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50
49화. 특별 할인 판매점 (1)
49기들을 태운 흑선이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약 이틀의 시간 동안 밤잠도 자지 않고 용패갈이에 임했던 49기 기수들은 흑선 여기저기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데 그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몇몇은 그나마 낯빛이 좋아 보였지만, 대다수가 짜증 섞인 표정이었다.
그중 누군가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젠장,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수확은 개털이네!”
갑판에 울린 욕설에 많은 49기가 동조하는 눈빛을 띠었다.
그런 동기들의 모습에 제리는 옅은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짜식…….”
용패갈이 중인 대다수의 49기가 허탕을 치고 있을 거라던 이야기.
그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긴가민가 미심쩍었었다.
아니, 솔직히 그냥 한번 속는 셈 친다는 생각이 다분했다.
그런데 웬걸?
용패갈이가 끝나고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녀석의 말이 전부 사실이지 않은가.
거기다 녀석이 알려 준 세 명의 정보도 진실이었고, 운 좋게 그들을 독식하였기에 총 3천 포인트 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년 차에게 있어 그렇게 많은 포인트는 아닐지라도 모두가 허탕을 칠 때 홀로 그 정도의 포인트를 손에 넣었다는 건 유의미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가슴속에서 유리에 대한 고마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던 찰나.
‘어라? 그러고 보니 그 녀석… 합격자 무리에서 못 본 거 같은데?’
짙은 검은 머리, 그리고 특유의 껄렁껄렁한 느낌이라면 눈에 띌 게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이 섬을 떠나오기 전까지 녀석을 본 기억이 없었다.
“…떨어졌나?”
그리 중얼거린 제리는 이내 피식거렸다.
“에이, 설마 그 녀석이 떨어질 리가.”
그냥 이번 50기의 합격자가 유달리 많아 자신이 미처 못 봤을 가능성이 컸다.
혹은…….
“어디서 이상한 또라이 짓을 하느라 늦게 나타난 거 아냐? 풉!”
그리 장난스럽게 중얼거린 제리는 이내 유리에 관한 생각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 * *
10명의 흑검병에 둘러싸여 걷는 소년.
그는 분명 이틀 전 요람 본토로 향했던 유리였다.
유리와 흑검병들의 등장에 50기 중 몇몇이 호기심을 보이며 흘끗거렸다.
하지만 눈알을 굴리던 이들은 이내 흠칫하며 재빨리 시선을 거둬들여야 했다.
유리를 에워싼 흑검병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살기.
흘끗거리던 50기 기수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뭐, 뭐야? 왜 저래?’
‘무슨 일 있었나?’
흑검병들이 무뚝뚝하기는 해도 저렇게 살기를 흘리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저런 상태의 흑검병들에게 찾아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만큼 간 큰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한편, 그런 살기등등한 흑검병들에게 둘러싸인 유리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입을 놀리며 연신 구시렁거릴 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고작 애새끼 하나에 흑검병이 열 명이나 들러붙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
“안 그래요?”
“…조용히 하고 걸어라.”
“넵.”
흑검병의 사나운 눈총을 받은 유리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자신의 앞에 선 유리를 보고 애꾸눈 사내가 입을 열었다.
“유리 홀랜드의 용패는?”
“확인 결과, 이상 없습니다.”
이미 예상하던 일이기에 애꾸눈 사내는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 녀석이 지금까지 어디서 무얼 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어디서 찾았냐?”
“그것이…….”
그 질문에 유리를 데려온 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보던 흑검병 중 가장 상급자로 보이는 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단장님의 막사입니다.”
순간 애꾸눈 사내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어디라고?”
하지만 그의 청력은 정상이었다.
비정상인 건 유리가 잡혀 온 장소일 뿐.
“…주둔지 내, 부단장님 막사에서 잡아 왔습니다.”
“내 막사?”
“예.”
애꾸눈 사내의 고개가 유리에게 휙 돌아갔다.
그 째려보는 시선에 유리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헤프게 웃어 보였다.
“헤헤, 어쩐지 다른 곳보다 좋아 보이는 곳이더라니.”
“네놈…….”
애꾸눈 사내의 하나뿐인 눈에 복잡한 빛이 얽혀 들었다.
‘주둔지에 숨어 있었다? 그것도 내 막사에?’
시작의 숲에서 요람 본토까지는 배를 타고 꼬박 하루 거리였다.
한 달간 치러지는 생존 시험 기간 동안 수많은 흑검병들이 매번 그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생겨난 것이 북쪽 성벽 밖의 임시 주둔지였는데…….
사실 딱히 예비 기수들에게 흑검병단의 주둔지를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찾고자 한다면 다른 예비 기수들도 얼마든지 주둔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성벽을 넘어, 흑검병들이 우글거리는 장소로 어떤 미친놈이 숨어들 생각을 할까?
‘…그런데 있었군.’
모두가 하지 않을 미친 짓을 당당히 벌이는 놈이.
심지어 흑검병단 부단장의 막사에 숨어든 정신 나간 종자가.
“허…….”
애꾸눈 사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기를 일부러 노리고 숨어들었나?’
평소의 주둔지는 상주하는 흑검병들에 의해 삼엄한 경계를 자랑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기수라고 해도 쉽게 주둔지 내로 숨어들지 못할 터.
하지만 한 달 중 단 하루.
그것도 몇 시간이나 모든 경계가 허술해지고 주둔지가 텅 비는 순간이 오게 된다.
‘심지어 숲의 총괄 책임자인 나마저 자리를 비우는 순간이지.’
그게 바로 모든 시험이 끝나고 수백의 흑검병이 시작의 숲으로 들어가 뒤처리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 그때야말로 모종의 목적을 가진 자가 주둔지에 숨어들기 가장 완벽한 순간이란 소리였다.
애꾸눈 사내가 유리를 노려보았다.
“몸수색은?”
“하였으나, 이상 없습니다.”
“내 막사에서 없어진 물건은?”
“저희가 살펴보았을 땐… 없었습니다.”
“없었다? 아무것도?”
“예.”
애꾸눈 사내의 흉터가 꿈틀거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내 막사에 들어갔다는 건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녀석이 단순히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자신의 막사에 숨어들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뭐가 있었지?’
시작의 숲 주둔지 내 막사는 한 달간만 쓸 임시 거처였기에 별것 없었다.
아니, 거처라기보다는 간이 집무실에 가까웠다.
때문에 있는 거라고는 약간의 침구, 집기류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서류 몇몇 개뿐.
그 서류마저 고작 시작의 숲에 머무는 예비 기수 녀석이 관심을 가질 것들은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유리를 바라보는 애꾸눈의 한쪽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녀석의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목적… 목적이라…….’
만약 유리 홀랜드의 원래 목적이 자신의 막사에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럼 이 녀석은 어째서 자신의 막사에 숨어들었을까?
‘만약 이 녀석이라면…….’
순간 사내의 한쪽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가 마나로 목소리를 줄여 수하에게 전달했다.
[당장 비품 창고를 수색해라.]오로지 원하는 대상자에게만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고난도의 마나 제어술.
부단장이 어째서 이를 통해 자신에게만 명령하였는지 그 이유를 단번에 이해한 수하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곧장 움직였다.
명령을 내린 애꾸눈 사내가 이번에는 유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내가 혹시나 싶어 묻는다만…….”
“……?”
“너 도벽도 있냐?”
그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는 억울하다는 듯 발끈했다.
“아니,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리고 도벽‘도’라뇨! ‘도’면 또 뭐가 있는데요?! 제가 그 막사에 들어갔던 건 그냥 숨어 있으려고 그랬던 겁니다!”
“…….”
“제일 좋아 보이는 곳이니 당연히 높으신 분 방이겠거니 싶어서! 아무래도 제일 높으신 분이 쓰시는 방이면 수색은 안 할 테니까요. 진짜 사람을 어떻게 보고!”
유리는 억울하다는 듯, 마치 조금 전 그 말에 상처받았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눈빛이 변하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절그럭-.
애꾸눈 사내의 명령에 비품 창고 수색을 하러 갔던 이들이 커다란 자루 몇 개를 들고 왔다.
잠시 애꾸눈에게 무어라 보고를 한 이들이 유리가 보는 앞에서 자루의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쏟아지는 작은 자갈과 흙.
촤르르르-.
수북하게 쌓인 자갈을 보며 애꾸눈은 피식거렸다.
“도벽, 없다며?”
“무슨 말씀이신지?”
“저건 비품 창고에 보관 중인 10포인트짜리를 담아 두는 자루였다. 그런데 보다시피 지금은 그 내용물이 자갈로 바뀌어 있군.”
포인트.
그 구멍 뚫린 은화가 가치 있는 건 기수들에 한정해서였다.
통용 화폐도 아닌 포인트는 흑검병들에게는 그냥 가짜 돈일 뿐이었고, 관리해야 할 흔한 비품에 불과했다.
특히 10단위 포인트는 악성 재고로 오랫동안 창고에 있었던지라 흑검병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건데…….
‘이 새끼, 그걸 용케도 찾아냈군.’
비록 남아도는 악성 재고 포인트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족히 10만 포인트는 되리라.
거기다 가장 낮은 단위인 10포인트짜리이다 보니 그 양이 상당할 터.
‘한 번에 옮기지는 못할 테니 어디다 잘 숨겨 뒀다가 나중에 챙겨 갈 요량이었겠지.’
어차피 시작의 숲은 이번 용패갈이가 끝나고 한동안 폐쇄되니 나중에 와서 숨겨 둔 포인트를 챙기기 좋은 여건이었다.
다만 포인트를 숨기는 작업에 꽤 긴 시간을 소모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미처 주둔지를 빠져나올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놈은 일부러 자신의 막사에 숨어든 거다.
‘내 막사에 숨어들었어도 그곳에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
유리라는 녀석은 아직 정식 기수도 아닐뿐더러,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변명거리도 있으니까.
다시 말해 이 모든 게 전부 저 녀석의 계획이란 소리였다.
심지어…….
“어딨냐?”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잘…… 포인트는 또 뭐고요?”
저 천연덕스러운 연기마저 말이다.
애꾸눈 사내는 자꾸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 가며 물었다.
“훔친 거 어디다 숨겼냐.”
“진짜, 전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유리는 정말 억울하다는 얼굴이었으나 이미 그를 범인으로 확정 지은 애꾸눈 사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연기였다.
뻔뻔한 낯짝이라고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
하지만 애꾸눈 사내는 유리의 저런 뻔뻔함이 싫지 않았다.
‘당돌한 녀석.’
아무리 흑검병 대다수가 빠져 경계가 느슨해졌다고 해도 무려 흑검병들이 모여 있는 주둔지였다.
그런 곳에 침입하는 것부터가 일반적인 예비 기수는 생각지도 못할 도전이었다.
거기에 주둔지를 누비며 비품 창고를 찾아내 포인트까지 챙기고.
나아가 총괄 책임자의 막사에 숨어든 척을 하면서 빠져나갈 판을 짠다?
그것도 임기응변으로?
이건 당돌하다는 수준을 넘어 숫제 요물이지 않은가.
비록 자신에게 걸리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놈들은 이 요물에게 홀려서 넘어갔을 터.
그렇기에 애꾸눈 사내는 이 유리 홀랜드란 녀석이 싫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나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발뺌하는 유리의 모습에 결국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훔친 것들 지금 얌전히 내놔라.”
“아니, 아까부터 사람을 어떻게 보……!”
“지금 내놓는다면 죄를 묻지 않음은 물론이요, 훔친 물건의 절반은 가져갈 수 있게 해 주마.”
그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녀석을 발견한 애꾸눈의 호의였다.
비록 절반이라고는 하나 그것만 해도 족히 몇만 포인트는 될 터.
그건 이제 막 시작의 숲 관문을 통과한 햇병아리 기수에게 있어 큰 혜택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는 혜택임과 동시에 애꾸눈이 유리에게 하는 마지막 경고였다.
내가 이 정도까지 참아 줬으니 이제 그만 순순히 인정하고 선을 넘지 말라는.
유리는 그 경고를 수용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빠르게.
“…신 건지, 매우 잘 보셨네요! 이야, 사람 보는 눈이 실로 탁월하십니다!”
0.1초 만에 엄지를 치켜든 유리를 보며 좌중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