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0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07화>
이레귤러(1)
올튼 산맥을 타고 넘어간다면, 티라리스산의 중턱까지는 단번에 도착하게 된다.
최단 거리라고 할 수 있는 길이지만, 이 산맥을 넘는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그야 올튼 산맥에는 지독한 독무가 퍼져 있으니까.’
오래전, 올튼 산맥에서 한 드래곤이 숨을 거뒀다.
올튼 산맥의 지배자, ‘독룡’이라 불리던 블랙 드래곤.
일반적으로 드래곤은 죽음을 맞이하면 마나로 회귀를 하지만, 독룡은 달랐다.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던 독룡의 의지가 만들어 낸 변화일까.
독룡의 시체는 끔찍한 독을 뿜어내며 산맥의 일부를 오염시켰다.
끔찍한 독소는 바위와 흙을 녹여 계곡을 만들었고, 올튼 산맥은 항상 매캐한 독무가 자리하게 되며 금지(禁地)로 지정되었다.
그러니 이곳에 올 미친놈은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없으리라.
“경치가 참 좋네.”
맹독으로 녹아내린 절벽은 물렁하며 반질반질한 특이한 형태였다.
평범한 생명체라면 그 물렁한 벽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손가락이 녹거나, 중독되어 목숨을 잃겠지만 나는 달랐다.
오히려 적당히 단단하며 물렁한 벽 덕에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가 쉬웠다.
[설마 여기를 기어오를 녀석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야.]“그렇게지. 슬슬 다시 올라가 볼까?”
절벽의 틈새에서 기어 나와 다시 벽에 손을 댔다.
“흡!”
잠시 후 절벽의 끝에 도달해 기어오르자,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높이가 높이다보니 차가운 냉기가 전신을 타고 흘렀다.
공기도 확실히 전보다 희박해진 게 느껴졌다.
“겨우 중턱에서 이정도인가…….”
중턱까지는 쉽게 왔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괜히 티라리스산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험준한 산으로 알려진 게 아니니까.
[이것도 하나의 시험이라는 것 같네. 이 정도는 올라야 영웅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는 거겠지.]“확실히 납득이 되는군.”
바람이 매섭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이들은 추위나 더위에 어느 정도 면역을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나 또한 그런 경지에 오른 덕분인 듯했다.
소드 마스터가 이 정도라면 이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은 대체 어떨까 궁금할 정도였다.
‘근데 어떻게 이런 곳에 나무가…….’
고산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 터라 보통 허허발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티라리스산의 고지에서는 멀쩡히 나무가 자라 있었다.
[아마 이 산 전체에 마력이 흐르는 영맥이 있기 때문일 거야.]‘그런 게 있다고?’
[그래. 영맥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그것으로부터 마력을 계속 흡수하면서 추위를 버틸 수 있게 된 거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저 나무에 열린 열매도 보통 열매랑은 다르려나?’
[그렇지. 먹었을 때 영약이라 불리는 것들처럼 엄청난 효과는 없겠지만, 미비하게나마 마력이 늘어날 거야. 물론, 보통은 그와 동시에 죽겠지만.]이어진 그란세시아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마력을 머금고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나무의 열매이니만큼 해로운 성질도 품고 있으리라는 것.
‘그거라면 나한텐 문제없겠네.’
아, 정말 신혈을 미리 얻어 둬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이것 덕에 얻은 이득이 대체 몇 개란 말인가.
나는 산을 타고 올라가며 틈틈이 나무에서 열매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다만 눈에 불을 켜고 열매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열매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우측에 이안 실베스트가 간다!”
“누가 저놈 좀 잡아!”
조금 올라가고 있으니 숲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역시 예상대로 이름이 알려진 자는 쉽게 표적이 되는 모양이다.
‘설마 이렇게 빨리 아는 사람과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그나저나 이안 실베스트도 역시 이번 칠웅회합에 참여한 모양이다.
그 또한 소드 마스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큭!”
이안은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향해 검기를 뿌렸지만, 그쪽도 최소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탓에 쉽사리 맞지 않았다.
그는 눈으로 된 대지를 내달려,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지나가다…… 멈췄다.
“클레이 반하르트?”
녀석은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느긋하게 올라가던 내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분명 마지막에 봤을 때 너의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
“그보다 뒤를 보는 게 어때?”
“……!”
내 말에 황급히 이안이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화살 한발이 스쳐지나갔다.
“제길! 죽일 수 있었는데……! 저놈은 귀신인 거냐?!”
“근데 지금 이안 실베스트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야?”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는 열댓 명의 남자들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제국 공작의 자제를 아주 대놓고 죽이겠다고 말하네. 칠웅회합이니 눈에 뵈는 것도 없다는 건가?”
“아마 올랜드 왕국 출신의 기사들이겠지.”
“뭐?”
“올랜드 왕국은 자국의 소드 마스터를 새로운 칠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실력자들을 노리고 있다. 물론 용병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저 특유의 움직임은 본 기억이 있지.”
“그래서 너도 표적이 된 건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전부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실력자다. 게다가 산악 국가인 올랜드의 출신답게 산이라는 지형을 이용할 줄 알지. 이곳은 놈들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과연, 그렇군.”
이안의 모습은 딱 봐도 상처투성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이 산의 중턱까지 올라오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분명 저 올랜드인가 뭔가 하는 놈들과 비슷한 자들을 몇 번이나 상대하며 온 거겠지.
“저놈! 그자입니다. 클레이 반하르트!”
“뭐라고? 그 신검의 주인 말이냐?!”
“그렇습니다, 초상화와 꼭 닮았습니다!”
이안과 함께 있는 나를 바라보던 올랜드의 기사 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나 역시 처리해야 할 대상에 올라가 있는 모양이다.
‘역시 올튼 산맥을 타고 올라온 건 정답이었어.’
만약 정식 루트로 밟아서 왔다면 상당히 피곤했을 것 같았다.
“신검의 주인의 실력은 아직 소드 익스퍼트라고 알려져 있다! 한꺼번에 덮친다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터! 당장 쫓아라!”
“옙!”
이안의 말처럼 복장과 말투만 조금 위장했을 뿐, 움직이는 방식은 딱 기사를 생각나게 했다.
“어떡할 거야? 이대로 계속 도망칠 건가?”
“그럴 생각이었다만…… 지금 바뀌었다.”
“잘 생각했어.”
담담한 녀석의 말에 나는 씩 웃었다.
나 역시 쓸데없이 도망치며 힘 빼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뭣보다 도망치다간 다른 녀석들의 시선을 끌게 될 테고, 그럼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여기서 모두 처리하고 간다.
마침 옆에 이안도 있으니 딱 좋지 않은가?
사아아아!
몸에 마력이 끓어오르며 전신에 빠르게 순환했다.
순환된 마력은 팔로 뻗어져 검을 타고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소드 마스터의 상징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라고?!”
우리를 향해 덤벼들던 기사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나의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그것에 도달한 것도 겨우 반년 전에 있었던 카인젤 왕국과의 전쟁에서였다.
그런데 고작 반년 만에 나는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러니 놈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왼쪽만 맡으면 되겠군.’
이안은 확실히 천재였다.
가볍게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어디를 맡을 것인지 알렸다.
자연스럽게 구도가 잡히며 내가 상대할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 그럼.’
이전이라면 통찰안을 사용했어야 또렷이 알 수 있었던 흐름들이 느껴졌다.
내게 덤벼드는 다섯의 적들.
그들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푸른 오러 블레이드 위에 백색의 광채가 맺히며 눈 덮인 대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수증기가 뿜어졌다.
일륜지천검.
그 첫 번째 초식이 다섯의 기사를 향해 펼쳐졌다.
* * *
열댓 명의 기사들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소드 마스터라는 걸 알자, 덤벼들던 기사들이 크게 당황한 탓이다.
당황하여 움직임이 무너진 틈을 나와 이안은 놓치지 않았다.
도망치려던 이까지 모두 쓰러트리자, 우리 주변에 있던 눈들은 모조리 녹아 푸른 풀들이 듬성듬성 엿보였다.
“……극양의 검술이군. 탈루아 왕국에 그런 검술이 있었나?”
이안은 적들을 쓰러트린 것보다 내 검술에 관심을 보였다. 일륜지천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생겼지.”
“설마, 네가 만든 건…….”
“그럴 리가 있나. 아주 대단하신 분이 만든 검술이지. 궁금하면 너희 황녀님에게 물어보라고.”
“으음.”
그 말에 이안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대답해 줄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럼 서둘러 올라가자고.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잖아?”
“알겠다. 하지만 시간 안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녀석은 조금 걱정이 되는 얼굴이었다.
여기서부터 탑이 있는 장소까지 가려면 험한 산세와 뿌연 안개를 뚫고 올라가야만 했으니까.
“그건 걱정 말라고. 이번엔 내가 특별히 도와줄 테니.”
실베스트 가문은 리야의 최측근이기도 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이렇게 도와주면 앞으로 있을 칠웅회합에서 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이후, 우리는 최대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을 이용하여 산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이안은 내가 잘 올라가는지 걱정이 될 텐데도, 특별한 질문 한 번 없이 묵묵히 따라왔다.
[쟨 대체 네 뭘 믿고 저렇게 따라온다냐.]‘내가 저놈 마음을 어떻게 알아?’
나로선 그냥 조용히 따라오니 편할 뿐이었다.
“잠깐.”
“엉?”
그때, 이안이 나를 불렀다.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건가 싶었는데, 녀석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사람이 쓰러져 있다.”
“뭐? 우리처럼 습격당한 사람 아냐?”
되도록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오긴 했지만, 중간중간 시체들이 보였다. 그 시체 중에선 익히 알려진 유명인도 있어 솔직히 가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사망자 중에선 무려 나와 같은 소드 마스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이다.”
이안은 훌쩍 뛰어 비탈길 아래로 내려갔다.
대체 뭘 본 건가 싶어 따라 내려가자, 눈에 뒤덮여 있는 작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저놈은 이런 걸 어떻게 눈치챈 거지?’
[아무래도 저 이안이라는 애송이는 유식의 범위가 무척 광범위한 것 같네. 말하자면 보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야 되나.]과연 이안은 평범한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
칠영웅 중 최강인 반 실베스트의 아들답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긴장될 정도였다.
“근데 이거 죽은 건…….”
“제대로 살아있다.”
이안은 덮인 눈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러자 모포를 푹 뒤집어쓴 무언가가 고개를 빼꼼 디밀었다.
“저, 적이신가요?”
놀랍게도 모포 아래로 보인 얼굴은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었다.
목소리는 한없이 가냘프고 힘이 없었지만, 붉은 머리칼이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쓰러져있어 도우러 왔을 뿐이다. 그렇지 않나, 클레이.”
이놈은 왜 갑자기 친한 척 말을 거는 거지.
‘근데 이 여자는 왜 이런 소심한 성격으로 칠웅회합 같은 데 참가하려고 하는 거야?’
이안의 말에 따라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은 마치 모네를 생각나게 하는 순박한 시선이었다.
‘어디…….’
나는 눈을 가늘게 좁힌 채 그녀의 설정을 확인했다. 이런 인물일수록 뒤통수를 가격하는 반전을 보여 주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직후, 나는 헛숨을 들이켜며 크게 경악했다.
“……!”
“클레이?”
이안은 그 모습이 의아했는지 나를 불렀지만, 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뒤통수를 맞았네.’
[소설 ‘검의 소리가 들려’의 진히로인.]키세아 바룬다르크.
그것이 그녀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