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92
91화. 호랑이 사냥 (5)
순식간에 맞붙은 유리와 호피녀.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폭음과 함께 유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
쾅-!
첫 일격으로 인해 꽤 묵직한 충격을 받은 듯싶었으나 유리는 활짝 웃고 있었다.
‘역시 선빵 필승!’
첫 공격으로 별다른 타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선공으로 너무도 쉽게 첫 번째 합을 넘길 수 있었다.
준비한 패를 까지도 않고, 심지어 뇌익조차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비록 거하게 얻어터지고 뒤로 튕겨 나가고 있지만, 지금보다 좋은 상황은 없었다.
앞으로도 상황이 이렇게 좋게 흘러가면 좋겠지만.
‘물론 그럴 리가 없지.’
튕겨 나가는 유리를 쫓아 호피녀가 따라붙었다.
그녀의 주먹이 유리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걸 보자 며칠 전 쌍코피가 터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똑같은 거에 당할 줄 아냐!’
파츠측-.
운보 위에 뇌익이 덧씌워졌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유리의 신형이 뇌전에 휩싸이고.
훙-.
호피녀의 주먹이 유리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니, 정확히는 유리가 남긴 잔상의 머리를 꿰뚫은 거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
위기를 감지한 그녀가 고개를 다급히 뒤로 물렸고.
측-.
호피녀의 왼쪽 볼에 따끔한 통증이 일어났다.
탁-.
“…….”
제자리에 멈춰 선 호피녀.
그녀는 어느새 7m 너머로 멀어진 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볼을 문질렀다.
그러자 금속 건틀릿에 옅은 핏물이 묻어났다.
이에 살짝 커진 호피녀의 눈동자.
자신의 피를 본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
상상도 못 했다.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임무에서.
이제 막 요람에 들어온 햇병아리에게 상처를 입다니.
호피녀의 미소가 잔혹성을 띠기 시작했다.
“역시… 재밌어.”
7m나 떨어져 있음에도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는 유리를 보며 호피녀는 혀를 날름거렸다.
붉은 혀가 입술을 촉촉이 적시고.
‘조금 더 놀아 보자고!’
뾰족한 송곳니 하나가 활짝 드러났다.
이를 보고 있던 유리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건 육체가 보내는 경고였다.
‘온다!’
아니나 다를까.
훙-.
저 멀리 있던 호피녀가 꺼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유리의 앞에 도달해 있는 게 아닌가.
가히 순간 이동과 다름없다고 느껴질 정도의 속도.
일전에는 이와 똑같은 수에 당황했었다.
하지만 지금 유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다.
그의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많은 수가 계산되고 있었다.
호피녀의 눈빛과 미세한 움직임.
주변의 환경.
자신의 움직임과 위치.
그로 인해 상대가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올지.
극히 짧은 순간, 유리의 머릿속에서 호피녀가 보일 최적의 수가 결론지어졌다.
‘왼쪽!’
유리는 한 수 앞서 뇌익을 펼쳤다.
아무리 수를 읽었다고 해도 뇌익이 없다면 호피녀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츠측-.
그건 자신의 수가 100% 맞을 거란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조금이라도 계산이 틀릴 경우, 한정된 뇌익 횟수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테니까.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유리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스팡-.
유리의 왼쪽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든 주먹은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스쳐 갈 듯싶었고.
반대로 유리의 검은 상대의 목을 노리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 과정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3초 남짓.
아마 누군가 그 장면을 보았다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을 거다.
그들이 보기에는 유리가 자세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호피녀가 나타나 헛손질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을 내어 준 꼴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에 유리는 확신했다.
‘이건 먹혔다!’
그건 분명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예측이었다.
하지만 유리가 예측하지 못한 것.
그건 바로 자신에게 수를 읽는 재능이 있듯 상대 역시 자신의 수를 읽을 거란 거였다.
특히나 이미 한 번 볼이 베이며 호피녀는 방심에서 벗어난 상태.
유리를 완전히 적수로 인식한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슥-.
캉-!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목을 노리는 검을 건틀릿이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유리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던 주먹에서 엄지가 불쑥 치솟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유리의 옆구리에 그녀의 엄지가 닿을 듯싶었다.
‘……?!’
호피녀의 변칙에 놀란 유리.
당황한 머리와는 달리 육체는 본능적으로 뇌익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파츠측-.
‘젠장!’
유리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목을 노리는 회심의 검격은 호피녀의 건틀릿에 완벽하게 막혔고.
갑작스러운 변칙에 대응하기 위해 한 번의 뇌익을 또 낭비했다.
심지어 그렇게 뇌익을 사용했음에도 호피녀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그녀의 엄지 끝이 살짝, 아주 살짝 유리의 옆구리를 스친 것이다.
그 결과.
우득-.
시큰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유리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 * *
나무 위에 올라선 아린은 공터에서 유리와 마주한 이를 바라보았다.
‘저게… 호랑이.’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매섭게 몰려드는 기세가 솜털을 곤두서게 했다.
굳은 얼굴을 한 아린의 뇌리로 유리가 했던 이야기가 흘렀다.
[곰 사냥과 달리 호랑이 사냥은 몇 분 안 걸릴 거다. 그리고 너희가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아니, 어려우려나?]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일.
유리의 요구는 하나였다.
[너랑 뽀삐는 딱 두 번… 두 번만 내게 기회를 만들어 주면 돼.]그렇게만 한다면 자신이 나머지를 감당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경고 아닌 경고도 했었다.
[너희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감출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 그렇지 않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기회를 만들 수 없을 테니까.]어지간해서는 안 될 거라는 말.
감춘 걸 내보이라는 그 말에 뽀삐는 수긍했었다.
다만 아린은 조금 탐탁지 않았다.
‘호랑이가 그 정도라고?’
대체 호랑이가 어느 정도기에 내 감춘 패를 까라고 하는 건지?
하지만 그런 의문은 서슬 퍼런 기세를 줄기줄기 뿜어 대는 호랑이를 보며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이 정도라면… 직접 대면하고 있는 저 녀석은…….’
당장 호랑이와 대치하고 있는 유리가 받고 있을 기운은 이보다 몇 배는 더 강하리라.
그럼에도 유리는 호랑이를 상대로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런 유리의 뒷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아린의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쾅-!
곧 인간의 주먹과 검이 부딪히며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폭음이 들렸다.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몇 분 뒤 모든 게 판가름 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저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 건 아주 찰나일 뿐.
하여 아린은 그 찰나를 준비해야 했다.
‘내가 숨기고 있는 걸 모두 꺼내라고?’
슥-.
그녀는 화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줄게.’
그러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짧게 읊조렸다.
“『추격』.”
짧고, 작지만 묘하게 윙윙 울리는 아린의 목소리.
그녀가 화살촉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우웅-.
화살에 상아색의 옅은 빛이 감돌았다.
아린은 즉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그극-.
한계까지 당겨진 활대가 비명을 내지르고.
공터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을 지켜보는 푸른 눈동자가 찰나를 노렸다.
부릅뜬 두 눈.
느려진 호흡.
세상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든 순간.
‘지금!’
새하얀 손이 활시위를 놓았고.
푸슉-!
빛을 머금은 화살이 쏘아졌다.
* * *
‘큭, 갈빗대가 나갔다!’
고작 손끝이 살짝 스친 것뿐인데.
그로 인해 갈비뼈 하나에 살짝 금이 가 버린 듯싶었다.
만약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금이 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터.
그렇게 갈비뼈에 금이 갔지만,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자세를!’
갑작스러운 변칙에 유리의 자세는 흐트러져 있었지만, 호피녀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 가려는 듯 보였다.
미처 다음 수를 준비하지 못했던 유리의 다급히 뇌익을 펼쳤다.
파츠측-.
‘벌써 4번째다.’
이제 남은 뇌익은 1번.
한 번 한 번 귀중하게 사용해야 할 뇌익을 단순히 회피용이 아닌 공격으로 써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틈… 약간의 틈만 있다면.’
조금의 빈틈.
아주 작은 기회가 너무도 간절해진 찰나.
슥-.
상아색 빛을 머금은 화살 하나가 나타났다.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유리와 호피녀 사이에 떡하니 나타난 화살.
‘어?’
‘……?!’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유리와 호피녀가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살은 그 어떤 목적성도 없이 그저 그들의 사이로 지나칠 듯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아하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그극-.
화살이 움직였다.
아니, 이건 단순하게 움직인다고 표현할 게 아니었다.
그건…….
‘화살이… 휘고 있어?’
멀쩡하게 날아가고 있던 화살이 마치 누가 잡고 구부리는 것처럼 휘고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광경이었다.
잘 날아가고 있던 화살이 갑자기 구부러진다니?!
그리고 이는 화살촉이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며, 미처 화살대가 그 방향 전환을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그그극-!
결국 ‘ㄱ’의 형태로 일순간 꺾여 버린 화살.
유리와 호피녀 사이를 지나쳐 갈 듯싶던 화살은 점차 느려져 거의 정지한 상태가 되었고, 그러다 마침내…….
팽-!
‘ㄱ’ 형태로 꺾였던 화살이 일자로 쭉- 펴지며 화살촉이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물론 화살촉 끝이 노리는 이는 당연히…….
“……?!”
호피녀였다.
아마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그녀라고 할지라도.
눈앞에서 화살이 ‘ㄱ’ 형태로 꺾여 날아오는 건 처음 겪는 일일 것이다.
당연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한 그녀가 화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고.
이에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기회!’
지금 같은 기회를 누가 만들어 줬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린이 있는 곳을 향해 엄지라도 들어 올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린이 만들어 준 이 천금 같은 기회를 살리는 게 수천 배 중요했다.
콰득-.
호피녀가 가슴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채 손안에서 작살을 내 버린 순간.
파츠츠츠츠측-.
진즉에 한껏 끌어올려 뒀던 유리의 뇌익이 거세게 요동쳤다.
동시에 강검까지 펼친 유리가 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호피녀의 오른 가슴.
여전히 멈춰 있는 듯한 호피녀를 보고 유리는 희열했다.
‘닿았다!’
아린이 만들어 준 틈.
그 틈을 노리고 자신의 검이 마침내 호피녀에게 닿은 거다.
이건 틀림없이 치명상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1초 뒤.
카강-!
유리와 호피녀의 위치가 엇갈렸다.
서로에게 등 돌린 두 사람.
유리의 검에서 작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 피는 유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 상황.
그런데 유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옘병.”
그도 그럴 것이 검 끝에 걸리는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흠… 이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유리가 등을 돌렸다.
그제야 유리는 검 끝에 걸린 이상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호피녀의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시작해 어깨까지 찢어진 상의.
그 사이로 단단한 철제 흉갑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