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42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442화(442/445)
442화. 역작 (3)
처음에는 메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멀뚱히 눈만 끔뻑거리던 테레시아.
하지만 이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흐음…….”
테레시아의 답에 메이의 눈이 살짝 게슴츠레 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 거니?”
“네.”
“그렇구나.”
메이는 애매모호한 말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요새 그 아이 뭐 하니? 요새는 도통 안 보이던데?”
몇 주 전.
잠시 어딜 다녀온다고 사라졌던 유리가 무려 닷새 뒤에 나타났으니.
그날 골족이 시끄럽게 뒤집어졌다.
바로 유리가 잘라 온 드래곤 본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새 유리가 자주 보이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드래곤 본 때문이었다.
“유리 바빠요.”
“뭐 때문에 그리 바쁜 거니? 요샌 나랑 논투도 하러 오지 않던데?”
최근엔 논투는 뒷전이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얼굴 구경도 못 하게 된 유리였다.
그런 메이의 의문에 테레시아가 답을 줬다.
“걔 요즘 장사를 하고 다니거든요.”
“장사? 그 아이가 골족에게 팔 물건이 있던가?”
“있죠, 드래곤 본.”
“응?”
메이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래곤 본? 그 지하 미궁에 있는 그거?”
“네, 그거요.”
“드래곤 본을 판다고? 그건 원래 골족의 것인데?”
유리와 소월 용병단이 골족과 맺은 계약은 미궁 탐사에 따른 호위일 뿐이었다.
미궁 탐사에서 얻어지는 모든 건 결국 골족의 소유.
이는 드래곤 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골족한테 팔고 있다니?
메이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고모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드래곤 본을 파는 게 아니라, 그걸 잘라 주는 노동의 가치를 팔고 있죠.”
“그러니까 네 말은… 드래곤 본을 잘라 주는 일에 대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니?”
“맞아요.”
“그게 돈벌이가 돼?”
“너무 잘돼서 문제죠.”
처음 드래곤 본을 잘라 온 날.
유리는 일부러 드래곤 본을 전부 자르지 않았다.
대신 도철에게 준 것과 비슷한 크기의 드래곤 본 덩어리만 잘라 많은 골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이스터들에게 넘겼다.
이에 전설적인 재료를 손에 쥐게 된 마이스터들은 물론, 여타 다른 골족들까지 흥분한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왜 이것밖에 없냐!’, ‘그 큰 드래곤 뼈에서 왜 겨우 이것만 잘라 왔냐’는 골족들의 아우성에 유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맨입으로?]아직 메이 윈체스터가 완치가 안 된 상황.
지금 불야성 내에서 드래곤 본을 잘라 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유리뿐이었다.
물론 메이가 완치되면 그녀에게 드래곤 본을 잘라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유리는 오히려 그 점을 역이용했다.
[그 아줌마가 다 나은 뒤 드래곤 본을 잘라 내면… 그땐 아마 골족 공용 재산으로 들어가서 공평하게 분배되겠지?]이후 그는 골족 내에 한 가지 소문을 은은하게 퍼뜨렸다.
[하지만 날 이용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드래곤 본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야.]거기에 추가된 더더욱 은밀한 소문.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잘라 낸 덩어리 크기가 조금씩 다 다를 수도 있겠지? 안 그래?]다만, 실수에는 약간 대가가 따르는 법.
물론 실수를 한 유리가 대가를 치르겠다는 게 아닌, 대가를 치른 골족에 한해서 ‘우연히 손이 미끄러지는 실수’를 저질러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은밀한 소문이 빠르게 골족들 사이사이로 퍼져 나갔다.
남들보다 먼저 드래곤 본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약간의 대가를 지급하면 다른 놈들보다 더 큰 덩어리를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단, 그 기회의 유효 기간은 메이 윈체스터가 나을 때까지다.
그런 테레시아의 설명에 메이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대가를 받고 편파적으로 드래곤 본을 잘라 주겠다니… 그게 그래도 되는 거니?”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되죠.”
“그렇지.”
“하지만 유리는 양심이란 게 없는걸요.”
“…….”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테레시아를 보고 메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테레시아의 태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한 까닭으로 유린 상당히 바빠요. 장사가 너무너무 잘된다더라고요.”
“…그러면 드래곤 본이 금방 동이 날 텐데?”
“그래서 일부러 손님을 한정적으로 받나 봐요. 그 때문에 요새는 가격이 더 많이 올랐다고 하고요.”
한정 판매와 마감 임박.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드래곤 본의 기둥이 작아져 가니 이를 손에 넣지 못한 골족들의 똥줄이 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값이 오르고 있어 유리는 매일매일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그 정도면 골족 내에 소문이 파다하다는 건데… 마이스터들이 뭐라고 안 했니?”
“우연히 유리의 거래 장부를 봤는데… 제일 첫 줄에 가연, 서준, 민수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
마이스터들마저 암거래의 고객이니 그걸 누가 말린단 말인가.
그리 속으로 혀를 차던 메이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 그러고 보니… 장부? 거래 장부까지 있다고?’
만약 그 장부가 공개된다면 골족 내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까?
그리고 이 일을 꾸민 유리가 과연 그 파장을 모르고 장부를 만들어 놨을까?
유리의 치밀함에 감탄한 메이가 테레시아를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 녀석 때문에 우리 텟샤가 밥 굶을 일은 없겠구나.”
그러면서 그녀는 테레시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유리가 돌아오거든 한동안은 어디 가지 말고 불야성에 붙어 있으라고 전해 주렴. 마이스터 도철의 대장간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더구나. 아마 곧… 완성될 듯싶다.”
그리 말하고는 답을 듣지도 않은 채 뒤돌아 떠나는 메이.
그런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으니.
‘귀여운 우리 조카.’
언뜻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해 보이던 테레시아.
하지만 그런 표정과 달리 조카아이의 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 *
땅- 땅-!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제대로 자지도 못한 채.
그저 망치를 내려치는 인형처럼 보내 온 하루하루.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쇠를 두드리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건만, 지금은 한 번 한 번의 망치질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도철은 망치질을 멈추지 못했다.
땅- 땅-!
육신은 그만하라고 울부짖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정신이 육신에 채찍질을 가했다.
쉬지 말라고.
멈춰서는 안 된다고.
어서 움직이라고.
정신의 채찍질로 인해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뚱이가 생명력을 불살라 가며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도철의 머릿속은 온통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구나.’
자신의 용광로와 골족의 비전으로도 드래곤 본을 녹이는 데 무려 열흘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후 녹은 드래곤 본과 백강철, 백철을 한데 섞어 골족의 비전으로 단련하는 데 다시 열흘이 걸렸고.
그리고 한데 섞인 덩어리를 검의 형태로 다잡는 데 또다시 열흘이 걸렸다.
골족 야금술의 5대 비기.
그 정화를 익히는 데 바친 백오십 평생.
그것이 도철의 삶이었고, 그는 30일이란 시간 동안 자신의 삶 자체를 붉은 쇳덩이에 모조리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간이 이어질수록.
육체는 쇠하지만, 정신은 더더욱 날카로워져 갈수록.
도철은 자신이 어떠한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이라 여겼건만… 끝이 아니었구나.’
망치질로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의 끝에 도달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고, 오만이었다.
끝 너머에는 자신이 상상도 못 했던 미지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이냐!’
하여 도철은 갈망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냔 말이다!’
과연 자신이 도달한 끝 너머에 무엇이 존재할지.
땅- 땅-!
혼신을 다한 이 망치질이 자신을 그곳으로 안내하길 갈망하며, 그는 사력을 다해 붉은 쇳덩이를 내려쳤다.
따아앙-!
* * *
불야성 내 도철의 대장간.
모든 이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한 대장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기를 뿜어낸 지 수십 일이 흘렀다.
그동안 마찬가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철의 대장간으로부터 망치질 소리가 흘러나왔으니.
그것이 한 장인이 삶을 갈아 넣는 소리임을 골족 중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도철이 유리에게 드래곤 본을 넘겨받은 지 32일째가 되는 날 아침.
대장간의 굴뚝에서 연기가 사라졌고, 더는 망치질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
이에 세 마이스터를 필두로 수많은 이들이 도철의 대장간으로 모여들었다.
골족 내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한 장인이 무려 삼십 일 넘게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과연 도철이 만들어 낸 역작은 어떤 것일까.
그 궁금증은 여러 장인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로 인해 도철의 대장간 앞에 펼쳐진 장사진의 인파.
이후 많은 이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만, 좀처럼 대장간의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을 무렵.
“들어오거라.”
대장간에서 들려온 도철의 목소리에 장인들이 쪼르르 일어나 몰려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놈들이!”
“네놈들은 위아래도 없냐!”
“나이순으로 입장해라!”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세 마이스터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도철의 대장간 앞을 막아 섰다.
그리고 민수가 한쪽에 멀뚱히 서 있는 유리를 향해 소리쳤다.
“넌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게야! 물건의 주인이면 주인답게 준비하고 있다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어야지!”
그의 불호령에 유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골족들을 가로질러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연다?”
“후딱 들어가라!”
유리를 필두로 세 마이스터, 그리고 나이 든 장인순으로 도철의 대장간에 들어섰다.
하지만 좁은 대장간의 특성상 중년 이하의 골족은 몇 명 들어가지도 못하였기에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 냈다.
반면 가장 앞장서서 들어갔기에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던 유리.
그런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불 꺼진 용광로에 앉은 도철의 모습이었다.
‘늙었네.’
고작 한 달여 사이에 ‘폭삭’이란 말이 너무도 어울릴 정도로 늙어 버린 도철.
심지어 빼빼 마른 그의 모습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마치 불이 꺼진 용광로처럼 모든 걸 태우고 차갑게 식어 버린 듯한 모습이랄까.
그런 생각에 유리가 멈칫하자 그를 향해 도철이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아라.”
도철이 가리킨 자리는 그의 바로 맞은편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천에 휘감긴 기다란 무언가가 놓여 있었으니.
그 기다란 무언가가 도철의 역작임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없었다.
이에 조심히 걸음을 옮긴 유리가 검 앞에 앉은 순간.
호옹-!
난데없이 들려온 선명한 진동음에 소란이 일었다.
“거, 검명?!”
“검명이다!”
궁합이 좋은 주인을 만나면 검이 공명하여 낸다는 울림.
뒤쪽에 자리한 골족의 장인들이 그 울림을 검명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이 든 워커 학파의 장인들이 버럭 소리쳤다.
“검명은 무슨!”
“거, 검명이 아니다!”
“이, 이건 검명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백발이 성성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이들이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검을 보고자 고개를 내밀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한편, 장내의 혼란 속.
도철은 애정 어린 눈길로 천에 휩싸인 검을 집어 들어 유리에게 내밀었다.
“막 태어나 마음이 여린 아이이니, 부디 좋은 이름을 지어 주거라.”
그런 도철의 말에 유리는 조심히 검을 건네받았다.
그러자 또다시 들려온 진동음.
호옹-.
이에 유리의 뒤로 포진한 골족들에게서 숫제 짐승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오오!”
“어서… 어서 벗겨 봐라!”
뒤에서 들려온 괴성에 호응하듯 유리가 조심스럽게 천을 벗겼다.
그러자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난 검의 자태.
이에 유리는 절로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칼등은 붉은색이요.
칼날은 은백색이었으며.
그 두 색의 사이에 잡티 하나 없는 백색이 물결치듯 자리 잡고 있었다.
검신부터 검 자루까지.
전체적으로 백색과 적색이 조화를 이룬 검은 실전용이 아닌 관상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끝내주네.”
유리가 그리 중얼거린 순간.
호옹-.
그의 머릿속에 부끄러워하는 듯한 울림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월루의 울림이라 여겼던 유리.
우웅-!
하지만 곧장 ‘나 아니야!’라는 듯한 느낌의 울림이 바로 뒤따랐기에 유리의 눈이 자연스럽게 휘둥그레졌다.
“설마… 너냐? 네가 답한 거야?”
호옹-!
마치 유리의 물음에 답을 하는 듯, 또다시 들려온 울림.
그리고 이를 들은 건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마이스터와 장인들.
대장간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유리의 물음에 검이 답하는 것을 들었다.
이는 곧 커다란 충격이 되어 장내에 퍼져 나갔으니.
“마, 마, 맙소사!”
“거, 검이 답을 했어?!”
“자아다… 검에 자아가 깃든 게야!”
삶을 갈아 넣는 혼신의 망치질 덕분에 끝을 넘어 미지에 도달하게 된 도철.
그로 인해 그는 인류에게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에고(Ego) 병기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