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90
89화. 호랑이 사냥 (3)
“짐승들의 공방 횟수.”
유리가 그렇게 답을 줬지만, 아린과 뽀삐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뭔데, 그게?”
“배고프다?”
똑같이 되풀이된 질문에 작게 한숨을 내쉰 유리.
그는 동물의 숲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주었다.
그걸 듣고서 그제야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가 200번밖에 공격을 못 한다고? 오와… 넌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어깨를 으쓱인 유리.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여튼 내가 알아보려 한 건 짐승들의 공방 횟수가 여러 사람이 합공할 때는 어떻게 적용되는지였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공방 횟수의 적용은 한 사람당 200회야.”
유리는 200회가 넘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에서 뽀삐와 아린이 끼어들게 했다.
그 과정에서 늑대남은 아린의 화살을 쳐 냈고, 뽀삐와 몇 합의 공방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유리가 다시 끼어들어 공방을 이어받았지만, 늑대남과 유리가 주고받은 공방 횟수는 정확히 200회에서 끝이 났다.
만약 아린과 뽀삐가 늑대와 나눈 공방 횟수까지 계산되었다면, 유리가 카운트(count)한 숫자는 200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합공으로 200회의 횟수를 나눠서 소진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한편, 그런 유리의 설명을 듣고 있던 아린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만약 다른 조건이 있으면?”
“다른 조건?”
“나랑 뽀삐의 공격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200합 안에 포함이 안 된 걸 수도 있잖아?”
유리가 되물었다.
“예를 들면?”
“예를 들어, 내 화살은 딱히 늑대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뽀삐는 직접적으로 늑대랑 무기를 부딪친 일이 없었어. 직접 무기를 부딪치거나 위협적인 공방을 주고받은 건 너뿐이니, 그것만 횟수가 계산된 걸 수도 있잖아?”
그녀의 설명에 유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래서 좀 더 검증이 필요한 거고.”
아린이 짚어 준 건 유리도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린에게 듣게 된 순간 유리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남을 통해 검증받는다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네.’
괜히 머쓱한 감정이 든 유리는 서쪽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노을의 붉은 기운이 사라져 가고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이에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자.”
“다시 늑대를 잡으러 갈 거야? 또 검증하러?”
그 물음에 유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한동안 밤에 사냥은 하지 않을 거다.”
“그럼?”
“도망 다녀야지, 호랑이를 피해서.”
사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늑대들을 잡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 덮어 두고.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무사히 밤을 보내는 거다. 그러려면 밤새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해.”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그냥 한군데 숨어 있으면 안 되나?”
“호피녀… 아니, 호랑이를 상대로는 한곳에 오래 죽치고 있는 게 더 위험해. 차라리 밤새 움직이며 도망치는 게 나아.”
일전에 깨달은 거미줄 형태의 마류라면 기운을 숨기지 않고 돌아다니는 호피녀 정도는 감지해 피해 다닐 수 있을 거다.
“에휴, 앞으로 밤에 잠자긴 다 글렀네.”
“배고프다…….”
벌써부터 피곤해 보이는 아린과 뽀삐의 얼굴을 보고 유리는 피식거렸다.
“다시 그 훈련소 돌아가고 싶냐? 그럴 생각이면 한곳에 죽치고 잠이나 자든가.”
유리의 물음에 아린과 뽀삐가 강하게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게 더 싫어! 차라리 밤새 도망쳐 다니는 게 낫지.”
“배고프다!”
순식간에 그들의 얼굴에 피곤함은 사라지고 결연함이 감돌았다.
이에 유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의지 좋네, 일단 이 밤이나 무사히 보내자고. 그러고 나서 내일부터는…….”
그 말과 함께 유리는 모닥불을 발로 차 꺼뜨렸다.
흩날리는 불씨 속, 유리의 눈빛이 빛났다.
“…곰 사냥을 시작한다.”
그게 호랑이 사냥을 위한 첫걸음이리라.
타닥- 타다닥-.
모닥불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고 사위가 곧 완연한 어둠에 잠식됐다.
이는 바야흐로 긴긴밤의 시작이었고.
그로부터 여러 밤이 지나갔다.
* * *
해가 중천에 뜬 시각.
갈색에 동그란 형태를 지닌, 곰 귀 머리띠를 한 흑검병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누가 봐도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
실제로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스락-.
흠칫.
주변에서 생겨나는 작은 소리에도 흑검병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덩달아 검을 쥔 그의 손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꾸득-.
흑검병의 검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마나의 불꽃에 휩싸여 있었으니.
바로 그가 공인 3단임을 증명하는 화검이었다.
언제든 대처하기 위해 화검을 유지하며 흑검병은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솨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침엽수의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사사사사사-.
마치 뱀이 수풀을 헤치고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흑검병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찰각- 서걱-.
검 끝에 걸려든 딱딱한 무언가가 그대로 잘려 나가며 흑검병의 주변으로 화살촉 하나가 떨어졌다.
그렇게 화살 하나를 걸러 냈지만, 그는 쉬지 못했다.
사사- 사사삭-.
조금 전과 똑같은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기 때문이다.
머리 위, 등 뒤, 왼쪽 어깨, 발목.
총 4곳.
하나같이 사각만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
심지어 그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들었다.
발목 쪽으로 날아오는 화살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이에 흑검병은 혀를 내둘렀다.
‘놀라운 궁술이다.’
그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화살에 담긴 기질이 이리도 똑같은데.
이건 화살을 쏘아 보낸 이가 여럿이 아니라 단 한 명이란 소리였다.
그런데 그 단 한 사람이 서로 다른 방위에, 그것도 거의 같은 시간에 화살이 도착하게 만들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궁술이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놀라운 건 사실이었지만…….
‘위력은 없다.’
딱히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칼질 한 번에 3개의 화살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발목을 노리며 날아든 화살을 쳐 내기 위해 흑검병의 상체가 조금 수그러졌다.
이로 인해 그의 자세가 잠깐 흐트러진 찰나.
훙-.
그의 머리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
분명 시간상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한데 갑자기 거대하고 둥근 무언가가 나타나 해를 가려 버렸다.
마치 일식 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흑검병은 곧 그런 현상을 일으킨 게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방패?’
그건 실로 거대한 방패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방패가 포물선을 그리며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위험!’
저 거대한 방패에 깔리면 어찌 될지는 오래 계산하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따라서 흑검병은 뒤로 몸을 물렸다.
그리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화살이 나타났다.
‘……?!’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그 자리에 떡하니 나타나 허벅지를 노리는 화살.
이에 흑검병은 깨달았다.
‘내 움직임을 예측했다. 아니, 내가 이리 움직이게 유도한 거다!’
처음 4개의 화살 중 발목을 노린 화살은 일부러 늦게 도착하게 만든 거였다.
그로 인해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그 화살을 처리하게끔 하여 자세를 흐트러뜨렸고.
그 틈을 타서 거대한 방패가 날아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놀란 자신이 어디로 빠질지 예측하여 한발 먼저 화살을 날린 거다.
그 모든 게 누군가의 계산이리라.
‘대단하구나.’
공인 3단의 흑검병, 하지만 그는 곧 공인 4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검병 내에서도 나름 경력이 쌓인 고참 취급을 받는 이.
그런 자신도 이 정도로 정교한 연계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흑검병은 이를 악물었다.
으득-.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자신을 깔아뭉갤 듯 떨어지는 거대한 방패냐.
아니면 뒤에서 나타난 화살이냐.
그리고 그건 사실 선택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거대한 방패에 당하기보다는 화살 몇 방을 맞는 게 나았으니까.
이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이뤄진 선택이었다.
또한 본능적 감각이 만들어 낸 최적의 선택이기도 했다.
다만 흑검병에게 불행인 것은, 그의 그런 선택마저 예측한 이가 있었다는 거다.
츅-!
뒤로 물러서길 감행한 흑검병의 허벅지에 화살이 꽂혔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물러선 흑검병.
그와 동시에 사선으로 떨어진 방패가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꽂혀 들었다.
콰득-!
어찌나 힘이 좋던지 방패는 지면에 절반 이상이 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파츠측-.
갑자기 허공에 먹구름과 같은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뇌전을 토해 냈다.
순식간에 지면을 휩쓸며 들이닥친 그림자는 이내 검은 머리 소년으로 변했다.
검은 머리 소년, 유리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빠르게 연속적으로 검을 날려 왔다.
예상 못 한 기습에도 흑검병은 침착하게 유리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렇게 유리와 몇 합을 나누자, 화살을 몸으로 받아 내고도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던 그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 녀석…….’
조금 전부터 소년의 공격을 받아 내며 이상할 정도로 화살이 꽂힌 오른 다리에 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설마?’
살짝 의심이 들은 찰나.
즈걱-.
유리의 신형이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가기 위해 흑검병도 무리하여 방향을 틀어야 했는데, 그 탓에 다시 오른 다리에 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이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러니 흑검병은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의도한 거였냐?’
오른 다리, 그중에서도 뒤 허벅지에 꽂힌 화살.
그건 지금의 상황을 의도한 공격임이 분명했다.
‘허 참!’
흑검병 중에서도 고참인 자신이 고작 요람의 기수에게.
그것도 이제 막 들어온 50기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을 법도 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당하고 있으니 오히려 즐거웠다.
‘고작 햇병아리들을 상대하는 임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 주다니!
지난 며칠간 지루함에 몸살을 앓던 흑검병은 환히 웃었다.
“더… 더어어어! 좀 더 화끈하게 밀고 들어오란 말이다! 흐하하하!”
자신이 밀리고 있음에도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는 흑검병.
그는 허벅지에 꽂힌 화살을 거침없이 뽑아냈다.
그러자 막혀 있던 상처가 터지며 피가 솟구쳤다.
이미 한참 전부터 유리가 집중적으로 부하를 주고 있었기에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못한 그의 오른 다리.
그럼에도 흑검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움직였다.
아니, 오히려 통증 따위는 잊은 듯 이전보다 움직임이 더욱 좋아졌다.
이에 유리를 이를 악물었다.
‘하, 싸움에 미친 종자들 같으니라고.’
자극을 좀 줬다고 단번에 눈깔이 돌아가다니.
그리고 이는 비단 지금 상대하고 있는 흑검병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흑검병 모두가 하나같이 중간부터는 눈깔이 훼까닥 가 버렸었다.
‘하나같이 싸움 못 해 죽은 귀신들이 붙었나!’
어쩜 이리도 죽자 살자 덤비는 건지.
세계 최강의 전투 집단.
혹은 싸움에 미친 집단이란 명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듯, 유리가 상대한 흑검병들은 하나같이 호전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흑검병들의 눈깔이 훼까닥 돌아간 시점부터는 전투가 어려워졌다.
‘아오! 이 새끼들은 적당히란 걸 몰라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처와 통증 따위는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흑검병 탓에 유리에게 우세했던 형국은 어느새 열세로 바뀌어 있었다.
‘젠장!’
아무리 수를 열심히 예측하고 촘촘하게 덫을 깔아 두면 뭐 하나.
눈깔 돌아간 흑검병들이 기본 역량으로 다 때려 부수는데.
‘내가 진짜 서러워서… 얼른 공인 3단 되고 만다!’
카- 가가가강- 캉!
유리는 이를 악물고 흑검병에 맞서 싸워 나갔다.
차츰차츰 쌓여 가는 공방 횟수.
그리고 마침내.
“…오십!”
공방의 합이 50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