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54
53화. 난봉꾼 (1)
유리의 작은 중얼거림에 자칭 매점 주인이라는 여성이 눈을 끔뻑였다.
“너, 일부러 여길 찾아온 거니? 여기가 뭐 하는 곳인 줄 알고?”
“여기 오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면서요?”
“……!”
여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유리는 진열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커다란 진열장에 채워진 수많은 물건.
유리는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골족의 상급 절상 회복약 300,000P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 2,500,000P
-금룡패 5,000,000P
-백룡패 15,000,000P
물건과 가격을 본 유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건 특할판이 아냐.’
가격대와 물건을 보면 특별 할인 판매점이 아닌, 그냥 특별 판매점인 게 분명했다.
유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매점 아줌마.”
“코코.”
“……?”
“내 이름은 코코란다.”
“그래요, 코코 아줌마.”
“…….”
“아줌마?”
“…….”
“…코코 씨?”
“불렀어?”
그제야 방긋방긋 웃으며 답하는 코코를 보고 유리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래서 여기 있는 물건이 전붑니까? 특별 할인 판매 물건은요?”
“너 진짜… 제대로 알고 찾아왔구나?”
코코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 아이… 어떻게?’
분명 지금은 한창 용패갈이가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작에 숲에 있어야 할 예비 기수가 한참이나 떨어진 본토에, 그것도 특할판의 존재를 알고 찾아왔다?
기이하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슥-.
반쯤 타들어 간 궐련을 입에 문 코코가 손을 내밀었다.
갸웃거리는 유리의 고개를 보고 그녀가 웃으며 손을 까닥였다.
“용패.”
“……?”
“네 용패를 보여 달라고. 진짜 1년 차인지 아닌지 확인해야지 물건을 팔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아!”
그 말에 유리는 주섬주섬 자신의 용패를 꺼냈다.
그의 품에서 나온 용패를 본 순간 코코의 눈이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흑룡패?”
50이란 숫자가 새겨진 흑룡패.
그걸 보고 코코는 눈앞의 소년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너구나…….”
그 괴팍한 늙은이의 제자가.
코코는 뒷말을 삼켰다.
“이걸로 됐죠? 신원 확인.”
“그래, 확실히 됐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품에서 시계를 꺼내 보았다.
딸깍-.
“23시 55분이라…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뭐 좋아.”
시간은 확인한 그녀가 다시 미소를 보내 왔다.
“원래 특할판은 딱 자정에 시작해서 10분에 끝나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열어 볼까?”
사실 ‘오늘은’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 1년 차 특할판에 손님이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유리를 향해 찡긋 윙크해 보인 그녀가 다시금 황금 밧줄을 잡아당겼다.
쿠궁-.
그러자 굉음이 들리며 특판 물품 진열대가 뒤로 물러났다.
드르르르륵-.
곧이어 그 자리로 들어선 새로운 진열장.
이전의 진열장이 그냥 나무로 만들어진 진열장이었다면, 이번에는 금속으로 된 진열장이었다.
그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누리끼리한 금속으로 된!
이를 본 유리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저거… 설마 다 황금이에요?”
“원래 좋은 물건은 그 포장지도 비싸고 예뻐야 하는 법이거든.”
황금색의 휘황찬란한 진열장을 놓고 코코는 그리 표현했다.
“자, 지금부터 정확히 15분이다. 와서 골라!”
그녀의 말에 유리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하였던가.
1분 1초도 허투루 보낼 생각이 없었다.
빠르게 진열장으로 다가간 그가 상품들을 살폈다.
‘물건은 그리 많지 않네.’
특별 판매 진열장의 물건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면 특별 할인 판매 진열장의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10여 개의 물건이 놓여 있을 뿐.
심지어 등급마저 천차만별.
‘특판의 물건이 평균적으로 중급과 상급이었다면… 특할판의 물건은 하급과 최상급이네.’
특할판의 물건은 특판의 것들보다 등급 편차가 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특판과 특할판의 차별점은 바로 가격이었다.
-골족의 하급 절상 치료약 300P
-골족의 최상급 절상 회복약 5,000P
-골족의 최상급 골절상 회복약 5,000P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 30,000P
-금룡패 49,999P
-백룡패 99,999P
특판에 있던 똑같은 물건의 가격을 떠올린 유리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다들 특할판 특할판 하는 거구나.’
할인율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 거저 주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만약, 이런 걸 매년 살 수 있다면…….’
그리고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코코가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이 물건들을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건 1년 차 특할판뿐이야. 앞으로는 이 가격에 구경조차 못 할걸?”
유리는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물건을 슥 훑어보던 중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골족의 비전(秘傳) 300,000P
다른 특할판 물건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은 물품.
그건 다름 아닌 하나의 펜던트였다.
은색의 금속 줄.
엄지손가락 길이의 투명하고 네모난 수정.
그리고 수정 속에 찰랑거리는 진녹색의 액체.
그걸 본 유리가 물었다.
“뭡니까 저건?”
“글쎄? 뭘까?”
유리의 질문에 코코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유리는 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입꼬리를.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유리가 은근슬쩍 다시 운을 뗐다.
“무슨 물건인지 설명 좀 해 주시죠.”
“난 그냥 판매하는 사람이야. 설명 같은 건 안 한다.”
“…원래 판매하는 사람이 열심히 설명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그건 아쉬운 것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고. 난 안 팔아도 그만인데?”
맞는 말이었다.
특할판의 물건을 원하는 건 기수들이었다.
막말로 요람이 앞으로 특할판을 열지 않는다고 해도 기수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코코도 이리 배짱 장사를 하는 거고.
다 피운 궐련을 재떨이에 던진 그녀가 새로운 궐련을 꺼내 물며 불을 붙였다.
쓰으읍-.
치익-.
“무슨 물건인지 궁금하면 네가 산 다음에 알아내든가. 요람의 기수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법인 거야.”
후욱-.
“이제 10분 남았다.”
짙은 연기를 내뱉은 그녀가 시계를 한 번 살피고 독촉을 해 왔다.
이를 애써 무시한 유리는 고민에 빠졌다.
“흠…….”
특판이든 특할판이든, 판매 상품들은 모두가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물건들이었다.
어떤 부상에 좋은지.
상처 회복에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어느 정도로 마나를 늘려 주는지 등등.
등급과 이름이 모두 직관적이었다.
마치 사용처를 헷갈리지 말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무려 30만 포인트나 하는 저 물건은 그저 비전이란 이름만 덩그러니 붙어 있을 뿐이었다.
‘비전이라…….’
비전, 비밀리에 전해지는 무언가라.
유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골족… 골족의 비전이라 이거지?’
고대 드워프의 후손이라는 골족.
그들은 다른 고대종의 후손들과 비교하면 그나마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골족이 지닌 재주가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거였다.
골족의 이름을 널리 퍼뜨린 4가지의 재주.
야금술과 연금술.
제독(製毒)과 제약(製藥).
그것을 떠올린 유리의 눈빛이 맑아졌다.
‘그럼 저 펜던트 자체가 비전이란 건가?’
저 수정 펜던트가 골족의 야금술과 연금술로 만든 비전?
‘아니면…….’
유리의 시선이 펜던트 안에 담긴 액체에 시선이 갔다.
‘저 액체가?’
유리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액체야말로 골족의 비전일지 모른다고.
하지만 고민이 되는 건 저 비전이라는 녹색 액체가 과연 무엇이냐는 거였다.
‘독? 아니면 약?’
드래곤마저 죽였다는 전설 속 드워프의 독.
그걸 계승한 게 골족의 독이며, 그 독을 다루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발전한 게 바로 골족의 약이었다.
‘전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골족의 독은 분명 높은 가치가 있는 물건이야. 그리고 만약 저게 약이라면…….’
무슨 효능인지는 몰라도 골족이 만들어 낸 약이라면.
심지어 그것에 ‘비전’이란 명칭까지 붙은 약이라면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터.
‘그럼, 고민할 것도 없지.’
유리가 손가락을 뻗었다.
“저거 주세요.”
이에 코코는 코웃음을 쳤다.
“너 제대로 읽은 거 맞아? 이거 무려 30만 포인트야, 아니, 그 전에 너 포인트가 뭔지는 아니?”
30만 포인트.
그건 고작 예비 기수 따위가 가지고 있을 법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녀의 비웃음에 유리는 말없이 나무 상자를 내려놓았다.
시작의 숲에서부터 애지중지 가져온 나무 상자.
유리는 그걸…….
콰즉-.
가차 없이 밟아 버렸다.
마치 더는 필요 없다는 듯, 시원스럽게 밟아 부순 것이다.
그렇게 산산조각이 난 나무 상자.
쩔그럭-.
유리는 박살 난 상자에서 자루를 꺼내 탁자 위로 올렸다.
“여기에 든 게 모두 23만 150포인트. 그리고…….”
유리는 제 품에서 열 개의 포인트를 꺼냈다.
가는 나무줄기에 꿰여 있는 1만 포인트 10개.
유리는 그것을 자루 위로 던졌다.
턱-.
쩔그럭-.
“이거까지 전부 합쳐서, 33만 150포인트.”
“…어?”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 그리고 골족의 비전.”
그리 말한 유리는 탁자의 자루에서 50포인트짜리 3개를 꺼내 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알뜰살뜰, 1포인트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정확히 맞춘 유리.
그가 코코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시죠.”
“…….”
“얼른.”
빨리 달라는 듯, 당당하게 팔랑거리는 손을 보며 코코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10분 뒤.
“또 보자고요.”
휘휘 손을 내저으며 떠나가는 유리를 보고 코코는 중얼거렸다.
“듀란아, 듀란아… 멍청한 듀란아, 어쩌자고 저걸 집어넣었냐. 쯧쯧.”
그녀의 힐난 섞인 말에 저 멀리, 시작의 숲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가 크게 재채기했다.
프에췻!
* * *
후우우우우우-.
입을 통해 긴 숨이 토해졌다.
추운 날씨로 속, 내뱉어진 숨결이 새하얗게 변해 주변으로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반개하고 있던 유리의 두 눈이 뜨였다.
번쩍-.
마치 호랑이 같은 황금색의 눈동자가 빛을 갈무리했다.
잠시 뒤,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휘휘 돌려 보았다.
우득우득-.
산뜻하게 돌아가는 어깨.
이어 제자리에서 통통 뛰어 보니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다.
그뿐이랴.
혹사당해 묵직하던 머리가 숙면이라도 취하고 난 듯 개운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몸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야, 약빨 죽인다.”
바로 특별 할인 상점에서 구매한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을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피로 회복에 직빵이네.’
물론 비약의 효과가 단순 피로 해소에 그친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름에 ‘마나 증강’이 쓰이지도 않았을 거다.
유리는 제 배꼽 부근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확연히 커졌어.’
과거의 마나 핵이 호두알 크기였다면 지금은 계란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게… 고작 하급이라고?”
만약 하급이 아닌 중급, 나아가 상급이나 최상급의 비약이었다면?
그렇다면 마나 핵은 얼마나 커졌을까?
‘영감은 단순히 마나만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고 했었지.’
그는 중요한 건 마력이라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1의 마나로 낼 수 있는 힘을 뜻하는 마력.
요한은 100의 마나로 100의 일을 하는 것보다, 1의 마나로 100의 일을 하는 게 훨씬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는다고 하였다.
물론 유리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나의 총량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요한 역시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을 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비약을 주워 먹어야겠어.’
비약을 먹은 후 오는 이 상쾌함, 충만감, 활력.
그리고 마나가 늘었을 때의 성취감!
그걸 또 느껴 보고 싶었다.
“하아… 중독될 거 같네.”
아니, 어쩌면 이미 중독된 것일지도.
‘고작 하급 증강 비약이 이 정도면…….’
찰그랑-.
제 목에 걸린 펜던트를 꺼낸 유리.
‘골족의 비전이라 이름 붙은 걸 마시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투명한 수정 속, 찰랑거리는 진녹색 액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