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89
88화. 호랑이 사냥 (2)
뽀삐와 아린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어라?”
“……?”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째…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리고 이는 단순히 두 사람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이 느낀 대로 유리와 늑대남의 격전이 점차 두 사람이 자리한 방향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린과 뽀삐가 알아차렸을 때는…….
챙- 캉- 카강!
“으, 으아!”
“배고프다!”
이미 두 사람이 싸움에 휘말려 버린 뒤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가 둘을 싸움에 억지로 끼워 넣은 거였다.
원하는 바를 달성한 유리가 작게 소리쳤다.
“교대.”
그러고는 뽀삐의 뒤로 쪼르르 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아린과 뽀삐는 볼 수 있었다.
교대하자는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히죽 웃고 있는 사악한 입꼬리를.
그제야 그들은 이 모든 게 유리가 부린 수작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
“저리 비켜라!”
늑대남이 걸리적거린다는 얼굴로 검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살기등등하게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늑대남을 보며 아린이 빼액 소리쳤다.
“이럴 거면 왜 쉬고 있으라고 한 건데!”
동의한다는 듯 후욱- 콧김을 내뿜는 뽀삐.
하지만 언제까지 불평만 할 수는 없었기에 아린은 곧바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푸슉-.
순식간에 장전 후 발사되는 화살을 본 유리는 살짝 감탄했다.
‘엄청 빠른데?’
전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확실히 놀라운 활 솜씨였다.
얼마나 숙달했기에 화살통에서 뽑혀 나온 살이 쏘아지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 걸까?
이 정도면 초당 1발씩 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휘릭-.
다만 너무 다급하게 활을 당긴 것일까.
아린이 날린 화살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는 이미 공인 1단급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게 증명된 상태.
탕-!
아니나 다를까.
늑대남은 아린의 화살을 가볍게 튕겨 냈다.
그래도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늑대남을 약간이나마 주춤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사이 뽀삐가 등 뒤에 메고 있던 방패를 꺼내 들었다.
쿵-.
자그마치 1m 6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패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대지를 내리찍었다.
이에 유리는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힘이 좋으면 저 무거운 걸 메고 다니냐.’
일반인이 든다면 전신을 가릴 정도였으나 뽀삐에게는 그냥 일반적인 방패로 보일 뿐.
뒤로 빠져 뽀삐를 지켜보던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디 한번 보자고.’
그가 이번에 실험하면서 알아볼 것 중 하나가 바로 뽀삐에 관한 거였다.
아린과는 지난번에 합을 맞춰 보았기 때문에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나 뽀삐에 관해서는 모든 게 미지수였다.
뽀삐가 어떤 유형의 마체술을 사용하고.
그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그걸 파악하는 게 바로 이번 실험의 쟁점 중 하나였다.
유리는 유심히 뽀삐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즈득-.
뽀삐의 방패가 나타난 순간 대지를 내디디고 있는 늑대남의 신발 밑창이 강한 마찰에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늑대남의 육체가 우측으로 기울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유리였기에 슬쩍 몸을 틀어 방패를 비켜 가려는 거였다.
그렇게 늑대남이 방패를 피해 돌아가려는 찰나.
훙-.
거친 풍압과 함께 거대한 원형 방패가 달려오는 적을 향해 휘둘러졌다.
늑대남은 순간, 벽이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콧방귀를 꼈다.
‘느려 터졌군.’
방패에 실린 힘은 분명 쓸 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 뭐 하겠는가.
이따위로 느려 터진 공격에 맞아 줄 정도였으면 지금까지 요람에서 살아남지도 못했다.
훙-.
늑대남이 콧방귀를 낀 찰나.
또다시 바람이 일며 늑대남의 정면에 치닫고 있던 벽과 같은 방패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었다.
늑대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패를 세웠어?!’
조금 전까지 평평한 면으로 다가오던 방패가 순식간에 수평으로 뉘여 있었다.
면으로 행해지던 공격이 갑자기 선으로 바뀐 거다.
덩달아 적을 향해 방패가 나아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이를 본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속도는 느리지만, 힘이 좋으니 파괴력은 확실하고… 거기다 변칙을 더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기술도 있고.’
단순히 방패를 방어적인 용도로만 쓰는 게 아니라 이를 공격으로도 활용하는 방패술은 나쁘지 않았다.
아마 경험이 적은 이라면 뽀삐의 방패술에 꽤 곤욕을 치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뽀삐가 상대하는 이는 산전수전을 겪고 이 요람에서 살아남은 2년 차였다.
으득-.
늑대남의 허리가 뒤로 꺾이며 그의 눈앞으로 아슬아슬하게 방패가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공격을 피해 내니, 방패 뒤에 숨어 있던 뽀삐의 몸이 훤히 드러났다.
변칙적인 공격이 수포가 되니, 되레 적에게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는 꼴이 된 거였다.
뽀삐가 다급히 방패를 되돌리려 했지만, 그보다 늑대남이 빨랐다.
스악-!
늑대남이 살벌한 기운을 담아 검이 휘둘렀다.
“죽어!”
시시각각 다가오는 매서운 칼날에 뽀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방패를 회수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걸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큰 부상을 감수하려는 찰나.
파츠즉-!
뽀삐의 품에서 벼락이 쳤다.
그리고 벼락은 이내 시커먼 그림자로 변했고, 그 안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와 뽀삐를 노리는 검을 막았다.
캉-.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늑대남의 표정에 당황이 깃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판단을 내린 그는 그대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렇게 늑대남이 도망친 자리.
위기의 순간 뇌익을 펼쳐 뽀삐를 구해 낸 유리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감히 내 친구를 괴롭히냐!”
그의 외침을 들은 아린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요.”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너 때문에 생긴 거잖아요?
이 나쁜 놈아!
이건 뭐,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아린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유리는 멋들어진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검을 들었고, 이를 늑대남을 향해 겨눴다.
“내 친구를 괴롭힌 죗값… 가죽으로 갚아라.”
그리 외친 유리는 검을 사선으로 흩뿌리며 늑대남을 향해 달려들었다.
“…….”
“…….”
아린과 뽀삐는 그런 유리의 뒷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달려오는 유리를 보는 늑대남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덤벼라!”
이번에야말로 너를 잡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유리를 맞아 준 늑대남.
의기양양, 자신감 넘치던 늑대남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긍-!
‘어?’
카캉!
‘어라?’
카가가!
‘이 자식…….’
탕-!
‘어째서?’
파츠즉!
‘실력이… 늘었지?’
유리와 검을 맞대는 느낌이 조금 전과는 판이했다.
아까보다 더 묵직하고,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공격 한번, 한번을 막아 내는 게 버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추호도 짐작 못 하는 늑대남은 유리의 실력이 늘어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와 늑대남이 검을 나눈 횟수가 쌓여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백.”
유리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늑대남은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진즉 그도 숫자를 세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늑대남의 낯빛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검을 거둬들인 그가 다급하게 유리의 공격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아아, 그런 거였군.”
그렇게 알아내야 할 것을 알아낸 유리는 이제 실험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대뜸 검을 집어넣었다.
우득-.
“자, 그럼 이제부터 내 시간이네?”
가볍게 손을 꺾으며 조소를 머금은 유리.
“자, 잠깐!”
늑대남이 당황하여 손을 뻗었지만, 이미 유리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훙-.
아지랑이처럼 늑대남의 앞에 나타난 유리.
“이 꽉 깨물어. 혀 잘리고 싶지 않으면.”
쾅!
“컥!”
피하려고 하였으나 유리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늑대남.
“켁?!”
그의 복부에 유리의 무릎이 무자비하게 꽂혔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늑대남이 훠이훠이 날아갔다.
그리고 유리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팟!
지면을 박찬 유리가 곧 날아가고 있던 늑대남을 따라잡았고.
투다다닥-.
그의 주먹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며 늑대남을 잘근잘근 다지기 시작했다.
두다다다다!
“크악!”
늑대남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두들겨 맞았다.
유리의 주먹질이 어찌나 빠르던지 늑대남의 몸은 공중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떨어질 만하면 유리가 걷어차 올리고.
또 떨어질 만하면 걷어차 올리고.
그렇게 장장 5분여를 두들겨 맞은 늑대남은 결국 공중에서 기절하고 말았고.
털푸덕-.
처참한 모습으로 늑대남이 지면에 널브러졌다.
“후우…….”
후련하다는 듯 숨을 내쉰 유리가 늑대남의 품에서 가죽을 꺼내 들었다.
“너는 좋은 실험체였다. 고이 잠들어라.”
유리가 뿌듯한 얼굴로 나지도 않은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한편, 그 과정을 지켜본 뽀삐와 아린의 뒤통수에는 큼지막한 땀이 맺혔다.
“늑대… 죽었어?”
“…….”
아린의 질문에 뽀삐도 늑대가 살아 있다고는 쉬이 장담하지 못했다.
* * *
본격적인 어둠이 찾아오기 전.
유리와 친구들은 모닥불을 피운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일행은 유리가 챙겨 온 건량을 나누어 먹는 중이었다.
‘그나마 이건 안 뺏긴 게 다행이네.’
훈련소에서는 그동안 모은 가죽은 전부 뺏어 갔지만, 유리가 밖에서 사 온 식량은 출소할 때 되돌려 주었다.
하루치 식량을 셋이서 먹고 있었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
하지만 간단하게 허기를 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사 오는 건데.’
처음에는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처럼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건량은 1,000포인트 이상의 값어치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오물오물-.
딱딱하고 퍽퍽한 건량을 침으로 녹이며 아린이 물었다.
“그래서 대체 그 난리를 쳐 가면서 알아보려 한 게 뭐였어?”
“뭐가?”
“아까 그 늑대를 죽인 거…….”
“안 죽였는데?”
“…죽이려고 한 거.”
“어허, 저는 그런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만?”
“이익! 늑대를 고기 반죽으로 다져 놓은 거!”
“아… 그건 정확한 표현이군.”
“아무튼, 그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잖아!”
그녀의 질문에 뽀삐가 눈을 끔뻑이며 유리를 바라보았다.
저 말이 정말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편, 유리는 질문을 받고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얜 진짜 알 수가 없네.’
자유분방한 푼수인 건지.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천재인 건지.
‘푼수라고 하기에는 눈치가 너무 빠르단 말이지.’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유추해 내다니.
이건 단순히 눈치만 빠르다고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맥락을 읽는 눈과 상황을 분석할 줄 아는 머리가 있어야지 가능하지.’
그리고 그게 가능한 사람이 멍청할 리는 없었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얘가 그건가?’
유리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아린의 눈이 뚱해졌다.
“…뭐야, 그 묘하게 기분 나쁜 눈빛은?”
“내 눈빛이 뭐가 어때서?”
“대충 바보인 줄 알았던 애가 바보가 아니란 사실에 놀라는 듯한 눈빛?”
“…….”
…확실하군, 이 새끼 천재다.
“봐 봐! 지금도 그 이상한 눈빛!”
아린의 지적에 유리가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내가 아까 왜 그 짓거리를 했냐면…….”
“아앗! 말 돌린다!”
“조용히 해.”
“넴.”
유리가 째려보자 아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다시 말을 이어 나가는 유리.
“아까 내가 그 짓거리를 한 건 네 짐작대로 몇 가지 알아볼 게 있어서야.”
“뭔데 그게?”
“배고프다?”
궁금하다는 둘의 눈빛에 유리는 웃으며 짧게 답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