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99
98화. 작은 눈덩이 (2)
다수의 사람이 숲을 방황하고 있었다.
한데, 그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퀭한 눈 밑.
말라비틀어진 입술과 핏발이 선 눈동자.
흐느적거리는 몸짓.
심지어 어떤 이는 침을 질질 흘려 대기까지 했다.
마치 좀비 떼처럼 보이는 무리.
그런 이들이 동물의 숲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허억, 허억-.”
“크륵, 크르륵…….”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끝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핏물 가득한 생고기를 찾는 듯싶었다.
그때였다.
부스럭-.
예민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감각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이에 한데 모여 있던 이들이 시선이 휙- 돌아갔다.
그리고 하필, 좀비 떼의 지척에 발을 잘못 들여놓은 토끼녀.
“히, 히익?!”
그녀는 자신에게 닿은 여러 쌍의 핏발 선 눈동자를 보고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목표를 발견한 좀비 떼가 이를 그냥 놓칠 리 있겠는가.
“토… 토끼다!”
“자, 잡아!”
“내 거… 내 거다아아아!”
“비켜!”
토끼녀를 향해 좀비 떼가 이성을 잃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 살벌한 기세에 눌린 토끼녀는 질겁하여 뒷걸음쳤고, 그러다 그만 나뭇가지에 걸려 주저앉고 말았다.
“오, 오지 마!”
너무도 연약하고 가냘파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좀비 떼를 더 흥분케 했고, 그들은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토끼! 토끼! 토끼!”
“토끼! 토끼! 토끼!”
“토끼! 토끼! 토끼!”
그렇게 막 토끼녀가 좀비 떼에 뒤덮이려는 찰나.
삐이이이이- 삐이!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동물의 숲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건 무언가를 알리는 신호였다.
이를 들은 좀비 떼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대신 그들은 토끼를 쥐어뜯으려던 손을 들어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줘!”
그들의 발광에 토끼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턴 그녀는 여전히 머리를 뜯고 있는 좀비 떼, 아니, 50기 기수들을 향해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이행했다.
“현 시간부로 퀘스트는 종료다. 50기는 동물의 숲 입구에서 모은 가죽을 제출하도록.”
그 말만 남긴 토끼녀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듯 말이다.
이에 50기의 절규는 더욱 커졌다.
“제길! 이걸로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하지만 시간은 그들에게 야속하기만 했다.
그렇게 1월 29일 10시 16분.
열흘간 이어진 50기의 첫 번째 통합 퀘스트, 가죽 모으기가 드디어 끝을 맺었다.
* * *
꿀꺽꿀꺽-.
수통에 담긴 물이 시원스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연신 꿀렁이던 목젖이 마침내 멈추고.
“파하!”
파나 테일러는 참아 왔던 숨을 터뜨렸다.
입가를 타고 흐른 물방울을 훔쳐 낸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참아 왔던 갈증을 해소하고 나니 짙은 탈력감이 몰려든 것이다.
“하… 이제 좀 살겠네.”
그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나는 끔뻑끔뻑 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지금 훈련 중에 잠이 옵니까? 당장 일어납니다, 실시!”
지척에서 들린 목소리에 파나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차려 자세를 취하고 잔뜩 굳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 실시!”
비몽사몽 한 얼굴임에도 반사적으로 그리 외친 파나.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 맞다… 여기… 훈련소 아니지?’
그렇게 눈을 끔뻑거릴 때, 바로 옆에서 누군가 키득거렸다.
“놀랐어? 쿡쿡쿡.”
“너어…….”
그곳에는 요람에 와서 친해진 넬리 블랑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본 파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넬리를 흘겨봤다.
“정말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잖아!”
“바보, 쫄기는.”
“그거에 안 쪼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봐 봐!”
그리 말하며 파나가 주변을 손가락질했다.
파나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넬리 블랑.
그녀는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찌릿찌릿-.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분노와 짜증이 섞인 눈초리.
그들 모두 파나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만약 사과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듯싶었기에 넬리는 그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는 몸짓을 취했다.
그러고 파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다들 지옥 훈련소에 많이 끌려간 모양이네?”
“넌 몇 번 끌려갔는데?”
“세 번.”
“그래, 세 번까지는 그런 장난을 칠 수 있지. 그런데 난… 여섯 번이야.”
파나의 눈에 아픔이 스쳤다.
할 말을 잃은 넬리는 그냥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다가 넬리가 파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파나, 혹시 말야… 언젠가부터 좀 퀘스트가 수월해진 느낌 들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음,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습격이 뜸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냐고. 대충 7일째부터 그랬던 거 같은데?”
그녀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파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6번이나 지옥 훈련소로 끌려갔던 파나.
그녀가 훈련소행을 6번으로 끝낼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바로 이상할 정도로 7일째부터는 도망 다니기가 제법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적응해서 여유가 생긴 건가 싶었는데, 넬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7일 차부터 습격이 뜸해진 거 같았다.
“맞아. 그때부터 습격이 많이 줄었던 거 같아.”
“혹시 7일째부터 곰 본 적 있어?”
“아니, 없던 거 같아.”
“역시 그렇지?”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는지 넬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에 파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어차피 다 끝난 일이고,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서 넌 가죽 많이 모았어?”
그건 얼렁뚱땅 화제를 전환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파나는 그런 넬리의 수작에 그냥 넘어가 주었다.
“그럭저럭? 전부 토끼 가죽이지만. 넌?”
“나도 토끼 가죽에 사슴 가죽 몇 장. 그리고 늑대 가죽 3장.”
“세상에… 늑대 가죽도?”
파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에 넬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봤자 3장인걸, 그리고 나 혼자 잡은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넬리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두 소년이 있었다.
마치 혼자서 다른 곳에 있다 온 듯 너무도 말끔한 차림의 소년.
다소 거칠고 불량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소년.
넬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던 파나가 그들을 보고 눈을 끔뻑거렸다.
“군터 아이언스랑 이반 바스킨? 너, 쟤들이랑 같이 움직였어?”
“어쩌다 보니, 훈련소에서 나온 시간이 같았거든.”
“하긴 너희 셋이면 늑대도 잡을 만했겠다.”
활약으로 따지면 사실 셋 중 군터의 비중이 대부분이었지만, 넬리는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때 이번에는 파나가 역으로 질문을 던져 왔다.
“아, 맞다! 넌 누가 1등 할 거 같아?”
1위를 하게 되면 정산한 포인트의 100%를 추가로 받게 된다.
2위가 50%, 3위가 30%를 추가로 받기는 하지만 1위의 특전이 너무 압도적이다 보니 모두의 관심이 그리 쏠릴 수밖에 없었다.
파나의 질문에 넬리는 주변을 쓱 훑었다.
군터 아이언스.
이반 바스킨.
클라리스 반.
다니엘 브륄.
그리고 한쪽에 자리한 엄청난 거구의 대머리와 푸른 머리의 소녀까지.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넬리가 생각하기에 1등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 녀석… 어?”
인파 사이에서 검은 머리를 찾던 넬리는 그제야 ‘검은 머리 그 녀석’이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검은 머리가 하나둘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 녀석처럼 검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기수는 없었다.
이에 넬리가 눈을 끔벅였다.
‘…없다고? 그 녀석이? 그럴 리가 없는데?’
도무지 말이 안 된다는 듯한 넬리의 반응.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군터를 비롯한 몇몇 역시 넬리처럼 ‘검은 머리 그 녀석’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녀석이 보이지 않자 다들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진짜 없다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녀석이… 떨어졌어?’
이번 퀘스트에서 탈락자란 자발적으로 숲 밖으로 나간 이를 말한다.
그리고 탈락자 대부분은 밤마다 찾아오는 짐승들의 습격과 지옥 훈련을 견디지 못해 탈주한 이들이었다.
한데, ‘검은 머리 그 녀석’이.
그 끔찍한 백보 의식에서도 가장 선두에서 나아가던 그 녀석이.
고작 이 정도에서 탈주했다고?
그건 쉽사리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에이, 설마…….’
넬리가 그리 부정하고 있을 때.
“정렬하라!”
쩌렁쩌렁한 외침에 50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갑자기 나타난 흑검병들을 보고 여기저기 늘어져 있던 기수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척척척-.
순식간에 오와 열을 맞추고,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50기.
바짝 군기가 들어간 그 모습에 흑검병을 이끌고 온 안경남은 슬쩍 미소 지었다.
‘이제야 각이 좀 잡혔군.’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이는 50기에게 상상도 못 할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문에 가까웠던 지옥 훈련과 제식 훈련은 50기를 탈바꿈시켰다.
만약 이를 유리가 보았다면…….
[이야, 고작 열흘 만에 사회 물이 쫙 빠졌네.]…라고 말했을 거다.
물론 그 말을 할 유리는 없었지만.
한편, 미동조차 없이 서 있는 50기를 보며 안경남이 외쳤다.
“모든 집계가 끝났다. 지금부터 3위부터 1위까지 발표하겠다.”
그러면서 안경남이 포인트가 집계된 서류철을 들어 올렸다.
이에 몇몇 기수들의 눈이 빛을 발했다.
‘나 정도면 1등은 몰라도 3등은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순위권에 들었을지도…….’
나름 이번 퀘스트 성적에 자신이 있는 이들.
그들은 하나같이 기대감을 품었다.
긴장된 순간, 3위가 발표되었다.
“3위, 클라리스 반, 토끼 87장, 사슴 23장, 늑대 5장. 획득 포인트 45만 2천.”
순위와 함께 가죽의 개수까지 언급되자 그보다 적게 모은 이들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수들이 미처 실망감을 표출할 틈도 없이 2위가 발표됐다.
“2위, 군터 아이언스. 토끼 231장, 사슴 42장, 늑대 11장. 획득 포인트 99만 1천.”
2위까지 발표가 되었을 때도 최소 150만 포인트를 번 아린과 뽀삐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의아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그저 2위가 모은 99만 포인트에 놀라워했다.
특히 이번 퀘스트에서 고작 토끼 몇 마리를 잡는 데 그친 이들에게는 수십만 포인트란 딴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99만 포인트라니.’
‘하… 난 10만 포인트만 있어도 좋을 텐데.’
다른 기수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군터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제 1위 발표만 남겨 둔 상황.
사람들은 생각했다.
2위가 99만 포인트니 1위는 100에서 150만 포인트쯤 되겠지?
아니면 3위에서 2위로 가는데 두 배 정도 늘었으니 1위도 2위의 2배라 계산해서 200만 포인트 정도?
그렇게 사람들이 1위의 포인트가 얼마일지 대충 예상하는 가운데 마침내 1위의 이름이 거론됐다.
“1위,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
특이하고 괴상한 이름에 한 번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안경남이 들고 있던 서류철을 한 장 넘기며 말했다.
“흠… 조금 많으니 잘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