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45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445화(445/445)
445화. 테슬란 (2)
불야성을 떠난 지 2주가 된 어느 날의 오후.
“끄, 끝이다아앙!”
“드디어 벗어났다!”
드디어 나타난 평평한 지형과 붉디붉은 노을을 보며 아린과 율리아가 얼싸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긋지긋했다…….”
“흑… 벌레… 싫어…….”
빼돌린 드래곤 본을 챙겨 가야 했던 유리가 경로를 살짝 길게 잡은 탓에 대수림을 벗어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푹푹 찌는 습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달라붙는 독충과 독사.
아무리 골족들이 사용하는 대수림용 생존 물품을 얻어 왔다고는 하나, 물속을 걷는 듯했던 수림의 환경은 다신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하아… 살겠다.”
“드디어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군.”
“배고프다.”
대수림을 벗어나니 푹푹 찌는 열대의 열기도 지금은 그저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느껴졌다.
불어 오는 바람을 맞으며 테레시아, 군터, 뽀삐도 한결 나아진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한껏 밝아진 일행의 시선이 유리에게 향했다.
그리고 모두를 대표해 테레시아가 물었다.
“어디로 움직일 거야?”
앞으로의 일정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바로 윰족의 영역으로 가는 것.
테레시아의 물음에 율리아가 물음을 덧붙였다.
“어딜 통해서 리-사헬 사막으로 갈 생각이야?”
연이어진 그녀들의 물음에 유리는 뽀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지는 저 자식이 정할 거니까 쟤한테 물어봐.”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뽀삐가 있었지.”
“윰족의 영역까지 가는 길은 윰족이 잘 알고 있을 테니.”
윰족의 영역이 있다고 알려진 리-사헬 대사막.
대륙의 북동쪽 전반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 대사막은 그 크기만 행정구 2~3개를 합친 것과 비슷했다.
그 넓은 땅에서 윰족의 영역을 찾는 건 같은 윰족이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까울 터.
하여 앞으로의 이동 일정은 뽀삐에게 맡기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선택에 뽀삐가 가슴을 두어 번 탕탕 치며 콧김을 훙- 뿜어냈다.
“배고프다!”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은 누가 봐도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표정이었다.
이에 테레시아가 피식 웃으며 뽀삐에게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디로 가실 생각인가요, 임시 대장님?”
그녀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뽀삐가 당차게 외쳤다.
“배고프다!”
그 외침에 일동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린을 향했다.
얼른 통역하라는 재촉 어린 시선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테슬란 행정구로 갈 거래.”
답을 들은 율리아가 잘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슬란? 꼭 거기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야? 그냥 프롬펠 행정구에서 바로 리-사헬 사막으로 진입하면 안 되나?”
대륙의 북동부를 집어삼키고 있는 리-사헬 사막이다 보니, 거기에 인접해 있는 행정구가 여럿 존재했다.
현재 그들이 있는 프롬펠 행정구의 북쪽도 그에 해당했다.
그런데 뽀삐가 말한 테슬란 행정구는 프롬펠 행정구의 위편에 자리 잡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굳이 테슬란 행정구까지까지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배고프다.”
“프롬펠 행정구에서 바로 리-사헬 사막으로 넘어가도 상관이 없다는데요?”
이어진 뽀삐의 답변에 이번에는 테레시아가 물었다.
“그럼 왜 굳이 거기까지 올라가는 건데?”
“배고프다.”
뽀삐의 답을 들은 아린이 돌연 탄성을 내질렀다.
“아하!”
“뭐래?”
“리-사헬 사막에 들어가기 전에 가지고 온 물건들을 처분할 생각이라는데요?”
“가지고 온 물건? 그거?”
테레시아의 시선이 뽀삐와 아린, 군터가 메고 있는 큼지막한 배낭에 닿았다.
골족의 영역에서부터 열심히 메고 온 잡동사니들.
확실히 저 많은 걸 짊어지고 그 넓은 리-사헬 사막을 횡단하는 건 무리일 듯싶었다.
그리고 아린의 해석에 군터 역시 밝은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테슬란 행정구엔 그게 있었군요.”
“그거?”
“장미 경매 말입니다.”
“…장미 경매?”
마치 어디선가 들어 본 거 같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테레시아에게 답을 준 건 유리였다.
“테슬란 행정구의 장미 경매, 니제르 행정구의 흰고래 경매, 엔라이트 행정구의 은룡 경매. 대륙의 동서와 중앙을 상징하는 세계 3대 경매 중 하나지.”
“아아!”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는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네.’
본격적으로 리-사헬 사막에 진입하게 되면 얼마나 그곳을 헤매고 다닐지 모른다.
식수와 식량을 짊어지고 다니기도 힘든 환경일 테니 불필요한 짐은 반드시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가능하면 드래곤 본의 일부도 처분해서 현금화해야 하고 말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미 경매만큼 드래곤 본을 제값에 처분하기 좋은 곳도 없었다.
그리 결론을 내린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테슬란 행정구로 가자. 하지만 그 전에…….”
살짝 말끝을 흐린 유리에게 좌중의 시선이 쏠렸다.
이에 그가 씨익 웃어 보였으니.
“붕붕이부터 구하러 가자고.”
그의 미소에 좌중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인근의 마을에서 큼지막한 수레를 빌린 유리 일행은 테슬란 행정구를 향해 빠르게 북상하기 시작했다.
* * *
한 달 하고도 닷새가 흘러.
리-사헬 사막과 맞닿은 접경 도시 로드스.
척박한 환경에 자리한 도시임에도 로드스는 대륙의 동쪽을 대표하는 주요 관광지 중 한 곳이었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
그러나 낮과 밤의 일교차가 그리 크지 않은 독특한 기온 환경.
하여 로드스의 사람들은 낮에는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자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주로 밤이 되면 활동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더운 날씨 탓에 옷차림이 가벼운 것은 당연지사.
밤만 되면 반쯤 헐벗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기묘한 광경.
거기에 어둠이 찾아오면 형형색색으로 켜지는 등불로 인해 주홍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
그로 인해 로드스는 예로부터 야경이 화려하기로 소문이 난 관광지였다.
장미 경매는 바로 그런 관광객들을 상대로 시작해 현재는 세계 3대 경매로 불리며 위명을 떨치고 있는 로드스의 명물이었다.
물론 그러한 명성을 쌓아 올리기까지 장미 경매소는 수많은 소란을 겪어 왔었다.
그리고 오늘.
장미 경매소는 크나큰 소란으로 인해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었으니.
“아니잇! 왜 안 된다는 건데!”
소란의 진원지.
그곳에는 검은 머리의 청년이 책상을 탕 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반면 그의 앞에 앉은 구릿빛 피부의 중년 여인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답했다.
“글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고저가 없는 여인의 말투에 검은 머리 청년, 유리의 고개가 대번에 비딱해졌다.
“아아, 그러셔?”
그가 대뜸 뒤를 향해 삿대질했다.
“저것들 물건은 골족제 무기라고 아주 바짝 엎드려 받아 주고는!”
삿대질에 지목받은 아린, 군터, 뽀삐.
유리와 남남인 척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지목에 ‘우리는 저런 사람 몰라요, 일행 아니에요!’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슬쩍 뒷걸음질 쳤다.
반면 친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따지고 들었다.
“저것들 거는 받아 주면서 왜 내 거는 안 받아 주는 건데!”
“지금 벌써 한 시간째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만큼이나 얘기했으면 좀 받아 줄 만하지 않아?”
유리와 접수처 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붙었다.
파지직-!
그들의 시선 사이에서 불똥이 튀어 오른 직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여인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물건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건 검증할 필요도 없는 진짜배기라니까!”
“글쎄요.”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예전에 한 광부가 드래곤 하트라며 가져왔던 건 그저 조금 큰 수정에 불과했고. 한 상인이 자신 있게 가져온 드래곤의 두개골은 소의 머리뼈를 여러 개 붙여 만든 가짜에 불과했죠.”
“그딴 것들과 달리 이건 진짜래도?”
“당시 그 광부와 상인도 전부 자신의 것들이 진짜라고 주장했었죠.”
“거, 사람 말 드럽게 못 믿네.”
유리는 툴툴거리며 탁상 위에 놓인 드래곤 본을 바라보았다.
한 달 하고도 닷새.
쉬지 않고 북상한 끝에 로드스에 도착한 유리 일행.
운 좋게도 오늘 밤이 경매가 열리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짐도 풀지 않고 곧장 경매소로 향했다.
그리고 아린, 군터, 뽀삐가 내놓은 골족제 잡동사니들로 인해 경매소의 접수처가 한바탕 떠들썩해졌다.
유리에게나 골족의 잡동사니지, 다른 이들에게는 골족제 명품 물건이 한 무더기로 등장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골족제 물건에 대한 진위를 가리는 절차가 있고 난 뒤.
세 사람이 가져온 잡동사니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라졌다.
다만 문제는 유리 차례에서였으니.
[…뭐라고 하셨습니까?] [드래곤 본.] [드래곤 본? 그러니까 이게… 그 전설 속 드래곤의 뼈란 말씀입니까?] [물론!]유리가 자신 있게 꺼내 내놓은 아이 주먹만 한 드래곤 본 한 덩이.
이를 본 접수처 관리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진 것이다.
[…그렇군요.]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이야기책에나 등장하는 까마득한 과거의 생명체.
실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드래곤의 뼈를 가져왔다고 하면 과연 이를 어느 누가 쉬이 믿겠는가.
하여 접수처의 관리는 유리의 물건에 대해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유리도 이해했다.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팔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그에게 문제가 되는 건 그 검증 방식이다.
“고객님께서 가져오신 그 물건이 진짜 드래곤 본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줄 존재는 골족뿐입니다. 원하신다면 골족의 장인을 섭외해 드리죠. 단, 그 섭외에 시간이 제법 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접수처 관리의 말에 유리는 드래곤 본을 집어 들었다.
“됐어.”
유리가 붉은 드래곤 본을 챙겨 드는 모습을 본 접수처 관리.
그녀의 눈동자 속에 ‘그럼 그렇지’라는 속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드래곤 본이 가짜라고 믿고 있는 그녀로서는 유리가 일부러 검증을 피한다고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생각이었다.
유리가 일부러 검증을 피하는 건 사실.
다만 그 이유가 검증을 위해 불러올 골족 때문이었다.
‘골족은 좀 위험하지.’
일단 경매에 드래곤 본을 풀어 놓는다고 한들 불야성에서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 소문이 불야성에 들어갔을 땐 이미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을 테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골족이다 보니 그 소문을 접할 가능성 자체도 낮을 터.
때문에 유리는 아주 대놓고 장물을 경매소에 내놓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골족이 확인하게 되는 순간 그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되는 거다.
나중에라면 모를까, 지금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드래곤 본을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잘 보관해 두기만 해야겠네.’
다음을 기약하며 드래곤 본을 거둔 유리.
그가 접수처의 관리를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이봐, 아줌마. 물건 보는 안목 좀 기르라고.”
이에 관리도 지지 않고 눈웃음을 치며 답했다.
“이래 보여도 제가 우리 경매소의 1급 감정사랍니다. 고. 객. 님.”
“그딴 안목으로 어떻게 1급이 된 건지 모르겠네.”
“충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눈웃음을 짓고 있지만 어서 꺼지라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유리는 휙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뭐, 경매소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 흰고래도 있고, 은룡도 있고.”
“부디 그 두 곳 경매소의 감정사가 저보다 안목이 높기를 빌겠습니다.”
“쳇, 두고 봐라.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한 감정사.
그녀는 일어나지도 않고 거짓 웃음으로 유리를 배웅했다.
이에 유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뒤돌아 떠나려는 찰나.
“이런 우리 감정사님께서 큰 실수를 하셨소이다.”
난데없이 끼어든 목소리.
“그대 앞의 남자가 후회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는 그 말은 함부로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외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가니.
“그걸 흘려듣고 무시했다가 좋은 꼴을 본 사람이 없으니 말이오.”
그곳에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미청년이 환히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