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화>
프롤로그
아버지는 미치광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날 갑자기 미쳐 버렸다.
시기는 대략 10년 전, 아버지가 낙마 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한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질 못하셨고, 그로부터 한 달 지나서야 겨우 눈을 뜨셨다.
하지만 깨어난 아버지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이곳이 어디이며, 자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이 언제인지 묻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그리고 다시 며칠이 흘렀을 때, 아버지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셨다.
“이젠, 모두 끝났다.”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수년 후였다.
* * *
“클레이 반하르트 경! 안에 있나?”
땀에 절은 옷을 벗으려던 나는 막사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옷을 정돈한 다음 막사의 천막을 젖혔다.
막사 밖에는 하얀 편지를 손에 쥔 보급 장교가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니, 그럴 필요 없네. ……그보다 놀라지 말고 듣게.”
어쩐지 이상한 기색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 조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반하르트 백작님이 돌아가셨네.”
“……예?”
보급 장교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서야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정말입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그래. 방금 막 이 편지와 함께 소식을 전해 들은 참일세.”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 장의 편지를 쥐여 줬다.
난 편지를 받아 든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막사에 나 혼자뿐이었다.
“……아버지.”
반쯤 구겨진 편지를 내려다보며 발신인과 수취인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편지는 아버지가 내게 보낸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편지를 보내실 줄은.’
아버지는 내게 있어 애증의 인물이었다.
나름 권세를 누리던 반하르트가가 몰락하게 된 원인이 바로 아버지였으니까.
낙마 사건 이후,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기행을 일삼았다. 폐허나 마찬가지인 땅을 사려고 하거나,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는 물품을 사재기하려는 등의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행이 제대로 빛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쳤다고 소문이 난 아버지를 믿고 돈을 유통해 줄 가문이나 상인은 없었고, 이미 몰락해 버린 가문에는 땅이나 물건을 살 만큼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실패를 믿지 않았지만, 가문은 이미 몰락한 이후였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그 탓에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선 나라도 무언가 해야만 했다. 아직 반하르트가에 남은 식솔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전쟁이, 그 기회였지.’
탈루아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인젤 왕국과의 전쟁.
갑작스레 일어난 이 전쟁은, 몰락한 우리 가문을 되살릴 좋은 기회였다.
폐인이 된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가문을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또 언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었으니까.
‘어째서 마지막에 편지를 남기신 걸까?’
아버지가 이상하게 변한 이후,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편지를 보내셨을 줄이야.
‘혹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신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지의 첫줄을 읽었다.
보통이라면 가벼운 인사가 적혀 있을 장소.
하지만 거기에 적힌 건 결코 인사 같은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작가이며 빙의자다.」
눈살을 찌푸리며 첫 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필체는 분명 아버지의 것이 맞다.
하지만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작가이며 빙의자?”
도무지 제정신으로 적을 글귀가 아니었다.
편지를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참았다.
어찌 됐든 이건 아버지가 내게 보낸 마지막 유언이니까.
“음……?”
하지만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편지의 내용에 빠져들었다.
편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이 세계는 소설이며, 아버지는 그 소설을 쓴 작가다.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에 칼른 반하르트 백작이라 불리던 인물에 빙의했으며 여태 그로서 살았다.
참고로 아버지가 빙의됐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승마를 하던 아버지가 굴러 떨어져 오랫동안 눈을 뜨지 못했던 그때였다.
‘……그때부터 성격이 달라지시긴 했지.’
생각해 보면 당시 아버지가 진행하려던 일들 중 일부는 기적같이 대박이 터졌다.
다른 이들이 아버지가 말했던 허무맹랑한 일들을 시도해 죄다 성공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을 얻었고, 왕국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만약 그때 아버지의 생각대로 진행만 됐다면, 부와 권력을 얻는 건 반하르트 백작가였겠지.
아직도 그걸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만약 아버지가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계셨다면…….’
그때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빙의한 인물은 칼른 반하르트. 반하르트 백작가의 가주이자, 주인공의 생명의 은인.」
주인공의 생명의 은인?
그것이 아무래도 아버지가 이 세계에서 맡은 배역이었던 모양이다.
편지에는 아버지의 신세 한탄이 끝난 이후론 줄곧 ‘주인공’에 대해서만 적혀 있었다.
주인공이 얼마나 이 세계에 중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하지만.
「주인공은 죽었다.」
그것들은 이 문장으로 모두 무의미해졌다.
「칼른 반하르트의 역할은 골목에서 죽어 가던 소년, 파비안을 우연히 구해 가문의 시종으로 들이는 일이었다.」
파비안.
그것이 주인공의 이름인 듯했다.
다만 문제는, 아버지가 낙마로 인해 정신을 잃었던 사이 파비안이 죽고 만 것이다.
“……잠깐.”
그럼 이 세계에는 주인공이 없다는 건가?
아니, 아니지. 이건 단순한 아버지의 망상에 불과할 텐데.
그렇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젠 전부 끝났다고 말씀하시던 게…….’
언제나 아버지가 중얼거리던 말.
그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주인공이 죽었음을 인지한 것이다.
이미 편지는 몇 줄 남아 있지 않았다.
묘하게 불안해진 마음으로 남은 편지를 읽었다.
「나는 이제 죽는다. 주인공이 죽어 망작이 되어 버린 소설의 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원통하다. 주인공이 없는 세계는 멸망을 향해 착실하게 나아가겠지. 이 세계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편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순한 미친 아버지의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여태 벌인 일.
그리고 했던 말.
단순한 망상으로 치부하기엔 묘하게 아귀가 맞았다.
편지를 다시 읽고 혹시나 싶어 편지의 뒷장을 보자, 그곳에는 하나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로 클레이 반하르트라는 내 이름과 함께.
「클레이, 너는 이런 나를 끝까지 아버지로 대해 줬지. 미치광이라 불리던 나를. 고작 소설의 등장인물이라 생각하며 너에게 대꾸 한 번 하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마치 아버지의 덤덤한 말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너에게 아비의 사랑은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너희를 탄생시킨 창조주로서 선물을 주고자 한다. 이제부터 이 소설은 너의 것이다. 너만이 이 소설을 고칠 수 있다.」
그 문장을 홀린 것처럼 바라보았다.
「클레이, 이제부터 네가 이 소설의 작가다.」
직후, 마지막 문장이 마치 천둥처럼 내 머리를 울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윽?!”
머리가 어질거리고 시야가 컴컴해지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흔들었지만 도리어 눈앞에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중 역할에 ‘대필 작가’가 추가됩니다.] [능력에 ‘설정 확인’이 추가됩니다.] [능력에 ‘설정 추가’가 추가됩니다.] [능력에 ‘시놉시스’가 추가됩니다.]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글자가 뭔지, 대체 무슨 조화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할 틈도 없었다.
숨이 턱 막히며 점차 시야가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아버지.’
편지에 뭔 짓을 해 둔 겁니까?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