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75
74화. 실마리 (3)
쉑-!
얼굴을 노리고 날아드는 창날.
사뭇 위협적인 그 공격에도 유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공격을 끝까지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틀었다.
하지만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훙-.
귓가에 울리는 파공음.
창대가 유리의 머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감지한 유리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창대를 피했다.
머리를 노린 그 위협적인 공격을 연이어 가벼운 동작으로 넘긴 유리.
그 회피 과정은 너무도 매끄러워 누군가 보았다면 유리와 테레시아가 합을 맞춘 것이라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혹 그게 아니라면 유리의 실력이 테레시아를 압도한다고 여길지 몰랐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아직 유리와 테레시아 사이의 실력 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유리의 실력이 늘긴 늘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유리가 테레시아의 수를 훤히 읽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충 알겠네.’
테레시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그녀의 연계와 심리가 어떤 상태인지.
지난 며칠간의 대련을 통해 그게 어느 정도 읽혀 들었다.
반면 테레시아는 여전히 유리의 공격을 읽고 대처하는 게 늦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또한 재능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마체술의 경지는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수를 읽는다는 건 조금 경우가 달랐다.
수를 읽는 눈.
그건 오랫동안 누적시킨 방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수를 예측하는 눈이 생기거나.
혹은 타고난 감각과 싸움 지능으로 말미암아 고차원적인 눈을 애초부터 지니고 있거나.
그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를 읽는 재능은 유리가 테레시아를 압도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더는 테레시아의 공격에 당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유리는 일부러 대련의 합을 길게 가져갔다.
‘너무 차이가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되면 대련을 하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껏 유리는 테레시아의 취성을 총 4번 받아 보았다.
이제 겨우 감을 잡아 가고 있는데 상대가 전의를 잃고 대련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안 되지 않는가.
하여 유리는 적당히 합을 조절하여 대련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유리가 원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대련이 절정에 달했을 즈음, 유리는 반보 뒤로 물러나는 척을 하며 미끼를 던졌다.
테레시아가 취성을 애용하는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윈체스터가(家) 비전 마체술.
취성(就星).
쉬릭-.
테레시아의 창이 삽시간에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유리에게 날아들었다.
‘이걸로 다섯 번째.’
다시금 눈앞에 펼쳐진 취성에 유리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총 4번이나 취성을 겪어 보면서 유리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확인해 볼 참이었다.
‘빠르게 쳐 낸다!’
지금껏 유리는 취성을 상대하면 마류만을 펼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탕- 탁- 탕-!
취성을 향해 마류가 아닌 빠른 연격을 날리는 유리.
그와 함께 취성의 궤적이 낭창낭창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참으로 신기하고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쳐 냈음에도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창날에 유리는 곧장 뇌익을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치직-.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유리.
그는 테레시아의 손에서 잘게 진동하는 창날을 보고 눈을 빛냈다.
‘역시!’
생각대로였다.
더불어 유리는 그제야 요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윈체스터 가문의 취성은 상당히 독특한 흘리기다.] [힌트를 좀 주자면… 통통 튄다고나 할까?]상당히 독특한 흘리기.
그리고 통통 튀는 느낌.
그 말이 전부 옳았다.
‘취성은 분명 일반적인 흘리기에 속하는 절기다.’
하지만 그 흘리기를 쓰는 방식이 독특했다.
‘흘리기를 방어가 아닌 공격에 사용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흘리기란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 내는 데 쓰인다.
그로 인해 자신을 방어하거나 틈을 만들어 반격하는 용도.
물론 취성의 흘리기도 무언가를 흘려 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그걸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
취성은 방어가 아닌 공격용 절기이고.
거기에 적용된 흘리기는 상대방의 방어를 흘려 내기 위한 용도란 거다.
취성을 막기 위해 휘둘러진 검로를 흘려 내고.
취성의 공격 진로를 가로막는 무언가를 빗겨 치우고.
‘취성은… 상대방의 방어를 무시하는 절기인 거다.’
그건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창을 꽂아 넣겠다는 윈체스터 가문의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래서 마류에 휩쓸리지 않고 거슬러 오를 수 있던 거였어.’
취성은 유리가 만들어 낸 마류의 역장을 비껴 치며.
마치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거슬러 오른 거다.
‘이러니까 통통 튄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
취성을 막으려고 검을 휘둘러도 아마 검이 튕겨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끝내주네.’
취성은 정말로 고차원적인 절기였다.
누군가는 한 번도 사용하기 힘든 흘리기를 공격하는 내내 유지하며.
상대방의 공격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게 흘리기를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공격의 궤도까지 수정하는.
실로 창술의 정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술이 집약된 절기였다.
저 취성이란 절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윈체스터 가문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취성의 비밀에 대해 짐작 가는 건 있었다.
‘저 창이 있기에 취성을 사용할 수 있는 거다.’
테레시아의 손에서 잘게 진동하는 금속 창.
금속 재질임에도 어마어마한 탄성을 보유한 창이기에 자유자재로 흘리기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
“후우…….”
유리는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갈 길이 머네.’
취성의 비밀을 어느 정도 눈치채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목적이었던 마류-잡기의 완성은 요원했다.
‘쉽진 않겠어.’
마류를 읽는 것과 마류-흘리기를 익히는 건 금방 해낸 유리였다.
그러나 그건 이미 요한이 수년을 공들여 완성한 것들이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마류-잡기는 겨우 약간의 뼈대만 완성된 상태고, 그 위에 살을 붙여 내는 건 이제 유리의 몫이었다.
그건 결코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었다.
‘영감탱이, 나한테는 이런 숙제를 주고 자기는 내뺐다 이거지?’
입술을 삐죽거린 유리.
그래도 요한을 심하게 욕하지 못하는 건 그가 알려 준 실마리가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분명 취성을 통해 마류-잡기를 연습하라고 했다.
‘일단은 저 통통 튀는 창을 잡아 낼 수 있어야지 마류-잡기에 대해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을 거 같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막 유리의 머릿속으로 취성을 잡기 위한 한 가지 계획이 확고히 자리 잡혔다.
‘취성을 베낀다.’
원래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는 그 사냥감이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러니 유리는 취성을 낱낱이 파헤칠 생각이었다.
100%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더라도, 자기 손으로 직접 취성을 펼쳐 낼 수 있게끔.
유리는 테레시아의 창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에 테레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 끝이야? 아직 몇 합 더 남았을 텐데?
“당연히 아니지.”
유리가 검을 쥐고 달려 나갔고.
“들어와!”
“예이 예이, 갑니다!”
쾅-!
아무것도 모르는 테레시아는 가문의 절기를 훔치려는 도둑을 열렬히 맞이해 줬다.
* * *
한바탕 격렬한 대련이 끝나고.
테레시아와 유리는 멀찍이 떨어져 호흡을 골랐다.
그와 함께 오늘 그들이 나눈 100합의 공방이 머릿속에 좌르르 흘렀다.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그리고 이 수에서는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나았을지.
둘은 호흡을 고르며 오늘의 대련을 복기했다.
그 작업을 먼저 끝낸 건 유리 쪽이었다.
그는 곧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검이라…….’
요한은 유리에게 마검을 완성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마검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 주지 않고 떠났다.
요한은 예전부터 그랬다.
무언가를 가르쳐 주면서 유리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법이 없었다.
약간씩 선문답을 던지듯, 가르침을 주거나.
혹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거나.
전체를 친절하게 풀어 설명하기보다는 유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을 수 있게끔 상황을 유도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거는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요한이 하는 짓이 꼭 용의 요람이 기수들에게 하는 짓과 같아 보여 어이가 없을 뿐.
‘누가 요람 출신 아니라고 할까 봐 하는 짓도 똑같아요.’
알려 주는 것도 없이 알아서 답을 찾아 오라는 요한이나.
턱없이 부족한 정보만 던져 주고 알아서 하라고 손을 떼는 요람이나.
유리가 봤을 때는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서 마검이 대체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도서관이라도 있다면 찾아라도 볼 텐데, 현재 자신의 처지에 도서관을 어찌 찾아가겠는가.
애초에 이 요람에 도서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여 유리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거지.’
그리고 유리의 궁금증에 답을 줄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다.
때마침 그 사람이 복기를 마치고 눈을 떴다.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은 테레시아를 보며 유리가 슬쩍 운을 뗐다.
“텟샤 선배님아.”
“……?”
“혹시 마검이 뭔지 알아?”
유리의 질문에 테레시아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질문의 의도가 뭐지?”
“의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궁금하다고? 마검이?”
“어.”
“…네가 알고 있는 마검이 뭔데?”
“그냥 공인 4단이 되면 마검을 펼칠 수 있다는 거?”
“그게 끝?”
“응.”
유리의 당당한 답변에 테레시아는 도리어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보통 그런 건 어릴 때 배우지 않나?”
“어릴 때 이런 걸 왜 배워?”
“그야… 마체술을 배우면서 기본적으로 습득하는 지식인데?”
“난 마체술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이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한테 마체술을 가르쳐 준 분이 안 알려 줬어?”
“응. 안 알려 줬음.”
이 망할 영감탱이.
이것 봐! 마체술 익히면서 배우는 거라잖아!
‘알려 줄 거면 제대로 알려 주고 갈 것이지!’
유리가 속으로 요한을 욕하는 사이 테레시아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협상했다.
“마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 줄 테니, 이 정보를 다음 대련의 비용으로 처리해 줘.”
그녀의 협상에 유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 연기를 취했다.
왜냐고?
‘너무 덥석 물면 없어 보이잖아?’
속으로는 이미 ‘좋아!’를 외쳤지만, 겉으로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인 유리.
그가 마지못해 승낙한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좋아, 대신 그 뭐냐… 강검? 그거부터 해서 마검까지 전부 알려 줘.”
“그래.”
어차피 테레시아 본인이 알고 있는 거라고 해 봤자 상식적인 수준일 뿐.
그걸로 1만 포인트를 대체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 남는 장사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 상식도 없는 유리에게는 꼭 들어야 하는 내용이었지만.
“일단 강(强)의 경지부터 설명해 줄게.”
끄덕끄덕-.
유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보통 공인 1단의 경지에 오르면 강(强)을 펼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틀린 말이야.”
“그럼?”
“공인 1단이 되기 이전부터 꾸준히 시도한 끝에 강검에 성공하는 시기가 대개 공인 1단이기에 그런 말이 나온 거지.”
“오호?”
“하여 모든 공인 1단이 강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거는 아냐. 또한, 마력이 공인 1단의 기준을 넘었어도 강을 펼치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취급을 받고는 해.”
끄덕끄덕-.
수업을 듣는 이의 태도가 좋으니 테레시아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강의 경지는 마나 핵과 무기의 파장을 비슷하게 만드는 데에서 시작해.”
“파장?”
“마나 핵이든 무기든 원래 품고 있는 특유의 파장이 있어. 이를 느끼고 그 파장을 조금씩 맞춰 가다 보면… 어느 한계점을 넘어 강(强)이 발현돼.”
“그게 한계점이 언제인데?”
“평균적으로 파장 일치율이 80%가 되었을 때 강검이 발현된다고 해.”
“흠… 그럼 그 강검을 만들면 뭐가 좋은 건데?”
그 되물음에 테레시아는 정말로 유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테레시아는 자신의 창을 들었다.
“무기는 마나 핵과 어느 정도 파장이 비슷해야지만 마나를 머금을 수 있어. 그 파장이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더 많은, 더 순도 높은 마나를 머금을 수 있게 되지.”
마나란 이적을 일으키는 근원.
마나를 머금은 무기는 여러 이적을 행할 수 있게 된다.
“그중에서 강의 경지급으로 마나를 머금은 무기는…….”
우웅-.
“제작 과정에서 쓰인 재료 본연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돼.”
무기 제작에 들어간 각종 재료.
일반 철, 강철, 운철, 혹은 백강철 등등.
강의 경지는 바로 그 재료의 특성을 끌어내어 배가시킨다.
그로 인해 마나를 머금은 무기는 더더욱 단단해지거나, 보다 탄성이 높아진다거나.
혹은 그 밖에 여러 특성을 보이게 되는 거였다.
유리는 테레시아의 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옅은 진동음을 낸 그녀의 창이 마치 기름이라도 바른 듯 광택을 드러냈다.
“그게 강검인 거야?”
“맞아, 나한테는 강창이겠지만.”
“그렇게 빤딱빤딱 빛나는 게 강검의 특징인가?”
“일반적으로 이렇게 광택을 머금지만, 익히고 있는 마체술의 개성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해.”
그 말을 들으며 유리는 자신의 애검 흰둥이를 꺼내 보았다.
“흠, 마나 핵과 무기의 파장이라.”
그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슬쩍 눈을 감았다.
그건 누가 봐도 강검을 시도해 보려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