽둥이가 먼저 나가는 요한의 가르침과는 사뭇 다른 방식에 유리는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자애롭게 가르침을 주는 메이를 지켜보던 유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랑은 잘 안 맞네.”
아무래도 자신은 요한의 방식이 더 익숙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렇다고 하더라고.”
유리가 메이에게 들은 훈수… 아니, 조언을 털어놓자,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도철이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그게 지금 네놈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내가 생각해 봤거든?”
“뭘?”
“꼭 정도가 옳은 걸까? 때론 사도(私道)가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뭔 헛소리를 하고 싶은 게야?”
“혹시 모르잖아? 평소에 깨달음을 자주 얻은 장소나 환경이라면 깨달음이 또 올지도?”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깨달음이란 게 원래 자리빨을 타는 거였냐?”
도철의 물음을 사뿐히 무시한 유리는 제 할 말만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 보니까, 내가 깨달음을 주로 얻은 장소가 대장간이나 용광로 근처대?”
“…어디?”
“대장간이나 용광로 근처.”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응.”
“칼질 하는 놈이 대장간이나 용광로 근처에서 뭔 깨달음을 얻어?”
“어떻게 하면 칼질을 더 잘하게 될지에 대한 깨달음?”
점점 가늘어지는 도철의 눈매를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여기 있으면 뭔가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죽치고 있는 거지.”
“…….”
당당하게 정도가 아닌 사도… 아니, 꼼수를 쓰러 왔다고 밝히는 유리를 빤히 바라보는 도철.
그 눈빛에 담긴 의미는 분명 ‘오래 살다 보니 별 미친놈 다 보겠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