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88
87화. 호랑이 사냥 (1)
유리와 친구들이 훈련소를 빠져나왔다.
끼이익- 덜컥- 쿵!
녹슨 철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닫히고.
“스하아아압!”
유리가 양팔을 벌려 폐 한가득 공기를 담았다.
쌀쌀한 찬바람이 들어가며 유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 이 사회의 냄새.”
저 안에서 고작 하루도 있지 않았는데, 이토록 바깥세상의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질 줄이야.
“스하! 스하아압!”
찌든 짬내를 씻어 낼 작정인지 유리는 연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차디찬 숲의 공기를 들이켰다.
그런 유리의 뒤편.
“으어어어…….”
“으어…….”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뽀삐와 아린이 천천히 유리의 옆을 지나쳤다.
이에 유리가 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턱-.
“뭐야? 어디 가려고?
아린과 뽀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무감정한 표정에 유리는 그만 흠칫하고 말았다.
“…표정이 왜 그 모양들이냐?”
그 물음에 돌아온 건 냉랭한 말투였다.
“누구시죠? 모르시는 분이 말을 거시네요? 흥!”
“배고프다!”
콧방귀를 끼며 픽 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두 사람.
이에 유리는 활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왜 이러실까? 17시간 44분을 함께한 동지끼리.”
“이익! 누가 동지가 되고 싶어 했냐고!”
“배고프다!”
“우리가 왜 짓지도 않은 죗값을 받아야 했던 건데!”
“배고프다!”
아린의 항의에 뽀삐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거릴 뿐.
“내 옆에 있게 해 달라고 한 건 너희인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자릿세라고 생각해.”
“…자릿세?”
“내 옆에 있게 해 주는 대신 받는 요금. 뭐, 아직 한참 모자란 거 같은데… 일단은 계약금만 받았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천천히 받을게.”
“…양아치니?”
“…배고프다?”
살면서 이딴 양아치 처음 본다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도 유리는 빵끗 웃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그런 웃음과는 상당히 괴리감 있는 이야기였다.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옆에 있기로 한 건 너희의 선택이야. 그러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
“…….”
뽀삐와 아린이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이 웃는 낯으로 저리 뻔뻔하게 나오니 뭐라고 할 기운마저 빠져나갔다.
아니, 이제는 오히려 떠나라고 등 떠밀어도 못 가겠다.
억울해서라도 무조건 붙어 있어야지!
“에휴…….”
“…배고프다.”
크게 한숨을 내쉬는 둘을 보고 유리는 살포시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이제부터 할 거 없으면 나랑 뭐 좀 같이하자.”
“뭘?”
유리의 답은 바로 튀어나왔다.
“호랑이 사냥.”
그 이야기에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호랑이 사냥?”
아직 호랑이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한 아린은 호기심을 드러냈고.
흠칫!
유리보다 먼저 호랑이에게 당해 끌려다녔던 뽀삐는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둘의 각기 다른 반응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 호랑이 잡을 거다.”
“배고프다.”
뽀삐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충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호랑이는 못 잡는다고?”
끄덕끄덕-.
확실히 호랑이에게 당한 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단호했다.
“아니, 잡을 수 있어. 너희가 도와준다면.”
지난 시간 동안, 유리는 단순히 지옥 훈련만을 받은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심했고 결국 한 가지 계획을 떠올렸고, 그 계획에는 뽀삐와 아린이 필요했다.
유리의 이야기에 아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 그러니까 지금 우리보고 동료가 되어 달라는 거지?
“동료라고 할 거까지는 없고, 그냥 힘을 합쳐서 호랑이만 잡자는 거지.”
“그게 그거지! 그럼 우리 한 스쿼드인 거네?”
“뭐, 마음대로 생각해.”
유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에도 아린은 신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뽀삐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런 뽀삐를 향해 유리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래? 같이할 거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는 않았지만, 뽀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유리 옆에 있기로 한 이상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인 스쿼드가 결성되자 유리가 양손을 비볐다.
“자자, 그럼 보수 문제부터 좀 짚고 넘어가 볼까? 호랑이를 잡았을 때, 500만 포인트니까, 너희의 기여도를 생각해도 50만 포인트를…….”
“좋아. 그렇게 해!”
“배고프다.”
유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린과 뽀삐.
이에 유리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둘이 나눠서 각각 25만 포인트인데. 할래?”
“난 상관없어. 재밌겠네.”
“배고프다.”
포인트에는 티끌만큼도 관심 없다는 듯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둘의 모습에 유리는 적잖이 감동한 눈빛이었다.
‘얘들은… 천사인가?’
원래는 500만 포인트의 10%를 각자에게 지급하려고 했었던 유리.
그런데 아린이 대뜸 ‘좋아!’를 외치고 알아서 뽀삐까지 끌어들이는 게 아닌가.
이를 유리가 놓칠 리 있나.
그는 바로 말을 바꿔 인당 25만 포인트로 조정해 버렸다.
심지어 그마저도 별 상관 없다는 듯 반응을 보이는 둘을 보고 있자니 진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나… 아무래도 친구 잘 사귄 거 같아.’
세상에, 이리 착한 호… 아니, 친구들 같으니라고.
유리는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일이 잘 풀릴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럼 이제 뭐 해? 뭐부터 할까?”
“우선은…….”
아린이 그리 재촉하자 유리는 상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좀 쉬자.”
본래 하루 권장 형량은 8시간이었지만, 셋은 최대한 빨리 나가기 위해 17시간 44분의 형량을 쉬지 않고 받아 버렸다.
비록 뽀삐의 약손 덕분에 괜찮아지기는 했다지만, 얼마 전까지 뇌익을 남발한 후유증으로 골골거리던 유리였다.
그런 상태에서 지옥 훈련을 18시간가량 받았으니 아무리 그라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곧 있으면 동이 트겠네.’
다시 밤이 오기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다.
그때까지 푹 쉬고 체력을 회복해야만 했다.
저벅-.
유리가 먼저 앞장서고, 그 뒤로 뽀삐와 아린이 바짝 따라붙었다.
그렇게 유리와 친구들이 다시금 동물의 숲으로 돌아갔다.
* * *
점심 무렵.
유리와 친구들이 나타났다.
푹 쉬다 온 것인지 그들의 얼굴은 막 출소했을 때에 비하여 상당히 좋아 보였다.
가볍게 몸을 풀던 아린이 유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이제부터 뭐 해?”
“따라와.”
유리는 고갯짓했다.
그는 뽀삐와 아린을 데리고 숲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늑대 구역.
유리가 늑대 구역으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보가 필요해.’
호랑이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정보가 필요했다.
하여 그 정보를 얻기 위한 실험을 하기 위해 늑대 구역으로 가고 있는 거였다.
아린은 유리와 합을 맞춘 기억을 떠올리고 눈을 빛냈다.
“늑대 잡으러 가는 거야?’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지 살짝 신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딱히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묵묵히 숲을 나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 구역에 도착한 유리와 친구들.
운이 좋은 것인지 그들은 곧장 한 명의 늑대와 마주할 수 있었다.
“멍멍.”
이번에 만난 늑대는 49기였다.
그는 유리와 친구들을 보고 흠칫 놀라 주춤거렸다.
이에 유리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아린과 뽀삐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바로 따라붙었다.
“도와줄게!”
“배고프다!”
의욕 넘치는 그들에게 유리는 가벼이 손을 내저어 줬다.
“아니, 너희는 거기서 잠깐 쉬고 있어 봐.”
“응?”
뽀삐와 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껏 같이 스쿼드를 만들어 늑대 사냥하러 왔더니만, 어째서 자신들은 쉬라는 거지?
그런 생각이 그들의 눈에서 적나라하게 읽혔다.
한편, 늑대는 늑대대로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살짝 인상을 굳혔다.
“너 혼자 날 상대하겠다고?”
“응.”
“…….”
49기 늑대의 미간이 막 찡그려지려는 찰나, 유리를 유심히 보던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너… 그 녀석이었군. 유리 홀랜드.”
“날 알아?”
“모를 리가. 이 요람에서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50기 애들은 내 이름 모르는데? 아, 쟤들은 빼고.”
유리가 엄지로 제 뒤를 가리켰다.
그가 딱히 가르쳐 준 적은 없었지만, 같이 재판을 받으면서 이름을 듣게 된 뽀삐와 아린.
두 사람이 바로 50기에서 가장 처음 유리의 이름을 알게 된 이들이었다.
그의 지적에 49기 늑대남이 말을 바꿨다.
“…50기는 빼고, 이 요람에서 네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와, 바로 말 바꾸는 거 봐. 줏대 없긴.”
“…네놈은 실력에 비해 예의는 없군. 선배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지?”
“팔긴 뭘 팔아먹어? 애초에 팔아먹을 것도 없었는데.”
틱틱거리는 유리의 말투에 늑대남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에게 선배에 대한 예의를 주입시켜 줘야겠네.”
“에이, 그쪽 실력으로? 아서, 그러다 다쳐.”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초승달처럼 휘어진 저 눈매가 어찌나 얄미운지.
49기 늑대남의 눈에 살기가 감돎과 동시에 그가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다.
캉- 캉- 캉-.
아니, 이걸 싸움이라고 해야 할까?
유리와 늑대남이 맞붙은 걸 보고 아린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뭘까? 저거 뭔가 이상한데?’
유리와 늑대남의 싸움은 격했다.
분명 그렇게 보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긴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린이 그 같은 느낌을 받은 건 일전에 유리가 두 명의 늑대를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마치…….
‘마치 일부러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연기하는 거 같아.’
이윽고 아린은 제 생각에 확신을 품었다.
‘확실해! 저거 연기하는 거다!’
그렇게 확신이 드니 그녀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일전에 유리가 늑대 두 명을 상대로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지금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싸움을 관찰하지 못했다면.
자신 역시 유리와 늑대가 비등비등, 박진감 넘치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랐다.
그 정도로 유리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유리와 싸우고 있는 늑대남이 신이 나 거친 고함을 터뜨렸다.
“고작 이거냐!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보를 걸은 건 그저 운이었구나! 흐하하하!”
“크윽!”
자신이 유리 홀랜드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늑대남.
그를 상대하는 유리의 표정 하나하나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이에 아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쟤는 그냥 타고난 사기꾼이네.”
저 표정 연기를 봐라.
안 속아 넘어가는 게 더 힘들 거다.
그렇게 혀를 내두르던 아린은 늑대남이 한 이야기를 뒤늦게 떠올리고 화들짝 놀랐다.
“가만… 백보 의식에서 열다섯 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열다섯 걸음이나 걸었다고?!’
맙소사!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자신은 고작 여섯 보… 아니, 온전히 여섯 걸음조차 못 걷고 기절해 버렸다.
자신이 기절하기 직전에도 유리는 가장 앞에서 걷고 있었고,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긴 했었는데… 무려 열다섯 보나 걸었다니.
유리가 열다섯 보를 걸었다는 소리에 놀란 건 뽀삐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놀랄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