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45
44화. 용패갈이 (3)
잠시 뒤.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온 유리.
그는…….
“자자,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제리의 얼굴에 가지고 온 것을 치덕치덕 바르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야!”
“에헤이, 피하지 마. 이거 피부에 좋은 거라고.”
이리저리 얼굴을 움직여 보았지만, 땅속에 묻힌 그는 유리의 마수(魔手)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굴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액체에 범벅이 된 제리.
‘이건?’
달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하자 그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액체를 한 방울 핥았다.
그제야 제리는 자신의 얼굴에 발린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꿀?”
대체 이 겨울에 꿀이 어디서 난 건지?
여긴 시작의 숲인데?
그리고 이걸 왜 내 얼굴에 발라?
제리가 그런 의문을 품은 사이 잠시 또 시야 밖으로 사라졌던 유리가 이번에도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건 사람 머리 크기의 진흙 덩어리였다.
“내가 이 날씨에 이거 구하느라 진짜 개고생했거든? 우리 쩨리 씨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게… 뭔데?”
제리의 질문에 유리는 친절히 답을 알려 주었다.
행동으로 말이다.
“꿀은 말야, 누구나 좋아하지. 사람이고 짐승이고. 그리고… 이 녀석들도.”
탁-.
유리가 제리의 얼굴 근처에 가볍게 진흙 덩어리를 치자 그곳에서 작은 무언가가 하나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한 마리’였다.
‘어?’
하필, 떨어져도 피 묻은 짱돌 위로 떨어진 작은 생명체.
머리, 가슴, 배의 구조.
두 개의 긴 더듬이와 여섯 개의 다리.
그리고 강인해 보이는 턱을 지닌 존재.
그건 바로…….
“처, 청개미?”
푸른색의 개미 한 마리였다.
활동 계절이 겨울이기에 흔히 겨울 개미라고도 부르는 녀석.
또한, 지독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독을 지닌 해충이었다.
놀란 제리의 눈이 휘둥그레진 사이, 뒤집혀 바동거리던 청개미가 똑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녀석의 더듬이가 연신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뚝-.
길쭉한 더듬이가 목표를 포착한 듯 움직임을 멈췄다.
서서히 제리의 얼굴 쪽으로 몸을 트는 청개미.
제리에게는 그 광경이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개미와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제리는 녀석이 자신을 향해 인사를 하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까꿍!
(。・∀・)ノ゙
그건 마치 ‘금방 갈 테니 거기서 딱 기다려!’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 안 돼…!”
제리가 절규를 내질렀지만, 이미 목표를 정한 존재를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짱돌에서 내려온 청개미가 질주를 시작했다.
다다다다-.
그 질주의 끝에 자리한 게 꿀 바른 제리의 얼굴인 것은 당연지사.
이에 기겁한 제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오, 오지 마! 후욱!”
제리를 재빨리 입김으로 달려드는 청개미를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멀찍이 날아간 청개미.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탁- 탁-.
이번에는 유리가 살짝 개미집을 두 번 털었다.
그러자 떨어진 다섯 마리의 청개미.
“으아악! 하, 하지 말라고! 훅! 훅! 훅! 훅! 훅!”
입김 한 방에 한 마리씩.
정확하게 개미를 날려 버리는 제리의 모습에 유리가 꺄르르 웃었다.
“아이 참, 우리 쩨리 씨가 이렇게 좋아해 주니, 궂은 날씨에 열심히 모아 온 보람이 있네.”
검지로 코를 쓱쓱 문지르는 유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내가 혹시 모자랄까 봐 많이 준비했거든? 어때? 좋지?”
그리 말한 유리가 몇 개의 개미집을 더 들고 나타났다.
유리의 품에 안긴 5개의 개미집을 보고 제리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인가?”
이게 어딜 봐서 좋아하는 거로 보이냐!
제리는 울상을 지었다.
그간 그는 미친놈들을 제법 만나 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간 자신이 만난 미친놈들은 전부 가짜였다는 것을.
눈앞의 이 새끼야말로 ‘진짜 광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색이 된 제리를 보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속 가려진 유리의 눈깔이 희번덕거렸다.
그가 개미집 하나를 다시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과연 이 개미집 하나에는 몇 마리의 개미가 들어 있을까?”
“…….”
“그리고 내가 이걸 여기서 부숴 버리면… 우리 쩨리 씨가 입김으로 개미를 날려 버리는 게 빠를까? 아니면, 개미한테 둘러싸이는 게 빠를까?”
그리 말하며 유리는 개미집을 쥔 손에 살짝 힘을 넣었다.
부스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흙가루가 떨어지는 모습에 제리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이어진 유리의 비릿한 목소리.
“장담하건대, 이게 부서지면 쩨리 씨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은 개미로 가득 찰걸?”
“그, 그러지 마… 제, 제발…….”
“하지 말까?”
제리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유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말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
“5초 준다. 오, 사, 삼…….
유리는 단호하게 숫자를 세면서 개미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점점 줄어드는 숫자만큼 개미집에서 떨어지는 흙가루가 늘어나자 제리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하필… 하필 걸려도…….’
그리고 절망 뒤에 찾아든 것은 체념이었다.
결국,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미친 또라이에게 걸렸구나.’
그렇게 제리의 운수 좋은 날은…….
“마, 말할게! 말한다고! 으아악, 부, 부서진다?! 야, 이 새꺄! 손에서 힘 빼! 힘 빼라고, 힘!”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 * *
시작의 숲에 몰아치던 눈보라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눈보라가 잦아드는 대신 숲 곳곳에서 울리는 비명은 더욱 늘어갔다.
“제발 그것만은……!”
콰즉-.
“아, 안 돼애애!”
또 하나의 황룡패가 박살 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유리.
그는 49기가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나는 것을 보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유리의 등에는 나무로 만든 상자 하나가 메여 있었다.
스스스슥-.
타닷-.
새하얀 숲을 빠르게 질주하는 유리의 두 눈은 차갑게 빛났다.
‘난장판이구나.’
숲으로 나와 벌써 십수 개의 용패가 부서지는 것을 확인했다.
아주 가끔 제법 버티는 예비 기수가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수준.
결국 그들도 49기에게 ‘사냥’당하는 것은 똑같았다.
‘사냥 대회네.’
그건 지금 숲의 상황에 제법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사냥꾼 역에 49기.
그리고 사냥감은 예비 50기.
다만 그 사냥감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용패갈이라…….”
그리 중얼거린 유리의 머릿속으로 몇 시간 전 제리와 나눈 대화가 흘러갔다.
* * *
“용패갈이? 그게 뭔데?”
유리의 되물음에 제리는 작은 한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아… 기수들의 용패가 증명 시험을 치름과 동시에 결정되는 건 알고 있지?”
기부 추천자에게 지급되는 황룡패.
그리고 은룡패 이상의 상위 용패는 증명 시험 성적에 따라 지급된다는 게 규칙이었다.
하지만 들어올 때의 용패가 나갈 때의 용패와 같은 건 아니었다.
“보통은 포인트로 용패의 급을 올릴 수 있는데, 먹고살며 점수 올리기도 빠듯한데 언제 그 많은 포인트를 모아서 용패를 바꾸겠냐고.”
“포인트?”
“아, 모르겠구나. 은화를 말하는 거다. 아마 시험 중간에 흑검병들이 나눠 줬을 텐데?”
“이거 말야?”
유리가 제 주머니에서 구멍 뚫린 독특한 은화를 꺼내 보였다.
이를 본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요람에서는 그걸 포인트라고 불러.”
“용의 요람에서 쓰이는 화폐인 건가?”
“대충 비슷해.”
“화폐면 화폐지, 비슷한 건 또 뭐야?”
“요람에 존재하는 모든 시설의 이용이나 물품 구매를 포인트로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화폐라고 할 수 있지. 다만 문제는 포인트가 단순히 화폐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
“성적.”
“……?”
“요람에서의 성적을 가르는 기준이 바로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보유했는가’야.”
“……?!”
유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은화,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물건이었네?’
단순히 화폐라 여겼던 은화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은화, 그러니까 포인트를 소모하게 만들면서도 모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군.’
요람이 만들어 놓은 악랄한 체계에 유리는 배시시 웃었다.
‘재밌네. 딱 내 취향이야.’
정확하게 포인트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는 요람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요람이 구축한 체계가 마음에 든 유리였다.
말이 없는 유리를 보며 제리는 한탄하듯 이야기를 쏟아 냈다.
“너도 진짜 기수가 되면 알 거야. 밖에서 떠들어 대는 요람의 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
“시작의 숲에서의 한 달? 푸흐흐. 고작 그것도 버티지 못할 놈이면 진즉 포기하고 집에 가는 게 나아. 진짜 기수가 되면 그 짓거리를 1년을 해야 하니까.”
“그건 또 뭔 소리야?”
“요람은 철저한 경쟁사회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우대하지. 근데 더 치사한 건, 의식주마저 차별한다는 거야.”
“엉?”
“요람에 들어온 1년 차에게 지급되는 건… 입도할 때 주어진 옷이 전부다.”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제 옷을 들춰 보였다.
“이거? 꼴랑?”
“그래, 꼴랑 그거 한 벌.”
“찢어지면 어떻게 해?”
“어떡하긴, 상점에서 포인트로 구입하든가, 그 포인트도 없으면 기워 입든가… 그것도 없으면 그냥 찢어진 채로 살아야지.”
그 뒤로도 제리가 쏟아낸 요람의 정보는 경악스러웠다.
요람의 1년 차에게 주어지는 건 달랑 옷 한 벌.
시작의 숲에서 한 달 동안 그러했듯, 1년간 잠잘 곳과 음식 등을 알아서 구해야만 했다.
‘시작의 숲에서의 한 달은… 그저 연습에 불과했다는 거냐?’
그렇게 1년을 버티고 2년 차가 되면 반년에 한 번 의복, 한 달에 한 번 건량이 지급된단다.
이후 3년 차, 4년 차, 5년 차.
경쟁에서 살아남고 연차가 쌓일수록 하나, 둘씩 받는 혜택이 늘어나는 구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리는 감탄스러운 얼굴로 손뼉을 쳤다.
짝짝-.
“이야, 용의 요람은 생각보다… 더 미친 곳이었구나?”
이런 정신 나간 곳이 세상에 마치 아카데미처럼 포장되어 소문이 났다니.
유리가 혀를 내두르니 제리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곳이지. 하지만 그만큼 기회를 주는 곳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하던 말이나 계속해 봐. 용패갈이가 뭔지.”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포인트를 통해서 용패의 급을 올릴 수 있다고.”
“아, 그랬지. 흠흠, 용패는 포인트를 모아서 급을 올릴 수 있지만, 진짜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5년 중 딱 한 번, 포인트 없이 상위 용패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그 기회란 게 무엇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유리가 히죽거렸다.
“그 기회란 게… 예비 기수들의 용패를 빼앗는 거다?”
그 말에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예비 기수들이 들어 왔을 때, 2년 차에 접어든 기수들만 참여할 수 있는 축제… 요람에서는 그걸 용패갈이라고 부르지.”
* * *
숲을 주파하며 유리는 피식 웃었다.
‘시작의 숲… 여긴 예비 기수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었던 거야.’
요람에서 생활하는 총 5년의 세월 중 단 한 번.
입도 후, 첫 1년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2년 차들에게 공짜로 용패를 갈아 치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보상의 무대.
그게 바로 시작의 숲이었다.
‘용패뿐 아니라 포인트도 넉넉히 뿌려 놨으니, 49기들이 미쳐 날뛰는 것도 이해가 가.’
굳이 용패갈이에 관심이 없더라도 포인트 벌이를 위해서라도 49기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요람은 추가로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능력 없는 예비 기수를 걸러낼 수 있고.
기수들은 포인트를 벌고.
예비 기수에게는 안 됐지만, 제법 괜찮은 상부상조가 아닌가.
‘재밌네. 예비 기수 전체가 황금 고블린이라…….’
잡으면 용패는 물론 포인트까지 뱉어 내는 호구들.
그게 현 예비 기수들의 상황이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유리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난 대왕 황금 고블린쯤 되는 건가?”
지난 한 달간, 예비 기수들에게 쓸어 담다시피 모아 놓은 수십만짜리 포인트 상자가 어깨에 메여 있고.
거기에 최고의 용패인 흑룡패까지.
유리를 잡기만 한다면 소위 ‘대박’이 터지는 거였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유리를 잡기 위해 49기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게 자명했다.
때문에 유리가 취할 행동 중 최선책은 이 용패갈이가 끝날 때까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였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유리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
그럼 손쉽게 포인트와 용패까지 지켜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는 은신처를 나와 용패갈이가 한창인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숲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이 용패갈이가… 꼭 49기만을 위해 준비된 축제는 아니란 거지.’
마치 입맛을 다시듯.
유리의 붉은 혀가 입술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