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08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08화>
이레귤러(2)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기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엔 어떤 시놉시스도 없었는데…….’
원작에는 없었던 일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원작과 관련된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키세아 바룬다르크.’
파비안과 관련되어 히로인에 가까운 인물은 여태 단 두 명만이 존재했다.
바로 모네와 마리아.
모네의 설정에는 파비안이 가장 신뢰하는 여성이며 오누이 같은 사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마리아의 경우엔 파비안의 조력자이자, 그를 사랑하는 소녀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 둘이 파비안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여성들이자 히로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여기서 갑자기 진히로인이 등장할 줄이야.
“저, 저기, 왜 그러시나요? 혹시 제,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키세아는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흔들며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그녀는 약간 쭈뼛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후우우. 기, 긴장했어요. 다들 막 습격하고 그러더라고요. 혹시 두 분도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하니 무서워서…….”
중얼중얼 이야기하던 그녀의 뒷말은 너무 작아 제대로 듣기 힘들 정도였다.
이것만 보면 키세아라는 여성이 무척 소심한 성격처럼 느껴졌다.
“흠. 그럼 차라리 산을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런 마음가짐으론 금방 표적이 될 거다.”
“그, 그렇지만…… 내려가면 어머님께 혼날 거예요.”
이안은 울먹거리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성격상 이런 여성은 도무지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면 그란세시아는 그런 키세아의 모습이 약간 의아한 것 같았다.
[이상하네.]‘이상하다니?’
[얘 꽤 센데?]그란세시아가 누군가에게 강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평가할 정도라면 정말 상당한 실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뭐, 물론 아까 마주쳤던 애들에 비해서라는 이야기지만…… 이런 실력으로 왜 이렇게 겁먹고 있는 거지?]‘……아마 무기를 쥐면 달라질 거야.’
[응? 그걸 어떻게 알아?]‘그야 설정을 봤으니까.’
키세아의 등에는 상당히 길쭉한 검이 메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특별할 거 없어 보이지만, 저 검은 상당히 특이한 물건이었다.
‘일단 같이 데려가야겠어.’
[도우려고? 엄청 수상한데…….]‘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원작의 진히로인이니만큼 곁에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
[히로인? 쟤도 원작에 등장하는 히로인이란 거야?]그란세시아 또한 예상치 못한 만남에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키세아를 훑어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파비안이랑 얽히는 애들은 다 예쁘긴 하던데…… 그걸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네.]‘그런 걸로 납득하지 마라.’
아무튼 나와 이안은 소심하게 뒤따라오는 키세아를 데리고 계속해서 산을 올라갔다.
인원이 셋이 되니 섣불리 덤벼드는 자도 나타나지 않았고, 험한 산세도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저, 저분은 대체 어떻게 길을 다 아는 것처럼 가는 건가요?”
“모른다.”
“그럼 모른 채로 그냥 따라가는 거예요?”
“그는 막무가내로 움직일 남자가 아니다. 다 방법이 있는 걸 테지.”
“그, 그런가요?”
키세아는 영 아리송한 얼굴이었지만, 이안은 덤덤한 얼굴로 답할 뿐이었다.
그 막연한 신뢰에는 나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쟤 진짜 단순하다.]‘그러게.’
귀족의 정점인 공작가의 자제로서 저런 성격으로 줄곧 자란 것도 대단할 따름이다.
혹시 검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튼 설정을 볼 수 있는 건 길 찾을 때도 참 좋단 말이야.’
언제 누가 지나갔는지, 혹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유심히 보면 자세히 알려 준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제 거의 끝이 보이네.”
뿌연 안개를 헤치며 위로 올라가자, 조금씩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들을 경계하며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왜, 왜 저희들을 이렇게 보는 걸까요?”
키세아가 그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이안, 우리 둘은 얼굴과 이름이 모두 상당히 알려져 있으니 알아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역시 신검의 주인도 온 건가…….”
“이 기회에 한번 노려 보는 게 낫지 않아?”
“아서라. 이안 실베스트도 함께 있다. 변수가 너무 많아.”
거친 바람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이야기한 거겠지만, 나나 이안에겐 똑똑히 들렸다.
‘정말 무법 지대가 따로 없군.’
[칠영웅이라는 이름값이 그렇게 큰 거야?]‘탈루아가 군사력이 크게 강하거나, 부유한 국가가 아님에도 열강에 낄 수 있었던 것도 칠영웅을 보유했던 덕이 크니까.’
하지만 알드레드 리비나가 사망하며 더 이상 그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됐으니 레오가르트 국왕이 급해진 것도 당연했다.
칠영웅이 사라진 탈루아는 기사의 나라라는 허울 좋은 호칭만 남은 어중간한 국가가 되어 버릴 테니까.
“다 왔군.”
그때, 어딘가를 바라보며 이안이 말했다.
나 역시 녀석이 바라본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지만 뿌연 안개와 차가운 눈보라만이 엿보였다. 거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인 눈이 휘날리는 터라 한치 앞도 보기 힘들었다.
[너도 좀 더 유식의 범위가 늘어나면 가능해질 거야. 근데 얘 정말 물건이네. 재능만 보면 데미안과 비슷할지도 몰라.]‘데미안이랑 비슷하다고?’
[뭐, 데미안은 이 나이 때쯤엔 훨씬 더 강했지만 말이야. 물론 그건…….]‘네가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내 덕분이야!]왁 하고 소리치며 말하는 그란세시아였지만, 확실히 그란세시아의 지도를 직접 겪어 봤던 나로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눈보라를 헤치며 올라가자, 이윽고 새하얗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탑이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탑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서고서야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마법으로 결계가 둘러싸고 있었군.’
육안으로 보일 거리까지 오자, 묘한 마력 파장이 느껴졌다.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인물이라면, 이곳까지 도달하더라도 탑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수준이 안 되면 평생 이 산을 떠돌다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칠웅회합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가혹할 것 같았다.
* * *
결계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주변에서 불어닥치던 눈바람이 사라졌다.
탑의 인근은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푸른 풀밭을 어색하게 밟으며 주변을 살피자, 대략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쟁쟁한 자들이야.’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면면을 훑어보았다.
죄다 어디선가 들어본 자들이었다.
“우, 우리가 여기서 제일 어린 거 같네요.”
연약한 목소리를 내며 키세아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모습만 보면 여린 토끼 같은 인상이지만, 실체를 아는 나로선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오, 생각보다 여기까지 온 자들이 많은데?”
“서헨즈,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용병 일을 오래하고 싶다면요.”
“……하긴 귀하신 분들도 많이 있으니.”
탑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자, 한 남자와 한 여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건들거리는 남자와 고결해 보이는 여성은 묘하게 잘 어울려 보였다.
“용병왕 서헨즈!”
주변에 있던 한 남자가 큰 소리를 내며 외쳤다.
아, 저자가 바로 용병왕 서헨즈였나.
아인트반의 국왕을 통해서나 의뢰할 수 있다는 용병왕.
사실 그건 따로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아인트반 국왕 정도나 그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서헨즈의 방랑벽은 극심했고,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서 오세요, 영웅이 되고자 하는 분들이여. 저는 레스티아라고 합니다.”
신궁(神弓) 레스티아.
나는 설정을 보아 알고 있었지만, 주변은 술렁였다.
하프 엘프인 그녀는 보통 숲에서 잘 나오지 않은 탓에 그 외모를 아는 자가 드물었다.
근데 저토록 아름다운 여성이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레스티아는 좌중을 한번 둘러본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앞에 보면 붉은 선이 있을 겁니다. 그곳을 넘은 분들은 영웅의 시험에 도전하신다고 판단하겠습니다.”
“영웅의 시험?”
레스티아의 말에 한 중년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예, 영웅의 시험. 칠영웅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위한 시험이죠.”
“그럼 이 붉은 선만 넘으면 그 시험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다만, 그 선을 넘기 전에 한 가지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서 서늘함을 느낀 건 아마 나만이 아닐 것이다.
좌중들을 훑어본 레스티아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영웅의 시험에 도전한다는 건 여러분의 지위와 신분의 고하를 떠난다는 겁니다. 누구든 목숨을 노릴 수 있으며,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감정의 고저조차 없는 냉정한 레스티아의 말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미 사람들을 습격하는 등의 행위를 하며 올라왔던 자들도 있었지만, 설마 저렇게 공연하게 말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은 여러분의 앞에 있습니다.”
레스티아의 말처럼 바닥에는 붉은 선이 언뜻언뜻 보였다.
참가자들은 잠시 서로를 엿보았지만, 누구도 물러서는 자는 없었다.
불과 5분이 지나기도 전에, 전부 붉은 선을 넘었다.
“이야, 다들 강심장이구만요. 설마 전부 넘을 줄이야.”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던 서헨즈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씩 웃으며 참가자들을 훑어본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아쉽지만 전부 들어오기엔 탑이 좁은데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지?”
레스티아의 말에 한 남자가 크게 물었다.
그는 기욘 왕국의 대공으로, 7클래스에 이른 뛰어난 마법사로 유명한 자였다.
“설마 이렇게 많이 통과할 줄 몰라서 숙식할 장소를 딱 열두 명 치만 구비해 뒀거든요.”
열두 명.
사람들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세 명이 더 많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바로 검을 뽑았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다. 이안과 키세아의 행동도 재빨랐다.
쉬이이익!
무언가가 날아온다, 그렇게 느낀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젖히며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무언가가 날아와 검에 강하게 충돌했다.
“……!”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검을 쥔 손이 저릴 정도였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마치 비처럼 화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겨우 화살의 비가 멈췄을 때, 주변에는 황폐한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방금 내 목숨을 노렸던 화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강기를 화살처럼 날린 건가?’
시야를 위로 올리자 활을 들고 있던 레스티아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이제야 숫자가 딱 맞네요.”
무슨 소린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자, 신음을 내며 널브러진 세 명의 남성이 보였다.
[살벌하네…….]그란세시아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역시 뭐라 답하기 힘들었다.
영웅의 시험이 가혹하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래서 동의를 구한 건가.’
그나마 목숨을 빼앗지는 않은 걸로 보아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 것 같았다.
‘마구잡이로 쏜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급소는 피해서 쐈어.’
과연 저게 칠영웅 중 한 사람, 신궁.
분명 이것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 조절을 한 게 분명했다.
“오우, 역시 레스티아야. 성능 확실하구만.”
“조용히 하고 안내나 하세요. 머리에 구멍 나고 싶지 않으면.”
“……알겠다고.”
날카로운 레스티아의 말에 서헨즈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럼 다들 저를 따라오십쇼.”
가볍게 손짓을 하며 등을 돌리는 서헨즈의 모습에, 신분이 높은 몇 명은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차마 뭐라 직접적으로 뭐라 말하진 못했다.
방금 레스티아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탑 안에서는 누구든 목숨을 잃을 수 있고, 빼앗을 수 있다.’
그건 눈앞의 칠영웅들도 포함되는 말이었으니까.