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0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03화>
103. 추모식(2)
응접실로 향하자, 긴장한 얼굴로 찻잔을 놓고 있는 모네와 두 명의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레오가르트 국왕과 게일 공작.
사실상 탈루아 왕국의 실세라고 말할 수 있는 둘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레오가르트 국왕.’
본래라면 광의 재해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인물이었지만, 운명이 바뀌었다.
죽었어야 할 레오가르트 국왕은 살았고, 살았어야 할 리비나 백작은 죽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왕국의 검이자…….”
“거창한 인사는 필요 없다, 반하르트 백작.”
극상의 예를 갖추려고 하자, 레오가르트 국왕이 손을 뻗어 말렸다.
기껏 자세를 잡은 나만 뻘쭘해졌다.
“아스크탈린 황녀는 어디에 있지?”
“제국에서 온 지원을 받기 위해 잠시 나갔습니다.”
“……그렇군.”
물심양면으로 제국이 돕고 있음에도 레오가르트 국왕의 얼굴은 편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제국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피해가 크니 어쩔 수 없겠지.’
인명 피해는 적지만, 왕국 수도의 5분지 1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갔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졌고 땅이 갈아엎어진 탓에 탈루아 왕국으로선 쉽사리 복구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만약 아스크탈린 제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몰렸을지도 모른다.
“우선 자네는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
“예.”
솔직히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먼저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레오가르트 국왕은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옆에 앉은 게일 공작에게 눈짓했다.
“어흠, 반하르트 백작. 자네도 알겠지만 리비나 백작은 왕국의 정신적 기둥이었네.”
기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탈루아.
분명 우수한 기사들을 보유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주변의 왕국에 비해 월등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는, 리비나 백작의 존재 때문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비나 백작은 재해에 의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네.”
게일 공작은 진심으로 침통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륙 칠영웅의 자리가 한 자리가 비게 되었지.”
“…….”
“아마 자네도 들은 적이 있을 걸세. 만약 칠영웅이 누군가에게 패하여 그 자리를 내어준 게 아니라면, 그 자리에 올라 마땅한 자를 선발한다는 것을.”
역시 내 추측대로였다.
칠영웅이 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이미 칠영웅의 자리에 있는 강자에게 수많은 관중과 칠영웅 중 셋 이상의 입회하에 정식으로 도전하는 것.
이게 일반적인 일이나, 가끔 이변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예상치 못하게 칠영웅이 은퇴를 하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경우.
바로 그때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칠영웅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영웅의 자격을 시험하는 자리, ‘칠웅회합(七雄會合)’이 개최될 걸세.”
“그 자리에 저를 보내실 생각입니까?”
“……염치없는 소리지만 부디 그래 주길 바라네.”
고개까지 숙이며 말하는 게일 공작의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칠웅회합.
이건 제국에서 벌어졌던 제국연무회와는 격이 다르다.
제국연무회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신예들이 모이는 자리지만, 칠웅회합은 이미 완성된 괴물들만이 모여든다.
쉽사리 생기지 않는 특별한 자리이니만큼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들 터였다.
‘마지막 칠웅회합을 통해 칠영웅이 된 자는 소일라 프란.’
마탑주 소일라 프란.
기드온 아스크탈린과 더불어 대륙 최고의 마법사로 꼽히는 그녀는 칠웅회합을 통해 대륙 칠영웅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이번 칠웅회합에서도 그 정도의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자리에 나선다는 결정은 쉽사리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잠자코 있던 레오가르트 국왕의 입이 열렸다.
“반하르트 백작, 그대가 이룬 일들은 하나같이 결코 범인이 이룰 수 있는 것들이었네. 지금 탈루아의 대표로 그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자는 응당 자네뿐일세.”
“…….”
말을 이어 나가는 그의 목소리에는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결코 일국의 군주에게서 나올 수 없는 자세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자신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장 내게는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으니까.
내가 망설이고 있자, 그것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레오가르트 국왕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바로 결정해 달라는 건 아닐세. 자네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을 테지. 일주일 안으로만 답을 내려 줬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레오가르트 국왕은 내 대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자네라면 알드레드의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 미소에서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레오가르트 국왕과 리비나 백작은 꽤나 막역한 사이인 걸로 기억했다.
그에게 리비나 백작의 죽음은 단순히 뛰어난 신하를 잃은 수준이 아니었으리라.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며 자리를 떠나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나는 조용히 어둠 속에 앉아, 아롱아롱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이미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없을 기회잖아. 뭘 그렇게 고민해?]‘그란세시아, 너도 알다시피…….’
[파비안 때문이지?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의 뒤를 쫓는 거니까.]그랬다.
사실 칠웅회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한 번쯤 참가해 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칠웅회합이 열릴지 기약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이 원작에선 없었던 사건이라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맞아. 당장 재해와 천하칠검의 문제를 뒤쫓는 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그건 ‘원작’을 생각할 때의 이야기지.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만약 원작을 모른다면.]그란세시아는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작가’ 클레이 반하르트가 아닌, ‘인간’ 클레이 반하르트로서 너는 어떻게…….]‘잠깐만.’
똑똑.
그때,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이 늦은 밤에 나를 찾아올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클레이, 저예요.”
“열려 있어.”
리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복장은 리야 아스크탈린이라는 고귀한 용의 황녀답지 않은 귀여운 분홍색 파자마였는데, 의외로 아주 잘 어울렸다.
“아직도 안 자고 뭐해?”
“잠시 밖에서 산책하고 있었어요. 근데 창밖으로 옅은 불빛이 보이더군요.”
기껏해야 작은 촛불이었는데 눈도 참 좋다.
“칠웅회합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모양이네요.”
리야는 마치 오후에 있었던 나와 레오가르트 국왕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전 제국의 황녀니까요. 애초에 저의 아버지도 칠영웅이랍니다.”
“하긴 그렇지.”
기드온 아스크탈린 또한 칠영웅에 속한 자였다.
리야 역시 이번 일에 관련이 아예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거야?”
“클레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그럼?”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싶어서요.”
이미 나는 틈틈이 소설을 작성해서 리야에게 건네준 상태였다.
분량은 딱 한 권 정도.
파비안이라는 고아 소년이, 귀족가에 들어가 하인이 되고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는 내용이었다.
“근데 정말 처음 써 본 게 맞나요?”
“그래. 내가 따로 소설을 써 봤을 리 없잖아.”
“그건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근래 이런 독특한 설정의 소설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리야는 정말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연신 자신이 보았던 소설 속 파비안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의 소리가 들린다……. 분명 이게 후에 천하칠검과 얽힌 내용에 연관된 능력 맞죠?”
“맞아.”
“그럼 저도 등장하나요? 재해와 싸울 텐데.”
“한참 후에.”
나는 그렇게 리야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칠웅회합에 대한 고민도 옅어져 갔다.
“클레이.”
“응?”
“사실 하고 싶지요?”
“……뭐가.”
“칠웅회합.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서요.”
“그 이야기하러 온 건 아니라며.”
“어머, 제가 그랬었나요?”
갑작스레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얼버무리는 내 모습에 리야는 입을 가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클레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클레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답니다. 항상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뭐, 칠웅회합에 참여한 사이에 어디선가 재해나 천하칠검이 나타난다든지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 거겠죠.”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오늘 바로 거절했겠죠? 라고 리야의 눈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왕국을 목숨 바쳐 지켰던 한 영웅을 위해, 칠영웅의 자리를 되찾고 싶다. 그런 마음이 분명 남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렇게 말한 리야는 살며시 내게 다가와 이마를 살며시 맞댔다.
“클레이의 소설은 ‘개연성’을 무척 신경 쓰더군요. 이런 이유가 있기에 해야 된다. 혹은 이건 이유가 부족하기에 해선 안 된다. 물론, 개연성은 필요한 법이죠.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개연성이 없다는 걸 알잖아요?”
내 얼굴이 환하게 비치는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도 담겨 있지 않았음에도 마치 용언처럼 와닿았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 우연 속에서…… 의외의 답을 찾을 때도 있답니다?”
그렇게 말한 리야는 살며시 이마를 떼며 멀어졌다.
“그럼 2권 기대할게요. 1권의 유통은 걱정 말고 제게 맡겨 주세요.”
리야는 마치 바람처럼 휙 등을 돌려 문을 열고 사라졌다.
촛불 탓인지 모르겠지만 등을 돌려 나가는 리야의 볼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나는 사라진 리야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란세시아.”
[……왜.]잘은 모르겠지만 조금 토라진 음성이었다.
“아까 하려던 말은 뭐였어?”
[됐어, 흥. 말 안 할 거야.]얘는 또 왜 이래.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잠이 쏟아졌다.
그 탓에 나는 그란세시아의 혼잣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내가 먼저 말해 주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