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95
94화. 은혜 갚은 호랑이 (3)
위건가(家).
살로베티아 행정구에 자리한 이 가문은 ‘검은 호랑이’라 불리는 명문이었다.
그리고 위건 가문의 후손들은 대대로 장대한 기골과 탈인간적 탄력을 지닌 근육을 물려받았다.
이러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위건의 혈통은 민첩하면서도 유연한 맨손 박투술을 만들어 냈으니.
그게 바로 위건 가를 ‘검은 호랑이’라 불리게 만든 마체술의 시초였다.
그리고 그 명가의 마체술의 절기가 유리의 앞에 현현했다.
즈극-.
지르밟은 발바닥이 체중을 분산시키고.
양 주먹이 옹골지게 말리며 허리춤에 붙는다.
동시에…….
탕-!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수그려졌다.
가슴이 거의 지면에 붙다시피 한 기괴한 자세임에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위건의 혈통에 대물림되는 탈인간적 근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레타의 모습은 마치 날쌘 호랑이와 같았다.
크르르릉-.
이를 마주한 유리 역시 한 마리의 호랑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자신을 사냥감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호랑이.
저 맹수에게 사냥당하지 않기 위해 유리는 아끼고 아껴 뒀던 뇌익을 발동시켰다.
파츠츠측-.
마지막 뇌익.
아마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앓아누워야 할 터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류를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그것도 모자라 마나를 박박 긁어모아 강검까지 펼쳤다.
그리고 머리가 과열될 정도로 정보를 분석하여 그레타의 수를 예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유리였지만, 그의 표정은 너무도 심각했다.
‘보이지 않아…….’
그동안은 어렵긴 했어도 그레타의 다음 수가 읽혔었다.
그 덕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준비를 할 수 있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번에도 그레타의 다음 수가 읽히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든 그레타의 이번 수가 자신에게 닿는 그림만이 그려졌다.
다시 말해, 이번 그레타의 공격은 현재의 유리가 아무리 발악해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좀 너무한 거 아니냐.’
거, 경지도 먹을 만큼 먹은 인간이 자신 같은 풋내기를 상대로 이렇게나 진심을 다하다니.
양심은 어디다 내다 버린 건지.
한편으로는 지금 이 상황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래야 흑검병이지.’
전투에 미친 종자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한 흑검병들은 전부 이랬다.
눈깔이 훼까닥 돌아가면 그들은 늘 전력을 다했다.
그게 마치 자신이 인정한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는 듯.
유리도 그런 흑검병의 사상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상대가 전력을 다한다면 나 또한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면…….
‘내가 먼저 때린다.’
제 심장에 먼저 구멍이 뚫릴 거 같으면 공격을 거둬들이겠지.
이른바 최선의 방어는 최고의 공격이란 소리다.
지금은 그게 저 눈깔 돌아간 무서운 아줌마로부터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한 유리의 검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묘할 정도로 테레시아의 것을 닮아 있었다.
스륵-.
마류-잡기를 완성하라는 숙제를 받은 유리가 최우선 목표로 삼은 건 취성을 베끼는 일이었다.
이후 유리는 수차례에 걸친 테레시아와의 대련을 통해 취성을 살폈지만, 베끼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 가문이, 그것도 명가라 불릴 만한 가문이 수백 년의 역사를 집약시켜 탄생시킨 절기를, 고작 대련 몇 번을 통해 베낀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겠는가.
취성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유리는 취성의 난해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건 단기간 안에 베끼는 게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여 유리는 목적을 바꿨다.
취성을 100% 베끼는 것이 아닌, 대략적인 구조만 파악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키기로.
물론 그것만으로도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마류가 있었다.
‘지금 당장은 취성처럼 상대의 힘에 하나하나 다각적으로 반응해서 흘리기를 사용할 수는 없어, 하지만… 마류라면?’
자신의 검을 중심축으로 삼고 마류를 펼친다면?
그렇게 상대의 공격을 적당히 흘려 내고, 그로 인해 벌어진 틈에 검을 찔러 넣는다면?
아마 취성과 비슷한 효과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다.
다만 문제는 취성처럼 유연하게 공격의 궤도 수정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는 거였지만.
‘거기서부터는 나중에 하나하나 수정해 나가면 되는 거고.’
그런 생각으로 하나의 뼈대를 완성했고, 바로 지금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것을 꺼내 들었다.
아마 이런 유리를 보았다면 요한은 분명 쌍욕을 날렸을 것이다.
[에라이, 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연습도 안 해 본 미완성 기술을 실전에서 써?! 그것도 곧 뒈지나 안 뒈지나 하는 순간에?]‘원래 기술은 실전에서 완성하는 법이라고 영감탱이! 연습을 실전같이, 실전을 연습같이, 몰라?’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되뇌며 귓가에 아른거리는 요한의 잔소리를 무시한 유리.
그는 검을 뒤로 한껏 잡아당긴 후 앞으로 내질렀다.
쉐엑-.
한편, 유리를 향해 달려 나가던 그레타.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유리의 검을 보며 의아한 눈빛을 해 보였다.
‘찌르기?’
물론 검술에도 찌르기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유리는 지금까지 쭉 베기만을 이용해 왔다.
거기다 그의 검은 찌르기보다는 베기에 특화된 도(刀)의 형태.
그런데 갑자기 찌르기라니?
이에 그레타는 유리가 혹시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놈이 아니다.’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놈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하여 그레타는 최선을 다했다.
‘어디, 막아 봐라.’
결심을 다진 그녀가 옆으로 몸을 틀었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주욱 미끄러진 그녀가 허리를 비틀었다.
훙-.
달려오는 가속도.
거기에 허리를 비틀며 생긴 회전력과 근력.
세 가지의 힘이 합쳐지며 폭발하였고, 그 폭발력을 담은 오른팔이 유리를 향해 나아갔다.
위건가(家) 비전 마체술.
폭연타.
투다다다다-.
그레타의 오른 주먹이 수십 개의 잔영을 그리며 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듯 날아드는 유리의 검은 실로 비루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냥 주먹질도 아니고 성권을 머금은 건틀릿으로 펼치는 주먹질이었다.
고작 강검 수준인 유리의 검은 금방이라도 부러져 나갈 듯 보였다.
그게 유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아린과 뽀삐의 시선이었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식은 뒤집혔다.
투돠돠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주먹을 향해 날아가는 유리의 찌르기는…….
팔랑- 팔랑-.
소나기 주먹 사이를 헤치고 유유히 날아갔다.
마치 살랑거리는 나비의 움직임처럼.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뽀삐와 아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역시나 그레타였다.
‘…무슨?!’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유리의 찌르기가 주먹질 사이로 파고드는 듯 보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레타는 알고 있었다.
‘내 주먹을… 튕겨 내?’
유리의 검이 주먹 사이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주먹이 유리의 검에 닿지 않고 튕겨 나가고 있다는 걸.
그레타의 주먹이 유리의 검 부근에 도달하면 계속해서 이상한 궤도로 방향이 틀어지고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경쟁 가문에 관해 배우고 자라난 그레타는 이와 같은 절기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
‘취성?’
윈체스터 가문의 취성이 이처럼 상대방의 방어와 공격을 무시하는 특성을 지닌 절기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펼쳐진 절기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듣기로는 윈체스터 가문의 취성은 굉장히 유려하고 세련된 절기라고 했었는데?’
상대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며 뱀처럼 접근해 든다는 취성.
하지만 유리의 찌르기는 달랐다.
이건 마치…….
‘방패를 들고 돌진하는 병사 같지 않은가.’
회피 따위는 없다.
오직 방패 하나에 의지해 맞으면 죽을 거 같은 공격만 겨우겨우 튕겨 내면서 무작정 돌진하는.
유리의 찌르기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유리의 검.
그레타가 보기에 그건 ‘살랑살랑’이 아니라 ‘휘청휘청’이었다.
위태롭고 힘겹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
이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레타에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느려.’
유리의 찌르기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아니, 사실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지만, 폭연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너무 느렸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주먹이 먼저 유리에게 닿을 것이 확실했다.
그레타가 그리 확신했을 때.
그녀의 시선이 검은 앞머리 너머 황금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순간 그레타는 가슴이 철렁였다.
그리고.
파측-!
황금색의 눈동자에 번개가 튀어 올랐다.
유리가 아끼고 아껴 뒀던 뇌익이 발동한 순간, 이는 곧 유리의 전신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파지지지직-!
살랑살랑 나비처럼 날던 유리의 검이 갑자기 벌이 되어 그레타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이는 그레타의 입장에선, 갑자기 방패병이 쓰러지자 그 뒤에 숨어 있던 노련한 창수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쉑-!
어마어마한 속도의 찌르기가 시시각각 심장을 향해 다가왔다.
이를 마주한 그레타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느리다.’
분명 처음에 느렸던 건 유리의 찌르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주먹이 더 느렸다.
이대로라면 주먹이 유리의 몸에 닿기 전에 자신의 심장이 먼저 검에 꿰뚫리리라.
‘죽어? 내가?’
그렇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순간 그레타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고.
콰앙-!
푸황!
유리와 그레타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땅거죽이 터져 올랐다.
* * *
콰앙-!
폭음이 터지며 자욱하게 흩날리는 흙먼지.
‘어떻게 된 거야!’
‘배고프다!’
놀란 아린과 뽀삐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
휘익-.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검은 인영 하나가 먼지 꼬리를 달고 튕겨 나왔다.
이를 본 두 사람이 곧장 움직였다.
“유리!”
“배고프다!”
* * *
흙먼지 속에서 튕겨 나온 유리는 검을 쥔 채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후득- 후드득-.
족히 열 바퀴는 넘을 정도로 바닥을 굴러 멈춘 유리.
마치 죽은 듯 널브러졌던 그가 잠시 뒤 작게 꿈틀거렸다.
“흐…….”
미약한 신음을 내뱉은 그의 상체가 들썩였다.
일어서려는 듯 팔에 힘을 주는 유리.
안간힘을 다하는 그의 입에서 와락 핏물이 터져 나왔다.
“쿠헉!”
분수처럼 뿜어진 핏물이 흙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그 순간 뽀삐와 아린이 도착했다.
“배고프다!”
“유리이이!”
다급하게 달려온 뽀삐가 유리를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아린이 유리의 몸을 여기저기 휘휘 돌려보며 살폈다.
“보자, 팔다리 잘 붙어 있고, 몸에 구멍 뚫린 곳도 없고, 양쪽 귀도 멀쩡해 보이고, 눈깔은 멀쩡한가… 유리, 이거 보여? 이거 몇 개야?”
그리 말하며 아린이 유리의 눈앞에 검지와 중지를 펴 휘휘 흔들었다.
이에 유리의 입이 작게 달싹이니.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아린이 유리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고.
“뭐라고?”
“…쳐.”
“응? 잘 안 들려. 뭐라고?”
“닥치라고!”
“꺅!”
귀 바로 옆에서 터진 고함에 아린이 멍멍한 귀를 부여잡고 팔딱거렸다.
“으악! 고막 터진 거 같아! 뽀삐, 나 귀에서 피 안 나? 피 나지?”
그런 그녀의 호들갑에 유리의 입술이 삐딱하게 꿈틀거렸다.
“아파 뒈지겠는데, 심란하게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어.”
“걱정돼서 그런 거지!”
“아픈 사람 몸을 쪼물딱거리니까 좋냐?”
“쪼, 쪼물딱거리다니! 나는 그냥 다친 곳이 있나 확인하는 거야! 촉진 몰라? 촉진!”
“촉진이고 나발이고… 뽀삐, 너는 그만 실실 쪼개고 나 좀 일으켜 줘 봐.”
투닥거리는 유리와 아린을 보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뽀삐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의 상체를 살짝 일으켜 줬다.
뽀삐의 몸에 살짝 기댄 유리는 여전히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