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93
92화. 은혜 갚은 호랑이 (1)
호피녀의 어깨에 생긴 긴 자상과 핏물을 본 유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걸리는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검이 흉갑을 타고 빗겨지면서 어깨를 스친 거군.’
그러한 사실에 유리가 짜증 섞인 볼멘소리를 냈다.
“고작 기수를 상대하면서 그런 거까지 착용하고 오는 건 반칙 아닌가요?”
이에 호피녀가 볼을 긁적였다.
“이건 기본 무장이라 늘 착용하고 있는 거거든.”
“기본 무장이고 자시고, 난 지금 맨몸으로 덤비는데 그쪽이 그런 거 입고 있는 건 좀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같습니다만?
“솔직히 칼 맞을 일 없을 줄 알고 귀찮아서 안 벗었던 건데…….”
그녀로서는 고작 기수 따위의 공격이 자기 몸에 닿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굳이 형평성을 따져 가며 갑옷을 벗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전 유리의 공격은 꽤 치명상을 입힐 유효타였다.
호피녀는 꽤 깊게 베인 어깨를 한 번 힐끗거리고 말했다.
“아까 그 공격으로 7번째였던가? 음… 나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 이번 거는 1합 더 추가해서 8합으로 쳐 주마.”
“우와, 엄청 양심적이다. 너무 양심적이라 그 양심이 어딨는지 참 궁금해지네. 근데… 어라? 어랍쇼? 왜 양심이 안 보일까요? 그쪽 양심 어딨나요?”
“크흠, 그냥 네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에이 씨!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진 걸로 해 줘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다.”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 그녀의 양 볼이 살짝 발그레 물들었다.
“왜냐면, 지금 내가 좀… 흥분한 상태거든.”
“…아주머니, 진정하시죠.”
“아주머니라니, 나 아직 스물일곱이야!”
“11살 차이면 충분히 아줌마라고 불러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일단 전 연상 취향 아닙니다. 아니, 연상 취향이어도 오늘은 아니라고 할 겁니다.”
“후후, 나도 내가 연하 취향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고작 신입 기수 따위가 나와 이렇게 재밌게 놀아 주다니, 하아아…….”
그녀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촉촉이 적신 그녀가 유리를 적극적으로 노려보았다.
다소 잔혹함이 담겨 있는 그 눈빛에 유리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두 번만 더 적극적이면 뼈도 못 추리겠네.’
그리고 그런 말장난처럼, 앞으로 유리가 버텨야 할 공격은 두 번이나 더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거로 더 거래를 시도하기에는 글러 먹었고, 그나마 1합을 줄인 거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후우…….”
벌써 뇌익을 4번이나 운용한 유리.
그는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을 심호흡으로 억눌렀다.
그득-.
다시 검을 움켜쥔 유리가 자세를 잡았다.
이에 호피녀가 신이 나 외쳤다.
“그럼 간다!”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 보이는 호피녀를 보며 유리도 속으로 소리쳤다.
‘자, 이번에는 네 차례다, 뽀삐!’
얼른 와서 저 빌어먹을 연상녀 좀 어떻게 해 줘!
그리고 그런 유리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유리와 호피녀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공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속.
쾅-!
“…….”
첫 폭음이 들린 순간, 뽀삐 역시 유리가 아린과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고 있었다.
[너희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아.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감출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 그렇지 않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기회를 만들 수 없을 테니까.]유리의 말이 옳았다.
이 동물의 숲에 들어온 첫날.
자신 역시 호랑이를 만났었다.
그리고 별다른 저항조차 못 하고 순식간에 당해 기절했다.
살면서 그토록 무기력하게 당해 본 것은 어린 시절 부족의 어른들에게 가르침을 받던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여 지금 저 호랑이와 싸우고 있을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추고 있는 것을 전부 내보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뽀삐는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슥- 슥-.
순식간에 속옷 차림이 된 그는 벗은 옷을 한쪽에 고이 개어 놓았고.
콰득-.
자신의 앞 지면에 방패를 꽂아 넣었다.
지면을 15㎝가량 파고든 방패.
이후 뽀삐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짝-.
마치 기도를 하는 듯, 합장한 양손.
“후우…….”
길게 숨을 토해 낸 뽀삐는 눈을 감았다.
“끄응.”
동시에 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변화가 시작됐다.
울룩불룩, 뽀삐의 전신에 혈관이 불거졌고.
곧이어 그의 이마에 자리한 T 형태의 붉은 문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그그그그-.
뽀삐의 육체가 요동쳤다.
콰득 콰득-.
살과 뼈로 만들어진 육체에서 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소리.
무언가 갈리고 맞춰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되면서 뽀삐의 육체도 점점 변해 갔다.
구릿빛이던 피부는 점점 더 짙은 색을 띠었고.
그의 몸이 차차, 조금씩, 커졌다.
꾸득- 구득-.
안 그래도 2m 30㎝에 달하던 거구가 다시금 커지고 있던 거다.
2m 50㎝, 2m 80㎝, 3m, 3m 30㎝.
그렇게 무려 원래 키보다 1m가 넘게 커졌지만, 뽀삐의 변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3m 50㎝, 3m 70㎝, 4m…….
그리고 마침내.
5m.
옆에 자리한 나무만큼 커진 뽀삐.
그리고 자라난 건 단순히 키뿐만이 아니었다.
눈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자.
키에 비례해 커진 근육.
그리고 구릿빛을 넘어 검붉은 빛이 되어 버린 피부.
이는 머나먼 과거, 윰족의 조상이자, 드래곤과 자웅을 겨뤘다는 거인족이 지닌 특성이었다.
그 위대하고 강대한 거인족의 힘이 머나먼 후손,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의 피를 통해 깨어났다.
쿵-.
몸무게 역시 늘어난 것인지 뽀삐가 걸음을 내디디자 지축이 울렸다.
그렇게 거인이 된 그는 허리를 숙여 방패를 집어 들었고.
쿵-! 쿵-! 쿵-!
그대로 공터를 향해 달려 나갔다.
* * *
쿵-!
갑작스럽게 땅이 울리며 발바닥을 타고 진동이 전달됐다.
호피녀는 물론 유리, 나아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는 아린까지 긴장한 눈빛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쿵-! 쿵-!
서서히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숲 전체가 들썩이며 침엽수들이 흔들렸다.
그리고 점차 숲의 흔들림이 공터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쿵-!
콰득-.
썩은 나무 하나를 부러뜨리며 5m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세 사람이 놀라 소리쳤다.
“괴물이다!”
“거인?!”
“맙소사, 거인화?!”
가장 앞서 소리친 이는 유리.
그 뒤에 따라 소리친 사람은 호피녀.
그리고 마지막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린이었다.
아린의 외침을 들은 유리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거인화? 그게 뭔데?’
그가 그리 의문을 품은 사이.
공터로 진입한 거인이 괴성을 내질렀다.
“배에고오프으다아아아!”
“어? 저거?!”
그 외침에 괴물… 아니, 거인의 정체를 깨달은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뽀삐?!’
그제야 그는 아린이 외친 ‘거인화’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고대 거인의 피를 이어받은 윰족에게 거인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구나’라고 말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들… 생각보다 더 능력 있는 친구들이었잖아?’
아린과 뽀삐.
두 사람과 곰 사냥을 통해 호흡을 맞춰 보면서 유리는 그들이 무언가 계속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무언가를 억누른다는 느낌이랄까?
마치 자신이 남들에게 마류의 존재를 숨기고 몰래몰래 사용하듯 말이다.
하여 약간 떠보듯이 이번에 그들이 숨긴 것을 모조리 꺼내 놓으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걸 숨겨 놓고 있었다니!’
아린은 그 허공에서 화살이 꺾여 버리는 괴상한 궁술을.
뽀삐는 5m에 달하는 거인으로 변신을!
이건 뭐 쓸 만한 걸 넘어 어마어마한 게 튀어나온 수준이었다.
‘가라! 뽀삐! 물어 버려!’
이에 유리가 주먹을 울끈 쥔 사이.
쿵-!
대지를 강하게 박찬 뽀삐의 거대한 다리.
쿠왕-!
그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지면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며 사방팔방으로 갈라짐이 발생했다.
그런데 발이 앞으로 내디뎌진 것과는 달리 뽀삐의 상체는 아직 뒤쪽에 머물고 있었다.
그득- 구드득-.
거인의 근육이 순식간에 단단하게 뭉치며 엄청난 소음을 발생시켰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리.
이게 바로 뽀삐가 자신에게 만들어 주는 기회임을 깨달은 그는 즉각 자세를 잡았다.
‘이걸로 끝낼 수 있다.’
그러니 준비해야만 했다.
뽀삐가 완벽하게 만들어 준 기회를 살릴 준비를.
그렇게 유리가 상황을 주시하는 순간, 뽀삐가 괴성을 내지르며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배애애애애애애!”
동시에 뽀삐의 근육이 굉음을 토해 내고.
그가가가가가-!
대지를 내디디면서 올라온 반작용.
허리를 비틀며 생겨난 회전력.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거인의 괴력.
이 모든 게 뽀삐의 팔을 타고 전해졌고, 뒤쪽에서 출발한 팔이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고 뽀삐의 손에는 1m 60㎝의 거대한 방패가 들려 있으니.
“고오오오프으으으닷!”
괴성을 내지른 뽀삐가 지면을 휩쓸듯 팔을 뻗으며 손에 쥔 방패를 놓았다.
퐝-!
공기를 찢어발긴 방패가 호랑이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고.
그 방패가 지나간 자리에.
콰가가가강-.
광풍이 일었다.
“……?!”
후황-!
방패가 지나친 자리에서 생겨난 바람이 숲을 휩쓴 순간.
유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운보를 밟아 순식간에 호피녀에게 달려가는 유리.
빨라진 사고에 주변 광경이 느려지고, 이미 호피녀에게 거의 근접한 방패가 잡혀 들었다.
‘아무리 호랑이라도 저건 못 피해!’
단순히, 빠르게 집어 던진 방패에 불과했으나 거기에 담긴 힘은 실로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일정 이상의 물리력은 마법과 다를 바가 없다던가?
아마 지금 호피녀를 향해 날아드는 저 방패가 그 마법일 거다.
이는 아무리 호피녀라고 해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저걸로 호피녀가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유리가 노리는 건 호피녀가 방패를 받아 내며 생길 빈틈이었다.
그렇게 빈틈을 노리고 접근한 순간.
‘…응?!’
유리는 호피녀의 금속 건틀릿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호피녀의 건틀릿은 강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틀릿이 강을 넘어, 연, 화, 마에 도달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란 거였다.
웅웅-.
극히 찰나의 순간 마의 경지까지 도달하여 반투명한 막에 휩싸여 있던 건틀릿.
한데 서서히 그 막이 불투명하게 변해 갔다.
순식간에 건틀릿을 감싼 막이 불투명해지고, 이내 막대한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그렇게 생겨난 빛은 이내 응축되었다.
이를 본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 순간, 호피녀가 거침없이 방패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합!”
짧게 내질러진 기합.
그러자 막대한 힘을 품고 던져진 방패가 너무도 가볍게 막혀 공중에 멈춰 섰다.
콰아아아앙-!
터져 나온 폭음과 눈앞에 펼쳐진 말 같지도 않은 장면은 유리를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연이어 더 말 같지도 않은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쾅-!
내리찍은 주먹질 한 방에 수직으로 서 버린 방패.
이에 호피녀가 방패의 중앙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방패가 왔던 길을 되돌아 날아갔다.
주인에게 되돌아오는 방패를 보고 놀란 뽀삐가 손을 뻗어 이를 받아 내니.
“배, 배고프…….”
끼긱- 훙-!
5m의 거구가 방패와 한 뭉치가 되어 숲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콰등- 콰득- 쿵!
뽀삐가 날아간 숲에서 침엽수들이 주저앉은 것을 본 유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미친…….”
아무리 뽀삐가 미처 자세를 잡지 못했다고는 하나, 저 거인을 방패와 같이 날려 보낼 정도의 힘이라니.
유리가 긴장 어린 눈으로 호피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 호피녀의 양팔에 끼워진 건틀릿을.
‘저건…….’
그건 금속제의 건틀릿이 아닌, 마치 빛으로 조형한 건틀릿을 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리는 단번에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작게 읊조렸다.
“성(聖)의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