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44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444화(444/445)
444화. 테슬란 (1)
마치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이 되어 율리아를 돌아본 유리.
“…지금 누구라고 했냐?”
“부절검.”
“그 부절검이 내가 아는 그 부절검은 아니겠지?”
“세상에 부절검이 둘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부절검이다? 그 부절검 요한 레드너?”
“응, 그 부절검 요한 레드너.”
율리아가 몇 번이고 확인시켜 주었지만, 그럴수록 유리의 표정은 더더욱 안 좋아졌다.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냐는 듯한 눈빛에 율리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야. 조금만 알아보면 금방 들통날 걸 내가 뭣 하러 거짓말하겠어?”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율리아를 보고는 유리의 시선이 테레시아에게 향했다.
마치 저 말이 사실이냐는 듯한 눈빛에 테레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야. 고모님이 짝사랑한 상대는 부절검님이 맞아. 그 이야기가 꽤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테레시아의 검증에 유리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절대 풀리지 않는 난제를 눈앞에 마주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응?”
“그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성질 더럽고, 돈도 없는 빌어먹을 영감탱이를 왜 좋아하는 건데?”
“…….”
진심이 격하게 묻어나는 물음에 테레시아는 물론 다른 친구들 역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어떨 때는 그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또 어떨 때는 원수처럼 굴기도 하고.
유리와 요한의 사이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있어 참으로 신기한 관계였다.
그렇게 모두가 신기하다는 듯 유리를 바라볼 때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화들짝 놀라고 말았따
“잠깐? 영감탱이랑 그 아줌마랑 대충 스무 살 정도 차이 나지 않나?!”
“아마도 그럴걸?”
율리아의 대답에 유리는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는 낯빛이 환해졌다.
“아아, 그렇게 된 거군.”
“뭐가?”
“약점이 잡혀서 협박당한 거네.”
“…….”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지. 협박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딴 쭈그렁 늙다리를 좋아하겠어?”
확신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를 보고 율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넌 협박당하면 쭈그렁 늙은이도 좋아할 수 있어?”
“때에 따라서 좋아하는 척 정도는 할 수 있지.”
“어떤 때?”
“좋아해야 할 상대가 엄청 부자인데 오늘내일 중으로 골로 가려 할 때?”
“…좋아하는 척하고 유산으로 크게 한몫 챙기겠다?”
“당연한 거 아냐? 하루 이틀만 좋아하는 척하면 엄청난 재산이 손에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상대랑 나이 차가 스물이 아니라 적어도 오륙십은 나야 하는 거 아닐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율리아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메이 님은 협박을 당한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척을 한 것도 아냐. 그림자 여왕이 부절검을 짝사랑해서 이십수 년 가까이 쫓아다닌 건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일화니까.”
“…뭐 때문에 그딴 짓을?”
“글쎄, 두 분 사이에 있던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다만 그만한 나이 차이에도 메이 님이 20년을 쫓아다닐 정도라면… 부절검님께 무언가 매력이 있었겠지.”
“그 영감탱이한테 그딴 게 있을 리가.”
“난 솔직히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한데…….”
“그런 게 있다고? 뭔데?”
“얼굴.”
“……?”
이건 또 뭔 개소리냐는 듯한 유리의 시선에 율리아가 살짝 미소 지었다.
“요한 님, 젊었을 적에는 엄청 잘생겼었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은 유리의 머릿속에 과거 고든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한 그놈도 젊은 시절에는 얼굴로 여자 여럿 후리고 다녔지.]그랬다.
분명 고든도 요한이 잘생겼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냥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고 대충 넘겼건만.
‘그게… 진짜였다고?’
율리아까지 저리 말할 정도면 아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란 뜻일 터.
“맙소사…….”
경악한 유리가 흡사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불야성을 떠나온 지 열흘째 되는 날의 밤.
타오르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소월 용병단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뽀득뽀득-.
한밤중에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에 모닥불을 쑤시던 유리의 표정이 상당히 아니꼽게 변했다.
뽀득뽀득-.
쉬이 그치지 않는 소리에 결국 유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하아-!
뽀득뽀득-.
소리의 진원지에는 연신 입김을 불어 가며 갑주를 닦고 있는 군터가 있었으니.
이미 얼굴이 비칠 정도로 닦고 또 닦았음에도, 계속해서 전신 갑주를 닦는 군터를 보고 유리가 결국 한마디를 던졌다.
“야, 그러다 닳겠다.”
“골족제 무구가 고작 이 정도에 닳을까. 훗.”
“좋냐?”
그 물음을 듣기 무섭게 군터가 그딴 것도 질문이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좋냐고? 당연한 걸 묻는군. 기사들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보물이 바로 골족제 전신 갑주다.”
“왜 못 가져? 돈 주고 사면 되지.”
“쯧. 이건 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골족제 무구가 왜 부르는 게 값이겠냐? 그만큼 희소하기 때문이다. 이름난 명가에서도 겨우 몇 개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심지어 그마저도 대대손손 물려주는 물건이지.”
“그게 그렇게 귀한 거였냐?”
“골족에서 생산된 전신 갑주 대부분을 흑검병단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골족과 인연이 있는 몇몇 소수의 가문이 가져간다. 심지어 그마저도 일반적인 품질의 것이고, 이것처럼 최상급의 물건은 골족들도 쉬이 내주지 않지.”
그리 말하며 군터는 자신의 전신 갑주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애인보다 더 애틋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 눈빛에 유리가 혀를 찼다.
“쯧쯧, 실력을 갈고닦아야지, 무기빨을 보려고 하니까 아직도 꼴랑 5단이지. 그래 가지고 언제 사람 구실 할래?”
얼마 전 테레시아 다음으로 공인 5단에 오르는 데 성공한 군터.
그뿐만 아니라 아린과 뽀삐까지 순차적으로 공인 5단의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유리가 보기에는 이제 겨우 공인 5단일 뿐.
“적어도 7단쯤은 되어야 어디다 써먹을 텐데… 그거 닦고 앉아 있을 시간에 가서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지? 사람이 말야 노력을 해야지, 노오오력을! 그거 닦는다고 실력이 늘어?”
비음이 섞인 유리의 비아냥을 들은 군터의 이마에 혈관이 두드러졌다.
“…우리 중에 가장 좋은 걸 받아 온 놈이 그딴 말을 해 대는 게 상당히 아니꼽군.”
군터의 시선이 유리의 옆에 놓인 검에 닿았다.
적갈색의 아름다운 검집에서부터 풍기는 범상치 않은 자태.
군터도 유리의 설혼을 보았다.
골족의 마이스터가 혼신을 다해 탄생시킨 에고 소드.
주인의 물음에 스스로의 의지로 답을 하는 그 검은 신검(神劍)이라 칭하기에 실로 부족함이 없는 신물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검과 형태가 다름에도 욕심이 날 정도.
그리고 그런 군터의 타박에 유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라고.”
“…….”
“꼬우면 나보다 쎄지든가.”
유리의 강렬한 비웃음에 결국 군터가 터지고 말았다.
“큭! 왜 나한테만 지랄하는 거냐! 죄다 저러고 있는데!”
목에 핏대를 세운 군터가 주변을 삿대질했다.
그의 손끝이 닿은 곳곳에 자기 무기와 사랑에 빠진 이들이 즐비했으니.
조심조심 애정 어린 손길로 창대를 닦고 있는 테레시아.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고 있는 율리아.
커다란 방패를 끌어안고 연신 볼을 비비는 뽀삐.
군터의 말처럼 무기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테레시아, 율리아, 뽀삐. 그들 모두 이번 의뢰에서 받은 골족제 무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 군터의 항변을 사뿐히 무시한 유리는 옆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참 유난들 떤다. 안 그러냐, 호옹아?”
호옹-!
“적어도 우리 호옹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골족제 무기라고 할 수 있지. 그치?”
호옹호옹!
유리의 물음마다 경쾌하게 답을 설혼.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군터는 신기함과 짜증이 동시에 생기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자아를 가진 무기라.’
이미 몇 번을 보았지만, 봐도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주인의 질문에 검이 대답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진귀한 구경을 또 어디 가서 한단 말인가.
다만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저 신비로운 울림이 어쩜 저리도 경박하고 얄밉게 들리는 건지.’
그 문제는 바로 설혼의 진동음이 점점 유리의 경박하기 짝이 없는 말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여간에 꼭 별것도 아닌 것들이 골족제 무기 명성을 다 깎아 먹어요. 그치, 호옹아?”
호오옹!
유리와 설혼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계속 듣고 있자니 짜증으로 속이 터져 버릴 듯싶자, 군터는 그들의 대화에서 신경을 끄고 다시 자신의 전신 갑주를 닦기 시작했다.
뽀득뽀득-.
맑게 빛나는 전신 갑주를 보고 있자니 솟구쳤던 짜증이 가라앉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 들었다.
하지만 그의 편안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린, 넌 뭐 받아 왔냐?”
유리가 툭 던진 질문이 군터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음에 호기심이 생긴 건 군터만이 아니었다.
테레시아, 율리아, 뽀삐도 유리의 질문을 듣고 아린을 바라보았다.
아린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의 주 무기를 골족에게 받아 왔다.
하지만 아린의 활은 놀랍게도 골족에게조차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은 활을 만들 수 없다’라는 평가를 받은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하여 그녀는 활이 아닌 다른 걸 받아 왔고, 단 한 번도 모두에게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간 각자의 무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린이 무얼 받아 왔는지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게 옳았다.
그러다 유리의 질문에 뒤늦게 호기심이 발동한 상황.
한편 유리의 질문을 들은 아린의 표정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후후후, 궁금해? 알려 줄까?”
마치 그 질문을 언제 하나 기다렸다는 듯 반짝이는 아린의 두 눈.
그러나 막상 질문을 던진 유리의 표정은 살짝 뚱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 굳이 안 알려 줘도 돼.”
“…왜?”
“뭔가 네가 으스대며 자랑하는 꼴이 보기 싫어졌어.”
“우우…….”
순식간에 시무룩하게 축 처진 아린의 모습에 유리가 혀를 찼다.
“쯧, 1분 준다. 자랑할 거면 빨리 가져와서 자랑해.”
“그, 금방 가져올게! 가방에 있어!”
다시 밝아진 아린이 배낭을 모아 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녀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배낭을 풀어 헤치고 그 안에 손을 넣어 더듬거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신나 하던 그녀의 표정이 살짝 이상해졌다.
“으엥?”
달그락달그락-.
배낭 안의 물건들을 연신 손으로 더듬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녀가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 이거 내 배낭이 아니… 어라?”
배낭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 자신이 배낭을 잘못 열었음을 깨달은 아린.
손에 들려 나온 물건을 보고 그녀의 고개가 점점 갸우뚱해져 갔다.
그러다가 자신이 꺼낸 물건의 정체를 깨닫고 놀라 소리치고 말았으니.
“어, 이거 드래고오온……?!”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파측-!
한밤중에 번뜩인 푸른 뇌광.
그리고.
빠악-!
박이 터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린이 눈을 뒤집어 까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 옆에는 언제 이동한 것인지 모를 유리가 주섬주섬 배낭의 입구를 닫고 있었다.
이후 유리는 배낭을 등 뒤로 슬쩍 숨기며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마주했다.
“뭘 봐?”
그의 물음에 다른 이들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눈길을 거뒀다.
어떻게든 유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이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걸 떠올리고 있었다.
‘빠, 빨간 거?!’
‘붉은 수정이라고?’
‘설마… 저거?’
‘배고프다!’
잠깐이기는 했지만,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아린이 꺼내 들었던 붉은색의 덩어리를 말이다.
그리고 그 정체가 드래곤 본이란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없었다.
이에 율리아는 살짝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러고 보니 저 배낭… 언제 저렇게 빵빵해졌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출발할 때만 해도 유리의 배낭은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던가.
밤마다 배가 아프다고 사라졌던 유리.
그가 배가 아프다고 했던 다음 날의 아침만 되면 유달리 배낭이 조금씩 빵빵하고 묵직하게 변해 있던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율리아는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움직인 경로가 지하 미궁 쪽에 가깝던데… 설마?’
골족들의 의뢰를 받아 드래곤 본을 잘라 주는 일을 했던 유리.
그때마다 그가 드래곤 본을 조금씩 빼돌렸다면?
‘그리고 그걸 불야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나중에 떠날 때 챙기려고 우리가 움직일 경로 곳곳에 미리 숨겨 놓았다면?’
꿀꺽-.
‘그럼… 저 배낭에는 얼마만큼의 드래곤 본이 담겨 있는 거지?’
유리가 배가 아프다고 사라졌던 게 몇 번이었는지를 떠올려 본 율리아.
꿀꺽-.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유리의 큼지막한 배낭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골족한테 들킬 가능성이 있을까?’
골족들이 각자 뒷돈 주고 챙긴 드래곤 본을 전부 모아 그 양을 처음과 비교해 보는 게 아닌 이상, 유리가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설마 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야?!’
드래곤 본을 잘라 주고 돈도 챙기고, 드래곤 본도 챙기고.
대체 얼마만큼의 이득을 챙긴 건지.
율리아는 유리에게 존경심이 들려 했다.
한편, 드래곤 본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잊힌 아린.
기절해 버린 그녀를 보며 군터가 작게 중얼거렸으니.
“…그래서 쟨 뭘 받아 온 건데?”
그 의문에 답을 해 줄 이는 끝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