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69
68화. 자극 (1)
첫 대련이 끝나고, 유리는 그대로 대련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앞에서 테레시아는 수련에 들어갔다.
슉-.
매우 단순한 찌르기.
마치 이 정도는 봐도 상관없다는 듯, 대뜸 수련에 들어간 테레시아.
사실 찌르기뿐인 수련이었으니 딱히 봐도 상관없는 게 사실이기는 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창 찌르기를 반복하는 테레시아를 흥미롭게 보며 물었다.
“텟샤 선배, 그건 뭐였지? 새하얀 궤적의 찌르기.”
유리의 질문에도 테레시아는 찌르기를 멈추지 않고 답했다.
“취성.”
“취성이라…….”
“너의 그 이상한 건?”
“이상한 거?”
“바람? 결계?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순간 네 주변 공간이 뒤틀린 느낌이었어.”
테레시아의 말에 유리는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마류에 당하는 상대방 처지에서는 그런 느낌인 건가?’
자신이야 마류를 펼치는 입장이니 공격을 하는 이가 어떤 느낌인지 알 도리가 있나.
테레시아의 질문에 유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류.”
“마류…….”
마류라는 말을 곱씹는 테레시아.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이내 유리에게서 관심을 끄고 오로지 자신의 창끝만을 응시했다.
마치 자신을 한 자루 창 속에 투영시키듯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리도 생각에 잠겼다.
‘내가 펼친 마류에는 분명 이상이 없었어.’
그럼에도 테레시아의 취성은 그 흐름을 거슬렀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건지 아직은 잘 몰랐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대련한다면 그 이유를 밝혀 낼 수 있을 터.
처음에는 그저 1만 포인트만을 위한 대련이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자신이 얻어 가는 게 더 많아질 거 같았기에 유리도 즐거웠다.
‘포인트도 벌고 경험도 쌓고.’
세상에 이렇게 유익한 일이 또 있을까?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레시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있건 말건, 수련에 들어간 그녀.
어느새 완벽하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인지 테레시아는 똑같은 자세로 찌르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유리는 살짝 감탄하고 말았다.
‘말끔하다.’
그저 단순해 보이는, 창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찌르기였지만, 테레시아의 것은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수없이 반복되는 동작임에도 경로가 어긋남이 없었고.
또한 찌르기에 들어가는 힘의 배분 역시 일정했다.
저 자세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이를 반복해 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이에 유리는 이제 이웃 주민이 된 테레시아의 집중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련장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새로운 동굴, 이제는 자신의 거처가 될 장소로 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길 어떻게 꾸밀까나?’
텅 빈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바꿔 나갈 생각에 신이 난 유리.
그의 입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일단 밖으로 나가 보자.’
앞으로 살 곳이니 주변 지리를 완벽하게 익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겸사겸사 저녁거리를 찾아 오는 것도 좋을 듯싶고.
그리 결정한 유리는 빠른 속도로 균열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균열을 빠져나간 이후로도 공기를 꿰뚫는 소리는 대련장에서 계속 새어 나왔다.
쉭- 쉭- 쉭-.
아주 한참이나.
* * *
월요일 새벽.
“으그그극-.”
짧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유리.
그의 동굴은 전날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동굴 입구를 가린 나무 문짝과.
마찬가지로 나무로 만든 간이침대까지.
고작 하루 만에 만들어 낸 것들치고는 상당한 물건들이었다.
오랜 시간 떠돌며 익힌 손재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그 모든 게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는 어떻게 임시로 지냈다 치고, 일단 오늘 집합에 참여한 다음 본격적으로 꾸며 보자고.’
해야 할 게 많았다.
외부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함정부터.
이런 간이침대가 아닌 제대로 만든 침대.
환기, 환풍 시설과 모닥불 난로 등.
앞으로 오랜 시간 지내야 할 곳이니 유리는 제대로 모든 것을 갖출 생각이었다.
‘횃불도 있어야겠지만, 기름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또한, 기름이 타오르는 횃불 냄새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두운 동굴 생활에서 빛은 필수였다.
그렇기에 유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차선을 택했다.
“뽀리자.”
어제 보았던 대련용 동굴.
이른바 대련장 천장에 박힌 십수 개의 발광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거기서 하나 빠진다고 크게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원형 경기장에서 떼어 오는 건 위험부담이 크니, 대련용 동굴에서 하나를 훔쳐 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으면 즉각 행동해야 하는 법.
‘집합 시간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바로 갔다 오자.’
유리는 살금살금 조용히 거처를 나와 대련장으로 향했다.
테레시아가 나타나기 전 몰래 하나만 빼 올 작정이었던 유리.
그의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어긋나고 말았다.
세액-.
유리가 대련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반겨 준 건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었다.
그리고 짙은 땀 냄새와 열기가 그를 덮쳐들었다.
“응?”
유리가 대련장으로 들어서니 이미 그곳에는 테레시아가 자리를 잡고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쉑- 쉑-.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찌르기를 반복하는 테레시아.
그녀는 유리가 온 것조차 알지 못하는 듯 오로지 창끝만을 응시했다.
유리는 그런 테레시아를 흘끔거렸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거야?’
몇 시간째 저러고 있던 건지, 그녀의 옷은 땀으로 인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두 발이 디디고 선 땅은 그녀가 흘린 땀으로 젖어 검게 변해 있었다.
또한, 차가운 공기에 테레시아의 몸에서 김이 펄펄 피어올랐다.
쉑- 쉑-.
‘나중에 다시 와야겠네.’
도무지 집중에서 깨어날 줄 모르는 그녀를 보고 유리는 결국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 * *
상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유리는 어기적어기적 숲길을 걸었다.
전날 다급하게 뛰어다녔던 것과 달리 그의 걸음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맑은 햇살을 보고 유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하, 산뜻하구만.”
오늘은 날이 맑아 겨울임에도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첫 정기 집합만 아니었다면, 느긋하게 일광욕이나 즐기고 싶을 정도.
‘한 번쯤 그런 여유는 부려도 되지 않을까?’
‘여유’라는 단어에 살짝 마음이 설레려는 찰나.
숲길이 끝나며 저 멀리 북쪽 시계탑이 보였다.
‘딱 맞춰 왔네.’
시간은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에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시계를 하나 장만하든가 해야겠네.”
그의 생체 시계가 제법 정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진짜 시계만큼은 아니다.
아무래도 요람에서는 시간이 제법 중요할 듯싶은데, 언제까지 생체 시계에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밖에서는 시계 같은 고급품을 살 돈이 없어 그냥 살았다지만.’
이곳은 요람이다.
돈이 아닌 포인트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곳.
포인트만 있다면 시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과연 상점에서 시계를 파느냐였는데…….
‘아주 기초적인 생필품이 아니고는 안 팔 듯싶으니… 특판을 노려야겠네.’
그리 생각하는 사이 유리는 시계탑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이미 수많은 50기가 도착해 있었다.
웅성웅성-.
며칠 만에 모인 50기들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람에서 그들에게 해 준 말은 포인트의 존재와 알아서 자급자족하라는 것뿐.
정보의 부재가 심하기에 요람에 온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된 50기들은 상황 파악이 덜 끝난 상태였다.
그로 인해 50기들은 흑선에서 나눈 친분이나, 안면을 익힌 이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알아 낸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은 정보이니 그리 쓸모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알짜로 분류될 만한 정보를 가진 이들은 눈치를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약간은 시장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유리가 등장한 거였다.
그와 함께 50기의 반응은 둘로 구분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 그건…….”
유리의 등장과 상관없이 그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는 이들.
유리라는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은 바로 백보 의식이 시작함과 동시에 기절해 버린 어중이떠중이 260여 명이었으며.
“…저 녀석이지?”
“저 녀석이 맞아?”
“맞는 거 같은데? 검은 머리 그 녀석.”
유리가 등장하자마자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이들.
그들은 백보 의식에서 자신보다 앞서 걷던 유리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인식한 30여 명이었다.
그렇게 유리의 등장으로 299명은 정확히 두 부류로 나뉘었다.
유리의 존재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물론 그중에서 유리의 이름을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유리가 검주에게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모두 기절해 버렸으니까.
유리의 존재를 아는 이들도 그냥 ‘검은 머리 그 녀석’이라 칭할 뿐이었다.
한편 남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 하거나 말거나.
유리는 인파를 헤치고 가장 앞 열에 자리 잡았다.
곧 그의 뒤로 익숙한 기운이 따라붙었으니.
“배고프다!”
익숙한 목소리에 유리는 피식거렸다.
아무래도 오늘 자신의 기분이 좋긴 좋은가 보다.
저 녀석의 목소리마저 반갑게 들리다니.
살짝 몸을 돌린 순간, 유리는 흠칫거리고 말았다,
그가 눈을 끔뻑였다.
“너, 꼴이… 왜 그 모양이냐?”
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꼬질꼬질하게 변한 뽀삐.
옷 여기저기에 썩은 낙엽은 물론이거니와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털이 가득했다.
“배고프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온 뽀삐는 이내 유리의 주변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뽀삐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걔, 며칠 동안 너만 찾아다녔어.”
이번에 등장한 이는 아린이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유리의 얼굴이 또다시 굳어졌다.
“그러는 너는 또 왜 그 모양 그 꼴인데?”
아린의 행색은 뽀삐와 같았다.
꼬질꼬질하고, 이상한 털 짐승의 털이 한가득인.
마치 뽀삐와 똑같은 곳을 돌아다닌 것처럼 말이다.
유리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혹시 너도 나 찾아다녔냐?”
그 물음에 아린은 제 어깨에 붙은 털과 낙엽을 탁탁 털며 답했다.
“아니.”
“그건 다행…….”
“난 쟤 쫓아다녔지.”
“…….”
아린이 턱짓으로 뽀삐를 가리켰다.
이에 유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니들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라는 말은 자신의 등 뒤로 다급히 몸을 숨기는 뽀삐를 보고 차마 내뱉지 못했다.
“배, 배고프다…….”
유리의 뒤에 웅크리고 몸을 숨긴 채, 어깨너머로 아린을 흘끔거리는 뽀삐.
누가 봐도 극도로 경계하는 그 모습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아린에게 물었다.
“얘를 왜 쫓아다녀?”
“신기하잖아.”
“…그렇군.”
비정상적인 애한테 정상적인 질문을 던진 자신이 병신이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에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 살면서 윰족은 처음 보거든.”
“…윰족?”
“응? 뭐야, 너 몰랐어?”
“……?”
“쟤, 윰족이잖아.”
“……?!”
그 말에 유리의 고개가 자신의 뒤로 휙 돌아갔다.
쭈그려 앉은 뽀삐를 향해 유리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저거 진짜냐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그 눈빛에 뽀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고프다?”
되레 그건 진짜 몰랐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왜 남들은 다 아는데 너만 몰랐냐는 듯한 그 순진한 눈망울에 유리는 맥이 탁 풀렸다.
“예, 그렇군요, 저만 몰랐던 거군요.”
순간 삐딱해진 유리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순간, 아린이 끼어들었다.
“딱 보면 윰족인 거 알지 않나? 윰족이 아니고서야 저 정도 덩치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있다고 해도 흔치 않겠지.”
“…그렇군. 이게 다 그 곰탱이 영감이랑 손자 때문이었어.”
랄프와 무치, 평범한 사람인 주제에 그렇게 무식하게 커서는!
이게 다 평범한 사람의 기준치를 멋대로 올려 버린 그들 탓이었다.
유리의 입술이 다시금 삐죽삐죽 씰룩거릴 무렵.
저벅-.
9시 정각.
공지한 집합 시간에 맞춰, 흑검병들이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