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57
56화. 유유상종 (1)
“이봐, 너!”
이제 막 변성기가 온 듯, 살짝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그로 인해 회상에서 깨어난 유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젠장…….’
변태 난봉꾼과의 만남.
그리고 이어진 유리의 선택.
그 덕택에 유리는 포인트 및 이런저런 물건들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기회를 얻은 대가로 안 좋은 점도 같이 발생해 버리고 말았으니.
그건 바로…….
‘너무 이목을 끌었어.’
튀어도 너무 튀고 말았다는 거다.
가장 늦게 나타나, 흑검병들과 함께 사라졌고.
그것도 모자라 이상한 자루와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되돌아온 존재.
관심을 안 가지고 싶어도 안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그 모든 게 자신의 계획 때문에 불가피하게 벌어진 상황이라도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알려 준 세 명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제리가 말끔하게 처리한 모양이네. 그건 다행이지만…….’
문제는 기존에 붙어 있던 날파리 세 마리를 떼어 내니 그보다 더 큼직한 날파리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야, 깜장 대가리! 내 말 안 들리냐?”
누가 봐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유리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귀찮아.’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에는 귀찮음이 뚝뚝 흘러넘쳤다.
자신의 부름에도 유리가 반응하지 않자 이번에는 상대방이 움직였다.
“대답 안 하냐, 거지새꺄? 너, 그때 그 자식 맞지? 며칠 내내 잠만 자던 거지새끼.”
유리의 앞으로 다가온 이.
그는 갈색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있는 소년이었다.
다만 쭉 째져 올라간 눈매가 약간 성질이 있어 보인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는 유리를 향해 눈웃음 지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것은 덤.
“이야, 용케도 살아남았네? 가장 먼저 나가떨어질 줄 알았더니.”
상대의 비아냥에 유리는 긴말하지 않았다.
대신 비웃음을 머금고 턱으로 주근깨 소년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거지새끼? 누가?”
“…….”
유리의 턱짓에 주근깨 소년은 흠칫거렸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제 몸을 훑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오물이 묻은 옷차림, 거기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꾀죄죄한 자신의 몰골.
반면 눈앞의 녀석은 어떠한가.
마치 세탁을 한 것처럼 말끔한 의복.
거기에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뽀얗기 그지없었다.
그제야 주근깨 소년은 깨달았다.
지금 이 흑선에 탄 50기 중 가장 깔끔한 이가 어쩌면 눈앞의 이 깜장 머리일 거라고.
그러한 사실은 그뿐 아니라 유리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곧장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아, 그 거지새끼가 날 말하는 게 아니라…….”
유리가 턱짓으로 주근깨 소년의 뒤편을 가리켰다.
주근깨 소년처럼 꾀죄죄한 몰골로 갑판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합격자들을.
“쟤들을 말하는 거였어?”
유리의 광역 도발에 수백 개의 눈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
사람은 신기하게도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때가 있다.
하물며 그 시선이 수백 쌍이라면?
그건 알고 싶지 않아도, 모른 척하려 해도 알 수밖에 없으리라.
삐질삐질-.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낀 주근깨 소년은 식은땀을 흘려 댔다.
그가 유리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어!”
“방금 그랬잖아. 거지새끼라고.”
“그건 널 부른 거지!”
“거참 이상하네, 요즘은 자기보다 깨끗한 사람을 보고 거지새끼라고 하나?”
“그, 그건 지, 지금이 아니라 예전에 네가 더러워서…….”
“아? 그러니까 자기보다 더러우면 막 거지새끼라고 불러도 된다는 거네? 그런 거야?”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유리는 주근깨 소년이 반응하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들었지? 자기보다 더러우면 거지새끼란다. 그런데… 보자.”
유리의 눈이 주변을 쓱 훑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나보다 깨끗한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그러면 그건 여기 전부 다 거지새끼란 거네?”
“…어?”
“거봐! 너 이 새끼, 나보고 거지새끼라고 한 게 아니라 쟤들보고 거지새끼라고 한 거 맞네! 이야, 이 자식 함부로 막말하는 놈이었잖아? 무섭다, 무서워.”
“…어어?!”
유리가 펼친 기적의 논리로 인해 수백 명의 동기를 싸잡아 거지새끼라 부른 죄인이 되어 버린 주근깨 소년.
당황한 그는 다급하게 등 돌려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으니 괜히 오해하지 마!”
이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몇몇이 킥킥거렸다.
그제야 자신이 유리의 선동질에 놀아났다는 것을 인지한 소년은 성난 얼굴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응?”
조금 전까지 바로 앞에 있던 유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다급히 주변을 살펴보니 저 멀리, 제 물건을 짊어지고 살금살금 멀어지는 유리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이……!”
주근깨 소년이 성큼성큼 다가가 유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야!”
“하아…….”
유리의 짧은 한숨에는 짜증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그가 살짝 몸을 돌려 주근깨 소년을 마주했다.
“왜.”
낮게 깔린 목소리.
이에 주근깨 소년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고 유리의 어깨에 올린 손을 다급히 거둬들였다.
마치 유리의 기세에 놀란 양 말이다.
그러다 자신이 고작 눈앞의 녀석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을 깨닫고는 발끈해 소리쳤다.
“너… 너 뭐야!”
“뭐가?”
“뭐, 뭔데 혼자 그런 특혜를 받는데!”
“특혜? 무슨 특혜.”
“몰라서 물어?”
“응, 몰라서 묻는 건데.”
“그 물건들! 너 혼자 흑검병들과 함께 사라졌다가 그것들 들고 나타났잖아!”
주근깨 소년이 유리의 어깨를 가리켰다.
그가 바리바리 싸 들고 있는 잡동사니를 말이다.
주근깨 소년의 외침에 주변의 몇몇이… 아니, 꽤 많은 이들이 동조의 빛을 띠었다.
그들로서도 갑자기 사라졌다가 물건을 싸 들고 나타난 유리는 무언가 특혜를 받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주변 분위기가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듯 흐르자 주근깨 소년은 조금 더 의기양양해졌다.
“너 혹시, 흑검병단에 연줄이라도 있는 거냐?”
“…….”
“솔직히 네가 늦게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했어. 너 하나 때문에 기다린 사람이 수백 명인데 아무런 제재도…….”
블라블라-.
웅얼웅얼-.
눈앞에서 주근깨 소년이 무어라 떠들어 댔지만, 유리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냈다.
하지만 주근깨 소년이 떠들어 대는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리의 짜증 수치는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탔다.
‘아, 귀찮아…….’
자신이 어째서 포인트까지 포기해 가며 에릭을 비롯한 세 명을 제리에게 넘겼던가.
바로 지금처럼, 과도한 관심이 귀찮은 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게 맞아?’
유리는 살금살금 눈치를 보고, 숨을 죽인 채, 요람의 1년 차를 보낼 생각이었다.
과한 힘을 드러내지 않고, 적재적소에 적당히 끼어들어 자신에게 필요한 이득만 쏙쏙 빼먹을 요량으로.
‘이른바 힘을 숨긴 강자 느낌이랄까?’
혹은 모든 일을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처럼.
‘대충 그렇게 살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초장부터 이렇게 상황이 틀어지고 말았다.
이 순간 유리는 깨달았다.
‘힘을 숨긴 강자? 흑막? 멋있지, 멋있긴 한데…….’
자신에게 그런 역할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 짓거리를 하다가는 내가 먼저 답답함에 숨넘어갈 거 같단 말이지.’
지금처럼 눈앞에서 이렇게 알짱거리는 날파리를 어떻게 참으라는 거지?
벌써 답답함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지 않는가.
‘후우…….’
짧은 고민 끝에 유리의 눈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그래, 귀찮은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방법이 꼭 힘을 숨기고 사는 것뿐만은 아니잖아?’
무릇 귀찮은 일이란 여러 사람과 엮이며 발생하는 법이었다.
그럼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사람과 엮이지 않는 방법에 관해서 유리는 전문가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빠삭했다.
‘사람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 않아,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무서운 사람보다도 엮이면 더러울 것 같은 사람을 더더욱 본능적으로 꺼리게 돼 있는 법.
그래서 유리는 결심했다.
모두가 피해 마지않는 거대한 똥이 되리라고.
웅얼웅얼-.
유리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서 떠드는 주근깨 소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
“너 수영할 줄 아냐?”
“갑자기 뭔 소리야?”
“그래서, 할 줄 아냐고 모르냐고.”
“알아.”
“그래?”
소년의 답변에 유리의 입매가 꿈틀거리며 볼록한 보조개가 만들어졌다.
그가 살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야, 그런데 너 그거 아냐?”
“……?”
“네 주둥이 열릴 때마다 27일 동안 썩은 오징어 냄새가 나는 거?”
“……?!”
“너 마지막으로 양치한 게 언제냐? 꾸릉내 장난 아니다.”
“……?!”
유리가 코를 잡고 다시금 한 발짝 물러나자 주근깨 소년의 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솔직히 그도 내심 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쌓인 눈으로 대충 얼굴과 손은 씻기는 했지만, 유리의 말처럼 마지막으로 양치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그가 그렇게 당황한 사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
“너, 좀 씻고 와라.”
“…뭐?”
지금 여기서 씻을 공간이 어디 있어?
그런 말을 채 입에 담기도 전에 유리가 먼저 움직였다.
탓-!
짧게 발을 내디딘 유리의 신형이 사라지고.
꽉-.
순식간에 정면으로 치달은 유리가 한 손으로 주근깨 소년의 목울대를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그는 오른 다리로 주근깨 소년의 오금을 걸어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다다다다-.
그대로 주근깨 소년의 목을 밀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커, 꺼윽!”
목울대가 잡힌 주근깨 소년이 유리의 손을 풀어내려 아등바등 몸부림쳤지만, 유리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강하던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즈그그극-.
그렇게 유리의 손에 붙들려 주욱- 밀려 나간 주근깨 소년.
바동거리는 그의 발이 갑판에 질질 끌렸고.
턱-.
어느새 소년의 등이 배의 난간에 닿았다.
이에 유리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뽀득뽀득 잘 씻고 와라.”
그는 망설임 없이 녀석을 난간 너머로 밀어뜨렸다.
“자, 잠…….”
주근깨 소년이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그 손을 잡아 주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주근깨 소년이 그대로 몽파르체 호수에 처박혔다.
풍덩-.
그 모든 게 고착 십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좌중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몇몇이 경악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저?!”
“미친!”
여기저기서 당혹성과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설마하니 정말로 배에서 밀어 버리진 않을 거라고 여겼기에 나온 반응들.
반면 유리는 태연했다.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마아아안, 올 때 맛있는 거 사 와아앙!”
사람이 빠졌음에도 배는 여전히 움직였고, 유리는 점점 멀어지는 주근깨 소년을 향해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손을 흔들던 유리가 천천히 좌중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에서 좌중은 이상한 환영을 보았다.
아르르르-.
광기에 물든 샛노란 눈을 번뜩이는 미친개의 형상.
그건 분명 ‘난 안 건드려도 물어요!’라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